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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에서 사람을 만난다는 것

인재 밀도를 높이기 위한 현실적인 접근

by 이니프

지방에서 창업을 한다는 건, 단지 '사업'을 시작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사람을 모으고, 함께 살아갈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일과 동시에 진행된다.

많은 창업자들이 초기에 부딪히는 벽은 자금이나 공간이 아니라, 같이할 사람이다.

지방에서 ‘인재’를 만난다는 건 단순히 능력 있는 사람을 찾는 문제가 아니다.

함께 오래갈 수 있는 사람, 지역 안에서 함께 살아갈 수 있는 사람을 찾는 일이다.

특히 지방의 경우, 인재 유입이 아니라 인재 정착이 관건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2022년 기준으로 20대 청년 인구의 68.5%는 수도권에 집중되어 있고,
전남·경북 등 비수도권 청년의 1인 창업 비율은 5.6%에 불과하다.
청년 창업 이전에, 일을 같이할 사람을 발견할 장면 자체가 사라지고 있는 것이다.

이 글에서는 지방 창업의 현장에서 인재를 어떻게 만나고, 연결하고, 함께 나아갈 수 있는지
실제적인 접근 방법을 중심으로 공유하고자 한다.


이력보다 지속 가능성을 본다


서울에서라면 이력서가 우선일지 모르지만, 지방에서는 지속 가능성이 더 중요하다.
지역에서 함께 일할 사람은 단기성과보다 시간을 들여 함께 성장할 수 있는 가능성을 봐야 한다.
이 가능성은 단순한 스킬셋이 아니라, 관심사, 태도, 실험을 받아들이는 유연함에서 드러난다.


이런 관점은 일본의 ‘지역활성화협력대(地域おこし協力隊)’ 사례에서도 나타난다.
이들은 일정 기간 동안 지역에 실제로 거주하며 지역 기반 프로젝트에 참여하고,
그 안에서 생기는 협업을 통해 정주 가능성과 팀 빌딩의 기초를 만든다.
거주와 활동을 통합적으로 설계해야 협업도 살아난다.


우리 팀에서는 첫 만남에 이력보다 먼저 묻는 질문이 있다.

“요즘 어떤 일에 시간을 가장 많이 쓰고 있나요?”

이 질문을 통해, 상대가 자기 주도적인 시간을 보내는 사람인지,
그리고 지역 안에서 무언가를 이어갈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인지 가늠할 수 있다.


단기 협업보다 작은 동료 실험으로 시작한다


“작업을 같이할 수 있는 사람”과 “같이 갈 수 있는 사람”은 분명히 다르다.
우리는 지역에서 전자의 사람을 찾기보다, 후자의 가능성이 있는 사람을 발견하는 것에 더 집중한다.

그래서 일회성 외주가 아닌, 짧지만 기획과 실행을 함께 해보는 협업 실험을 선호한다.
예를 들어, 브랜드 제작이 필요할 때 단순한 디자인 아웃소싱이 아닌

“이 제품의 감도를 함께 찾아보는 한 달짜리 팀”을 구성해 본다.


이런 시도는 단순 결과물보다 관계의 신호를 먼저 읽게 해 준다.
누가 먼저 의견을 제안하는지, 어떤 피드백에 공감하는지, 문제를 어떻게 풀어나가는지.
'작게 함께 일해본 경험'은 미래의 동료 가능성을 판단하는 가장 정직한 방법이다.

이는 ‘학습형 팀 형성’이라는 창업교육의 개념과도 일맥상통한다.
단지 업무를 분업하는 것이 아니라, 함께 문제를 정의하고 해결하는 일련의 과정을 경험하며 심리적 안전감과 실행 리듬을 공유하는 팀을 형성하는 것.


거주 가능성도 함께 설계해야 한다


아무리 좋은 협업이라도, 상대가 지역에 머물 수 없다면 함께 갈 수 없다.
이건 현실이다.

실제로 2023년 농촌경제연구원 보고서에 따르면,
20~30대 청년 중 63%는 지역 정착의 가장 큰 장애로 ‘주거 환경의 불안정성’을 꼽았다.
즉, 삶의 기반이 확보되지 않으면 아무리 좋은 일도 지속될 수 없다.

그래서 우리는 창업자의 초기 고민 속에 거주와 생활 기반에 대한 설계가 포함되도록 돕는다.
예컨대

마을 내 유휴 공간을 리모델링해 단기 체류 공간을 만들거나

기존 커뮤니티에 연결되어 정착을 돕는 멘토링 제도를 가동하거나

한 달 살이 형태의 실험적 정주 기반을 운영하기도 한다

지역과 연결된 창업은 결국, 그 지역에 함께 살아가는 사람에게 삶의 장면까지 제안해야 한다.
이건 큰 비용보다 세심한 기획이 더 중요하다.



지방 창업가는 이제, 단지 '사업 아이템'을 만드는 사람이 아니다.
함께 일할 사람을 찾고, 그들이 오래 머물 수 있는 조건을 기획하는 사람이다.

지역의 인재 밀도는 단지 사람 수가 아니라, 함께할 수 있는 시간의 총합으로 결정된다.


결국 지방에서 인재를 만난다는 건, 사람을 ‘찾는’ 일이 아니라

함께할 수 있는 조건을 하나씩 마련해 가는 일이다.

그 시작은 거창한 아이템보다, 지속 가능한 일상과 관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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