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드의 HR 커리어 성장 시리즈
[Edited by iid the HRer]
※ 내가 쓰는 글들은 아주 개인적인 경험에 근거한 지극히 개인적 소견이니 편하게 봐주면 좋겠다.
누군가가 자식이나 후배에게 HR을 추천할 것이냐고 묻는다면 나는 절대 비추비추한다고 할 것이다. 추천하지 않는다는 의미가 HR이 나쁘거나 별 볼 일 없는 직무라는 의미는 아니다. 단지 너무 힘들고 고된 직무이기 때문에 추천하지 않는다.
패기 뿜뿜 그리고 열정 넘치는 HR 주니어 후배분들이나 혹은 가끔 다른 직무를 하던 분들이 HR에 관심을 가지는 경우, 과연 그네들이 하고 싶은 것이 HR인지, 경영인지, 조직관리인지, 브랜딩인지 잘 한번 생각해보라 한다. HR을 담당한다는 의미는 내가 하고 싶은 것만 픽할 수 있다는 것이 아니다. 내가 하고 싶지 않은 영역도 해야만 한다.
* 수라도는 육도윤회에서 세 번째로 죄를 덜 지은 사람이 간다고 한다. 수라도에서는 귀신들마다 무기가 있고 또 그들은 계속 싸운다고 한다. 또한 죽은 귀신은 다시 환생해서 싸운다고 한다. 이는 북유럽 신화의 발할라와 비슷한 면이 있다. [위키백과]
(+추가) 지인분이 너무 좋은 설명을 추가해주셔서 덧붙인다.
나찰은 원래 악귀로서, 통력(通力)에 의해 사람을 매료시켜 잡아먹는 마귀로 알려져 악귀나찰(惡鬼羅刹)이라고 불렸으나, 나중에는 불교의 수호신이 되어 십이천(十二天)의 하나로 꼽혀 남서방(南西方)을 지킨다.
모든 인간은 본능적으로 착한 사람이 되고 싶어 한다. 정확히는 다른 이에게서 좋은 사람이라고 인정받고 싶어 한다. 실제 좋은 사람이라고 인정받기 위해서 어떤 선의나 도움을 주는 행위를 할 수도 있지만 그 정도의 최소한의 선에서 나쁜 사람이 되고 싶어 하지는 않는다. (물론 사람이 그렇다고 내 욕심이나 이익을 위해 나쁜 행동을 하지 않는다는 개념과는 다른 영역이다)
HR 직무의 특수성은 사람/조직을 대상으로 하지만 그 과정에서 정답이 없는 철학/가치의 영역을 건드려야 한다는 것이다. 철학/가치의 영역은 으레 쉽게 선과 악 혹은 옳고 그름으로 가기 쉽다. 신이 아닌 다음에야 절대적인 영역에서의 선을 규정할 수 없다. 그렇다 보니 보통은 개인의 입장이지만 조금 더 배운 분이라면 역사 혹은 대중에 의해 인정되는 입장을 내세워 악으로 비판하게 된다. 이 판단의 기준이 틀렸다는 것은 아니다. 단지 개인의 가치와 조직의 가치는 다를 수 있고 조직에서도 특히 영리 집단인 회사의 가치는 또 다를 수 있다는 것이다.
HR은 절대 자선사업이나 인류구원을 하는 직무가 아니다. 회사가 잘 운영되고 성장하기 위해 사람/조직의 영역에서 고민하고 기여를 하는 직무이다. 그렇다면 때에 따라서 개인의 가치와 다른 의사결정을 하는 경우들이 발생할 수 있다. 회사가 살기 위해서! 회사가 성장하기 위해서! (+ 혹은 대표의 방향성/전략이 변화해서!)
그러면 이제 HR담당자는 가치 혼돈을 겪기 시작한다.
아니 나도 열심히 일하는 직장인이고 돈 벌기 위해서인데
왜 나는 나쁜 사람이 되어야 하는가?
왜 나는 다른 구성원들에게 악의 축 수준의 비판을 받아야 하는가?
HR담당자가 아닌 개인으로서는 나도 똑같은 생각인데
그저 HR담당자로서 업무 영역에서 해야 할 수밖에 없는 건데
개인으로서의 나는 회사에서 인정되지 않거나 혹은 고려되지 않고 HR담당자로서만 욕먹기 쉽다.
(그 상황이 분명 필요했고 기업관점에서 옳은 판단이었다면) 분명 HR담당자로서는 일을 잘한 것이지만 대다수의 사람들이 바라는 나도 착한 사람이고 싶음은 얻기 힘들다. 앞에서 인간 근원적 욕망이라고 말한 것은 일을 잘함으로써 인정받는 평가/보상으로도 Human Being로서의 갈망을 다 만족시키기 힘들기 때문이다.
회사를 위해서 선택한 수라도가 점점 나를 일반적인 인간으로서의 행복과 멀어지게 만들 수 있다. 개인으로는 너무 자상하고 착한 사람도 하루 중 가장 오래 같이 일하는 동료들에게조차 인정받지 못할 수 있다. 결국 그 자아는 회사 영역에서는 인정받지 못하고 개인의 영역에서만 만족되어야 한다.
1번과 이어지는 듯 하지만 2번은 좀 더 HR영역의 성과와 관련있다. HR의 업무들은 명확하게 업무의 매커니즘이 존재하지 않는다. 그 이유는 사람/조직을 대상으로 하기 때문이다. 정말 내가 죽을 정도로 노력했지만 외부 어떤 요인하나로 그 노력이 사라질 수도 있고 반대의 경우도 발생할 수 있다. 그러다 보면 위로는 대표를 포함한 경영진 나머지로는 함께 일하는 구성원들은 HR에 대해 고생은 한다고 하더라도 제대로 인정하기는 어렵다. 고생했다 덕분이다라는 피드백이 구체성이 없다면 처음에는 동기부여가 되지만 나중에는 형식적으로 느끼기 쉽다.
사실 이 부분은 그런 피드백을 한 이들의 잘못이 아니다. HR직무의 특성에 가깝다. 명확하게 비즈니스 매출로 나오는 영업과 같이 숫자로 정량화도 어렵고 뭔가 서비스 기능들이 점점 다양화해지는 개발 영역과도 다르다. 과거 내가 HR로서 제일 큰 만족이나 기여는 회사가 망하지 않고 성장하게 하는 것이라고 했지만 이 또한 사실 너무 매크로하고 또 너무 추상적이다. 이 정도 만족의 호흡을 견디고 받아들이는 것도 사실 쉽지 않다.
내가 좋은 사람이라고 인정도 못받고 열심히 일을 해도 성과가 명확하게 반영되거나 나타나지 않는데 도데체 나는 어떤 것으로 보람을 느끼며 계속 일을 할 수 있을까?
이 질문은 사실 정말 어려운 질문이다. 후배들이 나에게 이런 질문을 물어보면 사실 난 답을 해주기 어렵다고 한다. 왜냐하면 저 질문의 대응법은 스스로 찾을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내 경험상 정말 완벽하게 긍정적으로 대응법을 찾는 이는 아주 드물며 대부분 연차가 쌓이고 시니어가 될 수록 소진되고 매말라가며 지쳐간다. 그리고 단순히 직업으로서 대응하게 되면 구성원들은 HR을 직업으로서 바라보지 않기 때문에어느순간 그 자체가 또 비판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참 이래도 어렵고 저래도 어려운 상황이다.
누군가는 HR은 그래도 권력 혹은 실세기 때문에 그 부분으로 만족한다 할 수 도 있다. 분명 대기업이나 기성 기업에서는 그 말도 맞다. 하지만 그런 기성기업에서조차도 그것이 주는 달콤함이 큰 만큼 어느순간 그 부분에서 멀어지게 될 때의 좌절감은 매우 클 수 있다. 그것은 진정한 나의 보람이나 만족이 아닐 수 있다. 스타트업은 그냥 그런거 전혀 없다. 물론 일부 인사권과 관련된 권한은 있을 수 있지만 그것은 엄연히 회사가 성장하고 잘되기 위해서만 쓰여야 한다. 내가 팀원들에게 자주하는 말 중에 하나는 '내가 가지는 권한의 크기는 내가 하는 일의 범위와 영역에 비례한다'이다. 그냥 고생한만큼 그만큼 신뢰와 권한이 커지는 것이다. 선 권한이 아니고 무조건 후 권한이다.
개인의 성격/성향도 HR 커리어에 많은 영향을 줄 수 있다. 그것이 HR이라는 직무가 또 어려운 이유이다.
남을 너무 의식해도 안되며 너무 의식하지 않아도 안된다.
너무 스스로에 갇혀서도 안되며 너무 다른 이에게 의지해서도 안된다.
너무 회사입장만 봐도 안되며 너무 직원입장만 봐도 안된다.
너무 숫자만 봐도 안되며 너무 가치만 봐도 안된다.
너무 설득/타협만 해도 안되며 너무 강압적이기만 해도 안된다.
사실 이런 밸런싱을 유지한다는 것은 거의 정신병 걸릴 수준일수도 있다. 참....HR은 수라도의 길같다. 이렇게 해도 인정받기 어렵다.
여담으로 이드는 어떤 것으로 보람을 찾냐고 다시 묻는다면 이정도로 요.즘.은 답한다. (언제 또 바뀔지 모른다 나조차도)
내가 재직중인 회사가 망하지 않고 그래도 버틴다. (단순 HR영역외 비즈니스 영역까지 포함)
구성원들에게는 욕먹을지언정 대표/리더들에겐 일잘한다로 인정받는다.
구성원들 입장에선 불만인 액션을 하더라도 결국 끝까지 완수해서 기업 입장의 성과를 만들어낸다.
과거 같이 일했던 (내가 생각할 때) 일잘하는 동료들에게서 여전히 같이 일하고 싶다고 제안을 받는다.
착하고 좋은지는 모르지만 일 잘하는 사람이고 믿을 수 있다.
듣고 싶은 이야기나 아름다운 이야기를 하지는 않지만 의미있는 이야기라고 인정받는다.
회사에서 발생하는 이슈상황들에 여러 경험들로 인해 당황하지 않고 대응한다.
난 개인적으로 내가 변태라고 생각한다. 어쩌면 내가 걸어온 길과 그 과정에서 했던 수많은 의사결정/선택들 그리고 앞으로 걸어갈 길을 생각하면 난 점점 더 스스로 인간에서 멀어지고 있지 않나 싶다. 그럼에도 이 길이 나는 좋다. 나는 수라도를 즐기며 그 과정에서 스스로의 인간성을 찾고 또 만족하고 있기 때문이다. (절대 괴롭히는 것을 좋아한다 이런 말 아니다 !!)
그냥 언젠가 내가 죽기 직전 내 인생을 반추해봤을 때 수많은 사람들에게 욕도 먹고 인정도 못받았더라도 과거 욕했던 누군가가 그 시점에서는 아 그래도 그 분 일잘했다 그 한마디면 난 잘살았다 생각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