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id] HR에 보내는 헌정사 ②-신고당하는 HR에게

이드의 HR 커피챗 시리즈

by iid 이드

※ 내가 쓰는 글들은 개인적인 경험과 고민을 바탕으로 한 지극히 개인적인 의견이다. 특정 누군가를 비판하는 것도, 정답을 말하는 것도 아니니 가볍게 읽어주면 좋겠다. (문의 : AI 클론 채팅, 자문/컨설팅 문의 )


1편이 구조에 대한 이야기였다면 이번엔 그 구조 안에서 실제로 맞고 있는 사람의 이야기를 쓰려고 한다. 요즘 들어 부쩍 많아진, 신고를 당한 HR들에 대한 이야기다. 구조를 아는 것과 그 구조 안에서 버티는 것은 다른 문제이기 때문이다.


요즘 HR 동료들과 커피챗을 하다 보면 대화의 온도가 달라졌다는 걸 느낀다. 번아웃이나 처우 얘기가 아니다. "나 요즘 신고 당했어." 이 한 문장이 이제 인사말처럼 돌아다닌다.


처음엔 그게 특이한 케이스인 줄 알았다. 그런데 이야기를 듣다 보면 상황이 다 비슷하다. 구조조정 과정에서, 권고사직 면담에서, 혹은 그냥 성과 피드백 자리에서. 내가 결정한 것도 아닌 일을 전달했을 뿐인데 신고의 대상이 된 거다. 더 황당한 건 신고장에 적힌 내용이다. 회사의 정책이나 결정이 문제라는 게 아니라, 내가 말하는 방식이, 표정이 문제라는 식이다. 내용이 아니라 사람이 문제가 된다. 결정이 아니라 전달자가 문제가 된다.


그리고 그게 한두 명의 이야기가 아니다. 만나는 HR마다 크고 작은 비슷한 경험을 하나씩은 갖고 있다. 어떤 사람은 블라인드에 실명이 올라왔고, 어떤 사람은 노동청 신고를 당했고, 어떤 사람은 사내 감사 대상이 됐다. 공통점은 하나다. 본인이 결정한 일이 아니었다는 것.


한두 번 징계나 신고, 혹은 블라인드 뒷담화를 당해보지 않은 HR은 솔직히 일을 제대로 안 한 HR이라고 말할 정도가 됐다. 이게 농담처럼 들리겠지만 반쯤은 진담이다. 나도 그 경험을 했고, 어느 순간부터 그게 이 일의 일부라고 받아들이게 됐다. 그런데 솔직히 말하면, 이게 이렇게 일반화되지는 않기를 바랐다. 이겨낼 수 있는 사람만 살아남는 구조가 당연해지는 건, 좋은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모두가 이걸 이겨낼 수 있는 건 아니고, 이겨내야만 한다는 것도 아니다.


그리고 그 말을 처음 들었을 때 웃어야 할지 공감해야 할지 모르겠는 그 감각, 요즘 HR이라면 다들 알 것이다.




두 가지가 딱 겹쳤다

배경은 단순하다. 경기가 안 좋아지면서 구조조정, 희망퇴직, 권고사직이 많아졌다. 동시에 직장 내 괴롭힘 제도를 비롯한 근로자 보호 체계가 훨씬 강해졌다. 각각은 맞는 방향이다. 그런데 두 개가 겹쳤을 때 묘한 일이 생긴다.


회사는 인력을 정리해야 하고, HR은 그 실행을 맡는다. 상황이 불만스러운 구성원은 쓸 수 있는 수단이 생겼다. 일부는 퇴직 강요나 부당해고로 문제를 제기한다. 그건 어디까지나 회사 대 개인의 이슈다. HR이 해결 주체긴 해도 싸움의 당사자는 회사다.


문제는 거기서 한 발 더 나아가는 경우다. 회사의 의사결정을 이슈로 삼는 게 아니라, 그 과정에서 HR 담당자 개인이 직장 내 괴롭힘을 했다는 방향으로 신고가 들어온다. 이 순간 성격이 완전히 달라진다. 회사-개인 간 이슈는 정책의 적합성, 절차의 정당성이 판단의 기준이 된다. 그런데 직장 내 괴롭힘이 되는 순간, 판단의 초점이 정책에서 사람으로 옮겨간다. HR 담당자 개인의 태도, 말투, 감정 표현 하나하나가 심판대에 오른다. 회사가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라, 내가 어떤 사람인가의 문제가 되는 것이다. 그것도 내가 결정하지 않은 일을 가지고.


덧붙이자면, 직장 내 괴롭힘이라는 제도가 일부 맥락에서 본래의 의미를 잃어가고 있는 현실도 있다. 안 되면 말고 식의 민원 제기, 혹은 불리한 상황에서 시간을 버는 수단으로 활용되는 경우가 늘고 있다. 이건 제도 자체의 문제가 아니라 제도가 소비되는 방식의 문제다. 그리고 그 소비의 가장 직접적인 피해자가 HR이 되는 경우가 많다.



경찰과 HR이 닮아 있다

이 상황을 생각하다 보면 자꾸 경찰이 떠오른다. 한국 사회에서 경찰이나 소방관에 대한 태도는 묘한 이중성이 있다. 뉴스에서 순직 소식이 나오면 존중해야 한다고 한다. 그런데 본인이 당사자가 되는 순간, 신고를 받고 경찰이 나타났을 때의 태도는 완전히 다른 경우가 많다. 내가 잘못이 없다고 생각하면 일단 공격적으로 나간다. 경찰이 감정적으로 조금이라도 반응하면 그게 이슈가 된다. 위협을 가하다가 경찰이 방어적 수단을 취하면 과잉진압이라 한다. 그러니까 경찰은 어느 순간부터 맞으면서도 적극 대응을 못 하는 상태가 된다. SNS에 올라갈까봐, 민원이 들어올까봐. 결국 공포탄만 쏘다가 아무것도 못 하는 것처럼 서 있게 된다.


HR이 정확히 그 자리에 있다. 기업 탄압의 시대를 직접 경험하지 않은 IT 스타트업의 젊은 구성원들도, 본인의 이익이나 권리가 침범받는다고 느끼는 순간에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된다. 근거 없는 이슈 제기, 협박, 위협. 물론 자신의 입장을 방어하는 건 당연한 권리다. 그런데 문제 삼아야 할 건 그 의사결정이지 HR 개인이 아니다. 심지어 그 담당자가 결정한 것도 아니다. 대표가 시킨 거다. 그런데 공격과 모멸은 HR에게 온다.


HR 담당자들은 그러면 안 된다는 걸 너무 잘 안다. 감정적으로 조금이라도 반응하면 그게 직장 내 괴롭힘이 될 수 있다는 것도 안다. 그래서 참는다. 맞으면서 참는다. 그러다 혹여나 한 번이라도 반응이 새어나오면 그게 바로 신고의 근거가 된다. 경찰이 위협 상황에서 끝내 공포탄만 쏘다가 정작 본인이 다치는 것처럼, HR도 그 자리에서 아무것도 못 하고 결국 혼자 소진된다.



대표는 HR 탓을 한다

신고가 들어오면 많은 대표들이 비슷한 반응을 보인다. 자신의 의사결정이 문제가 된 것보다, 그걸 수행한 HR 때문에 이슈가 생겼다고 해석한다. 뉴스에서 큰 사건이 터질 때마다 원인이 항상 담당자 실수로 귀결되는 것과 같다. 가장 손쉬운 해석이고, 자기 결정을 건드리지 않아도 되는 방향이기 때문이다.


심지어 본인의 의사결정 자체를 슬그머니 철회하기도 한다. HR을 앞세워 진행했다가 이슈가 생기자 갑자기 그건 HR이 알아서 한 것이라는 식으로 이야기가 바뀐다. 어떤 경우엔 HR이 자기 위에서 독단적으로 진행한 것처럼 이야기하기도 한다. 대표 위의 HR. 실제로 그런 말을 들었을 때 그런 HR이 어디 있냐고 웃었다. 또 어떤 경우엔 해당 직원과 HR 사이의 이슈에서 자기는 모른다며 빠지겠다고 한다. 출장을 가는 경우도 있다. 타이밍 좋게. 지시한 사람이 먼저 빠져나가고, 실행한 사람만 남는 구조다. 뒤처리는 HR 몫이고, 결과가 어떻게 되든 자기 이름은 빠져 있다. 이때 HR이 느끼는 감정은 배신이라는 말로는 다 담기지 않는다. 내가 대신 맞았는데, 그 사람이 나한테 왜 맞았냐고 묻는 상황이다.


그나마 조금 나은 케이스도 있다. 자신이 지시한 것이니 직접 나서겠다며 대표가 해당 구성원과 면담을 해보는 경우다. 그런데 거기서도 반전이 생긴다. 그 구성원은 대표 앞에서 갑자기 선량한 피해자가 된다. 자신은 다 이해하고 동의했는데 HR이 일방적으로 압박했다고 한다. 대표는 그 말을 듣고 다시 HR을 의심한다. HR이 기록이나 녹취를 내밀면 그 구성원은 또 다른 이슈를 꺼내든다. 자신의 앞선 말이 사실과 달랐던 것에 대해서는 한 마디도 없다. 그리고 마지막엔 꼭 이 말이 나온다. 회사 상황은 다 이해하는데, 표현이 존중스럽지 않았다고. 정작 HR에게 했던 말은 전혀 그게 아니었는데도.


결국 이 구조에서 대표는 의사결정자이면서 동시에 심판자가 된다. 본인이 지시한 일을 본인이 판단하는 셈이다. 그 과정이 공정하게 흘러가기를 기대하는 건 처음부터 무리다. 대표가 나쁜 사람이어서가 아니다. 자기 결정을 스스로 부정하는 건 누구에게도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니 자연스럽게 초점은 결정 자체가 아니라, 그 결정을 전달한 사람의 방식으로 옮겨간다. 그 자리에 항상 HR이 있다.



억울함보다 허탈함이었다

돌아보면 나도 비슷한 장면들이 여러 번 있었다. 한 회사에서의 권고사직 면담 기억을 떠올려보면, 그 구성원이 원하는 건 단 하나였다. 본인이 요구하는 조건을 회사가 수락하는 것. 그게 안 된다고 하자 분노했다. 말투를 부드럽게 하면 그거대로 더 약이 올랐다. 달래려 한다고 했고, 담담하게 말하면 차갑다고 했다. 결국 어떻게 해도 문제가 됐다. 조건이 수락되지 않는 한, 말투는 처음부터 핑계였던 거다. 그 면담을 준비하면서 몇 번이나 다시 읽었는지, 어떻게 하면 덜 상처가 될까 고민했는지, 그런 건 아무도 몰랐다. 며칠 후 그 구성원이 대표에게 직접 연락했고, 대표가 나를 불렀다. 분위기가 이상했다. 대표는 면담 과정에서 내가 너무 차갑게 대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했다. 당시 주고받은 메시지와 면담 메모를 보여줬다. 대표는 잠깐 보더니 말했다. 내용은 이해하는데, 말투 문제일 수 있다고.


그때 느꼈던 감각은 억울함보다 허탈함에 가까웠다. 뭘 어떻게 해도 안 되는 구조 안에 있었던 거구나, 라는. 그리고 그게 그 한 번으로 끝나지 않았다. 비슷한 상황이 반복될수록 점점 알게 됐다. 이건 특정 대표의 문제가 아니라는 걸. 대표 입장에서 HR에게 책임을 넘기는 건 구조적으로 가장 자연스러운 선택이다. 가깝고, 접근 가능하고, 결정권은 없으면서 실행은 했으니까. 어느 조직에서나 불편한 상황의 완충재가 필요하고, HR은 그 자리에 있기 좋은 포지션이다. 그걸 이해한다고 해서 덜 억울한 건 아니지만, 적어도 매번 충격으로 받아들이지 않게 됐다.


이제는 그게 디폴트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배신이라고 이름 붙이는 데 에너지를 쓰지 않는다. 대신 내 선을 어디에 둘지를 미리 생각해둔다. 이슈가 생겼을 때, 예상치 못한 상황이 왔을 때, 내가 어디까지는 감당하고 어디서부터는 내가 먼저 나를 지켜야 하는지를. 그 선을 미리 알고 있는 것과 모르는 것은, 막상 그 순간이 왔을 때 꽤 다르다.



그래도 이 일을 계속해야 한다면

감정을 정리하고 나면 결국 현실로 돌아온다. 회사의 의사결정을 수행해야 한다는 건 피할 수 없다. HR이라는 직무의 구조적 숙명이다. 그렇다면 지금 같은 시대에는 적어도 스스로를 지키는 최소한의 장치들을 만들어두어야 한다.


가장 먼저, 면담과 커뮤니케이션 과정은 기록으로 남기고 공식화해야 한다. 구두로만 오간 이야기는 나중에 존재하지 않은 것이 된다. 메모든, 메일이든, 메신저든 흔적을 남겨두는 습관이 필요하다. 이건 증거 수집이 아니라 내가 어떻게 했는지를 내가 기억하기 위한 것이기도 하다. 나중에 억울한 상황이 왔을 때 내 기억은 흐릿해도 기록은 남아있다.


의사결정 과정도 마찬가지다. 내가 단독으로 결정한 게 아님을 남겨두는 건 누군가를 협박하려는 게 아니라, 아무도 지켜주지 않는 상황에서 내 존재를 증명하기 위한 것이다. 특히 인력 조정이나 징계, 성과 조치처럼 민감한 사안일수록 의사결정 라인을 명확하게 남겨두는 게 맞다. 대표 지시인지, 합의된 결정인지, 내가 제안한 것인지를 구분해서 기록해두는 것만으로도 나중에 상황이 달라진다.


리스크가 높다고 느껴지는 상황에서는 혼자 감당하려 하지 않는 게 좋다. 면담 자리에 배석자를 두거나, 내용을 상위 보고로 남기거나, 법무나 외부 노무사와 사전에 검토하는 것. 번거롭고 일이 더 커지는 것처럼 느껴질 수 있지만, 혼자 다 안고 있다가 혼자 다 뒤집어쓰는 것보다는 낫다. HR이 혼자 처리할 수 있다는 걸 증명하려는 욕심이 오히려 혼자 당하는 구조를 만든다.


마지막으로, 회사에 대한 믿음과 대표에 대한 믿음은 유효기간이 있다는 걸 알아야 한다. 상황이 좋을 때는 다 유효하다. 그런데 상황이 나빠지는 순간 HR은 대표와 구성원 양쪽 모두에게 가장 쉽게 이용당하는 자리에 있다. 그 구조는 선의만으로는 바뀌지 않는다. 믿음을 갖되, 그 믿음이 흔들렸을 때 내가 어디에 서 있는지를 미리 알고 있어야 한다.




위로라고 하기엔 좀 건조하지만

직장 내 괴롭힘 신고를 받고, 대표에게도 외면당하고, 구성원에게는 가해자로 불리는 그 순간이 얼마나 황당하고 억울한지 안다. 내가 결정한 것도 아니었는데. 오히려 최대한 잘 해내려고 했는데. 그 현타는 이상한 감정이 아니다. 당연한 감정이다. 그걸 느끼지 못하는 HR이 오히려 더 걱정이다.


이 상황을 겪으면서 HR을 그만두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것도 전혀 이상하지 않다. 실제로 많은 동료들이 그렇게 인하우스를 떠난다. 그 선택을 탓할 생각은 없다. 버틸 이유보다 나갈 이유가 더 선명하게 보이는 순간은 분명히 온다. 그리고 그 순간에 나가는 것도 하나의 선택이다. 다만 그 과정에서, 아무것도 챙기지 못한 채로 소진되어 나가는 건 조금 아깝다. 나갈 때도 내 것은 챙기고 나가야 한다. 그 경험이, 그 기록이, 그 맥락이 다음 자리에서 나를 지키는 것들이 되기 때문이다.


이 일을 계속하기로 했다면, 그것도 하나의 선택이다. 쉬운 선택은 아니다. 다만 그 선택을 했다면 나를 소모품처럼 쓰지 않는 태도가 필요하다. 열심히 하는 것과 나를 갈아 넣는 것은 다르다. HR이 조직을 위해 존재하는 건 맞지만, 그게 HR 개인이 아무런 보호 없이 모든 걸 감당해야 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HR에게 박수 치는 사람은 별로 없다. 알아서 잘 해주길 바라는 사람만 있다. 그러니까 최소한 나만큼은 나를 챙겨야 한다. 그게 냉소가 아니라 이 일을 오래 하기 위한 태도라는 걸, 이제는 안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 그 자리에 혼자 앉아 있을 누군가에게, 그게 당신 잘못이 아니라는 말을 전하고 싶었다. 아무도 안 해줄 것 같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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