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id] 일은 했다 / 안했다의 2진법이 아니다.

이드의 멘탈 가이드 – 현타가 올때 꺼내보는 실전 매뉴얼

by iid 이드

‘이드의 멘탈 가이드’는 현타가 찾아오는 순간마다 꺼내보며, 감정에 휘둘리기보다 지금 이 상황을 어떻게 해석하고 어떻게 다시 움직일지 정리할 수 있도록 돕는 실전 가이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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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임이 무서운 게 아니라, 시작했다고 말하는 게 더 무서워진다

리더를 처음 맡은 분들을 멘토링하다 보면, 거의 공식처럼 반복되는 말이 있다.

“책임이 너무 부담됩니다.”

그런데 이 말을 곱씹어 보면, 책임 그 자체가 무서운 경우는 생각보다 많지 않다. 조금만 더 이야기를 들어보면, 진짜 두려움은 다른 데 있다. 책임이 생기면서부터, 무언가를 ‘했다’고 말하는 순간이 너무 조심스러워졌다는 것이다.


스타트업은 원래 불완전한 조직이다. 딱 맞는 레퍼런스도 없고, 상황에 따라서는 시장이나 비즈니스 모델 자체를 만들어가며 일해야 하는 곳도 많다. 그런 환경에서 리더 역할을 맡으면 자연스럽게 이런 질문이 떠오른다. 이걸 내가 해도 되는 걸까? 이 정도 수준으로 시작해도 괜찮은 걸까? 책임이 생기자, 행동보다 판단이 먼저 튀어나온다.


물론 책임을 거의 의식하지 않고 일을 가볍게 대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오늘 이야기하고 싶은 대상은 그런 사람이 아니다. 오히려 책임을 너무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탓에, 완성되지 않은 상태로 무언가를 시작하는 것 자체를 계속 주저하는 사람들이다.


특히 공부를 많이 했거나, 이전에 큰 조직을 경험한 분들일수록 이 경향은 더 강하다. 왜냐하면 ‘일을 한다’는 기준이 이미 과거의 경험 속에서 꽤 높은 지점에 고정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 기준에 못 미치면, 차라리 시작하지 않는 게 낫다고 느낀다. 그리고 그 판단은 점점 더 많은 일을 ‘보류 상태’로 만들어버린다.


100이 아니면 안 한 것처럼 느껴지는 습관

이럴 때 나는 종종 이렇게 말한다. “지금 회사는 그 기준으로 보면, 아무도 일을 시작할 수 없습니다.”
삼성이나 현대 같은 회사도 하루아침에 만들어진 조직이 아니다. 최소 60년, 세대로 따지면 3대에 걸쳐 축적된 결과다. 이제 막 3년, 5년 된 회사가 그 수준의 완성도를 갖출 거라고 기대하면, 결국 리더는 계속 멈추게 된다. 아직 이 정도로는 부족한데… 조금 더 정리되면 시작하지 뭐. 이런 생각 때문이다.


여기서 중요한 포인트가 하나 더 있다. 많은 리더들이 일을 0과 1의 문제, 혹은 100점짜리 결과의 문제로 받아들인다. 100이 아니면 안 한 것 같고, 100에 못 미치면 시작한 것조차 아닌 것처럼 느낀다. 하지만 현실의 일은 디지털이 아니라 아날로그다. 0에서 1로 간 것도 한 거고, 10까지 온 것도 한 거고, 50까지 온 것도 분명히 한 일이다. 어쨌든 1이라도 움직였다면 이미 시작한 것이다.


우리는 0 to 1이라는 말을 참 좋아한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실제 업무에서는 그 ‘1’을 거의 인정하지 않는다. 늘 머릿속에는 100만 있다. 특히 결과 중심적인 한국 문화에서는 더 그렇다. 마지막 결과, 최종 완성본, 보고서의 끝 페이지가 나오지 않으면, 그 과정 전체를 무의미하게 여기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아직 10밖에 안 됐다는 이유로, 일을 시작한 자신을 미완성 취급하고, 다음 액션을 스스로 멈춘다.


그런데 가만히 보면, 부담의 본질은 책임이 아니다. “이걸 했다고 말해도 되나?”라는 두려움이다. 이 정도 상태로 공유했다가, 혹시 부족하다는 평가를 받지는 않을지, 괜히 일을 벌였다는 소리를 듣지는 않을지 걱정하는 마음이다. 그래서 리더는 계속 준비만 하고, 정리만 하고, 생각만 하다가 어느 순간 시간을 훌쩍 넘겨버린다.


만약 내가 100을 목표로 했는데 지금 10까지 왔다면, 그건 실패가 아니다. 현재 위치다. 문제는 10이라는 숫자가 아니라, 10을 10이라고 말하지 못하는 데 있다. 그 다음에 해야 할 일은 자책이 아니라, 나머지 90을 어떻게 채울지에 대한 로드맵을 그리는 것이다. 인생도, 일도 시작과 끝만 있는 사진첩이 아니라, 수많은 장면이 이어지는 영상에 가깝다.


대표가 특정 시점에 100을 기대했더라도, 그때 60까지밖에 못 왔다면 중요한 건 “못 했다”가 아니다. 60까지 왔다는 사실과, 남은 40을 어떻게 갈지에 대한 설명이다. 대부분의 대표가 싫어하는 건 40이라는 숫자가 아니라, 그 40이 어디에 있는지 아무도 모르는 상태다. 리더가 느끼는 부담은 책임 그 자체가 아니라, 이 설명을 해야 한다는 심리적 압박인 경우가 훨씬 많다.



리더의 역할은 완성하는 사람이 아니라, 진행 상태를 말할 수 있는 사람이다

리더가 일을 시작하지 못하게 만드는 가장 큰 장벽은 책임이 아니다. 100이 아니면 하면 안 된다는 생각이다. 하지만 리더에게 요구되는 역할은 완성된 결과를 한 번에 들고 오는 사람이 아니다. 지금 우리가 어디쯤 와 있는지, 무엇이 되었고 무엇이 아직 안 되었는지, 그리고 다음으로 무엇을 할지를 말할 수 있는 사람이다. 일은 책상 위에서 완성되는 게 아니라, 실행하면서 다듬어지고 만들어진다.


아직 10이라면, 그건 0이 아니다. 아직 60이라면, 그건 실패가 아니다. 그건 모두 진행 중이라는 뜻이다.


중요한 건, 그 10과 60을 발판으로 계속 움직이고 있느냐는 점이다. 일을 하다 보면 처음 목표로 삼았던 100은, 실행 과정 속에서 계속 형태가 바뀐다. 해보니까 더 필요한 게 보이고, 해보니까 더 욕심이 생긴다. 그렇게 만들어진 100은, 처음 머릿속에 그렸던 100과는 전혀 다른 모습일 수도 있다. 그리고 종종 그 결과는 100이 아니라 200이 되기도 한다.


리더의 첫 책임은 완벽함이 아니다. 시작한 것을 숨기지 않고 말할 수 있는 용기다. 일을 했다는 건 한 번에 100을 만들어냈다는 뜻이 아니다. 1이라도 움직였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에서 시작한다. 그리고 그 1을 10으로, 10을 60으로, 60을 100으로 끌고 가는 과정을 설명할 수 있을 때, 그 사람은 이미 리더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진짜 일은 한 번에 100을 찍는 게 아니라, 실행하면서 100을 만들어가는 과정에 있다.


너무 늦기 전에, 너무 완벽해지기 전에, 일단 했다고 말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렇게 시작한 일이 쌓이면서, 어느 순간 우리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큰 결과를 만들어내기도 한다. 리더의 일은 언제나, 실행을 인정하는 순간에서부터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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