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대 차이가 아닌 세대 단절 ④ : 다가올 미래와 대응

취중잡담(醉中雜談) - 술김에 적는 솔직한 이야기들

by iid 이드

※ ‘취중잡담(醉中雜談) - 술김에 적는 솔직한 이야기들’은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 지인들이 익명으로 참여해, 술자리에서나 나눌 법한 솔직한 생각과 이야기를 가볍지만 진지한 시선으로 풀어내는 프로젝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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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대 차이가 아닌 세대 단절' 시리즈]

세대 차이가 아닌 세대 단절 ① : 현상과 그 본질

세대 차이가 아닌 세대 단절 ② : 과거에 대한 불신

세대 차이가 아닌 세대 단절 ③ : 명분과 실리 사이 괴리

세대 차이가 아닌 세대 단절 ④ : 다가올 미래와 대응 방안 (끝)




명분과 실리의 괴리, 각자 탈출의 욕망, 경멸과 혐오의 감정—이 모든 것이 쌓이며 균열은 깊어졌다. 기성세대도 문제고, 젊은 세대도 문제다. 위선도 문제고, 냉소도 문제다. 그렇다면 이 단절이 가져올 미래는 어떤 모습일까? 이대로 가면 한국 사회는 어디로 향하는가?


[ 단절이 만들 미래 ]


① 사회적 협력의 붕괴 – 공동의 문제를 함께 풀 수 없다

이 단절이 가져올 미래에서 가장 먼저 떠오르는 건 사회적 협력의 붕괴다. 공동의 문제를 함께 해결하는 능력이 사라진다. 기후 변화, 저출산, 복지 시스템—이 모든 문제는 세대 간 협력 없이는 해결할 수 없다. 하지만 세대가 단절되면, 각자 자기 세대 이익만 챙긴다.


청년은 노인 복지에 왜 내 세금을 쓰냐고 말하고, 노인은 요즘 젊은이들은 공동체 의식이 없다고 말한다. 중간 세대는 양쪽에서 치이며 지쳐간다. 그리고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는다. 기후 변화 대응을 보자. 탄소 감축은 현재 세대의 희생을 요구하지만, 그 혜택은 미래 세대가 받는다. 세대 간 신뢰가 있다면 지금 세대가 미래를 위해 희생할 수 있다. 하지만 단절된 사회에서는 각자 현재만 챙긴다. 연금 개혁도 마찬가지다. 지금 개혁하면 현 세대가 손해를 보지만, 미래 세대는 안정적인 노후를 보장받는다. 하지만 세대 간 신뢰가 없으면, 현 세대는 개혁을 거부한다.


2025년 서울의 1인 가구 비율은 40%를 넘었다. 오전 9시 출근, 오후 6시 퇴근. 집에 돌아와서 배달 음식 시키고, 넷플릭스 보고, 자고. 다음 날 반복. 외롭지 않냐고 물으면, 외로운 것보다 사람 만나는 게 더 피곤하다고 답한다. 누군가 도움이 필요해도 요청하지 못한다. 민폐 끼치기 싫어서다. 과제가 힘들어도 친구에게 도움을 청하지 않고, 업무가 힘들어도 동료에게 도움을 청하지 않는다. 그래서 혼자 끙끙 앓다가 번아웃이 온다. 그리고 퇴사한다. 이 악순환이 반복된다.


② 조직 운영의 한계 – 경험과 에너지의 결합이 사라진다

두 번째로 떠오르는 건 조직 운영의 한계다. 모든 조직은 세대 간 협력으로 움직인다. 시니어의 경험과 주니어의 에너지가 결합해야 조직이 작동한다. 하지만 세대가 단절되면, 이 결합이 안 된다. 시니어는 요즘 애들은 가르쳐도 안 배운다고 불평하고, 주니어는 꼰대 말은 듣기 싫다며 거부한다. 조직 효율은 떨어지고, 이직률은 올라가고, 결국 조직은 약해진다.


2025년 기업들의 가장 큰 고민 중 하나가 세대 간 갈등 관리다. 40대 팀장과 20대 팀원이 충돌하고, 중간에서 조율할 사람이 없다.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니, 협업이 안 된다. HR 담당자는 요즘 신입사원들은 3년 안에 절반이 퇴사한다고 말한다. 이건 개선의 문제가 아니라, 근본적인 불일치의 문제다.


흥미로운 건, 조직 유형에 따라 세대 격차가 다르게 나타난다는 것이다. 공기업이나 대기업은 시니어 중심 문화가 강하다. 반면 스타트업은 정반대다. 젊은 세대 중심으로 돌아가고, 경력자가 오히려 적응하지 못한다. 양쪽 모두 극단으로 치닫고 있다. 더 문제는, 정부나 경영진이 이를 인위적으로 해결하려 한다는 것이다. 대기업에는 청년 의견 수렴 제도를 만들라고 지시하고, 공공기관에는 세대 통합 프로그램을 의무화한다. 하지만 형식만 갖춘 제도는 오히려 갈등을 키운다. 시니어는 또 쓸데없는 일이 늘었다며 불평하고, 주니어는 제도는 있지만 실제로는 아무것도 안 바뀐다며 냉소한다.


그 결과, 조직은 점점 약해진다. 조직의 지식과 경험은 축적되지 않고, 매번 새로 시작한다. 효율은 떨어지고, 실수는 반복되고, 성과는 나오지 않는다. 이런 조직에서는 혁신이 일어나기 어렵다. 시니어의 통찰과 주니어의 실험정신이 결합해야 새로운 것이 나온다. 하지만 세대가 단절되면, 이 결합이 불가능하다.


③ 문화 전승의 단절 – 같은 실수를 반복한다

세 번째는 문화 전승의 단절이다. 한 사회가 유지되려면, 세대 간 지식과 경험이 전달되어야 한다. 하지만 단절이 일어나면, 이 전달이 끊긴다. 과거의 시행착오를 배우지 못하고, 같은 실수를 반복한다.


세대 간 단절은 집단 기억의 상실을 의미한다. 젊은 세대는 과거는 중요하지 않다고, 우리는 새로운 방식으로 한다고 말한다. 혁신적으로 들리지만, 위험하다. 과거를 무시하면, 과거의 실패를 반복한다. 기성세대가 겪었던 시행착오를, 젊은 세대가 또 겪는다. 그러면서 왜 아무도 말해주지 않았냐고 원망한다. 하지만 말해줘도 안 듣는 건 그들이었다. 꼰대 말이라며 무시했던 조언 속에, 실제로 중요한 통찰이 있었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걸 구분할 능력이 없다. 전부 다 거부하니, 좋은 것도 나쁜 것도 함께 버려진다.


예를 들어 스타트업 생태계를 보자. 2000년대 초반 닷컴 버블 때 수많은 스타트업이 실패했다. 그때 실패한 이유들—과도한 확장, 수익 모델 부재, 시장 검증 실패—이런 교훈들이 있었다. 하지만 2025년 젊은 창업자들은 그 실패 사례를 모른다. 아니, 알아도 우리는 다르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똑같은 실수를 반복한다.

한 투자자는 20년 전에 봤던 실수를 지금도 똑같이 본다고 말한다. 과거를 배우지 않으니, 같은 패턴이 반복된다고 한다. 하지만 젊은 창업자들은 듣지 않는다. 그건 과거 이야기고, 지금은 다르다고 말한다. 그리고 실패한다.


문화 전승의 단절은 단순히 지식의 문제가 아니다. 가치관, 윤리, 책임감—이런 무형의 것들도 전승되어야 한다. 하지만 세대가 단절되면, 이것도 끊긴다. 무엇이 옳고 그른지,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이런 기본적인 것들조차 공유되지 않는다. 그러면 사회는 표류한다. 방향 없이, 기준 없이, 그저 각자 살아남기 위해 몸부림칠 뿐이다.


④ 정치적 양극화의 심화 – 세대 전쟁이 정치를 지배한다

네 번째는 정치적 양극화의 심화다. 세대 단절은 정치 갈등으로 이어진다. 각 세대가 자기 이익만 대변하는 정치인을 뽑고, 그 정치인들은 자기 지지층만 챙긴다. 청년 정책, 노인 정책—모두 파편화되고, 통합적 비전은 사라진다.


선거 때마다 세대 전쟁이 벌어진다. 20대 vs 50대, 30대 vs 60대—나이로 진영이 갈린다. 정치인들도 이를 이용한다. 청년을 위한다는 정치인은 노인 복지 삭감을 암시하고, 노인을 위한다는 정치인은 젊은 세대의 무책임을 비판한다. 세대 간 갈등을 부추기는 게 표를 얻는 지름길이 되었다. 그 결과, 정치 담론 자체가 세대 프레임에 갇힌다. 부동산 정책을 논의하면 집 가진 세대 vs 집 없는 세대로 갈리고, 연금 정책을 논의하면 받을 세대 vs 못 받을 세대로 나뉜다. 정책의 실효성이나 장기적 영향은 논의되지 않는다. 오직 우리 세대에게 유리한가, 불리한가만 따진다.


더 심각한 건, 이런 구조에서는 미래 지향적 정책이 나올 수 없다는 것이다. 모든 정책이 현재 유권자를 의식해 설계된다. 기후 변화 대응, 교육 개혁, 장기 인프라 투자—이런 미래 세대를 위한 정책은 표가 되지 않는다. 그래서 정치는 점점 더 단기적이 되고, 근시안적이 되고, 미래는 방치된다. 이런 양극화가 심화되면, 저쪽 세대를 위한 정책이라며 무조건 반대한다. 그러면 아무것도 결정되지 않는다. 그 결과, 정치는 마비되고, 사회 문제는 방치된다. 저출산, 고령화, 연금 개혁—모두 시급한 문제지만, 세대 갈등 때문에 해결되지 않는다.


정치에 대한 냉소도 깊어진다. 젊은 세대는 정치가 우리를 대변하지 않는다고 느끼고, 중장년 세대는 정치가 너무 단기적이라고 불만을 갖는다. 하지만 정작 선거 때는 세대 이익에 따라 투표한다. 그리고 선거 후에는 또 실망한다. 이 악순환이 반복되면서, 정치 전체에 대한 신뢰가 무너진다.


⑤ 사회 전체의 활력 상실 – 미래를 포기한 사회

다섯 번째는 사회 전체의 활력 상실이다. 세대 간 단절이 깊어지면, 사회는 미래를 포기한다. 미래는 세대 간 연속성 위에 세워진다. 현재 세대가 미래 세대를 위해 투자하고, 미래 세대가 그 혜택을 받고, 다시 다음 세대를 위해 투자한다. 이 순환이 사회를 발전시킨다. 하지만 세대 간 신뢰가 없으면, 이 순환이 끊긴다. 현재 세대는 미래 세대를 위해 투자하지 않는다. 어차피 그들이 나를 위해 뭘 해줄 것도 아닌데, 왜 내가 희생하냐는 것이다. 그래서 장기적 투자는 사라지고, 단기적 소비만 남는다.


교육 투자를 보자. 과거에는 사회가 교육에 투자했다. 공교육 시스템을 만들고, 대학을 육성하고, 장학금을 지원했다. 미래 세대가 잘되어야 사회가 발전한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공교육은 붕괴하고, 사교육만 번성한다. 사회 전체의 투자가 아니라, 개인의 생존 전략이 되었다.


인프라 투자도 마찬가지다. 도로, 철도, 공항—이런 인프라는 장기적 관점에서 투자해야 한다. 하지만 세대 간 신뢰가 없으면, 이런 투자가 줄어든다. 당장 내가 쓸 것도 아닌데, 왜 세금을 내냐는 반발이 나온다. 그 결과, 사회는 점점 낡아간다. 새로운 것이 만들어지지 않고, 기존 것도 유지되지 않는다.


사회적 자본이 고갈된다. 신뢰, 호혜성, 연대—이런 것들이 사라지면 사회는 작동하지 않는다. 혁신이 멈춘다. 혁신은 협력에서 나온다. 하지만 각자도생 사회에서는 협력이 없다. 모두가 단기 성과만 쫓고, 안전한 선택만 하고, 위험을 회피한다. 행복이 사라진다. 행복은 관계에서 온다. 하지만 냉소와 각자도생 사회에서는 관계가 없다. 모두가 혼자고, 외롭고, 고립되어 있다.


미래가 없어진다. 각자도생 사회에서는 세대 간 순환이 끊긴다. 모두가 현재만 챙기고, 미래는 신경 쓰지 않는다. 그러면 사회는 천천히 무너진다.




[ 하지만 아직 늦지 않았다 ]


절망할 필요는 없다

하지만 절망할 필요는 없다. 아직 늦지 않았다. 단절은 깊어지고 있지만, 아직 완전히 굳어지지는 않았다. 지금 우리가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미래는 달라질 수 있다.


첫째, 인정해야 한다. 단절이 일어나고 있다는 것을, 그것이 심각한 문제라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요즘 애들은 원래 그래라며 대수롭지 않게 넘기면 안 된다. 이건 차이가 아니라 단절이다. 대화가 불가능한 수준의 단절이다.


둘째, 책임을 인정해야 한다. 기성세대가 무엇을 잘못했는지, 어떤 문제를 만들어냈는지 솔직하게 인정해야 한다. 우리도 힘들었다는 변명으로 도피하지 말아야 한다. 힘들었어도, 실수는 실수다. 그 실수가 다음 세대에게 부담을 줬다면, 인정하고 사과해야 한다.


셋째, 위선을 버려야 한다. 말과 행동을 일치시켜야 한다. 교육 개혁을 외치면서 자식을 강남 학원에 보내는 이중성을 버려야 한다. 지역 균형을 말하면서 서울에 사는 위선을 버려야 한다. 명분만 내세우고 실리는 챙기는 태도를 버려야 한다.


넷째, 희생을 감수해야 한다. 연금 개혁, 부동산 안정화, 교육 정상화—이 모든 것은 현 세대의 희생을 요구한다. 집값이 떨어지면 손해고, 연금이 줄면 불편하고, 교육 경쟁이 완화되면 불안하다. 하지만 그 희생 없이는 미래 세대에게 더 나은 사회를 물려줄 수 없다.


다섯째, 대화를 시작해야 한다. 세대 간 대화를 복원해야 한다. 서로를 이해하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 젊은 세대는 기성세대의 맥락을 이해하려 노력하고, 기성세대는 젊은 세대의 현실을 인정해야 한다. 이해가 아니라 학습이라도 괜찮다. 일단 대화부터 시작해야 한다.


변화는 인식에서 시작된다

문제는 우리가 해법을 모르는 게 아니다. 문제는 현실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는 것이다. 아니, 인식하면서도 인정하지 않으려는 것이다. 우리는 지금 단절의 초입에 있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이건 일시적 현상이 아니다. 자연스러운 세대 차이도 아니다. 명확한 단절이 진행되고 있다.


기성세대는 자신들의 위선을 직시해야 한다. 교육 개혁을 외치면서 자식은 강남 학원에 보내는 것, 지역 균형을 말하면서 서울에 사는 것—이것이 위선이라는 걸 인정해야 한다. 시스템이 그래서 어쩔 수 없었다는 말은, 결국 나는 바꾸려 하지 않았다는 고백이다.


젊은 세대는 자신들도 다르지 않다는 것을 인식해야 한다. 기성세대를 비판하지만, 권력을 쥐면 똑같아진다. 대기업을 비판하지만 대기업을 선호하고, 수직적 문화를 비판하지만 자신이 만든 조직에서는 더 수직적으로 행동한다. 둘 다 사회를 무너뜨린다.


우리 모두는 탈출을 꿈꾸고 있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문제를 해결하려 하지 않고, 문제에서 벗어나려 한다. 기성세대는 해외 부동산에 투자하고, 자식을 유학 보낸다. 젊은 세대는 이민을 꿈꾸고, 한국을 포기한다. 세대를 막론하고, 우리는 함께 문제를 풀기보다 혼자 빠져나가려 한다.


냉소가 이미 우리 안에 깊이 자리 잡았다는 것을 직시해야 한다. 정치인은 믿지 않고, 기업은 신뢰하지 않고, 심지어 주변 사람도 믿지 못한다. 선배도, 동료도, 멘토도—누구도 믿지 못한다.


관계가 도구화되었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인맥은 활용하는 것이고, 만남은 계산하는 것이고, 심지어 연애도 조건을 따지는 것이 되었다. 순수한 관계는 사라지고, 모든 것이 거래가 되었다.


가장 무서운 건, 이 모든 걸 알면서도 바꾸지 않는다는 것이다. 부동산이 문제라는 걸 알지만 집값 안정화는 반대하고, 교육이 병들었다는 걸 알지만 사교육은 계속하고, 연금이 고갈된다는 걸 알지만 개혁은 미룬다. 알면서도 바꾸지 않는다. 왜? 지금 당장 내가 손해 보기 싫으니까.


이 모든 것을 인정하는 것이 첫걸음이다. 거창한 해법을 찾기 전에, 현실을 있는 그대로 봐야 한다. 변명하지 말고, 합리화하지 말고, 그냥 인정해야 한다. 우리가 단절을 만들었고, 우리가 냉소를 키웠고, 우리가 미래를 포기하고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나면, 비로소 선택할 수 있다. 이대로 갈 것인가, 아니면 멈춰 설 것인가. 계속 회피할 것인가, 아니면 마주할 것인가. 각자도생을 계속할 것인가, 아니면 함께 문제를 풀 것인가.


변화는 인식에서 시작된다. 그리고 그 인식은, 불편한 진실을 인정하는 것에서 시작된다.




[ 2025년이 남긴 메시지 ]


지금 바꾸지 않으면 돌이킬 수 없다

2025년이 남긴 메시지는 명확하다. 세대 단절은 이미 시작되었고,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지금 바꾸지 않으면, 10년 후에는 돌이킬 수 없다. 지금 20대는 10년 후 30대가 되고, 지금 40대는 10년 후 50대가 된다. 그리고 그때는 더 깊은 단절, 더 큰 갈등, 더 심각한 위기가 기다리고 있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아직 선택권이 있다. 이대로 가느냐, 아니면 방향을 바꾸느냐. 단절을 방치하느냐, 아니면 대화를 복원하느냐. 위선을 계속하느냐, 아니면 진정성을 회복하느냐. 각자도생으로 가느냐, 아니면 사회적 협력을 재건하느냐. 이 선택은 정부나 정치인의 몫이 아니다. 우리 모두의 몫이다. 기성세대는 자신의 위선을 인정하고 바꿔야 하고, 젊은 세대는 냉소를 넘어 참여해야 한다. 중간 세대는 다리 역할을 해야 한다. 모두가 함께 움직여야 변화가 일어난다.


우리는 선택해야 한다

메신저 하나, 문화 취향 하나, 일하는 방식 하나—작은 차이들이 선이 되어 고정되었다. 일상에서 시작된 단절은 이제 사회 전체로 확산되었다. 부동산, 정치, 교육, 연금—기성세대가 물려준 7가지 폭탄은 젊은 세대의 불신을 키웠다. 명분과 실리의 괴리는, 말과 행동의 불일치는, 더 깊은 경멸과 혐오를 만들었다. 그리고 젊은 세대도 다르지 않았다. 권력을 쥐면 똑같아졌다. 위선적인 기성세대도 문제고, 냉소적인 젊은 세대도 문제였다. 둘 다 사회를 지탱할 수 없었다.


하지만 인정해야 한다. 이 모든 문제는 우리가 만들었다. 그리고 우리가 바꿀 수 있다. 완벽할 수는 없다. 하지만 노력할 수는 있다. 한 번에 바꿀 수는 없다. 하지만 시작할 수는 있다. 2025년을 돌아보면, 우리는 선택해야 한다. 이대로 단절 속으로 걸어갈 것인가, 아니면 돌아서서 서로를 마주볼 것인가. 냉소와 각자도생을 선택할 것인가, 아니면 대화와 협력을 선택할 것인가.


답은 우리 손에 있다. 그리고 그 답을 내리는 시간은, 지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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