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중잡담(醉中雜談) - 술김에 적는 솔직한 이야기들
‘취중잡담(醉中雜談) - 술김에 적는 솔직한 이야기들’은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 지인들이 익명으로 참여해, 술자리에서나 나눌 법한 솔직한 생각과 이야기를 가볍지만 진지한 시선으로 풀어내는 프로젝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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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모두 이중잣대의 달인이다. 남이 하면 비난하고, 내가 하면 합리화한다. 남의 특혜는 불공정이고, 내 특혜는 당연한 권리다. 남의 영끌은 무모함이고, 내 영끌은 전략적 투자다. 남의 회사 이직은 배신이고, 내 이직은 커리어 개발이다.
이게 비난이 아니다. 관찰이다. 우리 모두가 이렇게 산다. 아침엔 공정을 외치고, 저녁엔 내 아이 입시에 부모 찬스 쓴다. SNS엔 환경 보호 포스팅하고, 실제론 배달음식 시켜먹는다. 회사에선 수평 조직 말하고, 정작 후배한테는 권위적으로 군다. 뉴스 보며 특권층 비판하고, 본인은 아는 사람 찾아 줄 서기 한다.
더 흥미로운 건, 우리가 이 모순을 정당화하는 방식이다. "내 경우는 달라", "내 사정을 모르면서", "나는 어쩔 수 없었어"... 언제나 나만은 예외다. 원칙은 중요하지만, 내게 적용될 땐 융통성이 필요하다. 법은 지켜야 하지만, 내가 어길 땐 불가피한 상황이었다.
그리고 이 예외는 점점 당연해진다. 처음엔 미안함이 있었다. 근데 주변을 보니 다들 그렇게 산다. 그럼 나만 손해 보는 거 아닌가? 그렇게 합리화는 습관이 되고, 이중잣대는 생존 전략이 된다. 5천만 명의 내로남불. 이게 우리가 사는 세상이다. 그리고 우리는 그 안에서 완벽하게 적응했다. 어쩌면 너무 잘 적응한 게 문제일지도 모른다.
경제 뉴스는 연일 코스피 사상 최고치 경신, 외국인 투자자금 몰려온다 같은 헤드라인으로 도배된다. GDP 성장률도 나쁘지 않고, 국가 신용등급도 괜찮다. 그런데 정작 동네 치킨집은 하나씩 문 닫고, 편의점 알바비로는 월세도 못 낸다.
이게 바로 종이 위 경제와 밥그릇 경제의 괴리다. 주식시장은 대기업 실적이 좋으면 튀어 오른다.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반도체 잘 팔리면 지수는 상승한다. 근데 그 사이 서민 경제는? 일자리는 줄어들고, 물가는 오르고, 실질소득은 떨어진다. 장 보러 가면 김치찌개 한 번 끓이는데 만 원 훌쩍 넘고, 월급은 그대로인데 카드값만 늘어난다.
결국 국가 경제는 대기업 중심으로 굴러간다. 수출 잘 나가면 GDP는 올라가고, 정부는 경제 좋아진다며 통계 자료 들이민다. 근데 서민들은? 자영업자는 빚더미에 앉고, 월급쟁이는 물가에 짓눌린다. 정부는 이 괴리를 애써 외면한다. 고용률 올랐다고 하지만 늘어난 건 비정규직이고, 가계소득 증가했다지만 그건 상위 20%가 올려놓은 평균일 뿐이다.
주가 상승의 과실은 주식 가진 사람들끼리만 나눠 먹는다. 문제는 한국에서 주식으로 의미 있는 수익 내는 사람들이 대부분 이미 여유 있는 계층이라는 거다. 서민들은? 당장 다음 달 카드값 걱정하느라 주식 살 여력이 없다. 이러니 경제 좋아졌다는 말이 실감 안 나는 게 당연하다.
집값 문제만큼 아이러니한 것도 없다. 집값이 너무 비싸서 젊은 사람들이 집을 못 산다며 모두가 분노한다. 정부는 그때마다 이번엔 진짜 잡겠다며 대책을 쏟아낸다. LTV 규제, DTI 강화, 종부세 폭탄, 분양가 상한제, 재건축 규제... 정책 이름만 100개는 넘을 것 같다.
근데 이상하게도 이 정책들은 효과가 없거나, 있어도 잠깐이다. 왜 그럴까? 진짜 아이러니는 여기서 시작된다. 집 없는 사람들은 집값 잡아라고 외치는데, 정작 똑같이 목소리 높이던 사람들이 영끌해서 집을 사는 순간, 입장이 180도 바뀐다. 집값 떨어지면 안 된다, 내가 산 게 최고가면 어떡하냐는 생각으로 돌아선다.
더 흥미로운 건, 집값 잡겠다던 정책 때문에 오히려 이제 안 사면 영영 못 산다는 공포가 확산되면서 영끌족이 더 늘어난다는 거다. 그리고 그렇게 집 산 사람들은 이제 부동산 규제 완화를 지지하는 새로운 유권자가 된다. 결국 우리는 모두 피해자인 동시에, 이 시스템을 유지시키는 가해자다.
능력주의를 외친다. 스펙이 아니라 실력으로 평가받아야 한다고 한다. 공정한 기회, 열린 경쟁... 듣기 좋은 말들이다. 근데 현실은? 대기업 인턴 공고 보면 서류는 공정하게 보겠다면서, 막상 합격자 명단엔 임원 자녀들이 수두룩하다.
공정한 기회라고 하지만 그 기회를 잡기 위한 출발선부터 다르다. 스펙 쌓는 데도 돈이 필요하다. 해외 봉사활동, 어학연수, 각종 자격증, 공모전 준비... 다 돈 없으면 못 한다. 자수성가 신화를 떠받들지만, 실제로 성공하는 창업자 중 상당수는 부모 찬스로 시작한다. 실패해도 괜찮은 안전망이 있으니까 도전할 수 있는 거다.
노력하면 된다고들 한다. 근데 똑같이 노력해도 결과가 다르다. 금수저는 실패해도 재도전 기회가 있고, 흙수저는 한 번 실패하면 재기 불능이다. 공정한 경쟁? 출발선이 이렇게 다른데 무슨 공정이냐. 그러면서도 우리는 계속 능력주의를 외친다. 마치 그게 정말 공정한 것처럼.
정부는 매년 수십조 원을 저출산 예산으로 쏟아붓는다. 출산 장려금, 육아 수당, 아이 낳으면 집 우선 분양... 근데 출산율은 계속 바닥을 찍는다. 왜? 돈 줬는데도?
문제는 돈이 아니다. 아니, 돈이긴 한데 출산 장려금 500만 원 받아봤자 소용없다는 얘기다. 애 낳고 키우려면 우선 서울에 살아야 하는데(지방은 일자리도 학군도 글렀으니까), 서울 집값은 10억이다. 애 교육시키려면 사교육비가 월 몇백씩 나가고, 입시 경쟁은 살벌하다. 대학 나와도 좋은 일자리는 의사·변호사·대기업뿐이고, 최근엔 의대 증원 문제로 전문직들이 집단행동까지 한다.
예전에는 개천에서 용 난다는 말이 있었다. 지금은? 개천은 아예 메워졌고, 용은 용의 자식만 된다. 이런 상황에서 누가 애를 낳고 싶겠나. 출산율 높이고 싶으면 500만 원 쥐어주기 전에, 서울 집값 좀 잡고, 사교육 광풍 좀 잠재우고, 지방도 살 만한 곳으로 만들고, 학벌 카르텔 좀 깨야 하는데... 그런 건 아무도 안 한다. 아니, 못 한다.
입시 경쟁 너무 심하다, 사교육비 부담 크다, 학벌주의 없애야 한다. 모두가 동의한다. 근데 막상 수능 폐지하고 다른 방식으로 바꿔보자고 하면? 반대 여론이 들끓는다. 학생부종합전형 확대하자고 하면 금수저 전형이라고 난리고, 정시 비중 늘리자고 하면 사교육 조장한다고 반발한다.
왜? 내 애가 이미 그 시스템에 맞춰서 공부했는데, 갑자기 룰 바꾸면 손해 보니까. 3년 동안 내신 관리했는데 정시 비중 늘리면 억울하고, 수능 준비했는데 학종 확대하면 화난다. 그리고 솔직히 말하면, 다들 본인 자식만큼은 좋은 대학 보내고 싶어한다. 교육 평등? 좋다. 근데 내 애는 SKY 보내고 싶다. 이게 부모들의 솔직한 마음이다.
더 웃긴 건, 개혁안이 나올 때마다 본인 아이한테 유리한 방향만 지지한다는 거다. 우리 애 내신 좋으면 학종 찬성, 수능 잘 보면 정시 찬성. 교육의 미래? 그건 다음 문제고, 일단 내 애 대학부터 보내고 나서 생각하겠다는 거다.
결국 교육 개혁은 모두가 원하지만, 아무도 먼저 시작하고 싶어 하지 않는다. 내 아이 세대는 빼고, 그 다음 세대부터 바꾸자는 식이다. 그 사이 아이들은 계속 경쟁에 시달리고, 입시 사교육 시장만 배불린다. 그리고 우리는 계속 똑같은 불만을 되풀이한다.
지방 소멸은 이미 진행형이다. 비수도권 인구는 줄어들고, 지방 대학은 정원도 못 채운다. 그래서 정부는 지방 균형 발전을 외친다. 공공기관 지방 이전, 혁신도시 조성, 행정수도 이전 논의까지.
근데 막상 당신 회사가 세종시로 이전합니다라고 하면? 난리가 난다. 직원들은 사표 쓰겠다고 아우성이고, 노조는 시위한다. 애들 학교는 어떡하냐, 서울 집은 어쩌냐, 문화생활도 없는데 어떻게 사냐... 모두가 지방 균형 발전은 찬성하는데, 본인이 지방 가는 건 반대한다.
이것도 양극화의 한 모습이다. 서울에 모든 게 집중되어 있으니, 서울 떠나면 기회를 잃는다는 공포가 있다. 실제로 지방은 일자리도, 문화시설도, 교육 인프라도 부족하다. 그러니 아무리 정책을 만들어도, 결국 사람들은 서울로 몰린다. 그리고 지방은 더 황폐해진다. 악순환의 완성이다.
국민을 위한 정치를 하겠습니다. 선거 때마다 듣는 단골 멘트다. 당선되고 나면? 다음 선거 걱정하느라, 당장 표 되는 정책만 추진한다. 장기적으로 국가 미래를 위해선 연금 개혁 해야 하는데, 노년층 표 무서워서 손도 못 댄다.
더 흥미로운 건, 미래세대를 위해라고 말하면서 정작 미래세대가 감당할 빚은 계속 늘린다는 거다. 복지 포퓰리즘, 무분별한 재정 지출... 당장의 인기는 얻지만, 그 빚은 우리 자식들이 갚는다. 그러면서도 저출산이 문제라고 한다.
사실 정치인들도 안다. 뭐가 문제인지, 어떻게 해야 하는지. 연금 고갈 시점도 알고, 기후위기 심각성도 안다. 전문가들이 만든 보고서도 다 읽었을 거다. 근데 실행은? 안 한다. 못 하는 게 아니라, 안 하는 거다. 왜? 당장은 표가 안 되니까. 개혁하면 지지율 떨어지니까. 다음 선거에서 떨어질까 봐.
결국 사회가 당면한 문제 해결을 해야 한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안다. 전문가 집단도 구성하고, 용역도 주고, 토론회도 연다. 근데 정작 결정은? 미룬다. 다음 정부로 떠넘긴다. 그렇게 문제는 쌓이고, 해결은 더 어려워지고, 우리는 계속 같은 뉴스를 반복해서 본다.
재벌 총수들, 고위 공직자들, 사회 지도층... 이들은 국가의 혜택을 가장 많이 받은 사람들이다. 좋은 교육 인프라, 각종 세제 혜택, 정부 지원. 그리고 주요 의사결정에 참여할 힘도 있고, 사회적 책임도 있다. 적어도 그렇게 말한다.
근데 막상 위기가 오면? 탈출 준비한다. 코로나 터졌을 때, 경제 위기 올 때 가장 먼저 해외로 빠지고 자산 빼돌리는 사람들이 누군가. 나라 걱정한다면서 정작 본인은 도망갈 준비를 해둔다. 이들의 자녀들은? 이미 미국에서 학교 다니고, 캐나다 영주권 받아놓고, 싱가포르에 집 사뒀다. 한국은 돈 벌 곳이지, 살 곳은 아니라는 거다.
그렇다면 기성 세대만 그럴까? 아니다. 새로 성공한 젊은 리더층도 똑같다. 스타트업 엑시트한 창업가, 주식으로 큰돈 번 젊은 부자, 전문직 밀레니얼... 돈 벌자마자 해외 이민 준비하고, 자녀는 미국에서 키우고, 자산은 달러로 바꾼다. 기득권 비판하고 공정 외쳤던 세대 아닌가. 근데 막상 성공하면 똑같이 행동한다. 결국 문제는 기성세대가 아니라 시스템 자체였던 거다.
애국 마케팅은 열심히 한다. 광복절엔 태극기 달고, SNS엔 한국 자랑 올린다. 근데 본인 자산은? 해외 부동산, 역외 펀드, 외화 예금... 다 빼놓았다. 사회 지도층이라면 책임감 있게 사회를 이끌어가야 하는 거 아닌가. 근데 우리나라 지도층은 혜택만 챙기고 위기 땐 도망칠 준비를 해둔다.
저출산으로 젊은 인력은 줄어드는데, 회사들은 사람 구하기 힘들다고 아우성이다. 그런데 동시에 40대 희망퇴직은 빨라지고, 경력단절 여성은 재취업 못 하고, 중장년층은 쓸모없는 꼰대로 취급받는다.
스타트업은? 주니어만 뽑는다. 중장년층은 아예 지원조차 받지 않는다. 연봉 부담도 있고, 조직 문화에 안 맞는다는 이유다. 대기업은 젊은 임원 트렌드다. 40대 임원, 30대 임원... 빠르게 승진시키고 나이 든 사람은 밀어낸다. 그러면서 사람 없어서 못 뽑겠다고 한다. 이게 말이 되나?
더 아이러니한 건, 인력이 부족해서 해외에서 수입한다는 거다. 외국인 노동자 데려오고, 숙련 기술자 모자라다며 해외 인력 채용한다. 근데 정작 국내에는? 일하고 싶어 하는 중장년층, 재취업 원하는 경단녀, 기회만 주면 할 수 있는 사람들이 넘쳐난다.
젊은 감각, 트렌드 이해... 물론 중요하다. 근데 경험과 노하우도 중요하다. 특히 요즘처럼 변화가 빠른 시대엔 적응력이 중요한데, 나이로 재단해 버린다. 결국 일하고 싶은 사람은 있는데 기회는 안 주고, 쓸 수 있는 인력은 방치되면서 사람 없다고 아우성친다. 또 하나의 아이러니.
꼰대 문화 싫다고 한다. 수직적인 조직, 권위적인 상사... 기성세대 방식을 거부한다. 수평적 조직문화, 자율과 책임, 님 문화... 이런 걸 원한다고 말한다. 근데 막상 본인이 어느 정도 자리 잡으면? 태도가 달라진다. 스타트업 창업하면 대표가 되고 싶어 한다. 공동창업도 싫다. 본인이 지시하고 결정하고 싶어서다. 회사 들어가면 빠르게 C-레벨 되고 싶어 한다. 팀장도 모자라, 임원 달고 싶어 한다. 왜? 권한이 생기니까. 남한테 지시할 수 있으니까.
수평적 조직 만들겠다던 스타트업 대표들 보면 흥미롭다. 처음엔 님 하고 부르고, 회의 때 자유롭게 의견 내라고 한다. 근데 회사 커지고 직원 늘어나면? 슬슬 본인 말에 반대 의견 나오는 거 불편해한다. 결국 본인 뜻대로 안 되면 짜증 낸다. 수평적 문화? 그건 본인이 아래 있을 때만 원하는 거였다.
MZ세대 조직문화 얘기할 때도 그렇다. 기성세대의 권위주의 비판하면서, 정작 본인들도 후배한테는 똑같이 군다. 연차 쌓이면 신입한테 자기도 옛날엔 그렇게 당했다며 똑같은 걸 시킨다. 결국 수평 조직을 원하는 게 아니라, 본인이 위에 있고 싶은 거다.
회사에서 평가와 보상 얘기 나오면 다들 목소리 높인다. 명확한 기준이 필요하다, 원칙대로 해야 한다, 투명하게 공개해야 한다... 공정성을 외친다. 근데 막상 그 기준이 본인한테 불리하게 작용하면? 태도가 180도 바뀐다.
성과급 배분 기준 만들 때는 다들 찬성한다. 정량 평가, 객관적 지표, 명확한 원칙... 좋다고 한다. 근데 막상 본인 성과가 좋게 나오면? 개인 성과 기준이 중요하다고 한다. 내가 이만큼 했으니 그에 맞게 보상받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반대로 본인 성과가 낮게 나오면? 갑자기 개인 성과 기준이 불분명하다고 한다. 조직 전체의 논리가 더 중요하고, 시스템적 매커니즘이 영향을 더 크게 미쳤다고 주장한다.
팀 전체 보상 방식으로 바뀌면 또 다른 내로남불이 시작된다는 거다. 회의 때는 다 같이 받는 게 좋다고 동의한다. 근데 나중에 따로 찾아온다. 본인은 팀에서 더 많이 기여했으니 비공식적으로 차등을 받아야 한다고 요구한다. 몰래 더 받아야 한다는 거다. 가장 기초적인 연차나 복지 정책도 마찬가지다. 다 같이 지키자고 만든 규정인데, 정작 본인한테 적용될 때는? 나는 특별히 예외적인 사정이 있다며 대표 승인하 특별 처리 해달라고 한다. 원칙은 남들이 지키는 거고, 나는 사정이 있으니 예외를 받아야 한다는 논리다.
본인 성과가 낮은 건 언제나 외부 탓이다. 팀 탓, 환경 탓, 운 탓이고, 본인 노력은 수치로 안 나타난다고 한다. 다른 사람들은 다 그 기준에 동의하는데 본인만 문제 제기한다. 원칙? 그건 본인한테 유리할 때만 지키면 되는 거였다.
벤처캐피탈, 이름에서부터 모험자본 아닌가. 하이리스크 하이리턴, 실패를 감수하고 혁신에 투자하는 게 본질이다. 혁신 투자라고 하면서, 정작 찾는 건 이미 검증된 비즈니스 모델이다.
미국에서 성공한 아이템? 바로 투자 검토
당장 매출 나오는 커머스? 관심 집중
화장품, 건강식품 같은 쉬운 현금화 아이템? 환영이다
근데 딥테크? 바이오? 소재/부품? 너무 오래 걸리고, 불확실성이 크다며 고개를 젓는다.
또한 리스크는 회사한테 부담시킨다는 거다. 투자 계약서 보면 온갖 조건들이 붙는다. 마일스톤 미달성 시 환매 조항, 리픽싱 조항... 사실상 원금 보장받으려는 거다. 결국 VC들도 안전한 수익을 원한다. 3년 안에 엑싯, 빠른 회수... 이런 걸 선호한다. 그러니 창업자들도 거기에 맞춘다. 진짜 사회 문제 해결하고 싶어도, 투자자 눈높이에 맞춰야 투자받으니까. 우리는 한국판 우버입니다, 미국에서 성공한 모델을 국내에 도입했습니다... 이런 피칭이 먹힌다.
그래서 스타트업 생태계를 보면 다들 비슷비슷하다. 배달 플랫폼, 뷰티 커머스, 중고거래 앱... 진짜 혁신적인 기술 기반 스타트업은? 투자도 못 받고 고생만 하다가 문 닫는다. 우리가 말하는 혁신은 결국 돈 되는 혁신만 인정받는다.
한강 작가가 노벨 문학상 받았을 때 온 나라가 들썩였다. 드디어 한국이 문학 강국으로, 기초학문의 중요성을 알게 됐다며 뉴스마다 난리였다. 그런데 정작 한강 작가 책 읽어본 사람은? 손에 꼽는다. 서점 베스트셀러는 여전히 자기계발서, 재테크 책, 웹툰 원작 소설이다.
과학도 마찬가지다. 우리도 노벨 과학상 받아야 한다, 기초과학 투자 늘려야 한다는 말은 많이 한다. 근데 막상 이공계 기피는 심화되고, 이과생들도 의대만 가려고 한다. 순수 과학? 돈 안 되고 미래 불안하다며 외면한다.
결국 우리가 진짜 소비하는 건 뭘까? 틱톡 숏폼, 유튜브 쇼츠, 인스타 릴스... 15초짜리 자극적인 영상들이다. 깊이 있는 다큐멘터리나 장편 소설은 너무 길고 지루해라며 건너뛴다. 집중력은 점점 짧아지고, 우리가 원하는 건 즉각적인 자극이다.
그러면서도 요즘 콘텐츠는 수준이 낮아졌다고 한탄한다. 근데 그 수준 낮은 콘텐츠에 조회수 몰아주는 건 우리 자신이다. 노벨상은 부러워하면서, 정작 긴 호흡의 진지한 작품은 소비하지 않는다. 창작자들은? 당연히 돈 되는 쪽으로 간다. 결국 악순환이다.
유튜브 열면 인생 멘토를 자칭하는 사람들이 넘쳐난다. 돈 버는 법, 성공하는 마인드셋, 인생 역전 스토리... 다들 현자 같은 말투로 조언을 쏟아낸다. 구독자 수십만, 수백만씩 달고 있다. 근데 이 사람들 자세히 보면? 모든 영역에 답을 아는 척한다. 연애, 재테크, 육아, 창업, 커리어... 없는 게 없다. 마치 인생 전 분야의 전문가인 것처럼 말한다. 근데 막상 진짜 상황이 터지면? 책임은 안 진다. 제 조언은 참고만 하세요, 본인 판단이 중요합니다라며 슬쩍 빠진다.
더 흥미로운 건, 본인도 경험 안 해본 고민들에 대해 거침없이 답한다는 거다. 결혼 안 해봤으면서 부부 관계 조언하고, 사업 실패 경험 없으면서 창업 멘토링한다. HR 멘토들도 마찬가지다. 실제 권고사직 면담 해봤나? 해고 통보하며 직원들의 분노와 눈물을 직면해봤나? 대표의 부당한 지시에 HR 실무자로서 대응해봤나? 대부분 없다. 단 한 발짝 떨어져서 관찰만 했거나, 과거 리더 경험을 이상화해서 들려주거나, 그저 대리체험만 했을 뿐이다.
정작 구체적인 질문이 들어오면? 케이스 바이 케이스죠, 상황마다 다르니까요라며 회피한다. 댓글에 진짜 절박한 고민 올려도 읽지도 않는다. 그리고 이해관계가 걸리면? 본색이 드러난다. 협찬 받으면 갑자기 그 제품이 최고가 되고, 투자 받은 회사는 무조건 칭찬한다. 공정한 리뷰라고 하면서 뒤로는 돈 받는다. 멘토? 아니다. 그냥 인플루언서 마케터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이들을 믿는다. 왜? 우리가 간절하니까. 인생의 해답을 찾고 싶고, 성공하고 싶고, 누군가의 조언이 필요하니까. 그 간절함을 이용해서 돈 버는 게 요즘 멘토 비즈니스다. 멘토를 믿고 따랐던 이들은? 결국 더 큰 혼란 속으로 빠진다. 진짜 멘토링과 장사의 경계는 점점 모호해진다.
돈이 전부는 아니에요, 행복이 중요하죠. 이런 말들 많이 한다. SNS엔 소확행, 워라밸 같은 해시태그가 넘쳐난다. 근데 실제론? 연봉 1억 만들기, 파이어족 되기, 주식으로 한방, 코인으로 인생역전... 이런 콘텐츠가 조회수 수백만을 찍는다.
왜 그럴까? 솔직히 말하면, 돈 없이는 행복하기 어려운 세상이기 때문이다. 취미생활? 돈 든다. 여행? 더 든다. 자기계발? 돈 있어야 여유 생긴다. 그러니 결국 돈을 벌어서 행복해지자는 논리가 된다. 근데 돈 버느라 지쳐서 정작 행복을 못 느낀다.
더 흥미로운 건, 돈 많이 번다고 행복한 것도 아니라는 거다. 연봉 5천에서 1억 되면 행복도가 올라가지만, 1억에서 2억 되면? 별 차이 없다고 한다. 그런데도 우린 계속 더 많은 돈을 쫓는다. 마치 중독처럼.
이찬혁의 멸종위기라는 노래 제목이 딱 맞는 것 같다. 요즘 사랑은 정말 멸종위기다. 연애는 가성비로 따지고, 결혼은 손익계산으로 접근한다. 연애는 사치, 결혼은 미친 짓이라는 말이 농담이 아니라 진담처럼 들린다.
한편에선 쾌락주의가 확산된다. 스와이프 몇 번이면 만날 사람 구하고, 관계의 깊이보다 순간의 즐거움을 추구한다. 다른 한편에선 극단적 물질주의다. 연봉 얼마 이상, 집 있어야, 차 있어야... 조건부터 따진다.
결혼해도 상황은 비슷하다. 이혼율은 계속 올라가고, 졸혼, 별거혼 같은 신조어가 생긴다. 평생을 함께하겠다는 약속이 점점 가벼워진다. 왜? 사랑으로만은 버티기 어려운 현실이기 때문이다. 집값, 육아, 경력 단절, 시댁 문제... 사랑만으로 해결 안 되는 게 너무 많다.
근데 아이러니한 건, 다들 여전히 사랑을 원한다는 거다. 드라마·영화에선 순수한 사랑이 인기고, 진짜 사랑을 찾고 싶다고들 한다. 그러면서도 현실에선 조건을 따지고 가성비를 계산한다. 이상과 현실의 괴리가 이렇게 클 수가.
가짜뉴스 문제가 심각하다. 모두가 팩트체크 중요하다,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 필요하다고 한다. 근데 막상 본인이 믿고 싶은 뉴스는 검증 없이 믿고, SNS로 퍼 나른다. 출처도 안 보고, 날짜도 안 확인하고, 일단 공유부터 한다. 내가 지지하는 정치인의 스캔들은 가짜뉴스, 상대편의 스캔들은 팩트다. 내가 투자한 주식 호재는 믿을 만한 정보, 악재는 루머다. 내 생각과 맞는 기사는 양질의 저널리즘이고, 반대되는 기사는 편향 보도다.
더 흥미로운 건, 같은 사안을 보도한 기사도 내 입장에 따라 해석이 달라진다는 거다. 내게 유리하면 정확한 보도, 불리하면 왜곡 보도. 댓글 창 보면 더 명확하다. 내 의견과 같으면 양심 있는 댓글, 다르면 악플이나 여론 조작이다.
모두가 객관성을 외치면서, 정작 본인은 확증편향에 갇혀 있다. 그리고 그걸 전혀 인지하지 못한다. 오히려 나만 제대로 보고 있고, 다른 사람들이 속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 모든 내로남불의 핵심은 뭘까? 우리 모두가 완벽하게 합리적이라는 거다. 개인의 입장에서 보면, 우리의 선택은 틀리지 않았다. 집 사는 게 합리적이고, 내 아이 챙기는 게 당연하고, 내 사정 고려받는 게 정당하다. 문제는 5천만 명이 각자 합리적으로 행동하면, 사회 전체는 비합리적이 된다는 거다. 나는 집 안 사도 집값은 오른다. 내가 애 안 낳는다고 저출산 해결되나. 내가 지방 간다고 서울 집중 해소되나. 내가 원칙 지킨다고 세상이 바뀌나.
그래서 우리는 각자의 변명을 만든다. "내 사정은 특별해", "내 경우는 달라", "나는 어쩔 수 없었어". 5천만 개의 합리적 선택, 5천만 개의 변명. 그리고 그 변명들이 모여서 만드는 건? 아무도 원하지 않았던 사회다. 더 아이러니한 건, 우리 모두가 이 사실을 안다는 거다. 뭐가 문제인지, 어떻게 해야 하는지. 근데 고치지 못한다. 아니, 고치고 싶지 않다. 왜? 내가 먼저 손해 보기 싫으니까.
결국 내로남불은 생존 전략이 됐다. 원칙은 남이 지키고, 나는 예외를 누린다. 희생은 남이 하고, 나는 혜택을 챙긴다. 개혁은 남이 시작하고, 나는 그 결과만 누린다. 이게 5천만 명이 터득한 생존의 기술이다. 사실 다들 사회가 옳은 방향으로 가는 길을 택하고 싶어한다. 근데 당장의 내 입장에서는 그러기 어렵다. 희생해야 하기 때문이다. 집값 내려가면 내 자산이 줄고, 교육 개혁하면 내 아이가 손해 보고, 지방 가면 내 경력이 막히고, 공정한 기준 적용하면 내 특수성이 무시된다.
당장 희생하라는 말이 아니다. 적어도 그 사실과 상황에 대해서는 인지하고 인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가 피해자인 척하면서 동시에 가해자라는 것. 우리가 문제를 비판하면서 동시에 그 문제로 이득을 본다는 것. 이게 내로남불의 나라에서 살아가는 우리의 진짜 모습이다. 불편하지만 솔직한 진실. 우리는 모두 내 사정이 특별하다고 믿으며 살아간다. 그리고 그 믿음이 5천만 개 모이면, 아무도 원하지 않았던 사회가 완성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