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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i were there Dec 24. 2020

[02] 자기도 모르게 뛰어나온 위선

2020년 말 격리 속 나들의 이야기 - 02


메신저로 음성 판정에 대한 상호 격려가 이어지는 상황에서 A의 ‘지금이 이럴 때냐’는 식의 발언은 갑작스러웠다. A는 사무실 내 코로나19 확진자까지 나온 상황인데 확진된 동료와 그에 따른 사람들의 불안은 보지 못했다(어쩌면 보지 않는 것일지도). A는  자신이 확진 판정을 받은 구성원과 단 몇 분 마주쳐서 (아마도 그 후) 자기가 만난 지인이 피해를 입었다고 약간의 분노가 담긴 글을 남겼다. 분명 분노였다.


그는 무슨 주장을 하고 싶은 것일까? 확진 판정을 받은 구성원을 규탄하는 분위기를 바란 것인가? 아니면 자기 지인의 상황에 심히 공감하여, 그 공감이 확진자를 포함한 조직 구성원들에게 조금 과격하게 표현된 것일까? 나는 생각했다


위선이다.
자기 지인에게 향한 선의만 앞세운...


코로나19 확진이 비단 누군가의 잘못에 의해서만 발생하진 않는 것 같다. 불가항력적인 감염일 수도, 어쩌면 복불복일지도 모른다. 실제 확진 판정을 받은 그와 나는 몇 시간을 강도 높게 회의하고 식사까지 했지만 음성 판정을 받았다. 아직 잠복기인 상태에 접촉이었을 것이라 추측한다.


이런 상황인데 누군가가 고의로(혹은 심각한 부주의로) 코로나19를 퍼뜨리고 다니지 않는 이상 그 누군가를 비판하는 것이 타당한가? 불가능하다. 그래서 난 문제 제기한 이가 자기도 알아채지 못한 위선이 튀어나온 것이라 생각한다.


고백하자면 나 역시 나의 위선을 마주한 적 있다. 나는 확진 판정을 받은 구성원과의 밀접 접촉으로 어느 정도 확진을 기정사실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특별한 증세가 없어 확진 판정을 받은 동료 걱정으로 온 메신저를 채웠다.


하지만 사실 초조했다. 목요일 오후 3시경 선별진료소를 방문하여 검사를 받았는데 결과는 금요일 3시가 넘어도 나오지 않았다. 초조했다. 검사자가 폭증하여 의료진과 행정 공무원들이 빠르게 처리해도 늦겠지란 생각을 하며 의젓한 마음을 먹고자 했지만 초조했다.


'확진 판정을 받으면 어떡하지?', '젊은 사람들은 빨리 회복한다고 하지만 후유증이 있다는데', '지난주에 업무 차 방문한 타 단체가 6개가 넘는데 그분들은...' 여러 생각이 오갔다. 초조의 끝자락에 서 있었다. 어느 정도였냐면, 거주하는 지역의 도서관에서 문자를 보냈는데 미리보기에 "[OO구립도서관] 코로나19 확...."이라 뜨니 확진됐구나라고 생각했을 정도이다(실제 내용은 "확산에 따라 휴관연장"이란 내용이었다).


그런 초조가 온 마음을 지배할 즈음인 금요일 17시 46분 드디어 문자가 왔다.



결과는 음성이었다. 나는 코로나 19에 확진되지 않았다. 그리고 바로 든 생각은 '다행이다'였다. 어쩌면 당연한 의식의 흐름일 것이다. 하지만 나 역시 내 상황만을 고려했다. 지금까지 수많은 문장들로 확진자를 위로하던 나는 사라지고, 내 사지가 멀쩡한 것만 중요한 사고가 맨 앞줄에 서 있었다. 그 순간 분명 확진을 받은 동료의 건강, 확진 판정을 받았지만 병상 등의 부족으로 집에서 대기하고 있는 동료의 불안은 생각나질 않았다. A가 확진 판정을 받은 동료를 저격하자(?) A를 위선적이라 생각함과 동시에, 문자를 받은 직후 내 감정 역시 ‘위선적'이었단 생각이 불현듯 떠올랐다. 말 그대로 나도 모르게 튀어나온 위선이었다.


그래서 위선적인 A를 조금 이해하게 되었다. 자기와 자기 지인의 안위만을 생각한 그의 불편한 위선이 이해가 되었다. 그도 분명 불안하고 초조한 것이었을 것이다. (실제 피해가 있었는진 모르겠지만) 지인의 피해에 대한 핑계를 찾아야 할 정도로 불안하여 자신도 깨닫지 못한 위선이 불현듯 튀어나온 것이다.


다행인 건 A와 달리 사무실 내 다른 동료들은 성숙한 동료애를 드러냈다(물론 그들도 위선적 일수 있지만). 지금이 농담할 때냐는 A에게 동료들은 다음과 같은 말들을 메신저로 전달했다.


"즐거워하신 건 아닌 거 같아요. 다행스러운 소식에 서롤 위안한다고 생각하면 어떨까요?"


"긴급한 상황에 구성원들이 날카로워지신 것 같습니다. 조마조마한 상황이고 힘든 상황이지만 이럴수록 여유를 가지고 서로를 보듬었으면 합니다."


미셸 오바마(Michelle Obama)의 연설이 떠올랐다.


When they go low, we go high.
(저들이 저급하게 가도, 우린 품위 있게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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