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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에서 이주 노동자와 함께 창업한다는 것

이미 함께 일해온 사람과 지역을 살아갈 수 있는 조건을 함께 만드는 실험

by 이니프

지방 창업을 이야기할 때, 우리는 종종 ‘혼자 시작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창업자의 아이디어, 자본, 실행력, 네트워크…
하지만 지방 현장에서 실제로 의미 있는 창업의 기초가 된 것은 오랜 관계, 생활의 축적, 그리고 함께 일하던 동료일 때가 많다. 그 동료가 이주 노동자라면, 이야기는 조금 다른 관점에서 바라볼 수 있다.


지방은 이미 ‘다문화 노동’에 의해 유지되고 있다


2024년 4월 기준, 국내 체류 외국인은 약 259만 명이며,
이 중 고용허가제(E-9 비자)와 방문취업제(H-2 비자)를 통해 체류 중인 이주 노동자만 70만 명 이상이다.
전체 외국인 중 약 72%가 수도권 외 지방에 거주하며, 특히 농업・제조업・축산업 중심의 중소 시군 지역에 집중되어 있다.


충북 음성군: 전체 인구의 15% 이상이 외국인 (법무부 2023)

전북 김제시: 외국인 비중 전국 1위, 21.3%

경북 영천・경남 밀양 등도 10% 이상 외국인 인구

이들 지역은 인구 자연 감소를 외국인 유입으로 일부 보전 중

즉, 이주 노동자는 더 이상 ‘외부 인력’이 아니라 지방의 일상과 산업을 실질적으로 지탱하는 생활 기반이다.


고용 관계를 넘어서, 협업 관계로


몇몇 지역에서는 이 관계가 한 발 더 나아가고 있다.
이주 노동자와 함께 창업하거나, 그들과의 협업을 바탕으로 새로운 가게나 브랜드를 만드는 사례들이다.


충북 음성에서, 베트남 출신 노동자와 함께 쌀국수 식당을 연 50대 부부

전북 김제에서, 함께 일하던 이주 여성과 ‘동남아 식자재점 + 미니 커뮤니티 공간’을 결합한 창업 사례

경남 합천에서는, 태국 노동자와 마늘 건조・가공 브랜드를 만든 로컬 청년 농부

이들의 공통점은 ‘함께 일해온 시간’이 창업의 신뢰 기반이 되었다는 점이다.


이 협업 모델이 가지는 현실적 힘


이주민과의 협업은 단순히 신뢰 기반의 파트너십을 넘어서, 지역 창업에 새로운 문화적 자산과 소비 기반을 함께 가져온다.


각 문화권의 감각을 이해한 창업이 가능하다.
→ 예를 들어, 베트남・태국・우즈베키스탄 등 특정 커뮤니티에 특화된 식자재, 요식업, 생활 서비스는
문화 기반 창업으로서 지역 내에서 뚜렷한 차별성과 개성을 가질 수 있다.

이주민 창업자 혹은 협업자는 자기 문화 기반의 수요와 감각을 본능적으로 이해하고 있으며, 단순 '외국인 대상 창업'이 아닌 다문화 라이프스타일을 제안하는 주체가 될 수 있다.

이미 지역 주민과의 연결고리도 존재한다.
→ 직장, 교회, 자녀의 학교, 체류 중 형성된 생활반경을 통해, 내국인과 이주민 모두를 고객으로 설계할 수 있는 사용자 감각이 형성되어 있다.

전체 외국인 주민 수는 매년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 고용허가제(E-9) 체류자만 2020년 47만 명 → 2024년 70만 명 이상 (고용노동부, 법무부 통계)
→ 이는 ‘소비자 층으로서의 이주민 시장’이 본격화되고 있음을 의미한다.


지방에서 '외국인을 위한 가게'는 더 이상 특별하지 않다.
이주민 수요를 고려하지 않은 상업 설계야말로, 앞으로는 구식이 될지도 모른다.

이 협업은 ‘고용자-노동자’가 아닌 ‘공동 생존자’의 감각에서 출발한다.
서로의 존중과 실질적 이해를 바탕으로 한 관계 기반 창업이기 때문에 단순 투자보다 더 깊은 지속 가능성을 내포한다.


그런데, 이들은 제도 바깥에 있다


실제 협업 창업이 쉽지는 않다.
이주 노동자의 경우, 체류 자격에 따라 창업이 가능한 업종이 제한되며
(H-2, F-2, F-6 등 일부는 가능 / E-9는 창업 불가),
정보 접근성과 행정 처리, 금융・회계・법무적 지원도 매우 미흡하다.

고용노동부 자료에 따르면, 외국인 근로자 대상 창업 관련 제도 정보 수신율은 10% 미만 (2022)
대부분은 비공식 커뮤니티를 통해 제한적으로 정보를 공유

결과적으로, ‘창업할 수 있는 이’가 아니라 ‘창업할 수 없도록 설계된 이’로 남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필요한 질문


지방 창업을 말할 때, 우리는 누구를 염두에 두고 있는가?

정착을 원하지만 제도적으로 배제된 이들은, 지역 사회의 일부로 어떻게 초대될 수 있을까?

지역 기반 창업이 정서와 관계에서 출발해야 한다면, 이미 함께 살아온 이들과의 협업이 가장 자연스러운 출발점이 아닐까?


지방은 이미 다문화적인 생존 생태계를 갖고 있다.
다만, 그 현실을 정책도, 창업 지원도 아직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함께 일하던 사람과 창업을 한다는 건 함께 실패할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만큼 서로에 대한 신뢰가 있어야 가능한 선택이다.


지역 창업이 제도 이전에 관계에서 출발한다면, 이주민과의 협업은 오히려 가장 확실한 창업 모델일 수 있다.

이제는 관계를 기반으로 한 창업 실험이 더 넓은 주체들을 포함할 수 있도록 장을 설계할 차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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