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답은 없지만, 때에 맞는 말이 정답이라고 해두자.
마음이 유리 같던 친구는 어린 나를 찾아와 울면서 이렇게 이야기하곤 했다.
"나한테 괜찮다고 해줘."
그럼 나는 세상 모든 걸 품어버릴 듯한 따뜻한 마음을 한껏 품고서 온 마음 다해서 따뜻하게 이야기해 줬다.
"괜찮아. 괜찮아 우리 정말 괜찮아."
친구가 힘들어할 때마다, 마음 상하는 일이 있을 때마다 내가 괜찮다고 말해줬던 순간들이 위로로 학습이 되었던 걸까. 나중에는 어떤 마음 때문에 힘들었는지도 설명하지 않고, 괜찮다고 해달라고 했고, 내 목소리를 들으면 안심이 된다고 했다.
따뜻한 마음으로 세상을 품어버릴 것 같은 어린 내가. 세상의 풍파(?)를 지내오면서 마음이 거칠고 단단해졌을 무렵에... (그때로부터 벌써 20년이 훌쩍 더 지나...) 그때의 상황을 떠올린 날이 있었다.
그리고는 피식, 철없던 날을 떠올리듯 웃음이 나왔다.
'괜찮긴 뭐가 괜찮아. 하나도 안 괜찮아. 안 괜찮았고, 우린 변해야 했어. 너무 오래 머물러 있었어.'
괜찮다는 말 뒤에 숨어서 현실도 제대로 파악 못하고, '언젠가 우리도 행복한 날이 올 거야. 그날은 언제 오는 걸까?'라는 막연한 이야기를 하면서 허송세월을 보내고 있었던 거다. 괜찮지 않음을 빨리 알아채고, 더 부지런히 더 생산적으로 더 열심히 살아내야 했던 거다. 그럼 지금이 지금보다 더 괜찮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했다.
그러고 시간이 지나 지금 다시 그 생각을 했던 그때와, 그 따뜻한 마음을 품었을 그때를 생각해 보면...
그 어린 날에는 그렇게 '괜찮아'야 살아갈 수 있었던 거 아닐까? 그 어린 마음에 현실을 직시하고 움직여라고 푸시했다면, 물론 또 다른 좋은 결과가 있었을 수도 있지만, 그때는 그 '괜찮은'마음이 필요했던 거 아닐까.
그리고 마음이 거칠고 단단해졌던 순간에는, '괜찮지 않은' 마음이 필요했던 거 아닐까. 그때는 앞으로 향해야 하는 생산적인 삶과 단단한 마음이 필요하고 위로보다는 스스로 움직이는 힘이 필요했던 거 아닐까.
그때도, 그리고 그다음의 그때도...
정답은 아니지만 때에 맞는 정답을 찾아가고 있었던 건 아닐까.
그러니까 우리는, 누군가의 말을 듣고 상처를 받고 휘둘리기보다는 지금 나에게 필요한 말을 찾아서 선택해서 듣는 능력이 필요한 것 같다. 지금의 삶을 부단히 이어갈 수 있도록...
그러나 지금 나에게 "괜찮다고 말해줄래?"라고 찾아온다면...
나는 여전히 세상을 다 품어버릴 만큼 따뜻한 마음을 담아서 괜찮다고 말할 수 있을까?
글쎄......
이젠 무조건 괜찮다고 하진 않을 거야. 네 이야기를 해줘. 너는 어떤 마음에 상처를 받았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