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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금코치 Aug 12. 2022

수다가 재밌어지자 인생이 재밌어졌다.

감정 & 관계


나는 요즘 말하는 게 재미있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수다가 참 재미있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들 모임에서도 50%는 내가 말하는 것 같다.

TV나 영화를 볼 때에도 크게 웃지는 않는데, 진실로 신나게 웃을 수 있는 것도 그때이다.      


친한 사람들 사이에서 말하고 있는 순간이 신나고 즐겁다.

하고 싶은 말이 계속 떠오른다. 모임에 가기 전에 ' 오늘은 좀 자중해야지. ' 생각해봐도 소용없다.

' 그 말은 하지 말걸 ' 후회한 적도 있지만 ' 그때 그 말한 건 정말 내가 생각해도 괜찮은 멘트였어. '라고 생각하기도 한다.

반성도 하지만 자화자찬도 하는 것이다.

   

수다만 재미있는 게 아니다.

고민 상담으로 전화 오는 지인과 가족들과의 통화에서도 신나게 답변해준다.

평소에 했던 생각인지, 지금 떠오르는 건지, TV나 책에서 본 건지 정확하진 않지만 고민하는 내용들에 거침없이 조언해준다.

다만 완전한 책임은 지는 게 두려워서 ' 다만 이건 내 의견일 뿐이야 '라고 꼭 말하곤 한다.    

  

그런데 말해놓고 ' 앗. 이건 실수다. '라고 느낀 적도 있다.

전화로 친구가 일상의 푸념들을 늘어놓자 과하게 조언해버린 것이다.

그냥 궁금해서 물어본 것일 수도 있는데.

나는 (주말 아침 혼자 산책하러 나와서 기분이 너무 좋았는지) 과하게, 그리고 열정적으로 조언하고 말았다.

거의 혼을 내다시피 했다. 그녀가 요청한 것도 아니었는데 말이다.

전화를 끊고 정말 찜찜했다.

그리고 후회했다.

그래서 사과의 메시지와 함께 작은 선물을 보냈다.

그래도 지금도 여전히 그때가 미안하다.

다음에 얼굴 볼 일이 있을 때 다시금 언급해 사과하고 싶다.     


사실 내가 수다를 좋아하게 된 건 결혼하고 나서부터이다.

그전까지는 내 삶의 목표를 이루는데 집중했고, 회사에서 성과를 내는 것이 내 목표였다.

내 삶의 목표 중에는 결혼도 있었기에 한참 소개팅도 열심히 했다.   

   

' 시간이 잠깐 멈췄으면 좋겠다.

밥을 안 먹고, 잠을 안자도 건강에 무리가 없는 알약이 있다면 참 좋겠다.'  

라고 매일 생각했다.     

 

충분히 고민하고 노력할 시간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해야 할 것과 결정해야 할 것은 너무 많은데 시계는 속도 모르고 째깍째깍 정확하게 움직였다.

그래서 일상 속의 시간을 한 순간도 대강 흘려버리고 싶지 않았다.     


오로지 내 관심은 나였다.

TV도 영화도 내 목표에 부합하는 것들만 보곤 했다.

회사에서는 내가 해야 할 일과 내가 하고 싶은 진로공부를 병행하고 있었기에 점심시간에도 혼자 후딱 먹고 싶었다.

특히 점심시간에 나누는 수다는 정말 피하고 싶었다.

나는 열심히 최선을 다해 달려야 행복한데, 다른 사람들은 오늘의 즐거움에도 행복해하는 것 같았고,

' 어디서 저런 여유가 나오는 걸까? ' 공감이 안 되기도 했다.

회식은 사실 시간이 아깝다고 생각한 적도 있었다.

특히 TV나 유튜브 등에 관심이 없었기에 이야기 나눌 주제가 없었다.

빨리 밥 먹고 올라가서 컴퓨터를 검색하거나 책을 읽거나 내 미래를 계획하고 싶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정말 거만하고 재수 없어 보였을 것 같다.

그리고 ' 저 사람은 무슨 재미로 사나 '라고 생각했을 것 같다.      


그러나 나는 심심하거나 지루할 틈이 없었다.

몸도 정말 바쁘게 움직였지만 내 생각들도 정말 많아서 머리도 바쁘게 움직이는 중이었기 때문이다.

진로, 결혼, 관계, 가족 등.....

어느 것 하나도 놓치고 싶지 않아서 최선을 다해 나만의 길과 방법을 모색하려고 애쓰고 있었다.


그때는 말하는 게 재미없었다.

정확히는 수다가 시간 낭비 같았다.

그러는 내가 이상하다고 생각한 적도 많았다.

지금 생각해보니 일상의 가십과 사회 돌아가는 것에는 관심이 없었고, 내 삶이 움직이는 방향에만 관심이 있었다.      

내가 지금 고민하는 것들에 대해 함께 이야기 나눠줄 사람이 필요했다.

더 깊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사람이 필요했다.

다행히 내 이야기를 들어주고 그 물음에 힌트를 줄 수 있을 것 같은 사람들이  2명은 있었다.

그들과의 1:1 대화만 즐거웠다. 그러던 내가 결혼하고 바뀌었다.     




영화, 드라마를 좋아하는 남편을 따라 함께 보기 시작했다.

사회이슈, 특히 정치나 경제에 관심이 많은 남편을 따라 뉴스에도 관심을 갖게 되었다.      

나에게는 결혼이 주는 안정감이 정말 달콤해서 이제껏 해본 적 없는 생각을 하게 했다.      

' 아, 이렇게 평범한 소시민으로 행복하게 살다 죽어도 괜찮겠다. '

' 내가 별스럽게 노력하지 않아도 열심히 살지 않아도 괜찮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처음 느껴보는 기분이었다.  

조급함과 불안감이 사라졌다.

결혼은 확실히 인생의 전환점이었고 그 뒤로 마음의 여유라는 것이 생긴 것이 분명하다.

그러고 나서 사람들과의 관계에 더 관심이 생겼고 일상의 수다도 재밌어졌다.    

 

세상에 대한 관심이 생기자 사람들과의 대화에서도 알아듣기가 수월했다.

같이 재밌어하고 같이 공감할 수 있었다.

TV나 영화, 사회 이슈에 대해 모르는 것이 별로 없게 되었다.

남편과 내 의견을 융합한 결론을 가지고 대화에 참여해보기도 했다.

정말 색다른 기분이었다.      

바쁘다는 핑계로 컵라면이나 김밥으로 점심을 때우길 선호했었는데, 결혼 뒤에는 달라졌다.

함께 맛있는 점심메뉴를 찾아다니며 일상의 수다를 떠는 게 재미있었다.

더 이상 시간 낭비가 아닌 삶의 목적이자 행복이라 느껴졌다.


결혼하고 나서 친구들 모임도 더 즐거워졌다.

나를 비롯해 모두 결혼하고 아이를 낳고나니 더 솔직해졌다.

대학시절의 추억과 현재의 고민과 미래의 희망을 함께 나누며 풍성한 대화가 가능해졌다.    

 



수다의 참 맛을 알게 된 지 9년이 되어간다.

지금은 더더욱 수다 환영이다.

아이들과 있는 시간이 많고 다른 사회생활을 아직 못하고 있다 보니 말 통하는 사람을 만나면 신이 난다.

계속 대화하고 싶다.

주제도 끊임없이 이어갈 수 있다.

길에서 만난 사람들과도 서슴없이 이야기할 수 있다.

어떻게 말하면 더 쉽게, 빨리, 진실한 관계를 맺을 수 있을지 느낌적인 느낌(?)도 있다.

수다는 곧 관계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할머니가 되어, 지하철에서 초면인 할머니들과 한 시간씩 대화할 수 있는 관계의 신이 되는 것일까?

그것도 참 멋진 일이다.

나이가 들면서 관계의 신이 된다는 것은.   


수다가 재밌어 지자 인생이 재밌어졌다.

세상은 뭉게뭉게 구름 속에 가려져 저 멀리 왕궁에 닿을 듯 말 듯하는 것 같았는데

그래서 나를 계속 채찍질하며 열심히 살았는데, 이제는 옆을 보니 손에 닿는 게 있다.

가정도 있고, 아이도 있고, 내 가치관도 있고, 고마운 사람들도 있다.

그리고 여전히 꿈도 있다.

다만 이제는 미래만 보는 게 아니라 현실을 살면서 미래를 본다.

그리고 차근차근 이루어 가려고 한다.     

나는 관계 안에서 에너지와 행복을 얻는 사람이다.

열심히 삶의 의미를 찾고 목표를 이루기 위해 몸과 마음 바쳐 투쟁(?) 했던 젊은 나를 칭찬한다.

그때의 내가 있어 지금의 내가 있음을 확신하기 때문이다.            


- 만나서 수다. 전화 수다.  모두 환영합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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