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ii were there Dec 24. 2020

[01] 자가격리와 버지니아 울프

2020년 말 격리 속 나들의 이야기 - 01


'자가격리라니... 큰일이군...'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은 구성원과 두 시간 넘게 회의하고 함께 식사를 했지만, 함께 회의를 했던 3인은 모두 코로나 음성 판정을 받았다. 확진 판정을 받은 그의 체내에서 바이러스 활동이 활발해지기 전이었다는 운이 작용했지만, 일 때문에 높은 경계심 또는 경감심을 갖지 않았다. 스스로 반성이 된다. 그러고 보니 이상한 감정이다. 기사에서도 읽은 적이 있지만 코로나19 확진되거나 격리 상황에 빠지지 뭔가 내 잘못이라는 반성부터 하게 된다. 조심해야겠다. 자가격리 2주는 길다.


안녕하세요. OO구 보건소입니다. 귀하는 확진자의 접촉자로 분류되어 추후 전송해드리는 "자가격리통지서"에 기재된 날짜까지 자가격리를 "반드시" 하여야 합니다. (중략)


반드시란 단어에 찍힌 방점이 덤덤한 마음을 두근두근하게 한다. 안타깝게도 확진자를 포함한 회의에 참여한 이들은 회사에 중요한 직책을 맡고 있다. 확진 판정을 받은 후에도 자가격리 통보를 1차적으로 받은 후에도 업무는 계속된다. 보건소 지침을 기다리면 구성원들 불안이 증폭하니 선제적으로 업체에 요청하여 전체 방역을 실시했다.(다행히 모든 구성원은 음성 판정을 받았다)


이런저런 급한 업무들을 쳐내고 있지만 사무실에서 회의하고 근무를 하는 것보다 시간적 여유가 생긴다. 그동안 난 공공연하게 자가격리 상황에 처하게 되면 2주 동안 강도 높은 홈트레이닝과 밀린 독서 숙제를 하겠다고 선언(?)을 했었다. 드디어 숙제를 할 수 있는 여유가 생겼다. 한 해가 다 마무리되어가고 있는 이 시점에야 여유가 생기다니... 이건 이것 나름대로 뭔가 씁쓸하다.


여러 화상회의를 마치고 그동안 자기 전에 띄엄띄엄 읽던 버지니아 울프의 『자기만의 방』을 집어 들었다. 14일 동안 읽자고 쌓아둔 10권의 시작으로 적절하다.


1900년대 초, 유서 깊은 도서관에 여성문학의 존재는 미미하다. 지금도 여전하다. 누군가는 그때에 비해 현재 여성의 삶은 현격하게 좋아졌다고 한다. 그럴 수도 있다. 그전에는 너무 무시되고 억압되어 왔으니... 버지니아 울프는 이야기한다. 남성 작가들의 글들 중 '살아있는' 글들이 많은 이유는 그들은 무시받고 억압받고 차별받지 않으며, 여행도 할 수 있고 교육도 받을 수 있었고 자기만의 생각을 정리하고 글을 쓸 자기만의 방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 시대의 여성은 여행도 교육도 쉽지 않았다. 글이 쓰이기 몇십 년 전까지만 해도 여성은 결혼 이후 부를 축적할 수도 없었다.


(생물학적 남성인지라) 여행, 교육, 사회생활, 어떠한 상황, 어떠한 시간 속에서 억압, 차별 등을 경험하지 못한 나이지만, 가슴속 끓어오는 분노를 느꼈다. 하지만 "사이코지만 괜찮아" 속 사람들처럼 양팔을 엑스자로 교차하여 한 번씩 토닥일 필요는 없었다. 버지니아 울프가 더 쉬운 방법을 알려줬다. 버지니아 울프는 책 속에서 이루어지는 강의를 통해 더 많은 여성들이 글을 쓰기를 주문했다. 더 많은 글들이 세상에 나와 그 글들이 축적되어 문학도 사회도 세계도 바꿀 필요가 있음을 이야기했다.


"여러분이 쓰고 싶은 것을 쓰는 것, 그것만이 중요한 일입니다."


힘이 된다. 자가격리 중 내가 생각하고 겪은 이야기들을 쏟아내야 한다. 이 글들은 문학을 풍부하기엔 한 없이 부족하지만 우리 현 사회의 기록 중 하나가 될 수도 있다. 그리고 나의 기록은 향후 또 다가올지 모르는 전염병 창궐 정국에 아주 조그마한 아이디어를 제공해줄 수도 있다. 점점 무궁무진해진다. 하지만 자신할 수 있다.


(여러분이 작성한 글 또는) "책은 어떻게든 육체에 적응해야 합니다"


버지니아 울프의 이야기처럼 자가격리라는 14일간 나의 정신과 육체의 기록은 코로나19로 삶의 모습이 조금이라도 변한 사람의 이야기가 보다 응집되어 있을 것이다. 좋아. 문예창작학과를 가지 못해 글을 쓰며 살아가는 꿈을 접었던 나에게 좋은 기회가 열렸다. 이런 아름다운 생각이 온몸과 마음을 휘감고 있는데 갑자기 메신저가 울렸다.


"제가 월요일에 서류 작업을 하려 사무실에 다녀가는 길에 OOO과 접촉을 했기에 저도 진료소를 다녀왔습니다. (이로 인해) 저랑 만났던 분이 내일 중요한 전시회가 있는데 참석을 못하게 되었다고 합니다...(중략)... 물론 다들 음성 판정이 나와 무사들 하셔서 다행이지만 회사의 확진으로 막대한 손해와 차질을 빚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음성이 나온 건 다행이지만 마냥 농담하고 즐거워할 일인가 싶습니다."


조직의 코로나19 확산 위기가 지나려 하자 새로운 위기가 다가왔다. 비대면 상황의 조직 내 '불화'이다...


작가의 이전글 [프롤로그] 격리라니...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