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개의 목소리로 하나의 이야기를 풀어내다

트러스트(에르난 디아스 저)를 읽고

by 휘휘

해럴드 배너, (아이다 파르텐자의 손길을 거친) 앤드류 베벨, 아이다 파르텐자, 밀드레드 베벨


이 네 명은 동일한 인물에 대해 각자의 시선으로 이야기를 풀어내고 있다. 처음으로 이야기를 시작한 해럴드 배너의 시선을 통해 본 벤자민은 신화적인 존재로 묘사된다. 1929년 미국 대공황의 시기에서 역사적인 성취를 이루어낸 신화적 인물. 여느 월스트리트의 부호와 달리 자신을 감춘 채 연이은 성공만을 이루어낸 벤자민의 이야기에서 어느샌가 헬렌에게 빠져들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하였다. 그녀의 자선사업, 음악, 그리고 고통으로 생을 마무리한 순간까지 배너는 치열하게 그려내고 있다. 그녀가 겪은 고통을 적나라하게 묘사한 장면을 상상하고 있노라니 몇 번이고 깊은숨을 몰아쉬어야 했다. 그녀가 겪은 고통의 질병이 무엇인지, 의사는 무엇을 처방한 것인지 등 여러 의문을 품은 채 배너의 이야기는 마무리된다.


두 번째 이야기의 시작은 자서전-세 번째 이야기를 통해 알게 된 것이지만, 이는 아이다 파르텐자가 기록한 앤드류 베벨의 이야기다-이다. 앤드류 베벨이라는 사람의 자서전, 어쩌면 위인전과도 같은 내용이다. 이 또한 금융위기 속 대대손손 물려받은 가문의 사업가 정신을 통해 극복해 내고, 오히려 사업 수완을 만들어내는 전설적인 이야기다. 내용이 전개되며 극 중 시대상, 이 인물이 처한 상황이 앞서 읽은 배너의 소설 속 벤자민과 비슷하다는 생각을 했다. 약간의 차이점이 있다면 벤자민은 조금 더 차갑고 냉소적인 인물로 묘사됐고, 앤드류는 약간의 야망과 외향적인 성격이 더해졌다는 것이다. 극의 구성 내내 짤막한 단어로 종결되거나 문단이 생략되기도 하는 바람에 출판사가 진짜 잘못 인쇄한 것인지 우려가 들기도 하였다. 추후 이것이 아이다 파르텐자에 의해 기록된, 앤드류의 죽음으로 완성되지 못한 자서전이라는 걸 알고 나서야 출판사의 실수가 아니라는 걸 이해할 수 있었다. 헬렌과 마찬가지로 앤드류의 자서전에서는 사랑하는 아내 밀드레드 베벨이 등장했다. 그녀 또한 헬렌과 굉장히 유사했으나 더 상냥하고 부드럽게 묘사되었기에 난 두 가정이 완전히 다른 이야기라는 것을 확신했다. 헬렌과 마찬가지로 밀드레드가 스위스 병원에 입원하게 되는 걸 보며 두 인물이 혹시 만나게 되는 전개인지 의심을 품기도 하였다. 그도 그럴 것이, 헬렌과 다르게 밀드레드는 너무나 평온하게 죽어갔다. 암이라는 병을 겪게 되었지만 헬렌이 겪었던 광적인 입원 과정과는 다르게 의사와 '합의된' 치료 과정을 받았고, 마지막까지도 헬렌과 벤자민이 경험해야 했던 그런 섬뜩한 경험은 겪지 않았던 것이다. 이로써 나는 확신했다. 둘은 다른 사람이라고.


아이다 파르텐자의 이야기는 무정부주의자인 아버지와의 이야기로 시작한다. 밀린 월세, 집안일에 관심 없는 아버지... 확고한 신념이 있었던 아버지의 영향을 받아 아이다는 돈의 흐름에 대해 비판적이고 냉소적이며 직관적이었다. 생계를 이어나가기 위해 구한 일자리는 바로 앤드류 베벨의 자서전을 쓰는 일이었다. 아버지가 극도로 경계하는 월스트리트의 대부호인 앤드류 베벨을 위한 일을 하게 된 것이다. 치열한 경쟁률을 뚫고 합격할 수 있었던 비결은 아버지와의 대화 같은 언쟁을 통해 돈과 세속에 대해 너무 빨리 깨달았던 덕분이었을 것이다. 앤드류 베벨은 자신을 위대한, 국민을 위한 금융인으로 그려주기를 압박하였고 자신의 아내인 밀드레드를 선하고 가정적이며 우아한 여성으로 그려내기를 요구하였다. 자신의 입맛에 맞지 않으면 그 불쾌함을 숨기지 않았다. 이를 알게 된 후 다시 두 번째 챕터로 돌아가 아이다가 기록한 앤드류의 이야기를 톺아보았다. 아이다의 회고록을 통해 느낀 앤드류의 치밀함은 역시나 삭제되었고 그저 위인의 이야기만 기록되어 있었다. 밀드레드의 이야기는 더욱이 앤드류가 원하는 우아하고 정갈한 모습만이 남아있었다. 아이다는 최선을 다해 앤드류의 이야기를 기록하고자 역대 이름을 남긴 기업가의 자서전을 내리읽으며 말투를 고쳐냈다. 결국 그 이야기는 앤드류 베벨의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인하여 마무리되지 못한다.


마지막은 밀드레드 베벨의 이야기이다. 그녀가 기록한 일기의 내용은 짧으면서도 명확하게 전달하고 있다. 병원에 입원하여 마지막에 이르기까지, 아프다는 기록은 있지만 헬렌으로 묘사된 여성과는 닮은 것 같지 않다. 오히려 앤드류가 묘사한 밀드레드의 모습이 오히려 정확해 보인다. 배너는 왜 그렇게 극단적인 묘사를 선택해야 했을지 의문이다. 그녀가 기록한 이야기는 그녀를 주체적이고 세밀하고 다정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게 한다. 마지막 순간으로 치닫을수록 고통에 대한 묘사만이 짤막하게 남아있지만, 그녀의 광적인 모습은 드러나지 않는다.


책을 읽는 내내 앞서 설명된 부분을 다시 한번 돌아가서 읽고 오기를 반복했다. 제목 그대로 내가 이해한 바가 맞는지 계속해서 의심을 품어야 했다. 작가는 내가 머릿속에 그리고 있는 이야기를 반복적으로 파괴하며 재창조해내도록 유도하고 있다. 내가 네 가지 단락 중 하나라도 빠트리고 읽었다면 밀드레드 베벨은 완전히 다른 인간상으로 내게 존재하게 될 것이었다. 네 개의 텍스트를 통해 인물은 얼마나 복합적인지, 그걸 이해하는 나 자신은 얼마나 복합적인 인간인지를 조금이나마 느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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