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에서의 인재
지방 창업에 대한 담론은 늘 "지원금은 있었지만, 시스템은 없었다"로 수렴된다.
하지만 이 말은 절반만 맞다.
지방에는 지원금만 있는 것도 아니고, 시스템이 없던 것도 아니다. 문제는, 시스템이 지속되지 못했다는 데 있다. 그렇다면 질문은 이렇게 바뀌어야 한다.
"왜 지방에서는 시스템이 지속되지 못하는가?"
그 핵심에는 ‘인재밀도’의 구조적 차이가 있다.
지방 창업 현장에서 자주 등장하는 말이 있다.
“할 줄 아는 사람이 없다”, “팀을 꾸릴 수 없다”, “개발자를 못 구한다.”
하지만 지방에 사람이 아예 없는 건 아니다. 문제는 한 공간 안에 다양한 역량이 얼마나 밀집해 있는가다.
수도권은 다양한 직능과 역할을 가진 사람들이 물리적으로 가까운 거리에 존재한다.
디자이너, 개발자, 마케터, 영상 제작자, PR 담당자, 그리고 창업자.
이 모든 사람들이 지하철 30분 이내 거리에서 하나의 제품을 만들어낼 수 있다.
지방은 다르다.
디자인을 하는 사람은 있지만, 브랜드를 기획하는 감각은 멀리 있다.
개발은 외주로 가능하지만, 운영과 연동되는 커뮤니케이션이 어렵다.
단순히 사람이 적다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역량의 연결이 어렵다.
초기 창업은 결국 ‘사람’이다. 한 명이 혼자 할 수 있는 건 적다.
기획하고, 실험하고, 검증하고, 수정하고, 알리는 과정을 함께 할 수 있는 사람의 존재가 시스템의 시작이다.
그런데 지방에서는 마케팅을 논의할, 실험을 설계해 줄, 데이터를 해석할 전문가가 없다.
결국 창업자는 모든 역할을 혼자 떠안게 되고, 그 구조는 장기 지속이 불가능해진다.
인재의 부재가 아니라, 인재의 연결이 불가능한 구조.
이게 지방 창업 시스템이 깨지는 첫 번째 고리다.
많은 지방 정책이 공간과 자금에는 투자하지만, 사람과 사람 사이의 ‘밀도’를 인위적으로 설계하는 노력은 부족하다. 코워킹 공간은 있어도 진짜 협업은 없고, 교육은 많지만 함께 일해본 관계는 적다.
지방 창업이 지속되려면, 1인 창업자를 양산하는 게 아니라 함께 실패할 수 있는 팀을 만드는 구조가 필요하다.
수도권은 인재풀에서 팀이 나오지만, 지방은 관계망에서 팀이 만들어진다.
지방 창업 생태계는, 결국 기술이나 자금이 아니라 얼마나 다양한 사람이 가까이에서 서로를 신뢰할 수 있느냐에서 갈린다.
시스템은 문서가 아니라 관계로 작동하고, 지속성은 전략이 아니라 감각으로 이어진다.
좋은 관계로 맺어진 사람들을 잘 성장시키고, 유지시키며, 정착시키는 과정이 지방 창업의 근간이 아닐까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