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소설이 될지도 모르니까.
서안에게 과호흡 증세가 처음 나타난 건 열다섯 살 때였다. 울 일이 많았고 울다 보면 분해서 소리를 질렀으며 그러다 보면 눈앞이 어두워지고 어지러워 주저앉게 됐다. 진정이 될 무렵엔 어째서인지 양손 모두 다섯 손가락이 한 데 딱 붙어 떨어지지를 않았다. 한참을 가만히 있어야만 손가락이 천천히 떨어지고 이내 시야도 밝아졌다. 그게 과호흡 때문이란 걸 안 건 한참이 지난 후의 일로, 뉴스를 통해서였는지 드라마를 통해서였는지 정확히 기억하지 못하지만, 서안은 살아가며 필요한 지식을 보통 뉴스보다는 드라마를 통해 더 많이 배웠다.
드라마가 구현하는 세상은 제각기 비슷한 듯 풍성했다. 내 남편과 바람을 피워놓고 너무도 당당하게 “그 사람, 내 남자야.”라고 말하는, 한때 소중한 친구라 믿어 의심치 않았던 여자. 그리고 그 앞에서 너무 큰 충격에 분노하다 과호흡으로 쓰러지는 또 다른 여자. 남편의 내연녀가 되어버린 친구는 갑자기 자신이 저지른 가혹을 깨닫기라도 한 듯 커다란 봉투를 가져다 고통에 빠진 여자의 코와 입에 대고 숨 쉬어. 숨 쉬어야 돼, 지수야! 했지. 그래, 생각해 보니 역시 드라마였네, 피식 웃는 서안이었다.
중요한 이야기는 아니지만 서안의 꿈은 그러니까 드라마 작가였다. 드라마가 시작할 때, ‘극본 아무개’하고 자막에 나오는 것을 보고 극본이란 것이 드라마의 시작이며 그걸 쓰는 사람이 바로 드라마 작가라는 걸 알게 됐다. 무슨 직업이든 갖기 위해서는 대학을 가야 한다고 믿었던 서안은 그렇게 국문과를 지망하게 된다. 작가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지? 국문과에 가야지. 국문학도들의 흔한 오해와 결론이다.
대학을 가기도 전에 작가의 꿈은 이미 사라져 버렸지만, 희망 학과를 바꿔야 할 이유는 없었다. 그는 문학을 사랑했고 결심한 대로 국문학도가 됐다. 어릴 때 꿈꾼 것 중에 이룬 건 이거 하나네. 한 번씩 생각하며 씁쓸하게 웃었다. 이십 대의 서안은 문학만큼이나 사람을 사랑했다. 매일이 끊이지 않는 연락과 만남이었다. 밤에 메신저를 로그인 하면 촘촘히 노란불을 밝히고 늘어서 있는 친구들. 그 중 재우가 있었다.
재우는 서안이 활동했던 야생조류연구회라는 자못 진지한 목적을 지닌 동아리에서 만난 동기였다. 남들의 시선은 아랑곳하지 않았고 보통은 아무래도 좋다는 듯 대세를 따르다가도 필요할 땐 애쓰지 않고 분위기를 주도하는 재우를 서안은 ‘여유가 있는 아이’ 정도로 평했다. 편지를 모아두는 서랍엔 재우와 주고받은 편지가 꽤 많았다. 군대에 갔을 때 주고받은 것이었는데 내용은 대개가 휴가가 며칠이니 다들 모이자는 이야기, 시험 기간이니 힘을 내라는 격려 정도의 적당히 친밀하고 가끔은 다정한 것들이었다. 나중에야 알게 된 사실인데 재우는 주희를 좋아하고 있었다. 주희가 인기가 많긴 하지. 언젠가는 둘이 사귀는 건가, 궁금했지만 서안이 주희나 재우에게 먼저 묻는 법은 없었다.
대학을 졸업하고 서안은 대학원에 진학했다. 그가 생각하기에 대학원은 전공에 재능이 있는 사람이 가거나 무엇에도 재능이 없는 사람이 가는 곳이었다. 누가 보아도 나는 후자에 속하지,라고 마음속으로 하는 생각임에도 작게작게 말하며 다소 의기소침한 날들을 보냈다. 대학원에 가지 않은 친구들은 하나둘 각자의 속도에 맞춰 직장을 갖기 시작했다. 오랜만의 모임마다 몇 장의 명함을 받아 들고 집으로 향했다. 낯설고 불안한 날들이었다. 낯설고 불안할 때, 서안은 여지없이 가장 하찮은 선택지를 고른다. 연애를 시작하는 것. 과 선배와의 연애는 그에게 부담되는 것이었지만 도리가 없었다. 선배는 가장 나약한 순간 만난 가장 다정한 남자였으니까. 물론 그 다정함의 모습이 어딘지 비굴한 것은 조금 찝찝했지만.
연애를 시작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동아리 모임에서 거의 한 해 만에 만난 재우는 내년에 대학원에 진학할 예정이라 했다. 취업에서 좀 더 유리한 점수를 얻기 위한 선택으로 서안의 경우와는 결이 다른 결정이었다.
석사 정도면 충분하다고 하니까 거기까지만 해놓으려고.
느긋하게 말하는 모습이 예전과 비슷하면서도 어딘지 낯설었다.
주희 이번에 아나운서 붙었다며. 야, 나는 그런 사람 처음 봤어. 자기가 꿈꾸던 거 이룬 사람.
꿈꾸던 걸 이룬 사람. 지금 무얼 원하는 건지도 모르겠고 무엇을 향하고 있는지도 모르는 시간을 보내는 서안에게 재우의 말은 제법 아팠다. 재우는 주희를 좋아했지. 갑자기 재우의 말 속 주희가 너무도 멋있게 느껴지면서 질투가 날 지경이었다. 자존감 바닥이네. 모임을 파하고 지하철에서 내려 집까지 걷는 길에 맥주 한 캔을 더 마셨다.
[어떻게 하루 종일 전화 한 통이 없어?]
씻고 나왔을 때 선배에게 온 문자였다.
[나를 좋아하기는 해?]
신기록이네. 보통은 두 달은 지나야 듣는 말인데. 조금쯤 미안해진 서안은 전화를 걸었다. 선배는 전화를 받지 않았다. 그래, 받지 마라. 어차피 내일 만날 거. 묘하게 불편한 마음이었지만 잠은 잘 잤다. 다음 날 아침도 맛있게 먹었다. 선배를 만나면 근사한 점심을 사주고 사과도 하고 손잡고 산책도 해야지. 살가운 여자 친구는 아니었지만, 이번 연애는 성숙하게 해내고 싶다는 다짐을 하기도 했다. 그가 평소처럼 학교에 있었다면 이번 연애는 정말로 괜찮았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는 멋대로 집 앞 주차장에 차를 대놓고 그 옆에 삐딱하게 선 채 서안을 기다리고 있었다. 차를 타고 학교를 가는 길은 끔찍했다. 내가 너를 만나고 살이 얼마나 빠졌는지 알아? 너 눈 있으면 짐작은 하겠지. 다들 어디 아프냐고 물어. 너는 나를 좋아하는 것 같지 않아. 어제 너 하루 종일 연락 한 통 없이 모임 나가서 신나게 노는 동안 나는 응급실에 실려 갔어. 위궤양이래. 너 뭐 드는 생각 없어? 내가 얼마나 참았는지 너는 모르지?
선배, 그럼 우리 헤어져요.
그의 말속에 그는 피해자고 서안은 가해자였다. 변명의 여지도 없는 아주 나쁜 여자친구였고, 그의 순애보 속 악당이었다. 무슨 말을 할 수 있었을까. 이게 최선이지 않을까. 그러나 서안의 대답은 모범 답안이 아니었다. 그는 불같이 화를 내며 온갖 종류의 협박을 했다. 바보같이. 학교 도착해서, 차에서 내려서 말을 할걸. 아니 적어도 차가 멈췄을 때 날렵하게 차에서 뛰쳐 내리면서 말하고 도망칠걸. 생각도 느리고 몸뚱이도 느린 서안은 속으로 울기 시작했고, 진짜로 조금 있으면 눈물이 쏟아질 참이었다. 그렇게 학교에 도착했다.
내려. 가서 밥 먹자.
…….
왜 말이 없어? 잘못했으면 사과를 하면 되지, 헤어지자는 게 말이 돼? 내리자. 오빠 화 많이 났어. 그래도 난 헤어지자고 말 안 해.
잘못했으면 사과를 하면 되지. 다리에 힘이 풀려 도저히 움직일 수 없을 것 같던 서안을 움직인 말이었다. 차에서 내려 문을 세게 닫았다.
뭐하는 짓이야?
뒤따라 내려 매끈한 양 옆구리에 기다란 손가락을 자랑하는 하얀 손을 얹는 선배. 그의 마른 몸도 하얗고 긴 손가락도 좋아했는데. 개새끼.
개새끼를 시작으로 서안이 드라마에서 배운 갖가지 다채롭고 신랄한 욕을 내뱉기 시작하자 남자친구였던 개새끼의 눈이 점차 커졌다. 더 무슨 말을 하려는지 입도 같이 커지기에 한마디도 더 듣고 싶지 않았던 서안은 그길로 자신이 낼 수 있는 최고의 속도로 뜀박질을 시작했다. 뒤따라올까 두려워 숨이 걷잡을 수 없이 차올랐지만 무슨 정신으로 달리는지도 모르게 주차장에서 학관까지 가깝지도 않은 거리를 오로지 달리는 데만 집중하며 두 발을 재촉했다.
야, 너 무슨 애가 뛰는 게 이러냐.
갑자기 바짝 붙어 같이 뛰는 누군가에 너무 놀란 서안은 그 자리에 넘어지듯 주저앉아 버렸다. 덩달아 놀라 곁에 쪼그려 앉은 사람, 재우였다.
괜찮아? 놀랐으면 미안. 너 무슨 일 있어?
그날, 그 순간이 서안이 처음으로 바깥에서 과호흡 증상을 겪은 날이었다. 운동 부족에 격한 달리기에 공포에 서러움이 모두 엉켜서 소리도 내지 못하고 우는 사이에 손발이 너무 저려왔다. 얼마나 지났을까. 속수무책의 먹통 상태에서 호흡이 조금쯤 돌아오자 한참을 먹먹하던 귓가에 비상이다. 최악이야.하는 마음의 소리가 저 멀리서 흐릿하게 들려오는 듯했다. 어찌되었든 엉망진창에서 구조되어 눈이 조금 밝아졌을 때는 길바닥이 아닌 옆의 벤치에 앉아 있었다. 상황 설명이 필요하겠지. 그는 남자친구였던 개새끼에게 일방적으로 혼이 났다가 분해서 욕을 좀 해주고 도망을 쳤다고 대강 그런 말을 했다.
아 그랬구나…. 근데 너 손, 펭귄 같은데, 지금 좀.
위로를 해야지, 놀려…?
아니, 미안.
조금 있으면 손가락도 괜찮아져. 자주 있는 일은 아닌데 아까 너무 놀라서 그런가 봐.
일어날 수 있으면 천천히 일어나자.
너무나 부끄러운 와중에 아무렇지 않게 이야기를 들어준 재우가 고마웠다. 그래서 아직은 일어날 힘도 없고 그냥 빨리 헤어지고 집에나 가고 싶었지만 재우의 말대로 천천히 일어나 같이 걸었다. 무슨 말을 더 해야 할 것 같은데….
헤게모니가 무슨 뜻인지도 모르던 무식한 새끼였어….
헤게모니가 뭐냐? 그거 나도 모른다.
아, 미안….
아무 생각하지 말고 그저 걷기만 해.
이것이 서안이 기억하는 재우의 마지막 말이다. 그날 둘이 점심이라도 먹은 건지 뭐 얼마나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눈 건지 모르겠지만 그 순간 그는 잠시 재우를 좋아했다. 좋아해도 되지 않을까. 재우는 주희랑 사귄 적도 없고 그러니까 내 남자의 여자도 아니고. 뭐라는 거야. 뭐 그런 어이없는 의식의 흐름을 펼쳤던 건 기억하면서도 그날 재우랑 이후에 어땠고 어쩌다 그와 연락이 끊겼는지는 자세히 떠오르질 않았다.
이제 몇 해가 더 흘러 서안은 사교육의 메카라고 불리는 지역의 논술학원에서 학원을 열 군데씩 다니는 아이들을 가르친다. 부모님께 오랜 투쟁을 한 끝에 직장에서 크게 멀지 않은 동네에 집을 구한 그는 항상 출근 시간보다 한두 시간 앞서 집에서 나선다. 출근길을 따라 흐르는 하천과 그 주변의 새들을 바라보며 전생 같은 대학 시절을 떠올릴 때도 있지만, 보통은 앞날에 대한 고민이나 당장 해결해야 하는 스트레스들을 걸음 끝마다 꾹꾹 눌러가며 비워내는 데 열중하는 것이 출근길의 중요한 의식이었다.
어찌 되었든 가르치는 일은 의외로 서안의 적성에 맞았다. 학생 중엔 제법 의젓한 아이도 있고 당황스런 행동을 하는 아이도 있었다. 그중 열한 살의 유준은 말수는 적었지만, 내주는 과제마다 성실하게 곧잘 하는 아이였다. 책을 좋아해서 논술학원에 보낸다고, 아이가 스스로 말을 하면 천천히 들어주기만 하고 그 이상 억지로 말을 시키지는 말아 달라고, 유준의 어머니는 그렇게 당부했었다. 첫 수업 뒤로 별다른 연락이 없는 걸 봐서 극성맞은 어머니는 아니었다. 어느 날의 수업은 유준과 둘이 했는데 그날 다룬 책이 무엇이었던지 기억은 나지 않지만, 서안은 이런 질문을 했다.
유준이는 꿈이 뭐니?
몰라요.
억지로 이야기를 시키지는 말라는 당부를 기억하고 있는 그는 혼자 떠들어 보기로 한다.
선생님은, 작가가 꿈이었어.
그럼 작가가 되면 되지 않나요?
서안은 간단한 유준의 대답에 숨을 한 번 크게 들이쉬었다.
그렇게 생각했던 적도 있었던 것 같은데. 그러네. 작가가 되면 되는데, 그렇지?
박완서 작가처럼 불혹에는 등단을 하겠다고 말하고 다녔던 스무 살의 서안은 이제 정말 곧 마흔이 된다. 이 길고 수다스러운 이야기는 서안이 글을 쓰기 시작한 요사이 반복적으로 생각나는 사람들과 순간에 대한 것. 하고 싶으면 하면 되는 거 아닌가요. 유준의 말 흉내내며, 흉내내다 보면 닮을 수도 있겠지 희망하면서 계속하여 글을 쓴다. 겪은 일 무어든 내 이야기이고, 그 이야기들이 언젠가 소설이 될지도 모르니까.
친구와 제가 만든 창작 모임 "인301"에서 '한 문장으로 글쓰기'라는 과제로 쓴 짧은 소설입니다.
친구가 저에게 문장을 정하라 했는데, 김초엽 작가의 『므레모사』 속 한 문장이 떠올랐어요.
아무 생각하지 말고 그저 걷기만 해.
이 문장은 작중 '한나'가 '유안'에게 건네는 말입니다.
상황에 따라, 또 누가 하는 말이냐에 따라 응원일 수도, 단지 제안일 수도, 혹은 강요일 수도 있는 말.
각자가 쓰고 싶은 대로 이 문장이 소설 속 어디에든 들어가게끔, 서로 다른 소설을 완성했습니다.
완성도도 높지 않고, 실은 연작 형식인데 이어지는 두 편을 올릴 용기가 생길지도 알 수 없지만.
개인적으로 아끼는 소설입니다. 모자라면 모자란 대로, 애정이 가고 의미가 되기도 하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