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중잡담(醉中雜談) - 술김에 적는 솔직한 이야기들
※ ‘취중잡담(醉中雜談) - 술김에 적는 솔직한 이야기들’은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 지인들이 익명으로 참여해, 술자리에서나 나눌 법한 솔직한 생각과 이야기를 가볍지만 진지한 시선으로 풀어내는 프로젝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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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대 차이가 아닌 세대 단절 ① : 현상과 그 본질
• 세대 차이가 아닌 세대 단절 ② : 과거에 대한 불신
• 세대 차이가 아닌 세대 단절 ③ : 명분과 실리 사이 괴리
• 세대 차이가 아닌 세대 단절 ④ : 다가올 미래와 대응 방안 (끝)
2025년을 돌아보면, 여러 사회적 균열이 스쳐 지나간다. 청년 실업, 부동산 문제, 저출산—모두 세대 문제로 포장되지만, 정작 본질은 다른 곳에 있다. 그중에서도 가장 선명하게 남는 흐름 하나는 세대 간 단절이다. 이제는 세대 차이가 아니라 세대 단절이 시작되었다는 것이다.
나는 Z세대부터 그 이전 세대들과 명확한 단절이 일어났다고 생각한다. 코로나가 직접적 계기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오래전부터 누적되어온 현상이었다. 적어도 80년대생까지, X세대나 MZ세대 앞쪽으로 분류되는 이들은 기성세대에 대해 불만은 있어도 이해는 할 수 있었다. 때에 따라서는 따르기도 했다. 조직 문화에 적응하고, 선배의 조언을 듣고, 사회가 요구하는 방식대로 경력을 쌓아왔다. 설령 마음속으로는 동의하지 않더라도 "그래도 저분들이 겪어본 게 많으니까", "일단은 배워보자"는 여유가 있었다.
하지만 그다음 세대부터는 분명히 달라졌다. 이해를 하기보다는 '다르다', '구분된다'는 생각이 훨씬 뚜렷하다. 과거 세대가 겪었던 변화의 폭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선을 긋는다. 단순히 나이 차이에서 오는 시각 차이가 아니라, 아예 다른 세계관을 가진 사람들처럼 느껴진다. 이건 갈등이 아니라 단절이다. 대화가 통하지 않는 수준의 단절이다.
① 메신저 하나만 봐도 선명하게 드러나는 경계
이는 한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인 추세처럼 보인다. 기성세대가 쓰는 메신저는 쓰지 않고 자신들만의 것을 고집한다. 과거 X세대나 80년대생도 싸이월드, 네이트온, 카카오톡으로 옮겨가며 세대적 정체성을 표현했지만, 그때의 낯설음과는 사뭇 다르다. 당시에는 "새로운 플랫폼으로 옮겨간 것"이지 기성세대와의 단절을 의도한 건 아니었다. 부모님이 싸이월드 미니홈피에 와서 댓글 달아도 그저 "엄마 왜 여기 와"라며 웃어넘겼다. 불편하긴 했지만 차단의 대상은 아니었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카카오톡은 '부모 세대가 쓰는 것'이라는 인식이 강하다. Z세대는 인스타그램 DM, 디스코드, 텔레그램 같은 플랫폼으로 흩어져 있고, 심지어 같은 세대 내에서도 용도별로 메신저를 철저하게 나눈다. 회사 일은 카톡, 친구는 인스타, 취미 커뮤니티는 디스코드, 민감한 대화는 텔레그램—이런 식이다. 기성세대 입장에서는 "왜 하나로 통일 안 하냐"고 물을 수 있지만, 이들에게는 '섞이지 않는 것' 자체가 목적이다.
회사 사람이 내 사생활 계정을 보는 것, 부모님이 내 친구 대화방에 들어오는 것—그 자체가 불편함이다. 이건 프라이버시 침해 수준으로 받아들여진다. 과거 세대는 "그래도 다 아는 사이인데 뭐"라고 생각했지만, 지금 세대는 "영역이 다른데 왜 넘어오냐"고 생각한다. 메신저 선택이 단순한 도구 선택이 아니라, 관계의 경계를 긋는 행위가 된 것이다.
더 재미있는 건, 부모 세대가 뒤늦게 인스타그램이나 디스코드를 배워서 들어오면, Z세대는 또 다른 플랫폼으로 이동한다는 것이다. 마치 도망가듯이. 이건 기술 격차의 문제가 아니다. 의도적인 분리다. 함께 있고 싶지 않다는 명확한 신호다.
② 문화적 갭은 더 깊고, 소비 방식 자체가 다르다
문화적으로도 갭을 둔다. 유튜브 알고리즘 하나만 봐도, 30대와 20대 초반이 보는 콘텐츠는 완전히 다르다. 같은 게임을 해도, 같은 드라마를 봐도, 소비하는 방식 자체가 다르다. 밈 문화, 숏폼 중심의 콘텐츠 소비, 2배속 시청—이 모든 것이 기성세대에게는 낯설고, Z세대에게는 당연하다.
기성세대는 영화를 극장에서 보고, 드라마를 방영 시간에 맞춰 본다. 광고가 나오면 참고 기다리고, 엔딩 크레딧까지 다 본다. 하지만 Z세대는 넷플릭스에서 2배속으로 보고, 재미없으면 10분 만에 끊는다. 광고는 스킵하고, 엔딩은 건너뛴다. "시간이 아까워서"다. 음악도 마찬가지다. 기성세대는 앨범 전체를 듣고, 가사를 음미하고, 아티스트의 세계관을 이해하려 한다. 하지만 Z세대는 멜론 TOP100에서 하이라이트 30초만 듣고 넘긴다. 틱톡에서 유행하는 15초 구간만 반복 재생한다. 전체 맥락은 중요하지 않다. 그 순간 재미있으면 된다.
이건 단순히 짧은 것을 선호한다는 게 아니다. 몰입의 방식 자체가 다른 것이다. 기성세대는 '깊게, 오래' 빠지는 걸 좋아했다면, Z세대는 '빠르게, 많이' 소비하는 걸 선호한다. 하나를 깊이 파는 게 아니라, 여러 개를 동시에 얕게 훑는다. 멀티태스킹이 기본이다. 유튜브 보면서 게임하고, 게임하면서 음악 듣고, 음악 들으면서 쇼핑한다. 집중이 아니라 분산이 기본값이다.
그러다 보니 대화 방식도 달라진다. 기성세대는 한 주제를 깊이 있게 대화하는 걸 좋아하지만, Z세대는 여러 주제를 빠르게 전환한다. 5분 안에 게임, 연애, 정치, 밈, 맛집을 다 이야기한다. 기성세대가 보기엔 산만해 보이지만, Z세대에게는 그게 자연스럽다.
③ 한국의 특수성 – 선 긋기와 영역 표시의 희화화
그런데 한국은 유독 이 단절이 심하다. 단순히 세대가 다른 게 아니라, 젊은 세대가 적극적으로 '우리는 너희와 다르다'는 선을 긋는다. 그리고 그 선을 넘어오는 기성세대를 희화화하고 이슈화한다. '영포티(Young Forty)'라는 표현 자체가 그 증거다. 40대가 젊게 살려고 노력하는 걸 비꼬는 용어다. 20대처럼 옷을 입고, 20대가 듣는 음악을 듣고, 20대와 같은 공간에서 놀려는 40대를 보며 젊은 세대는 "영포티 왔다"며 웃는다. 이건 단순한 관찰이 아니라, 명확한 경계 표시다. '여기는 우리 영역인데, 왜 침범하냐'는 메시지다.
홍대 클럽에 40대가 나타나면 SNS에 올라온다. 성수동 카페에 40대가 앉아 있으면 "아저씨들도 오네"라는 반응이 나온다. Z세대가 좋아하는 브랜드를 40대가 입으면 "이제 그 브랜드는 아니다"라며 다른 걸 찾는다. 젊은 세대 입장에서는 불편하다. "왜 저 사람들이 여기 있지?"가 아니라 "저 사람들이 여기 오면 우리는 다른 데로 가야지"다. 세대 간 경계가 무너진 게 아니라, 오히려 더 강하게, 더 의도적으로 그어지고 있는 것이다. 40대가 20대 공간에 들어오려 하고, 20대는 그걸 거부한다. 이 충돌이 곳곳에서 일어난다.
심지어 온라인 커뮤니티도 마찬가지다. 디시인사이드, 에펨코리아 같은 곳은 과거엔 세대 구분 없이 섞여 있었지만, 지금은 "나이 든 사람들이 너무 많아졌다"며 젊은 층이 빠져나간다. 대신 자기들만의 커뮤니티를 만든다. 에브리타임, 대나무숲, 익명 디스코드 서버—기성세대가 들어올 수 없는 공간으로 이동한다.
이건 배타적이라서가 아니다. 섞이면 불편하기 때문이다. 기성세대는 "요즘 애들은 왜 이래"라고 말하고, 젊은 세대는 "꼰대 왔다"고 반응한다. 대화가 아니라 충돌이다. 그래서 아예 만나지 않으려 한다.
④ 채용 시장에서도 드러나는 세대 분리—그리고 비합리적 선택들
최근 스타트업 채용 시장에서도 이 흐름은 뚜렷하다. 미국 기업들은 AI 시대 도입 후 오히려 시니어 채용이 증가했다. 경험 많은 인력이 AI를 활용해 더 큰 가치를 만들어낸다는 판단 때문이다. 구글, 메타, 마이크로소프트 같은 테크 기업들은 30년 경력 엔지니어를 더 높은 연봉으로 모셔온다.
하지만 한국 스타트업은 정반대다. 젊은 창업자들은 자기 세대 중심으로 팀을 구성한다. 30대 중반 이상은 문화가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채용 대상에서 배제되는 경우가 공공연하다. 팀장급도 30대 초반을 선호하고, 실무진은 20대 후반이 중심이다. 한 스타트업 대표는 40대를 뽑으면 회의 시간이 길어지고 의사결정이 느려지며 조직 분위기가 무거워진다며, 차라리 경력 5년차 3명을 뽑는 게 낫다고 말한다. 경험보다 속도, 안정성보다 민첩함—이게 우선순위다. 반대로 3~5년차가 팀을 이끄는 구조가 일반화되고 있다. 대기업에서는 팀장이 되려면 15년은 걸리지만, 스타트업에서는 5년 차가 10명 팀을 이끈다. 경험 부족? 그건 중요하지 않다. 빠르게 실행하면 된다는 게 이들의 논리다. 실제로 많은 스타트업이 이 방식으로 성장하고 있다. 하지만 동시에 많은 스타트업이 이 방식으로 무너지고 있다.
더 흥미로운 건, 채용 과정에서 노골적인 '세대 필터링'이 일어난다는 것이다. 카카오톡 프로필 사진을 요구해 외모와 분위기로 나이대를 가늠하고, 주로 사용하는 메신저를 물어 세대 코드를 확인한다. 카카오톡을 주로 쓴다고 답하면 감점 요인이 되고, 슬랙이나 디스코드, 노션을 많이 쓴다고 답해야 긍정적으로 평가받는다. 일부 스타트업에서는 경력 3년 이하를 우대한다는 공고가 나온다. 경력이 많으면 기존 방식에 익숙해져 있어 새로운 방식에 적응하지 못한다는 논리다. 한 스타트업은 10년 경력 개발자를 코드 리뷰 시 지나치게 꼼꼼해서 개발 속도가 느려질 것 같다는 이유로 탈락시켰다. 숙련도가 높은 게 오히려 문제가 된 것이다.빠르게 만들고 빠르게 수정하는 문화에서, 처음부터 완벽하게 만들려는 태도는 오히려 방해가 된다는 논리다.
가장 교묘한 건 Culture Fit이라는 명목이다. 수평적 문화를 강조하는 말 뒤에는 나이 많은 사람은 수직적 사고방식을 가졌을 거라는 선입견이 숨어 있다. 자율 출퇴근이 가능해요라는 말 뒤에는 야근 문화에 익숙한 기성세대는 곤란해요가 깔려 있다. 빠른 의사결정을 중시해요라는 말 뒤에는 경험 많다고 훈계하는 사람은 싫어요가 들어 있다. 한 대표는 면접에서 이 사람과 편하게 술 마시며 반말하고 농담할 수 있을지를 기준으로 삼는다고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이건 능력이나 적합성의 문제가 아니다. 같은 또래끼리 편하게 일하고 싶다는 솔직한 욕망이다.
문제는 이런 세대 편향 채용이 장기적으로 조직을 약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같은 세대끼리만 모이면 다양성이 사라진다. 모두가 비슷한 경험을 했고, 비슷한 시각을 가지고, 비슷한 실수를 한다. 누군가 이거 예전에 해봤는데 안 됐어요라고 말해줄 사람이 없다. 실제로 2025년 들어 많은 스타트업이 같은 문제를 반복한다는 자가 진단을 내놓고 있다. 젊은 팀이 빠르게 실행하지만, 과거에 이미 실패한 방식을 또 시도한다. 투자자는 요즘 스타트업들의 팀 평균 나이가 20대 후반이라 에너지는 넘치지만, 위기 상황에서 대처 능력이 약해 우왕좌왕하다 무너지는 경우가 많다고 지적한다.
하지만 정작 이런 선택이 합리적인지는 아무도 묻지 않는다. "우리는 다르다"는 선언이 우선이고, 그게 조직에 이로운지 해로운지는 나중 문제다. 세대 단절은 이렇게 채용 시장에서도, 조직 운영에서도, 깊숙이 자리 잡고 있다.
단절이 주는 최대의 단점은 이해와 소통이 어렵다는 것이다. 세대 차이는 그래도 소통과 이해가 가능하다. 변화가 주는 변곡점과 차이들을 이해하면 되기 때문이다. 예컨대 어떤 상황을 두고 그 시절에는 그랬겠다는 정도의 여유가 반영된다. 상대방의 맥락을 이해하고, 그 안에서 왜 그런 선택을 했는지 납득할 수 있다. 공감은 아니더라도 수긍은 된다. 하지만 단절은 다르다. 그냥 다르고 차이 나기 때문에, 이해보다는 학습일 뿐이다. 학습은 머리로 주입될 뿐 나에게 여유를 주지 않는다. 그저 상대가 어떤 유형의 사람인지 외우게 될 뿐, 그 사람이 왜 그럴 수밖에 없었는지는 알 수 없다.
예를 들어 40대 팀장이 20대 팀원에게 퇴근 시간 전에 카톡을 보냈는데 답이 없었던 이유를 묻는 상황이 있다고 하자. 이에 대해 20대는 업무 시간이 아니면 확인하지 않아도 된다는 취지로 답한다. 이건 세대 차이가 아니다. 일에 대한 태도, 경계에 대한 인식, 관계에 대한 정의 자체가 다른 것이다. 40대는 팀이기 때문에 서로 챙겨줘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20대는 업무는 업무 시간에만 처리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40대는 급한 일이면 연락해야 한다고 여기지만, 20대는 정말 급하면 공식 채널로 오게 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서로를 이해한다기보다, 결국 상대가 어떤 사람인지 학습하는 데서 멈춘다. 그리고 학습만으로는 협력이 안 된다.
회의 방식도 마찬가지다. 기성세대는 회의실에 모여 앉아 브레인스토밍하는 걸 당연하게 여기지만, Z세대는 그 방식이 굳이 필요한지 되묻는다. 슬랙이나 노션에 비동기로 의견을 올리면 되는데 왜 시간을 맞춰 모여야 하냐는 취지다. 기성세대는 얼굴을 보고 이야기해야 신뢰가 쌓인다고 말하지만, Z세대는 효율적이면 그게 최선이라는 쪽으로 답한다.이건 효율의 문제가 아니다. ‘함께 있음’에 대한 가치 자체가 다른 것이다. 기성세대에게 함께 있음은 신뢰와 유대의 기반이지만, Z세대에게 함께 있음은 불필요한 시간 소모다. 이 격차를 이해가 아니라 학습으로 메우려 하면, 결국 피로만 쌓인다.
한국 세대 단절의 무서움 중 하나는 사회 속에서 인정되는 공통된 가치관이 없다는 것이다. 세대 구분이 뚜렷하게 나타난 외국 사례를 보면, 그래도 공통 기반이 있다.
미국은 시장 자본주의와 기업에 의한 기술 혁신이라는 가치가 있다. 실리콘밸리 신화, 아메리칸 드림, 스타트업 문화처럼 세대가 달라도 혁신하면 성공할 수 있다는 믿음은 공유된다. 베이비부머든 Z세대든 좋은 아이디어와 실행력이 있으면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기본 전제를 믿는다. 그래서 일론 머스크를 보며 세대를 넘어 저렇게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하기도 한다.
중국은 이공계 중심주의와 큰 내수 시장에 따른 자부심이 있다. 중화사상과는 다르지만 중국이 세계 중심이 될 것이라는 집단적 기대가 세대를 관통한다. 50대든 20대든 중국은 강대국이라는 자부심을 공유한다. 그래서 화웨이가 미국 제재를 받아도 결국 이겨낼 것이라고 믿는다.
일본은 과거 전체주의와는 다르지만 만화·애니메이션·게임으로 대표되는 콘텐츠에 대한 공통 인식이 있다. 세대가 달라도 ‘일본 콘텐츠’에 대한 자부심은 공유된다. 60대가 데즈카 오사무를 말하면 20대는 신카이 마코토를 말하지만, 일본 애니메이션은 세계 최고라는 점에는 동의한다.
유럽은 더 흥미롭다. 이민자 유입, 다민족 사회로의 전환, 난민 문제, 극우 정당의 부상처럼 세대 간 갈등이 심각해 보이는 요소들이 많다. 실제로 브렉시트 투표에서 청년층과 노년층이 극명하게 갈렸고, 프랑스 대선에서도 세대별 투표 성향이 완전히 달랐다. 하지만 유럽에는 그래도 공통 기반이 있다. 바로 ‘인권’, ‘민주주의’, ‘복지 국가’라는 가치다. 독일의 60대와 20대는 난민 정책을 두고 격렬하게 논쟁하지만, 인간은 존엄하다는 기본 전제는 공유한다. 프랑스의 기성세대와 젊은 세대는 경제 정책을 두고 대립하지만 자유·평등·박애라는 공화국의 이념은 함께 믿는다. 스웨덴의 세대 간 복지 논쟁은 치열하지만 모두가 최소한의 삶을 누려야 한다는 합의는 유지된다. 심지어 이민자 2세, 3세들도 이 가치를 공유한다. 파리 교외에 사는 알제리계 청년도 스스로를 프랑스 공화국 시민으로 규정하고, 베를린에 사는 터키계 젊은이도 독일 민주주의를 믿는다고 말한다. 물론 차별과 배제의 문제는 여전하지만, 적어도 지향해야 할 가치에 대해서는 세대와 인종을 넘어 합의가 있다.
이런 공통 기반이 있으면 세대 간 갈등이 있어도 결국 한 계통 안에 엮인다. 표현 방식은 다르지만, 지향하는 바는 비슷하다. 그래서 대화가 가능하다. 하지만 한국은 어떤가?
한국은 너무 급속한 사회 발전 속에서 그 공통 기반을 잃어버렸다. 타파되어야 할 사상으로 인식되기도 하지만, 존중과 예의로 대표되는 유교 사상, 민족주의, 공동체 의식, 물질보다 가치 중심—이런 이야기들은 이제 어디를 가도 사라졌다. 심지어 이런 이야기를 꺼내면 놀림받는다. "꼰대 마인드", "구시대적", "이제 그런 거 안 통한다"는 반응이 돌아온다. 조직에서 팀워크를 강조하면 그 말이 야근을 시키려는 의도로 해석되기도 한다. 회식이 팀 문화의 일부라는 설명은 개인 시간 침해라는 반박으로 돌아온다. 선배가 후배를 챙겨야 한다는 말은 수직적 위계 문화라는 비판을 받는다. 세대 간 대화가 단절된 게 아니라, 대화의 기반 자체가 사라진 것이다.
과거 세대는 공동체를 위해 개인이 희생하는 걸 미덕으로 여겼다. IMF 때 금 모으기 운동, 88올림픽 성공, 월드컵 응원 같은 장면들은 공동체 의식이 만들어낸 성과였다. 하지만 지금 세대에게 이런 이야기는 공동체가 잘됐을지 몰라도 개인은 불행했을 수 있다는 질문으로 되돌아온다. 그리고 그 지적은 틀리지 않았다.
하지만 문제는 과거 가치를 버렸으면 새로운 가치를 세워야 하는데, 그게 안 됐다는 것이다. 공동체 의식을 버렸으면 개인주의를 명확히 세워야 하는데 그것도 애매하다. 개인의 자유와 권리를 존중한다고 말하면서도, 개인주의가 가져올 책임과 고독은 감당하지 못한다. 이것이 한국의 세대 단절을 더 가속화시켰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성공에 대한 너무도 다른 가치관들이 생겨났다. 기성세대에게 성공이 안정된 직장(명예), 결혼(가정), 마련이었다면, Z세대에게 성공은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워라밸을 지키는 것이다. 문제는, 이렇게 성공의 정의가 달라지는 것 자체보다도 그 위에서 최소한 공유되던 ‘지켜야 할 공통의 가치와 정신’—사회가 함께 합의한 마지노선이 사라졌다는 점이다. 국가든 민족이든, 혹은 개인의 삶이든, 무엇을 우선으로 두고 어디까지는 넘어서는 안 된다는 기준이 더 이상 공통 언어로 남아 있지 않다.
요즘 젊은 세대에게 국가를 위해 무엇을 해야 하냐고 묻는 질문은 대개 당혹감을 만든다. 왜 국가를 위해 무엇을 해야 하냐는 반응이 뒤따르곤 한다. 국가가 자신을 위해 무엇을 해줬는데 자신이 국가를 위해 무엇을 해야 하냐는 논리다. 이건 이기적이라서가 아니다. 국가라는 공동체에 대한 믿음 자체가 없기 때문이다.
참고로 이는 젊은 세대가 아니라 기성세대에서부터 시작된 현상이다. 급속한 발전은 사실상 기성세대가 만들어낸 일이며, 그들의 책임이 크다. 1960년대생부터 80년대생까지, 한국은 30년 만에 선진국 반열에 올랐다. 그 과정에서 '빨리빨리', '결과 중심', '성과가 전부'라는 문화가 자리 잡았다. 회사는 성과만 내면 되고, 돈만 벌면 되고, 집만 사면 된다는 메시지가 반복되었다. 그러면서 정작 중요한 건 놓쳤다. 왜 일하는지, 무엇을 위해 성장하는지, 어떤 사회를 만들고 싶은지 같은 질문은 사치가 됐다. 결국 열심히 살면 된다는 말로 모든 게 정리됐다.
그리고 그 결과, 지금의 젊은 세대는 열심히 살아서 뭐가 남았는지, 그렇게 일해서 행복했는지를 묻는다. 기성세대는 그 질문에 선뜻 답하지 못한다. 집은 샀지만 빚에 쪼들렸고, 직장은 다녔지만 번아웃에 시달렸고, 결혼은 했지만 이혼율은 치솟았다. 기성세대는 스스로의 경험을 근거로 그래도 지금보다는 나았다는 식으로 방어하지만, 젊은 세대는 그 말을 신뢰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런 삶이 더 나은 삶이었다면 왜 이런 세상을 물려줬냐는 식의 반문이 나온다.
더 근본적인 문제는, 기성세대가 이 급속한 발전 과정에서 ‘왜’에 대한 답을 만들지 못했다는 것이다. 왜 성장해야 하는지, 왜 일해야 하는지, 왜 희생해야 하는지에 대한 답은 명확한 가치나 철학이 아니라 관성에 가까웠다. 다들 그러니까, 그냥 그래야 하니까로 정리되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금 세대는 그 관성을 거부한다. 왜냐고 묻는다. 그리고 기성세대는 답하지 못한다. 답이 없기 때문이다. 30년 동안 달려오면서, 왜 달리는지는 생각하지 않았다. 그 결과가 지금의 단절이다.
1990년대생 이후부터는 이미 물질적 풍요 속에서 자랐다. 굶주림도 없었고, 전쟁도 없었고, 극단적 가난도 없었다. 기성세대가 보릿고개를 겪었다고 말해도 이들에게는 실감이 잘 나지 않는다. 그 과거의 고생이 현재의 고생을 정당화하지 못한다는 인식이 있기 때문이다. 오히려 젊은 세대는 기성세대가 그렇게 열심히 살았다면 왜 지금은 더 힘들어졌는지 묻는다. 집값은 더 올랐고 경쟁은 더 치열해졌고 일자리는 더 불안정해졌다. 그러니 단절이 생기는 것이다.
이 모든 흐름이 쌓이면서, 2025년 한국 사회에는 명확한 정서 하나가 자리 잡았다. 세대 간 단절이다. 이건 단순히 요즘 애들은 이해 못 하겠다는 수준이 아니다. 서로 다른 세계에 사는 사람들처럼 느껴지는 수준이다. 40대 팀장은 20대 팀원을 이해하지 못한다. 정시 퇴근을 고집하는 이유, 회식을 싫어하는 이유, 상사에게 존댓말만 하고 친밀감을 만들지 않는 이유가 납득되지 않는다. 반대로 20대 팀원도 40대 팀장을 이해하지 못한다. 야근을 당연하게 여기는 이유, 회식을 강요하는 이유, 사적인 영역까지 침범하려는 것처럼 보이는 이유가 납득되지 않는다.
이 간극은 잘 메워지지 않는다. 이해하려 노력하자는 말은 나오지만, 실제로는 각자 자기 방식을 고집한다. 그리고 점점 더 멀어진다. 결국 남는 건 냉소와 각자도생이다. 기성세대는 요즘 애들은 희망이 없다는 식으로 말하고, 젊은 세대는 기성세대는 이해가 안 된다는 식으로 말한다. 서로를 포기한 것이다. 대화도 포기하고, 이해도 포기하고, 각자 살아남는 데만 집중한다. 회사에서도, 가정에서도, 사회 전반에서도 이 단절은 깊어지고 있다.
부모와 자식 사이에서도 대화가 잘 이어지지 않는다. 요즘 어떠냐는 질문에 그저 그렇다는 답만 돌아오고, 더 깊은 이야기는 시도되지 않는다. 이해받기 어렵다는 걸 이미 알기 때문이다. 친구 관계도 마찬가지다. 과거에는 나이 많은 형, 누나를 존경하고 따르는 문화가 있었지만, 지금은 5살 차이만 나도 세대가 다르다고 느끼기도 한다. 같은 20대 안에서도 초반과 후반이 다른 세계처럼 느껴진다.
1998년생과 2003년생은 겨우 5년 차이지만 경험한 세상이 완전히 다르다. 1998년생은 아날로그와 디지털을 모두 경험했고, 싸이월드도 해봤고, 스마트폰 없는 시절도 알고, 학교에서 체벌도 받아봤다. 반면 2003년생은 태어날 때부터 스마트폰이 있었고, 유튜브가 당연했고, 코로나 시기 학교를 다녔고, 체벌은 이미 사라진 뒤였다. 이 5년 차이가 만들어낸 경험의 격차는 생각보다 크다.
그래서 2025년 한국 사회는 세대별로 파편화되어 있다. 10년 단위가 아니라 5년 단위로, 심지어 3년 단위로 세대가 나뉜다. 각자의 경험, 각자의 가치관, 각자의 언어를 가진 채로 흩어져 있다. 그리고 서로를 이해하려는 노력도, 이해받으려는 기대도 점점 줄어든다.
냉소의 자연스러운 귀결은 각자도생이다. 사회를 믿을 수 없으니, 남을 도울 여유가 없으니, 그저 나부터 살아남아야 한다. 과거에는 어려운 이웃 돕기가 미덕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내가 살기도 바쁜데 남 도울 여유가 어디 있느냐는 반응이 일반적이다.
길에서 쓰러진 사람을 봐도 돕지 않는다고 말한다. 도와줬다가 괜한 일에 휘말릴 수 있다는 것이다. 선행이 악행으로 돌아오는 사례가 너무 많아서, 차라리 모른 척하는 게 낫다고 생각한다. 기부도 줄었다. 2025년 20~30대 기부율은 10%대다. 자신이 받을 복지도 없는데, 왜 자신의 돈으로 남을 도와줘야 하느냐는 게 그들의 논리다. 심지어 불우이웃 돕기 같은 전통적 기부조차 가짜 불우이웃도 많다며 의심한다. 공동체 활동 참여율도 최저다. 아파트 입주민 대표 회의, 동호회, 봉사 활동—모두 참여하지 않는다. 그런 걸 하면 뭐가 달라지느냐며 시간 낭비라고 생각한다.
모든 관계가 경쟁으로 변했다. 동료는 협력 대상이 아니라 경쟁 상대다. 승진, 연봉, 프로젝트—모든 게 제로섬 게임이다. 내가 올라가려면 남이 내려와야 한다. 팀원들과 친하게 지내긴 하지만 진짜 속마음은 보여주지 않는다고 말한다. 언제 경쟁자가 될지 모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승진 시즌이 되면 서로 견제한다고 한다. 겉으로는 웃으면서 뒤에서는 칼을 간다는 것이다.
심지어 친구 관계도 경쟁이다. 누가 더 좋은 회사 다니는지, 누가 더 높은 연봉 받는지, 누가 먼저 집 사는지—모든 게 비교 대상이다. SNS는 이 경쟁을 가속화한다. 친구가 해외여행 가면 부럽고, 승진하면 질투나고, 결혼하면 초조해진다. 친구를 만나면 피곤하다고 말한다. 서로 자랑하고, 비교하고, 평가하는 느낌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요즘은 안 만난다고 한다. 차라리 혼자 있는 게 편하다는 것이다.
장기적 투자는 사라졌다. 모든 게 단기 성과로 평가된다. 3년 후, 5년 후를 생각할 여유가 없다. 내일 당장 뭐가 남는지가 중요하다. 스타트업 직원은 회사에서 장기 프로젝트를 맡으라고 했지만 거절했다고 한다. 2년이 걸린다는데, 2년 후에 회사가 있을지도 모르고 자신이 여기 있을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그래서 거절하고 당장 성과 낼 수 있는 일을 하겠다고 했다고 한다.
자기계발도 단기 성과 중심이다. 영어 공부, 자격증, 코딩—모두 스펙을 위한 것이다. 배움 자체를 즐기거나, 장기적 성장을 위해 공부하는 게 아니다. 이직할 때 써먹을 수 있는지, 연봉 협상에 도움이 되는지가 기준이다.
모든 관계가 도구가 됐다. 인맥은 쌓는 게 아니라 활용하는 것이다. 네트워킹 행사, 동문 모임, 직장 회식—모두 관계를 활용하기 위한 자리다. 선배를 만날 때 마음이 불편하다고 말한다. 진짜 만나고 싶어서가 아니라, 나중에 도움받을 일이 있을까 봐 만나는 것이라는 것이다. 선배도 똑같을 거라고 생각한다. 서로 활용하는 관계라는 것이다.
심지어 연애도 계산적이다. 상대의 스펙, 집안, 연봉—모든 게 평가 대상이다. 사랑해서 만나는 게 아니라 조건이 맞아서 만나는 관계가 늘어난다. 남자친구 조건을 안 보면 거짓말이라고 말한다. 연봉, 직장, 집—다 중요하다는 것이다. 사랑만으로는 결혼할 수 없다며 현실적으로 생각해야 한다고 한다.
2025년 서울의 1인 가구 비율은 40%를 넘었다. 하지만 숫자보다 중요한 건, 그들이 어떻게 사는가다. 한 직장인의 하루를 보자. 오전 9시 출근, 오후 6시 퇴근. 집에 돌아와서 배달 음식 시키고, 넷플릭스 보고, 유튜브 보고, 게임하고, 자고. 다음 날 반복. 주말도 똑같다. 집에서 쉬고, 혼자 영화 보고, 혼자 밥 먹고, 혼자 산책한다. 외롭지 않냐고 물으면, 외로운 것보다 사람 만나는 게 더 피곤하다고 답한다. 친구와 약속을 잡으면 준비하고, 나가고, 맞춰주는 게 모두 에너지 소모라는 것이다. 차라리 혼자 있는 게 편하다고 한다. 이건 단순히 내향적 성격의 문제가 아니다. 사람을 믿지 못하고, 관계를 부담으로 느끼고, 혼자가 안전하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과거에는 동네 커뮤니티가 있었다. 반상회, 부녀회, 청년회—이런 모임들이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다 사라졌다. 아파트 입주민 대표 회의에 참석하는 20~30대는 거의 없다. 그런 거 왜 하느냐며 시간 낭비라고 생각한다. 동호회도 마찬가지다. 등산, 독서, 운동—오프라인 모임은 점점 줄고, 온라인 커뮤니티만 남는다. 그마저도 익명이다. 얼굴 안 보고, 이름 안 밝히고, 그저 정보만 교환한다. 아파트 관리소장은 요즘 젊은 입주민들은 얼굴도 모르겠다고 말한다. 택배 받으러 올 때만 본다는 것이다. 이웃끼리 인사도 안 한다고 한다. 같은 층에 누가 사는지도 모르는 것 같다고 한다.
누군가 도움이 필요해도 요청하지 못한다. 민폐 끼치기 싫어서다. 대학 과제가 힘들어도 친구에게 도움을 청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부담 주기 싫다는 것이다. 자신도 나중에 갚아야 할 것 같아서 그냥 혼자 한다고 한다. 밤을 새워서라도 혼자 해결한다는 것이다. 직장에서도 마찬가지다. 업무가 힘들어도 동료에게 도움을 청하지 않는다. 저 사람도 바쁜데 자신의 일까지 맡기면 미안하다는 것이다. 그리고 도움받으면 나중에 자신이 도와줘야 하는데, 그게 부담이라고 한다. 그래서 혼자 끙끙 앓다가 번아웃이 온다. 그리고 퇴사한다. 이 악순환이 반복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