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만남은 너무 어려워

유쾌하지만 마냥 유쾌하지 않았던

by iinnocuous

01. 첫 만남에 내가 너무 좋다던 그녀

시대가 시대인지라, 모임에서 만난 인연들과 연락처 교환이 아닌 인스타그램 교환을 통해 서로의 거리를 좁혀간다. 쿨하게 인스타그램을 알려준 그녀는, 모임 다음날 저녁 내게 DM을 통해 관심을 보였다. 마치 "내가 먼저 연락했으니 당신이 만남 일정을 제안해야지?" 무언의 압박(?)에 한참 늦은 날짜에 티타임 약속을 잡았다. 그것도 점심으로.


그녀의 첫인상은 내 이상형 기준에는 약간 못 미치는 스타일이었다. 키가 170에 육박했고, 피부는 까무잡잡했으며, 긴 생머리에 레게 머리에 준하는 웨이브 가득한 스타일. 게다가 말보로 슬림 라인을 연초로 태우는 헤비스모커.

지금 생각해 보니 길에서 만났으면 전혀 끌리지 않을 스타일이었는데 모임이란 자리가 자아내는 분위기와 약간의 술 한잔이 호기심을 불러일으켰을까.


어쩌다 보니, 커피 한잔이 술 한잔이 됐고, 의외로 수더분하게 복분자주를 좋아하던 그녀는 홀짝홀짝 한두 잔씩 마시자 슬쩍 내 손을 터치하고, 어깨에 기대더니 그대로 안겨왔다.


아서라.. 그렇게 그날 밤 급속도로 깊어지고 난 후, 나를 향한 그녀의 표현이 과감해졌다. 연예인 A도 닮았고, B도 닮았고, C도 닮았고, 내 코가 참 예쁘다고 했으며 나이에 비해 관리를 정말 잘했다며 내가 듣고 싶던 말들도 서슴없이 해주었다(술 취했을 때 이 코 돈 주고 했으면 호구라고 해놓고..)


그간 실연의 아픔으로 마음이 헛헛했던걸 이렇게 보상받나 싶을 정도로 나를 애정하는 느낌이 나도 마냥 싫진 않았나 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와의 만남은 길게 이어지지 못했다. 한두 번의 데이트를 더 했지만 내 마음의 온도와 그녀 마음의 보폭이 너무 컸으며 일주일이 채 되지 않아 내게 관계 확정을 요구했다.


긴 고민 끝 장문의 카톡으로 그녀에게 더 이상 만남을 이어가기 어렵다고 했고, 약간의 실랑이가 있었지만 나는 다행히 안전이별(?) 할 수 있었다.


내가 마음에 들었던 사람이었으면 일주일 만에 관계를 확정했었을까?라고 스스로에게 자문했을 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렇게 할 수 없는 사람이라는 것을 다시금 느꼈다.


왜냐하면, 나르시시스트들이 초반에 검증되지 않은 상대방에게 애정 폭탄을 던진 후 상대를 어느 정도 통제 가능하다고 판단될 때 유기하는 방식으로 상처를 주기도 하기 때문이다.(사실은 그냥 내 스타일이 아니었다)


물론 그녀가 나르시시스트였는지는 지금 단계에서 섣불리 판단할 수 없지만 내가 본능적으로 관계가 깊어지는 것을 밀어내고 거부했다면 그녀의 수면 아래 있던 나르시시즘을 은연중에 느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필자는 한 때 지독한 회피형 나르시시스트였다.)


그리고 요새 젊은이들은 잠자리 케미도 너무 중요하기 때문에 선섹후사를 하는 게 트렌드라고 해도

나는 곧 죽어도 그 트렌드에 부합할 수 없는 사람이겠구나라고 느꼈던 건, 명리 공부를 하고 나서부터는 누군가와 잠자리를 갖게 될 경우 웃프게도 내가 생각한 잠자리 궁합과 맞는지를 관계 중에 분석하느라 관계에 집중을 못하는 나 자신을 발견했다.


이러나저러나 그녀와의 에피소드는 가볍지만 가볍지 않으며 앞으로 마주할 내 연애 가치관 형성에 적잖은 숙제를 남긴 것이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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