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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금코치 Aug 10. 2022

놀이터 CCTV는 왜 자꾸 보고 싶을까?

감정 & 관계

9살 딸이 크면서 나의 모습이 보였다.

남편의 모습을 많이 닮았다고 생각했던 딸이 관계 맺기에서 어릴 적 내 모습이 보이는 것이다.     

 

새로운 친구들에게 먼저 다가가지 못한다.

친해진 후에는 서운하고 억울한 상황에서도 말하지 못하는 듯했다.      

그럴 때 ‘ 나는 괜찮아 ’라고 위로하거나 다른 재미있는 것을 찾으며 상황을 모면하려고 했다.  

문제는 그 모습을 보는 것이 내가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잘 자라서 이렇게 어른이 되었지만 딸은 그럼에도 불구하고를 없애주고 싶었다.     

 

놀이터 CCTV는 왜 자꾸 보고 싶을까?

친구들 사이에서 놀고 있는 딸의 모습을 한참을 본다. 그러다 기분이 묘하게 나빠지기 시작한다.

놀다 들어온 딸에게 질문공세를 퍼붓는다. 딸에게서 “그네 때문에 속상했었다” 는 말을 듣고 싶었다.     

  

" 친구들만 오래 타고 있는 그네 앞에서 무작정 순서를 기다리면서도 친구들과 대화하는 게 즐거웠어.
원래 그네는 별로 타고 싶지 않았었어.
중간에 혼자 다른 데로 간 건 갑자기 다른 재밌는 게 생각나서 다녀왔을 뿐이야. 기분 나빠서 그런 건 아니고.
아, 갑자기 껌을 한통 더 사고 싶어서 편의점에 가려고 했었어. "


어릴 적 내 모습이 보였다. 그래서 너무 속상했다.

속상한 주체가 그때의 나인지 지금의 딸인지 상관없이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육아서에서는 개입하지 말고, 자녀가 괜찮다고 하면 지켜봐 주며 응원할 것을 권장하겠지만

마음속에서 육아서는 덮어버렸다. 눈을 질끈 감았다. 상황을 개선시켜야 한다고 생각했다.

     

영문도 모른 채 엄마의 전화로 집으로 소환된(?) 딸의 튀어나온 입.

교육이 필요한 순간이라고 믿었다.      


“ 아까 그 상황에서 네 기분은 어땠어? ”  

“ 속상함과 불공평함을 표현한 적이 있어? ”      


처음에는 전혀 괜찮았다는 딸을 추궁한 끝에


“ 엄마가 한 말이 맞아. ”       


즉, 기분이 나빴다는 뜻이다.  

   

“ 그런데 그때는 나도 내 마음을 잘 모르겠어. ”


그래. 그게 정답이구나. 아직 그건 어려울 테지.     

  

“ 근데 A 한테 왜 너만 오래 타는 거냐고 따지긴 했어. A는 아무 대답도 안 했지만. ”     


딸. 넌 그래도 나보다 한수 위구나.      


“ 계속 너네끼리만 그네 탈 거면 나는 집에 오래. 엄마가. ”라고 말하니까 친구가 그네에서 내렸다고 한다.

( 사실 나는 그렇게 말하진 않았다. 할 말이 있으니 집으로 오라고 했다. ^^: )

      

CCTV는 음성은 들리지 않으니 딸이 그네 앞에서 멀뚱멀뚱 서있는 모습만 보고 화가 난 나는 전화를 해서 딸에게 집에 오라고 한 것이다. 딸이 집에 오니 모두 집에 간 것 같았다. 이런 식으로는 같이 놀 수 없음을 어른의 권력으로라도 알려주고 싶었다. 어른스럽지 못한 행동이라는 것을 너무나 잘 안다. 자책할 것을 알면서도 그땐 그렇게 하고 싶었다.

 

집에 돌아온 딸과 마트에 갔다. 위로해주고 싶었다. 친구가 속상하게 해도 너에겐 가족이 있다.

오늘 너를 행복하게 해 주고 말리라. 모든 걸 용인하겠다. 오늘만큼은.

유치한 복수 같은 것이었다. 어릴 적 나에 대한 위로 같은 것이었다.    

  

그리고 기분이 한결 나아져 집에 돌아온 딸에게 교육을 시작했다.

그때 상황에 이야기하고, 딸이 느꼈을 감정을 나누고, 앞으로는 어떻게 할지 상황에 따른 대화법을 연습했다.

다시 한번 육아서는 던지고 또 내 마음대로 하고 있는 나를 보았다.


마음대로 하고 싶었다. 딸의 마음을 풀어주는 건지 내 기분을 푸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나와 같은 어린 시절을 보내지 않도록 해주고 싶었다.      

자기의 불편한 감정을 잘 표현할 수 있게 되면, 자신감과 자기 확신 등 또 다른 세계가 펼쳐진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었다.


나는 마흔에 깨우치려고 하는 것을 딸은 9살에 깨우치게 하고 싶었다.

그렇게 된다면 인생이 더 재미있어질 거라고 알려주고 싶었다.

나의 인생도 막 재미있어지려 하는 타이밍이니까.     



' 딸아.

네가 너의 감정을 그 순간 알아차리게 해주고 싶어.

널 그렇게 키우고 싶어.
감정표현은 매우 중요하다는 걸 엄마도 지금 배우고 있거든.
타인이 존중해주지 않는 순간도 많지만 일단 나는 내 감정을 존중해주어야 해.
감정은 항상 옳아.

그것을 어떻게 다루고 해소할지 자기만의 방법도 알고 있어야 해.
그리고 다음에 그 상황이 오면 그때는 어떻게 할지 계획도 세우는 게 필요해.
앞으로 만날 많은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너만의 관계 맺는 방법을 체득할 수
 있도록 엄마가 돕고 응원할게. '  


- 오늘도 너와 같이 성장하고 있는 엄마가 -


  

- 딸이 그린 귀여운 그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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