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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성진 Jul 10. 2019

[도의와실용①]일본, 통상 보복 "무역 전쟁 비화하나"

(지난 8일 작성한 글입니다) 일본 정부, 반도체 핵심 소재 3개 품목의 수출 제한… 반도체 사업에 타격 불가피


◆ '포괄허가' 폐지… 반도체 3개 소재 계약 건마다 허가 필요

일본 정부가 지난 1일 반도체 핵심 소재의 한국 수출을 제한하는 방안을 발표했습니다. 기존의 '포괄허가' 조치를 폐지한 것인데, '포괄허가'란 한번 포괄적인 허가를 받으면 3년간 개별 품목에 대해 허가를 받지 않아도 되는 일종의 우대 조치를 말합니다. 이제 반도체·디스플레이를 생산하는 데 핵심 소재인 3개 품목(불화폴리이미드·포토레지스트·고순도불화수소 '에칭가스')을 수입할 때 계약 건마다 경제산업성의 허가를 받아야 합니다. 

경제산업성은 제품의 사용 목적이 적절한지, 평화·안전을 위협할 우려가 없는지 여부를 평가합니다. 그 과정에 통산 90일이 소요된다고 하는데, 사실상 수출에 제동을 걸어 우리 반도체 산업을 위축시키려는 의도로 보고 있습니다. 

이와 같은 수출 규제가 가능한 것은 일본이 안보에 위협이 될 항목은 따로 금수(禁輸) 항목으로 지정하지 않아도 수출을 제한할 수 있도록 제도를 마련했기 때문입니다. 이를 '캐치올(Catch-All)'라 부릅니다. '다 잡아들이는 조치'인 거죠.

한국이 지금까지 '캐치올'에 방해받지 않은 것은 일본이 한국을 '화이트국가'(백색국가)로 지정했기 때문입니다. 일본은 우리나라를 포함해 미국과 독일, 영국 등 27개국을 외국환관리법상 우대제도인 화이트리스트 국가로 지정해 관리하고 있습니다. 화이트리스트 국가에 대해선 전략물자 등을 포함한 중요 물품의 허가 신청을 면제해 줬습니다. 

◆ 2차보복, '화이트리스트'에서 제외… 수출 제한 품목 확대하기 위한 포석

그런데 일본이 8월 내로 '화이트리스트'서 한국을 아예 제외할 것이라 예고해서 우려가 커지고 있습니다. 화이트리스트에서 제외하면 집적회로 등 일본 국가안보에 관련한 전략물자를 우리나라에 수출할 때 일본 정부 승인을 매번 거쳐야 합니다. 여기서 전략물자란 자국 국가안보, 외교정책, 국내 수급관리를 위해 수출입·공급·소비 등을 통제할 수 있는 품목·기술로 일본 정부가 '국가 안보'를 이유로 수출을 차단하는 것도 가능해 집니다. 사실상 식료품과 목재를 제외한 모든 수출 품목에 허가를 받아야 할 수도 있습니다. 

일본 정부는 24일까지 공청회를 거쳐 다음달 중 정령(政令·정부 훈령) 개정 방식으로 화이트 국가 제외 조치를 실시할 방침입니다. 그러나 정부 차원에서 수출 제한 조치를 언급한 만큼 정부 의지에 따라 업계 의겸 수렴 절차가 요식행위에 그칠 우려도 큽니다. 실제 일본 경제산업성은 1일 웹사이트에 우리나라에 대한 수출 제한 조치를 설명하며 우리 정부와 '신뢰관계 손상'을 언급했습니다. 국가안보와 관계된 물품 수출까지 제한한 것은 기본적인 경제협력관계의 파탄을 염두에 둔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전략물자는 무역 마찰 중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이슈”라면서 “국가안보에 영향을 주는 부분으로 두 나라 간에 신뢰와 협력관계가 있으면 문제가 되지 않지만 신뢰와 협력관계와 없으면 문제 소지가 발생한다”고 말했습니다. '신뢰관계 손상'을 언급한 것이 화이트리스트 제외 조치를 관철시키기 위한 포석이란 거지요. 성 교수는 “우리나라 입장에서는 WTO에 제소하는 것이 급선무지만 WTO에서도 단기간에 결론을 내기는 힘들다”면서 “일본이 신뢰관계까지 언급한 만큼 경제협력 관계를 회복하는 방안을 종합적으로 강구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조치가 실현되면 한번 지정된 화이트국가가 제외되는 최초 사례가 됩니다. 

◆ 정부 고위 관계자, "보복 카드 100개 있다" … 긴 시간 동안 효과·위법성 검토한 듯

지난 3일 중앙일보 보도에 따르면 외교부와 산업통상자원부를 두루 거친 고위 관료가 지난해 11월 두 부처에 전화를 걸어 "강제징용 배상 판결 이후 일본 정부가 한국에 대한 경제보복에 나설 가능성이 있다"고 경고했습니다. 구 부처로부터 받은 대답은 "알았다"였습니다.

해당 관료는 "일본 정부가 준비한 100여 개 보복 카드 중 이제 겨우 한 개가 나온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는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민간·정부 부문 지한(知韓)파 인사가 뀌띔해 준 것을 전달했다"면서 "정부가 컨틴전시 플랜(contingency plan·비상계획)을 마련해야 한다고 조언했다"고 말했습니다. 우리 측은 문재인 대통령이 10일 30대 기업 총수들과 만난 자리에서 처음으로 관련 메세지를 전달할 계획인데, 정부 대응 수위에 따라 일본 정부가 더 강력한 경제 보복에 나설 수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반도체 소재의 수출 제한부터 '화이트리스트' 제외까지 일본의 단계적인 '경제 보복'은 치밀한 계획에 따른 것입니다. 중앙일보가 추가 취재하며 지한파 경제학자인 후카가와 유키코 와세다대 정치경제학부 교수를 인터뷰한 결과 그는 "일본의 복수 정부부처가 공동으로 전략을 짜왔다"며 "보복 조치를 취했을 때 한국 경제에 미치는 효과가 큰 카드를 장기간 검토했다고 알고 있다"고 말했다. 후가카와 교수는 이어 "중국은 사드 체계에 대해 국제법 위반 소지가 있는 경제적 보복을 했지만, 일본은 법적 문제가 없는 '그레이 존'을 검토한 후 카드를 꺼내들었다"고 분석했다.

일본 정부가 전방위적으로 수출 규제를 검토할 때 우리 정부는 강경화 외교부 장관이 지난달 28일 고노다로 외무상을, 지난달 19일엔 조세영 1차관이 아키바 다케오 외무성 사무차관을 면담하는 가운데서도 아무 낌새를 느끼지 못했습니다. 이에 신각수 전 주일대사는 "일본 언론에 따르면 일본 정부는 한국에 대해 190여 개 이상의 조치를 검토하고 있다"면서 "사전에 차분히 대응했어야 했는데 이런 사태에까지 이르게 된 게 안타깝다"고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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