밝은 밤(최은영 저)을 읽고
"우리는 둥글고 푸른 배를 타고 컴컴한 바다를 떠돌다 대부분 백 년도 되지 않아 떠나야 한다. 그래서 어디로 가나. 나는 종종 그런 생각을 했다. 우주의 나이에 비한다면, 아니, 그보다 훨씬 짧은 지구의 나이에 비한다고 하더라도 우리의 삶은 너무도 찰나가 아닐까. 찰나에 불과한 삶이 왜 때로는 이렇게 길고 고통스럽게 느껴지는 것인지 이해할 수 없었다. 참나무로, 기로기로 태어날 수도 있었을 텐데, 어째서 인간이었던 걸까."
이 소설은 각기 다른 종류의 상처를 입은 채 살아가는 인물들의 이야기를 그려내고 있다. 자식을 잃은 채 그 슬픔을 덮고 정상적인 가족을 유지하려 부단히 애쓰는 엄마, 길미선. 전쟁통에 소중한 사람들을 떠나보내고 하나뿐인 자식마저 당신에게 마음의 문을 닫아버리게 한 할머니, 영옥. 이혼 후 희령에 찾아와 할머니를 만나게 된 나, 이지연까지.
지연은 서울에서 입은 상처에서 벗어나고자 도망치듯 찾아온 희령에서 뜻하지 않게 할머니와 마주하게 된다. 그곳에서 증조모 이야기부터, 개성에서 희령까지 내려오게 된 이야기를 듣게 된다. 전쟁 통에 만난 사람들과 떠나보내야 했던 사람들의 이야기, 엄마와 할머니가 몸과 마음의 거리를 두고 지내게 된 사정까지 생생하게 접하게 된다. 이 과정은 치유의 일종이었을 것이다. 비록 서로가 모른 채 덮어두었던 기억들을 눈물로 꺼내야 했지만 이 또한 치유의 과정이었다. 먼지 쌓인 헝겊으로 덮어두었던 상처를 열어보고 흐르는 물에 씻어 내는 과정과도 같은 것이다. 지연은, 미선은, 그리고 영옥은 일부러 서로의 마음을 후벼 파는 말을 던진다. 이렇게 던진 화살은 분명 자신에게 더 아프게 꽂히리라는 것을 알고 있음에도 던지고 또 던진다.
지연이 천문대에서 일을 구한 덕분에 종종 우주에 관한 이야기도 들을 수 있다. 광활하다고 표현해도 부족한 우주라는 공간에 빗대어 보면 인간의 삶은 얼마나 일순간에 불과한가. 먼지만도 못한 크기에 불과하는 이 공간과 삶이 한 인간에게 죽음과도 다를 바 없는 고통을 느끼게 하고, 때로는 가슴이 저릿할 정도로 기쁨을 느끼게 한다는 걸 생각해 보면 많은 생각이 떠오른다.
이야기가 전개되며 갈등은 심해지고 결국 고름은 터지게 된다. 해결을 원하는 마음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문제는 수면 위로 떠오르게 되어 있다. 이 소설 속에서는 사진이 그 연결고리가 되어 준다. 세상을 떠난 언니, 정연과 함께 찍은 사진들을 상자 속에서 꺼내는 엄마의 모습에서 상처가 조금씩 아물어가기 시작함을 나타내는 것은 아닐까. 엄마는 그 사진을 상자 속에서 쉽게 꺼내지 못했을 것이다. 마음 깊숙한 곳을 손으로 파고 들어가 온갖 고통을 견뎌 낸 후에야 그 사진을 마주할 수 있었을 것이다.
상처를 덮어두고 회피하며 스스로를 위안하는 사람들이 꼭 읽어봐야 할 글이다. 곰곰이 생각해 보자. 그 상처가 먼지 쌓인 헝겊 아래에서 그저 곪아가고 있는 건 아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