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중잡담(醉中雜談) - 술김에 적는 솔직한 이야기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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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대 차이가 아닌 세대 단절 ① : 현상과 그 본질
• 세대 차이가 아닌 세대 단절 ② : 과거에 대한 불신
• 세대 차이가 아닌 세대 단절 ③ : 명분과 실리 사이 괴리
• 세대 차이가 아닌 세대 단절 ④ : 다가올 미래와 대응 방안 (끝)
1편에서 세대 단절의 현상들을 살펴봤다. 메신저, 문화, 채용—일상 곳곳에서 선이 그어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 단절의 본질은 '이해'가 아닌 '학습'이며, 한국에는 세대를 관통하는 공통 가치가 없다는 것을 확인했다. 하지만 여전히 답하지 못한 질문이 있다. 왜 이렇게 되었을까? 왜 한국의 세대 단절은 유독 심한가? 왜 젊은 세대는 기성세대를 이해하려 하지 않고, 아예 선을 긋는가?
나는 과거에 대한 불신이 제일 크다고 생각한다. 젊은 세대가 기성세대를 거부하는 이유는 단순히 가치관이 다르거나 문화가 다르기 때문이 아니다. 기성세대가 만들어놓은 시스템들을, 그들이 내세운 명분들을, 더 이상 믿을 수 없기 때문이다.
부동산은 한국 사회에서 가장 뜨거운 세대 갈등의 중심이다. 기성세대는 집을 사는 게 당연했다. 1990년대, 2000년대 초반만 해도 서울 아파트를 1억~2억에 살 수 있었다. 물론 당시에도 비싸다는 불만은 있었지만, 월급 모아서 대출 받으면 살 수 있는 수준이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서 집값은 올랐고, 그들은 자산을 불렸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2025년 기준 서울 아파트 평균 가격은 10억을 넘는다. 20대가 월급 300만 원 받으면서 10억짜리 집을 사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 대출을 최대한 받아도 5억이고, 나머지 5억은 현금으로 모아야 한다. 연봉 4천만 원 받는 직장인이 한 푼도 안 쓰고 10년을 모아도 4억밖에 안 된다. 그러니 부모 찬스 없으면 집 사는 건 사실상 불가능하다.
그런데 기성세대는 자신들도 힘들게 샀으니 젊은 세대도 노력하면 된다고 말한다. 젊은 세대는 이 말을 듣고 분노한다. 그들이 산 집이 지금 10배가 올랐는데, 그게 노력의 결과냐고 묻는다. 집값 상승은 노력의 결과가 아니라 운과 타이밍의 결과였다. 하지만 그걸 인정하지 않는다.
더 심각한 건, 기성세대가 집값 상승을 막을 생각이 없다는 것이다. 집값이 떨어지면 자신들의 자산이 줄어들기 때문이다. 그래서 정부가 부동산 규제를 강화하면 반발하고, 집값이 오르면 역시 집은 사야 한다며 자축한다.
그리고 정부는? 매번 대통령이 바뀔 때마다 집값을 잡겠다고 공약한다. 하지만 아무도 제대로 잡지 못한다. 시늉만 할 뿐이다. 결국 다음 정권에 폭탄을 돌린다. 심지어 더 커진 폭탄을. 왜? 바로 지지율 때문이다. 집값을 실제로 잡으면 유권자의 절반 이상이 반발한다. 집 가진 사람들이 표를 빼면 정권이 흔들린다.
더 근본적인 문제는 정책을 만드는 사람들조차 거기서 자유롭지 않다는 것이다. 국토부 공무원도, 청와대 정책팀도, 국회의원도—대부분 서울에 집을 여러 채 가지고 있다. 그들에게도 집값 하락은 자산 손실이다. 그러니 진짜 규제는 나오지 않는다. 나와도 구멍이 많고, 실효성이 없고, 결국 집값은 더 오른다. 젊은 세대 입장에서는 이게 폭탄 돌리기다. 기성세대가 집값을 끌어올려놓고, 그 부담을 다음 세대에게 넘기는 것이다. 정부도, 정치인도, 공무원도—모두 공범이다.
그래서 남는 건 체념이다. 한 직장인은 집을 포기했다고 말한다. 어차피 부모 도움 없이는 불가능하니, 저축도 하지 않는다고 한다. 모아봤자 집값 오르는 속도를 따라갈 수 없는데 무엇 하러 모으냐는 것이다. 차라리 지금 쓰면서 사는 게 낫다고 생각한다.
부모 세대는 민주화를 이뤘다. 1980년대 민주화 운동, 1990년대 문민정부 출범, 2000년대 정권 교체—한국은 짧은 시간에 독재에서 민주주의로 전환했다. 기성세대는 이를 자랑스럽게 여긴다. 우리가 민주주의를 쟁취했다고 말한다.
하지만 젊은 세대는 묻는다. 그래서 뭐가 나아졌냐고. 민주주의는 달성했지만, 사회·경제적 불평등은 오히려 더 심해졌다. 재벌은 더 커졌고, 비정규직은 늘었고, 청년 실업률은 치솟았다. 정치권은 서로 싸우기만 하고, 국민의 삶은 나아지지 않았다. 민주주의 덕분에 자유롭게 말할 수 있게 됐다지만, 말만 자유로울 뿐 실제 삶은 팍팍하다.
더 아이러니한 건, 젊은 세대가 오히려 보수 성향을 띤다는 것이다. 2022년 대선에서 20대 남성의 과반이 보수 정당을 지지했다. 부모 세대가 진보를 외쳤던 것과 정반대다. 왜 그럴까? 젊은 세대는 진보가 자신들을 위한 게 아니라고 느낀다. 진보 정당은 노동자를 위한다고 하지만, 정작 노조는 대기업 정규직 중심이다. 청년을 위한다고 하지만, 정작 청년 일자리 정책은 단기 알바뿐이다. 여성을 위한다고 하지만, 정작 여성 청년 실업률도 높다.
젊은 세대는 이념보다 실리를 본다. 누가 내 삶을 실제로 나아지게 해주냐가 기준이다. 그런데 진보든 보수든, 정치권은 자기들끼리 싸우기만 하고 청년의 삶은 나아지지 않는다. 그러니 차라리 보수가 경제는 잘하지 않겠냐는 판단을 한다. 이건 이념의 문제가 아니라, 정치에 대한 불신이다.
그 불신은 정치 무관심으로 이어진다. 2025년 기준 20대 투표율은 역대 최저 수준이다. 지방선거에서는 40%도 안 됐다. 투표해봤자 달라지는 게 없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한 대학생은 2022년 대선 때 청년 공약을 보고 투표했다고 한다. 일자리를 늘리겠다, 집값을 잡겠다, 학자금 대출 부담을 줄이겠다는 공약들이었다. 하지만 3년이 지난 지금 하나도 바뀌지 않았다고, 아니 오히려 더 나빠졌다고 말한다. 그래서 다음 선거는 가지 않을 것이라고, 어차피 누가 되든 똑같다고 생각한다.
정치인에 대한 냉소는 더 깊다. 한 직장인은 정치인들을 보면 웃기다고 말한다. 야당일 때는 부동산 규제 강화를 주장하다가 여당이 되면 규제를 완화한다는 것이다. 여당일 때는 복지를 늘리자고 하다가 야당이 되면 재정 건전성을 운운한다고 한다. 결국 권력 잡는 게 목적이지, 국민은 수단일 뿐이라고 생각한다.
더 심각한 건, 이런 냉소가 민주주의 자체에 대한 불신으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민주주의가 무엇이 좋으냐는 회의가 생긴다. 결국 다수가 소수를 억압하는 것 아니냐는 것이다. 노인들이 많으니까 청년 정책은 뒷전이고, 집 가진 사람이 많으니까 부동산 규제는 안 된다는 인식이다.
일부 젊은 세대는 더 극단적으로 나아간다. 차라리 능력 있는 독재자가 낫다고, 적어도 빠르게 결정은 한다고 말한다. 이런 발언이 농담이 아니라 진심으로 나온다. 민주주의에 대한 환멸이 그만큼 깊다는 뜻이다.
한국 기업 문화는 오랫동안 비판받아왔다. 세습 경영, 재벌 총수 일가의 전횡, 수직적 위계, 야근 문화, 회식 강요—이 모든 게 문제로 지적되었다. 그리고 그 비판의 선봉에 섰던 이들이 지금의 40대, 50대다. 2000년대 초반, 그들은 신입사원이었다. 이런 회사 문화는 바뀌어야 한다고 말했다. 수평적 조직이 되어야 한다고, 야근 문화를 없애야 한다고, 성과 중심으로 평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지금 그들이 부장, 임원이 되어서는 어떤가?
회식은 여전하고, 야근은 여전하고, 수직적 위계는 여전하다. 아니, 오히려 더 심해졌다. 요즘 애들은 근성이 없다고 말하고, 팀워크가 중요하다며 회식을 강요한다. 신입사원 시절 비판했던 그 문화를, 본인이 관리자가 되니 재생산한다.
재벌 개혁도 마찬가지다. 2000년대 초반, 재벌 개혁은 사회적 화두였다. 재벌 총수 일가의 전횡을 막아야 한다는, 지배구조를 투명하게 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았다. 하지만 2025년 지금, 재벌 구조는 여전하다. 삼성, 현대, SK, LG—여전히 총수 일가가 지배한다. 그리고 그 회사에 다니는 직장인들은 그래도 대기업이 안정적이라며 재벌을 옹호한다. 젊은 세대는 이를 보며 냉소한다. 결국 본인들도 기득권이 되니까 바꾸지 않는 거 아니냐고 생각한다. 개혁을 외쳤던 이들이, 본인이 그 구조 안에 들어가니 타협한다. 그게 바로 불신의 핵심이다.
그리고 그 냉소는 직장 전반에 대한 체념으로 이어진다. 한 대기업 신입사원은 입사 6개월 만에 퇴사를 결심했다. 면접 때는 워라밸 보장, 수평적 조직 문화, 성과 중심 평가라고 했지만 다 거짓말이었다고 한다. 야근은 기본이고, 부장 눈치를 봐야 하고, 성과보다는 근속연수가 중요했다고 한다. 처음엔 바꿔보려고 제안도 하고 의견도 냈지만, 선배들이 원래 그렇다며 적응하라고 했다는 것이다. 그때 여기서는 아무것도 안 바뀐다는 걸 깨달았다고 한다.
이런 경험이 반복되면서, 젊은 세대는 조직 개선에 대한 기대를 접는다. 어차피 안 바뀌는데 왜 에너지를 쓰냐는 냉소가 자리 잡는다. 그리고 그 냉소는 행동으로 이어진다. 조용한 퇴사(Quiet Quitting)다.최소한의 업무만 하고, 회식은 절대 안 가고, 야근은 거부하고, 승진에도 관심 없다. 월급만큼만 일한다는 게 그들의 원칙이다. 회사에 애정도 없고, 동료에게 유대감도 없고, 그저 월급을 받기 위해 출근할 뿐이다.
한국 교육 문제는 수십 년간 반복되었다. 입시 위주 교육을 바꿔야 한다는, 학벌 중심 사회를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는 1990년대부터 나왔다. 전교조가 생기고, 교육 개혁이 시도되었다. 학생 인권을 존중해야 한다는, 창의성을 키워야 한다는 말이 반복되었다.
하지만 2025년 지금, 교육 현실은 어떤가? 인구수가 줄고 학교가 통폐합되는 와중에도 학벌 지상주의는 여전하다. 아니, 오히려 더 심해졌다. 서울대, SKY 입학 경쟁률은 더 치열해졌고, 사교육비는 천정부지로 치솟았다. 2025년 기준 고3 자녀를 둔 가정의 평균 사교육비는 월 200만 원을 넘는다. 학원, 과외, 인강, 컨설팅—모든 게 돈이다.
그런데 전교조 출신 교사들, 교육 개혁을 외쳤던 이들은 어떻게 했을까? 그들도 자식은 서울대 보냈다. 공교육을 살려야 한다고 말하면서, 본인 자식은 강남 학원가에 보냈다. 학벌이 중요하지 않다고 말하면서, 본인은 SKY 출신이라는 걸 자랑한다. 젊은 세대는 이를 보며 배신감을 느낀다. 결국 본인들도 학벌로 살아온 사람들 아니냐고 생각한다. 개혁을 외쳤지만, 본인은 그 시스템의 수혜자였고, 자식도 그 시스템에 태웠다. 그러면서 너희는 다르게 살아라고 하는 게 설득력이 있을까?
그래서 젊은 세대도 똑같이 한다. 하지만 더 냉소적으로. 한 대학생은 교양 수업은 왜 듣냐고 반문한다. 학점 잘 나오는 전공 수업만 듣는다고 한다. 취업에 도움 안 되는 건 시간 낭비라는 것이다. 교수들이 대학은 배움의 전당이라고 하지만, 그분들도 결국 학벌로 여기 온 거 아니냐고 말한다. 자신도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배움은 나중에 여유 있을 때 하는 거라고 생각한다.
수도권 집중은 한국의 고질적 문제다. 지역 균형 발전은 모든 정권의 공약이었다. 세종시를 만들고, 혁신도시를 만들고, 지역 대학을 육성하고—정부는 수십 년간 지역 분산을 시도했다. 하지만 2025년 지금, 서울 공화국은 더 공고해졌다. 수도권 인구 비중은 50%를 넘어섰고, 지방 대학은 폐교 위기에 몰렸으며, 지방 도시는 공동화되었다.
지역에서도 살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하지만, 정작 본인은 서울에 산다. 자식 교육 때문에, 일자리 때문에, 문화생활 때문에—이유는 많다. 그리고 그 이유들은 모두 정당하다. 실제로 지역에는 좋은 학교가 없고, 괜찮은 일자리도 없고, 문화 인프라도 빈약하다. 개인의 선택으로서는 합리적이다.
하지만 문제는 그런 개인의 합리적 선택이 모여서 지역을 더욱 황폐화시킨다는 것이다. 젊은이들이 떠나니 학교가 문을 닫고, 학교가 없으니 가족이 떠나고, 가족이 떠나니 상권이 무너지고, 상권이 무너지니 일자리가 사라진다. 악순환이다.
그리고 지역 출신들도 마찬가지다. 지역 발전이 필요하다고 말하지만, 본인은 서울로 올라온다. 대학은 서울로 가고, 취업도 서울에서 하고, 결혼해서도 서울에 산다. 지역에 남는 건 노인뿐이다. 2025년 기준 비수도권 지역의 평균 연령은 50세를 넘어섰다. 반면 서울 강남의 평균 연령은 40대 초반이다. 젊음과 늙음이 지역으로 분리되고 있다.
더 아이러니한 건, 지역 출신 국회의원이나 공무원들이다. 그들은 지역구를 대표한다며 예산을 따오고, 개발 사업을 유치하고, 지역 발전을 외친다. 하지만 그들의 가족은 어디에 사는가? 서울이다. 자녀는 서울 학교를 다니고, 배우자는 서울에 직장을 다니고, 본인도 국회 회기 중에는 서울에 머문다. 지역구는 표를 얻는 곳일 뿐, 실제로 삶을 사는 곳은 아니다.
젊은 세대는 이를 보며 냉소한다. 결국 모두가 본인 이익만 생각하는 거 아니냐고 생각한다. 지역 균형 발전을 외치지만, 정작 본인은 희생하지 않는다. 그러면서 젊은이들에게 지역에 남으라고? 지역을 살리자고? 그게 설득력이 있을까? 당신들도 안 남았는데, 우리에게만 요구하는 건 위선 아니냐고 반문한다.
연금 문제는 한국 사회의 가장 명확한 세대 갈등이다. 국민연금 고갈 시점은 2055년으로 예측된다. 지금 50대, 60대는 연금을 받겠지만, 지금 20대, 30대는 받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 이건 예측이 아니라 거의 확정된 미래다.
계산은 이미 나와 있다. 연금을 받으려면 보험료율을 올리거나, 수령 연령을 높이거나, 지급액을 줄여야 한다. 현재 9%인 보험료율을 최소 13% 이상으로 올려야 하고, 현재 63세인 수령 연령을 70세 이상으로 높여야 하고, 지급액도 현재보다 30% 이상 줄여야 한다. 이 세 가지를 동시에 해야 겨우 연금이 유지된다.
하지만 아무것도 결정되지 않는다. 왜? 기성세대가 반대하기 때문이다. 보험료율을 올리면 지금 내는 돈이 늘어나고, 수령 연령을 높이면 본인이 늦게 받고, 지급액을 줄이면 본인이 손해다. 어느 하나도 받아들일 수 없다. 그래서 모든 개혁안이 국회에서 무산된다.
그래서 결정을 미룬다. 지금 결정하지 않으면, 나중 세대가 떠안는다. 적어도 자신이 살아있는 동안, 자신이 혜택받는 동안에는 놓치고 싶어하지 않는다. 그 결과, 문제는 점점 커지고, 해결은 점점 어려워진다. 10년 뒤에 개혁하면 보험료율을 15%까지 올려야 하고, 20년 뒤에 개혁하면 20%까지 올려야 한다. 미룰수록 부담은 커진다.
그런데 그 부담을 누가 지는가? 지금 젊은 세대다. 기성세대는 적게 내고 많이 받고, 젊은 세대는 많이 내고 적게 받는다. 아니, 아예 못 받을 수도 있다. 이게 공정한가? 지속 가능한가?
젊은 세대는 이미 알고 있다. 우리는 연금을 못 받을 거라고. SNS에는 연금을 포기했다는 글이 넘쳐난다. 어차피 못 받을 거 개인 연금에 넣겠다는, 주식에 투자하겠다는 이야기가 반복된다. 그래서 연금을 믿지 않는다. 대신 개인 노후 준비를 한다.
하지만 그마저도 쉽지 않다. 집값은 높고, 월급은 적고, 미래는 불확실하다. 개인 연금에 넣을 여유도 없고, 주식 투자할 종잣돈도 없다. 그러니 냉소만 남는다. 어차피 노후는 없을 거라고, 그냥 지금 쓰고 살자고 체념한다. 이게 2025년 젊은 세대의 솔직한 심정이다.
2024년 한국의 합계출산율은 0.72명이다. OECD 최저다. 세계 최저다. 정부는 매년 수조 원을 쏟아붓지만, 출산율은 계속 떨어진다. 2025년에는 0.6명대로 떨어질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왜? 젊은 세대는 명확하게 답한다. 이 사회에서 아이를 낳을 수 없다고. 집값은 10억이고, 사교육비는 월 200만 원이고, 경쟁은 치열하고, 미래는 불확실하다. 이런 사회에서 아이를 낳으라고? 도저히 불가능하다.
구체적으로 계산해보자. 아이 한 명을 대학까지 키우는 데 드는 비용은 약 3억 원이다. 출산 비용, 육아 비용, 교육 비용—모든 걸 합치면 그 정도다. 서울에서 살면 더 든다. 좋은 학군에 집을 구하려면 15억 이상 필요하고, 사교육비는 초등학교 때부터 월 100만 원, 중고등학교 때는 월 200만 원 이상 든다. 그럼 연봉 5000만 원 받는 부부가 아이를 낳을 수 있을까? 세금 빼고 실수령액은 연 8000만 원 정도다. 거기서 생활비 4000만 원, 대출 이자 2000만 원 내면 남는 건 2000만 원이다. 여기서 사교육비 2400만 원을 어떻게 내나? 불가능하다. 그래서 안 낳는다.
기성세대는 말한다. 우리도 어려웠지만 낳아서 키웠다고. 하지만 젊은 세대는 묻는다. 당신들은 집을 2억에 샀지만, 우리는 10억을 내야 한다고. 당신들은 대학 등록금이 연 100만 원이었지만, 우리는 1000만 원을 내야 한다고. 당신들은 정규직이 당연했지만, 우리는 비정규직이 기본이라고. 어떻게 같다고 할 수 있냐고. 숫자로 비교하면 더 명확하다. 1990년대 서울 아파트 중위가격 대비 평균 연봉 비율은 5배였다. 5년 모으면 집을 살 수 있었다. 지금은? 20배다. 20년을 한 푼도 안 쓰고 모아야 집을 산다. 이게 같은 상황인가?
더 근본적인 문제는, 기성세대가 젊은 세대를 비난한다는 것이다. 요즘 애들은 이기적이라고, 개인주의라고, 책임감이 없다고 말한다. 정부 정책도 마찬가지다. 출산 장려금을 주고, 육아 지원을 확대하면서—마치 돈만 주면 아이를 낳을 것처럼 접근한다. 하지만 문제는 돈이 아니라 시스템이다.
하지만 젊은 세대는 묻는다. 이 사회를 만든 건 누구냐고. 집값을 올린 건 누구냐고. 교육 경쟁을 심화시킨 건 누구냐고. 일자리를 불안정하게 만든 건 누구냐고. 그런 사회를 만들어놓고, 우리보고 아이를 낳으라고? 그게 말이 되냐고. 젊은 세대는 냉소한다. 당신들이 만든 사회에서 아이를 낳으라니, 그게 말이 되냐고. 차라리 솔직하게 말하라고. 우리가 노인이 되었을 때 돌봐줄 젊은이가 필요하니까 낳으라는 거라고. 연금 낼 사람이 필요하니까 낳으라는 거라고. 하지만 그런 솔직함조차 없다. 그저 책임감을 운운하며 젊은 세대를 비난할 뿐이다.
이렇게 기성세대가 물려준 7가지 폭탄은 단순한 문제가 아니다. 각각의 폭탄은 젊은 세대의 삶을 직접적으로 압박하고, 미래를 불투명하게 만들고, 희망을 앗아간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기성세대에 대한 불신은 점점 깊어진다.
부동산, 정치, 기업, 교육, 지역, 연금, 출산—이 모든 영역에서 기성세대는 좋은 말을 했다. 개혁을 외쳤고, 변화를 약속했고, 더 나은 미래를 말했다. 하지만 행동은 달랐다. 본인이 기득권이 되니 타협했고, 희생을 강조하면서도 본인은 희생하지 않았다. 부동산 개혁을 외치면서도 본인 집값은 올리고, 교육 개혁을 말하면서도 본인 자식은 강남 학원에 보내고, 지역 균형을 주장하면서도 본인은 서울에 살고, 재벌 개혁을 강조하면서도 본인은 대기업 입사를 최고로 여기고, 연금 개혁을 미루면서도 본인은 혜택을 챙기고, 출산을 독려하면서도 젊은 세대를 비난한다.
그래서 젊은 세대는 더 이상 믿지 않는다. 존경하지 않는다. 따르고 싶지 않다. 기성세대가 내세운 명분들이, 그들이 말한 가치들이, 결국 입으로만 존재했다는 걸 알아버렸다. 그리고 그 순간, 불신은 더 깊은 단계로 넘어간다.
기성세대의 이런 모습이 단순히 세대의 문제일까? 아니면 더 근본적인 구조의 문제일까? 명분을 내세우면서 실리를 챙기는 이 이중성은 어디서 오는 걸까? 그리고 가장 중요한 질문—젊은 세대는 과연 다를까?
기성세대를 비판하는 건 쉽다. 그들의 위선을 지적하는 건 어렵지 않다. 하지만 진짜 무서운 건, 이 패턴이 반복될 수 있다는 것이다. 지금 20대, 30대가 40대, 50대가 되었을 때, 과연 다를까? 지금 기성세대를 비판하는 젊은 세대가, 권력을 쥐고 기득권이 되었을 때, 과연 다른 선택을 할까?
아니면 똑같이 명분을 내세우면서 실리를 챙기고, 개혁을 외치면서 타협하고, 희생을 말하면서 도피할까?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서는, 우리는 더 깊이 들여다봐야 한다. 명분과 실리 사이의 괴리를, 말과 행동의 불일치를, 그리고 그 속에서 작동하는 인간의 본성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