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렁다리와 조형물 뒤에 감춰진 가능성과 전환의 조건
한국의 지방을 여행하다 보면, 어느 순간부터 비슷한 장면들을 마주하게 된다.
출렁다리, 특산물 조형물, 포토존, 체험 마을, 농산물 판매장...
지역명과 풍경만 다를 뿐, 공간이 기획되고 소비되는 방식은 놀라울 정도로 닮아 있다.
그 비슷함은 의도하지 않은 우연은 아니다.
지방의 행정 기획, 예산 집행, 성과 평가 방식이 유사한 결과를 반복적으로 만들어내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2023년 기준, 전국에는 관광형 출렁다리가 110개 이상 존재한다.
진안, 제천, 인제, 하동, 구례, 완주…
수많은 지자체가 출렁다리를 기획하고, 경쟁하듯 높이와 길이를 늘였다.
그렇게 된 데에는 이유가 있다.
“○○시에 다리 만들고 관광객이 ○만 명 늘었대요.”
“우리도 이런 거 하나쯤은 있어야 하지 않겠어요?”
관광객 수와 체류 시간, 언론 노출량이 눈에 보이는 행정 성과로 환산되기 시작하면서,
이미 효과가 입증된 콘텐츠는 복제와 확산의 논리로 소비된다.
출렁다리나 조형물이 무조건 나쁘다는 건 아니다.
실제로 일부 지역에서는 그것이 지역 인지도를 높이고 외부 유입의 물꼬를 트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 장면이 지역 기획의 유일한 해법처럼 반복될 때, 방문자는 지역이 아니라 비슷한 공간의 복제본만을 기억하게 된다.
남는 건 시설이지만, 기억에 남는 건 많지 않은 방식이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다. 하지만 '최종 결정에 어떤 이유가 가장 크게 작용했을까'를 유추해 본다면,
이 방식이 행정적으로 가장 빠르고 확실하기 때문이다.
1. 성과 중심 행정 시스템
: 보도자료, 보고서, 사진으로 남을 수 있는 시설 중심 평가 구조
2. 기한과 절차가 명확한 기획
: 1~2년 내 성과 도출이 가능해야 하므로, 검증된 모델을 우선 채택
3. 타 지자체 벤치마킹이 기획의 출발점이 됨
: 한국관광공사 분석에 따르면,
“기초 지자체 관광 기획의 약 63%가 타 지역 사례에서 출발한다.” (2022)
이쯤 되면 질문을 바꿔야 한다.
“무엇을 만들 것인가?”가 아니라
“누가 이 공간에서 오래 머물 수 있을까?”
출렁다리가 관광객을 불러오는 일에 성공했다면, 그다음엔 묻고 이어가야 한다.
이 공간에서 지역의 기업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이 공간이 지역 청년에게 어떤 기회가 될 수 있을까?
이 공간을 다시 방문하고 싶은 이유는 만들어졌는가?
지금까지는 공간을 만들었고, 이제부터는 그 공간에서 무언가가 계속해서 일어날 수 있도록 설계하는 일이 필요하다.
그동안 이 기획은 대부분 행정이 맡아왔다. 그러나 앞으로는 행정이 결과물을 만드는 주체가 아니라, 기회를 여는 조율자이자 지원자가 되어야 한다.
청년 기업
협동조합
외부 창작자
소상공인
로컬 콘텐츠 기획자
이들이 출렁다리 옆, 조형물 뒤, 공공공간 안에서 자율적으로 뛰어놀 수 있도록, 시도하고 실패할 수 있도록
‘사용 가능한 장’을 만들어주는 것이 지방 기획의 다음 스텝이다.
지방의 공간 기획이 서로 닮아가는 건 단순히 상상력이 부족해서가 아니다.
행정 시스템이 그렇게 설계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이제는 그 공간에서 실험하고 실패하고 다시 도전할 수 있는 주체들이 등장해야 한다.
이니프가 하고자 하는 일도 그 지점에서 출발한다.
지방이 다시 살아 있으려면, 공간보다 실험이, 시설보다 사람이 먼저 움직일 수 있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