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가치

비로소 나를 향하는.

by iima

"여보 여기 원래 이렇게 기미가 많았나?"


바다가 태어난 후로 강력하게 적대적인 관계를 유지해 오던 남편이

아주아주 오랜만에 마누라 얼굴을 마주하고 한다는 소리가... 마누라 기미타령이다.


"응, 그랬던 거 같은데, 더 심해진 거일 수도 있겠지."

"그런 거 받아. 기미제거시술."


"왜? 나는 그런 거 안 할래."

"레이저로 밀면 되는데?"


"응. 알아. 그런데 지금 내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가 그게 아니라서..."



아주아주 짧은 숏컷에, 주근깨 기미 주름 모공을 드러내고 있는 민낯, 아주 편안한 옷차림으로 지내는 삶에 어느새 익숙해졌다. 샤워와 외출준비는 5분 컷이 목표!


지난 어느 날에는 상상도 못 할 모습이다. 샤워는 기본 30-40분, 집 앞에 잠시 나가더라도 기본적으로 눈썹과 비비는 발라줘야 모자를 안 쓰고 나갈 수 있었는데...




이렇게 된 이유가 7-8년 사이에 겹겹이 쌓여왔고, 명확하게 한 가지 이유는 아니겠지만,

이런저런 이유 중에 하나는 시간확보였다. 내가 생각하는 중요한 것에 시간을 더 쏟기 위해서...

지난날에는 나를 보는 '누군가의 마음'을 참 신경 쓰면서 살았다. 내 마음도 제대로 못 챙기고 살면서, '누군가의 마음'을 어쩜 그리도 살뜰히 챙겼을까? 내성적인 아이는 내성적이지 않은 척 용감하게 인사를 하고 말을 걸고 상대가 불편하지 않게 대화하는 것을 신경 쓰느라, 사교적이고 사회성이 뛰어난 사람으로 보이기 위해 어떻게 말을 할까, 어떤 표정을 지을까 고민하느라, 어떻게 예뻐 보이게 화장을 하고, 예쁘게 옷을 입고, 예쁘게 머리를 하느라... 진짜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내가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 내가 어떤 성향을 가졌고, 어떤 마음을 가지고 싶고, 나는 어떤 말을 하고 싶고, 어떤 좋은 능력이 있고, 어떤 점이 멋진지... 는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그때도 유행을 따라가는 스타일은 아니었고, 평범하지 않고, 이상한 것만 좋아한다는 소리는 종종 듣긴 했으나, 특별하고 싶으면서도, 평범의 축에 끼이고 싶었고. 착하고 예쁜 사람으로 보이기 위해 계속해서 애썼다. 남들에게 주는 한마디 대답을 생각하는데도 얼마나 오랜 시간을 고민하면서 시간을 썼던가.


그런데 점점 '누군가'를 향했던 고민들이, '나'를 향하고 있었다. (나이가 들어서 인지, 어떤 경험의 누적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


요즘은 내가 나로서 있는 그대로 더 당당해지길 원하고 있다. 그리고 있는 그대로를 어떻게 채워나갈지를 고민하고 있다. 그 고민에 남에게 보이는 껍데기를 가꾸는 것은 중요하지 않음으로 분류되었다. 물론 탈모도 기미도 전혀 신경 쓰지 않아도 될 만큼 풍성하고 뽀얀 모습이면 너무 좋겠지만, 다 가질 수 없다는 것도 받아들이게 되었다.


가끔 민낯으로 거침없이 당당하게 마주한 나를 보고 흠칫 놀라는 사람도 있는데, 그럴 때면 아직도... "괜찮아요? 많이 놀랬죠?"라고 달래주고 사과하고 싶은 마음이 있으나... 그래도 뿌리 깊은 마음은 '우리 꾸미지 않은 민낯에 익숙해지기로 합시다!'


보여지는 껍데기도 아주 등한시할 수는 없는 세상이지만, 그래도 우리.

껍데기보다는'있는 그대로의 내 모습', '내가 되고 싶은 나'에 집중할 수 있는 사람이면 좋겠다.



'지금 내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에 몰입할 수 있도록.



keyword
작가의 이전글때에 맞는 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