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id] 나는 어떻게 다 이해하고 포용하는가?

이드의 멘탈 가이드 – 현타가 올때 꺼내보는 실전 매뉴얼

by iid 이드

‘이드의 멘탈 가이드’는 현타가 찾아오는 순간마다 꺼내보며, 감정에 휘둘리기보다 지금 이 상황을 어떻게 해석하고 어떻게 다시 움직일지 정리할 수 있도록 돕는 실전 매뉴얼입니다.




최근 나를 알게 된 분들 중에는, 지금 내가 보여주는 내려놓음의 상태를 의외로 받아들이는 경우가 종종 있다.
자기들은 열받는 일도 많고, 도저히 말이 안 되는 상황이 계속 반복돼서 너무 답답한데, 나는 어떻게 그렇게 허허 웃으면서 넘길 수 있느냐고 묻는다.


사실 과거의 나는 정말 주장이 날선 사람이었고, 분명한 파이터였다. 지금의 이 모습이 가능해질 거라고는 나 스스로도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다만 그 기운이 완전히 사라졌다기보다는, 내가 진짜 중요하게 생각하는 본질에 훨씬 더 집중하게 되었고, 그 외의 부가적인 것들에는 의도적으로 힘을 많이 빼게 된 쪽에 가깝다.


지금 내가 생각하는 그 본질은 단 하나, ‘존중’이다.


이제는 내 말이 맞느냐, 틀리느냐가 더 이상 중요하지 않다. 사람이란 결국 자신이 직접 경험해보지 않은 이슈나 세계관에 대해서는 수용력이 매우 떨어지고, 그것을 상식으로 인식하지도 않기 때문이다. 내가 말하는 존중은 ‘내 영역에 대한 존중’이다.


현장에서 보면, 많은 대표들이 이 ‘영역에 대한 존중’이라는 개념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한다. 어떻게, 그리고 어디까지가 각자의 영역인지에 대한 이해 없이, 타이틀만 주면 된다고 생각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하지만 영역에 대한 존중에는 훨씬 많은 요소들이 포함된다. 어떤 대표들은 명백히 영역을 침범하고도 “대표로서 할 수 있는 거 아니냐”, “도와주려고 한 거다” 같은 말을 한다. 그래, 몰라서 하는 거라면 죄는 아닐 수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것을 이해해야 할 의무까지 생기는 건 아니다.


이런 이유로 내가 어느 순간 이직을 결심하게 되는 경우—다른 기회가 열릴 때—는, 열받아서 싸우기보다는 오히려 인정과 포기에 가깝다. 대표나 회사에 충분한 시간을 주었고, 기다릴 만큼 기다렸지만, 이건 더 이상 될 수 없겠다는 판단에 이른 결과다. 그래서인지 대표들은 늘 놀란다. 나는 티를 거의 내지 않는다. 분명히 잘 지낸다고 생각했을 텐데, 어느 날 갑자기 퇴사 의사를 밝히기 때문이다. 그리고 퇴사 전까지도 여전히 매우 열심히 일한다. 이미 감정적으로는 정리했고, 인정하고 포기한 상태이기 때문이다. 과거 어떤 회사에서는 퇴사 당일까지 인수인계를 하느라 내가 야근까지 했고, 대표는 ‘오늘이 퇴사일이 아닌가 보다’라고 착각한 채 먼저 퇴근해 버려서, 나에게 작별 인사조차 하지 못한 일도 있었다.


사실 이런 스타일이 더 무섭다는 걸 나 역시 알고 있다. 하지만 연애와 마찬가지로, 마음이 떠난 상태에서는 어쩔 수 없는 부분도 있다. 그 상황에 이르지 않기 위해 나는 수많은 경고와 조언을 한다. 다만 예전처럼 쌍욕을 하거나 흥분해서 상대를 불편하게 만들 수 있는 단어를 쓰지 않을 뿐, 할 말은 다 한다. 최대한 친절하게, 그리고 반복해서 이야기한다. 그 말을 제대로 이해하고 받아들이는지는 결국 그 대표의 역량이다. 나는 대표의 많은 부분을 존중해주지만, 거기까지 대신 감당해주지는 않는다. 그 선을 넘지 않는 것이 내가 생각하는 마지막 존중이기 때문이다.




[부록] 과거 나의 분노 멘트 시리즈


※ 종종 지인이나 후배들과 이야기를 하다 보면, 내가 동일한 분노나 울분이 없거나, 쉽게 극복한 사람처럼 보인다고들 말한다. 그래서 나도 다르지 않았다는 걸 보여주기 위해, 과거 실제로 내가 했던 말들을 그대로 공유해본다.


• 유니콘 테크 회사가 되기 위해 나는 도와주는 사람이지 그것은 결국 대표로 인해 만들어집니다.
• 이드가 조직장 역할을 하는 것은 해당 조직의 스태핑과 업무 관리에 대해 권한을 가지는 것과 같습니다. 결과를 바탕으로 얘기해야지 왜 뽑는 인원에 대해 직접 검증하려고 하고 업무관리에 대해서도 투트랙으로 보고 받으려고 하나요
• 대표 개인의 성향을 왜 회사 정책에 투영하려고 하나요. 어느 정도 수준이면 이해할 건데 이건 자기도 못 지킬 내로남불이잖아요
• 하고 싶은 것이 많은 건 이해합니다. 하지만 적어도 사람 뽑는 건 조심해야합니다. 이 길이 아니네하면 결국 그 사람들은 HR에서 정리해야 하고 이게 결국 회사 브랜딩에 영향을 줍니다.
• HR에 입대고 싶은 부분들이 많은 건 이해합니다. 멋져보이는 영역도 많구요. 근데 그 결과를 책임까지 질 것이 아니면 적당히 하셔야 합니다. 결국 그로 인해 엉망이 되는 결과가 나오면 그때는 책임회피 할 거 아닌가요. 내가 역할에 대한 책임감으로 수습은 할 건데 그 후폭풍은 회사가 감당해야 합니다.
• 아무리 내가 능력이 뛰어나고 다 구현해 준다 해도 똥을 금으로 만들 순 없습니다. 상식적인 정도가 필요합니다.
• HR이 회사의 서포터 역할을 하는건 이해합니다. 하지만 적어도 존중은 있어야 합니다. ㅈㅂ 취급하는 것은 저에 대한 존중 또한 없다고 이해합니다.
• HR 구성원 퍼포먼스 관리를 왜 조직장인 내가 아니고 당신이 하나요. 그럴거면 나는 필요없는 존재가 아닌가요?
• Risk에 대해 적어도 인지는 하고 있어야 합니다. 결국 가이드대로 안하고 사건 터지고 당연한 듯이 나에게 해결해 달라 하면 해결은 하지만 그 피해는 안고 가야 합니다.
• 회사 브랜딩을 그렇게 중요하게 생각하면 하나하나의 의사결정들부터 고민해야 합니다. 그것을 바꾸지 않고 브랜딩만 멋지게 만들어 달라하면 나도 그건 마법이 필요합니다.
• 노동시장에는 다 그 가치에 맞게 가격이 형성되어 있습니다. 근데 그 가치는 필요한데 가격은 못주겠다고 한다면 그냥 안 뽑는게 맞습니다. 나도 무에서 유를 만들 수는 없습니다.
• 눈높이를 낮추라고는 안 하지만 적어도 메타인지는 필요합니다. 그리고 되고 싶은 워나비에 대해 제대로 인식하고 나머지 요소들도 파악해야 합니다. 좋은 면 하나만 선택적으로 뽑아서 적용 불가합니다.
• 재무실적은 사업과 재무에서 맞추는 것이지 HR에서 매번 인력 효율화로 맞춰줄 수 없습니다.
• HR은 실험의 영역이 아닙니다. 그 실리콘밸리에서도 적어도 HR과 재무는 최소 10년 이상의 큰 회사에서 경험을 가진 베테랑들로 채웁니다. 거긴 상식의 영역이고 규칙의 영역입니다.
• 근로기준법 지키기 싫은 점 충분히 이해합니다. 근데 물론 불법으로 이슈생기는 것도 생기는건데 그에 대한 소문은 금방 퍼져나가서 채용 망가집니다.
• 좋은 사람 뽑고 싶으면 회사부터 좋은 회사, 그리고 대표부터 좋은 대표가 되어야 합니다.
• 채용/ 조직문화/ 회사 브랜딩/ 인터널 커뮤니케이션 등등 관여하고 싶고 맘대로 하고 싶을텐데 그로인해 생기는 이슈는 아무도 수습못합니다.
• 뭐 코파운더나 초기 멤버들에 대한 애정 집착 다 이해합니다. 하지만 그것은 고정상수이고 나머지를 정상화해 달라 하는 것은 결국 비정상을 형성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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