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말 격리 속 나들의 이야기 - 03
코로나19 자가격리에는 허점이 존재한다. 아니 구멍이다. 잘못되면 걷잡을 수 없을 테니 구멍이라고 하는 게 좋겠다. 물론 매일 1000명에 달하는 확진자가 발생하여, 보건, 행정 관련 담당자들이 쉴 틈도 숨 쉴 틈도 없이 업무에 투입되고 있으니 구멍은 존재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무엇보다 우리 중 그 누구도 이런 세상을 경험해본 적이 없으니 조금의 허점들이 있기 마련이다.
그런데도 굳이 내가 자가격리의 구멍을 이야기하는 건 시민의 불안을 최소화하고 누군가들의 악용을 방지하기 위한 어떤 '대안'이 필요함을 이야기하고 싶어서이다. 미리 밝히자면 난 사사건건 투덜대는 투덜이도 프로불편러도 아니다.
2021년에는 아스트라 제네카, 얀센, 화이자 등 코로나19 백신 접종이 시작되어, 분명 코로나19 확산세는 한 풀 꺾일 것이다. 그렇게 되면 자가격리자들도 대폭 감소할 것이다. 백신 접종 이후에는 밀접접촉했다고 하더라도 감염 검사 후 음성 판정이 나오면 무리한 자가격리를 강제하기란 쉽지 않다. 시민들에게도 고역이다. 경험해보니 잘 지낼 수 있을 것이란 호언장담과 달리 엄청 지루하다(이래서 정부는 자가격리 시 심리적 안정과 회복을 돕기 위해 보건복지부 통합심리지원단을 운영하고 있다) .
한 주 전으로 돌아가 생각해보면, 코로나19 확산을 막기위한 '대응이 느리다'는 인상을 강하게 받았다. 난 코로나19 확진자 밀접접촉자인데 스스로 자가격리하고 어떤 연락 등을 기다리는 것 말고는 방법이 없었다. 각 지방정부 보건소, 행정 담당자들이 일분일초도 쉬지 않고 전화를 돌리고 문자를 보내고 있었겠지만, 연락이 다소 늦었다. 난 하염없이 전화기만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함께 회의와 식사를 한 동료의 확진 소식은 12월 17일인 지난주 목요일에 들려왔다. 역학조사를 통해 빠르게 접촉자들에게 해당 사실을 알려야 했다. 하지만 관련 대응은 행정과 역학조사관보다 당사자들이 더 빨랐다. 우리는 확진자의 지난 동선을 고민하여 회의했던 사람들에게 연락을 돌려 확진 사실을 알렸다. 모두가 자발적으로 빠르게 검사를 실시하고 타인 접촉을 줄여달라고 요청했다. 행정과 역학조사관이 아닌 확진자와 확진자 동료들이 직접...
동료가 확진 판정을 받은 다음날인 12월 18일 오후에야 확진자 거주지 공무원에게 전화가 왔다. 대략 이렇게 말했던 것 같다.
"OOO님이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아서 연락드렸습니다. 검사받으시고 검사 결과 나올 때까지 자가격리하셔야 합니다."
물론 현재 시행되고 있는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 대응 지침 (지자체용)"에 따르면, 확진환자의 접촉자 관리는 "최초 인지 보건소가 확진환자 인지한 당일(24시간 이내)에 가족(동거인 포함) 등 접촉자를 우선 파악하여 자가격리 조치 시행"이라고 규정하고 있다. 곰곰이 떠올려보면 얼추 24시간을 넘지는 않은 것 같다. 행정은 매뉴얼대로 진행했고 문제가 될 것은 없다.
하지만 만약....정말 만약에 확진자가 접촉한 사람이 다수라면, 이는 더 큰 코로나19 확산으로 번질 수 있다. 실제 우리 상황을 생각해보면 아찔했다. 확진 판정을 받은 동료는 조직 내 주요 직책을 맡고 있어 외부 접촉이 잦았고 무엇보다 회의가 많았다. 또한, 연말이면 응당 마무리해야 할 일들이 많다. 그래서 가까운 시일 내 만났던 많은 이들에게 빠르게 연락을 돌릴 필요가 있었지만, 밀접접촉자인 나에게도 연락이 24시간을 거의 채워서 이루어졌다. 안타까운 대목이다.
그 후에도 공식 통지는 늘어졌다. 아니 느렸다(물론 매뉴얼 상 문제는 없을테지만). 확진자 발생 지방정부에서 내가 거주하는 지방정부로 통보하여 우리 지역 보건소에서 밀접접촉자라고 자가격리 통지가 이루어진 것은 하루가 더 지난 12월 18일 토요일이었다. 토요일 오전 우리 지역 역학조사관이 사무실에 방문하여(난 앞서 언급한 것과 같이 직주근접 상황이다), 확진자 동선 등을 확인한 후 오후 즈음 연락을 줬다. 이때는 이미 확진자 발생 이틀이 지난 후였다.
문자로 통지는 하루가 더 걸렸다. 일요일 정오가 지나서 드디어 내가 거주하는 지역에서 자가격리 통보를 받을 수 있었다. 이미 확진자가 발생한 후 사흘이 지난 후였다.
해당 문자가 온 지 약 2시간 후에는 문자로 '자가격리통지서'를 보내주었다. "자가격리대상자를 위한 생활수칙 안내문", '자가격리대상자를 위한 안내", "코로나19 확진 전 자가격리자 폐기물 안전처리 가이드" 등과 함께 "자가격리 어플 설치"를 안내해주었다.
이 부분이 가장 구멍이라고 생각한다. 사실 "자가격리자 안전보호" 어플을 설치하지 않으면 유선으로 자가격리 통보를 받았다고 하더라도 대상자가 외출을 하거나 돌아다녀도 확인할 수가 없다. 확진자와 밀접접촉하여 재확산 우려가 높은 (나 같은) 대상자들은 좀 더 철저한 관리가 필요하다. 그럼에도 확진자가 확진 판정을 받은 시간부터 계산하더라도 약 사흘가량의 구멍이 존재한다. (물론 난 겁쟁이라 그렇게 하진 않았지만) 자가격리를 해야 하는 확진자 밀접접촉자들이 계속 사무실에 나가고 누군가와 회의를 하고 밥을 먹더라도 알 수가 없다. 어플이 설치된 후에야 그가 어디에 있는지 관리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난 프로불편러가 아니다. 지금도 확진 판정을 받은 모든 이들의 아픔과, 이들과 함께 묵묵히 자기 현장을 지키는 보건, 행정 담당자들의 수고를 진심으로 걱정한다. 그렇기 때문에 백신 접종 전까지 최대한 코로나19 확산을 막아 모두의 아픔과 피로 등을 줄여가야 한다고 생각한다(무분별한 비난을 하는게 아니라는 걸 강조하고자 괜한 사족을 달아본다).
물론 실현 가능한 구멍 메우기 방법은 좀 더 고민해야 하겠지만, 쉽게 접근하여 대안을 모색해보면 한다. 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최우선 과제로 설정하고, 관련 통지 등을 최대한 빠르고 간소화할 필요가 있다. 또한 후속 과정을 대응하기 위해 통합행정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이 대안이 될 수 있다.
현재 확진자가 발생하면 A지방정부에서 B지방정부까지 관련 사실이 전달되는데 시간이 소요된다. 이는 확진자가 늘어나고 자가격리자가 늘어날수록 더욱 병목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굳이 유선 통지를 고집하지 않고 빠르게 문자 등으로 자가격리 대상자임을 우선 통지하고 "자가격리 안전보호" 어플 설치를 안내할 필요가 있다. 개인적 경험과 감정일수 있지만 어플 설치 전 후 자가격리를 대하는 자세는 달라진다.
그리고 자가격리자의 해당 지방정부에서는 보건소, 자가격리 관련 부서 등이 통합 운영되는 체계와 시스템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 자가격리 통지와 어플 설치 이외에도 생활물품, 생활지원비를 위해서는 동주민센터와 소통해야 한다. 업무가 늘어나는 부담은 있지만 인력을 더욱 충원해서라도 시민들에게 한 번에 보건행정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도록 최대한 절차가 간소화되어야 한다. 우리 지역에서는 코로나19 재난관리상황반이 구성되어 있지만, 실제 자가격리 통지부터 생활에 필요한 정보제공, 생활 지원 등의 행정이 모두 분산되어 있음을 여실히 느낀다(행정의 어쩔 수 없는 성격인가..).
다가오는 2021년에는 코로나19 진단검사와 통지보다 더 복잡하고 혼란스러울 백신 접종이 기다리고 있다. 백신마다 접종 횟수 등도 상이하기 때문에 그 어느 때보다 통합된 보건행정 체계가 필요하다고 생각된다. 그리고 안 봐도 1년 가까이 코로나19로 움츠려 있던 시민들의 행정적 요구가 폭발할 것이다. 이를 대비할 필요가 있다.
글을 쓰고 보니 자가격리를 하며 생각할 시간이 많아서 어느새 우리나라 보건의료, 보건행정 체계까지 고민하고 있다. 사회에 관심이 더욱 많아지는 건 자가격리의 장점인가...
코로나19 자가격리 구멍에 대해 글을 적고 있지만, 여전히 난 확진자들과 보건, 행정 담당자들이 걱정된다.
지금 이 순간에도 각자 현장에서 고군분투 중인 모두에게 경의를 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