넌 그냥 방긋방긋 웃기만 하면 된다.
어제 엄마에게 받은 문자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어. 네 말대로 이제 이 편지는 하나의 소설이 되어버려서, 첫 문장이 떠오르질 않으면 도무지 시작할 수가 없는데, 돌이켜 보니 그 첫 문장은 대개 엄마의 몫이었어. 엄마가 첫 문장을 줘야 글을 쓸 수 있네. 문득 재미있다는 생각이 든다.
내 안색이 너무 좋지 않아 보인다고, 어디가 아프냐고 조바심을 내던 엄마는 이내 늘 그렇듯 화를 쏟아냈지. 걱정으로부터 비롯된 두려움은 언제나처럼 엄마를 소리치게 만들어. 몹쓸 병에 걸린 것도 서러운데, 각자의 슬픔은 각자의 몫으로 감당하며 힘껏 웃으며 지내도 한 번씩은 모든 것이 다 싫어지지. 전부 이해해. 그리고 내가 씩씩해야 한다는 걸 알아. 나는 언제까지고 건강해야 하고, 잘 웃어야 해. 그런데 그게 어렵다. 나이 들고 병들어 약한 존재가 되었는데도 여전히 모든 것을 떠맡아 다 해결하려 하고, 해결할 수 있다고 믿는 우리 엄마. 초월적인 힘을 지치지도 않고 뿜어대다가, 닳고 부스러져 가는 엄마. 엄마의 말대로 방긋방긋 웃는다 한들 백 퍼센트의 웃음이란 건 이제 다 틀린 거 아닐까.
지금은 금요일 오후, 점심을 먹고 나서인지, 너무 졸리다. 아니 사실은 지난 주말부터 오늘까지 충분히 잔 날이 거의 없는 듯해. 지난 금요일, 엄마와 나는 서울에서 여러 일들을 해결했어. 수서역에서 기차를 내려 택시를 타고 목적지를 말할 때, 나는 조금 긴장이 됐어. 엄마가 다리가 많이 아파 지하 주차장으로 들어가 달라고 말해야 하는데 우리집 주차장은 너무 복잡했거든. 택시 기사분은 신경질적인 표정과 말투로 인해 분명 따스한 사람이지만 그 마음이 잘 들여다 보이지 않는, 전형적인 할아버지였던 탓에 엄마는 눈치를 보며 할아버지께 사과를 했어. 제가 다리 인대가 늘어나서요, 하며 멋쩍게 웃는 엄마. 내 돈 내고 택시를 타면서도 왜 이런 사정을 해가며 타야 하는지 짜증이 나면서도 우선은 목적지까지 안전하게 도착하는 것이 중요했으니까, 나 또한 할아버지께 사과를 해가며 겨우겨우 집 앞까지 갔어. 택시에서 내려 우리 동 입구까지 걸으려 하는데 엄마가 걸음을 떼지 못하더라고. 나는 너무 놀라 엄마에게 나직이 물었어. 많이 아파, 엄마? 왜 움직이질 못 해? 엄마는 아주 작게 속삭였어.
할아버지가 보잖아.
그 말을 듣고 내가 얼마나 웃었는지. 그날, 엄마는 명배우였고, 재치 있는 희극인 같기도 했어. 물론 다리가 아프지 않은 것도 아니어서, 서울 일정 내내 고생하고 집으로 돌아온 지금까지도 여전히 컨디션이 엉망이지만. 우리가 대단히 슬픈 와중에도 대단히 비참하지 않을 수 있는 건, 긍정에의 지향을 놓지 않는 엄마가 있어서, 그리고 그런 엄마를 길러낸 엄마의 엄마와, 그분을 있게 한 어디에선가부터 시작돼 이어져 온 마음들 덕분일 거야. 아까 했던 말, 백 퍼센트의 웃음은 이제 틀린 것 같다는 말, 조심스러이 지워낼게. 그런 건 없어도 괜찮은 것 같아. 그냥 사랑하는 사람이 웃는 날이 많았으면 좋겠어.
엄마의 친구분 이야기와, 엄마의 엄마와, 어제 다시 읽은 백수린 작가의 작품 이야기도 전하고 싶은데 이번 편지에선 틀린 것 같아. 이렇게 모자란 내가 계속 쓰고 생각을 이어갈 수 있는 건 그걸 전하고 싶은 네가 있기 때문이야. 늘 그렇듯 고마워.
언젠가, 엄마가 핸드폰을 보며 웃는 나에게 누구와 카톡 하냐고 장난스레 물었던 적이 있어. 그러면서 이러셨어. 웃는 표정 보니까 L이구나. 엄마에게 넌 당신 딸을 웃게 하는 친구지. 오늘은 반도네온과 동석하고 서울로 간 나의 문우. 닐리에게,라고 멋대로 시작된 이 편지가 언제까지 이어질까. 다시 생각해도 너의 피리 이름으로 널 부르는 게 어딘지 재밌기도, 또 미안하기도 하네. 11월에 다시 편지할게. 건강히 겨울로 나아가자.
닐리에게 한 달에 한 번 보내는 편지 형식의 소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