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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id 이드 Apr 19. 2023

[iid] 내 것을 비워야지 새로 또 채울 수 있어요

이드의 HR 커리어 성장 시리즈 ③

[Edited by iid the HRer]

※ 내가 쓰는 글들은 아주 개인적인 경험에 근거한 지극히 개인적 의견이니 편하게 봐주면 좋겠다.





과거 매경에서 진행했던 인터뷰 (https://m.mk.co.kr/news/fastview/10626886)에서 했던 이야기였는데 정작 인터뷰에서는 지워졌지만 브런치에서라도 남기고 싶어 쓴다.


뜬금없이 웬 영화이야기냐고 하겠지만 나는 이연걸이 나온 '의천도룡기'를 굉장히 좋아한다. 무협영화를 좋아하는 사람들에게선 전설로 남은 영화긴 하다. 영웅문 3부 의천도룡기를 소재로 한 영화는 많지만, 주인공들도 굉장히 퀄리티 있고 CG도 좋고 그런데 누가 봐도 시리즈물인데 1편만 나오고 사라진 비운의 영화는 바로 이 이연걸 주연의 '의천도룡기' 뿐이다.


무려 장무기가 이연걸이고 장삼풍이 홍금보다. (영화를 안 본 분들에겐 먼저 사죄의 말씀을 드린다)

영화에서 내가 제일 좋아하는 씬이 있다. 영화 후반부에 장무기가 원래 자신의 무공인 구양신공을 쓰지 않고 장삼풍에게 즉석에서 배운 무공으로 싸워야 하는 씬이 있다.


장삼풍이 만든 지 얼마 안 된 무공인 태극권을 장무기에게 즉석에서 전수한다.
그러면서 장삼풍은 초식을 보여줄 때마다 질문하다. "다 잊었느냐"
굉장히 아이러니하게도 초식을 보여주면 으레 그것을 외우고 따라 해야 하는 것이 맞는데도 계속 '잊으라"고만 한다. 물론 장무기는 비범한 주인공이기에 그 뜻을 이해하고 다 잊는다. 그리고 태극권의 묘리를 깨치고 승부에서 이긴다.


뜻하지 않게 이직을 한 번 두 번 하다 보니 HR스타일들이 다른 경우 어떻게 하냐의 고민에 빠지게 된다. 이런 고민을 가지는 지인/동료/후배들에게 이 장면을 이야기해 준다.


전문성을 바탕으로 매뉴얼과 가이드대로만 운영하는 직무도 있겠지만 HR은 그런 게 아니다. 정말 동일한 근로기준법 조항을 가지고 판단해야 하는 사례이더라도 상황과 대상, 그리고 문화에 따라 너무도 양상이 다 달라진다.


HR 시니어가 되면 될수록 의외로 자기 스스로의 인이 박히게 된다. 이 인은 자존심일 수도 있고 아집일 수도 있고 전문성일수도 있다. 하지만 아래 글에도 썼듯이 HR은 정치와 같이 여러 의사결정의 집합체 영역이다. 그래서 누군가에겐 아트이고 누군가에게 고통일 수 있다.

https://brunch.co.kr/@shineastkim/8


내가 경험하고 알고 있는 HR은 사실 수많은 케이스이고 프랙티스이다. 이는 그릇이 아니고 그 안에 담겨있는 내용물이다. 내용물을 외형으로 착각해서 단단하게 만들게 되면 또 다른 모양의 그릇에 정작 내가 가지고 있는 내용물들을 담지 못한다. 내용물들이 점점 쌓이고 풍부해지면 사실 어떤 그릇에서든 그 내용물은 빛나게 되어있다.


그리고 그 결과 나 자신의 내용물과 그것을 품을 수 있는 내면의 그릇은 더더 커지게 된다.


내가 경험하고 알고 있던 어떤 形의 HR이 있다면 새로운 환경에서 그것을 잊고 새로운 形을 빚을 수 있어야 한다. 그러려면 누구보다 단단하고 알차고 풍부한 내공이 있어야 한다. 내가 일을 하며 스스로 발전하고 성장해나가야 하는 부분은 어떤 HR 스타일이야 혹은 어떤 가치관/철학이야 이것보다는 나 자신의 단단한 내공이라고 나는 개인적으로 생각한다.

물론 철학/가치관/스타일이 중요하지 않다는 것은 절대 아니다. 단지 선후가 뭔지가 중요하다 생각한다. (절대 비판 아님) 가끔 스타트업 HR에 대한 환상만 갖고 들어오는 분들이 있는데 스타트업 HR의 수평적이든 인재 포커스든 조직문화의 중요성이든 사실 이런 것들은 그 자체가 시작이 아니고 결과적으로 그런 것들이 이루어졌다가 맞다고 생각한다. 그 과정은 사실 정말 지난하고 지루하고 고통스러울 수 밖에 없다.


내가 만들어오고 가진 것들을 비우기는 쉽지 않다는 것을 잘 안다. 하지만 다른 직무와 달리 industry oriented 가 약한 경영지원 직무, 특히 HR은 그것을 버리지 못한다면 사실 그릇이 너무 작아진다.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커리어 동안 경험한 도메인만 해도 제조업 (부품, 완성차), 핀테크, 여가산업, B2B 헬스케어, D2C 커머스, 에듀테크/콘텐츠 등 다양하다. 각각의 도메인별로 또 대표이사 스타일에 따라 HR 스타일은 너무 다르다.


내가 또 다른 새로운 조직/산업에서 일을 시작한다면 다양한 도메인에서 경험한 것을 가지고 올 수도 있다. 하지만 내가 가져와야 할 건 각각의 形이 아닌 그 안의 내용물이다. 그것이 어떤 형태의 그릇에서도 물처럼 유연하게 그 안을 채울 수 있는 내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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