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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i were there Dec 28. 2020

[04] 긴급 지원이 필요한 자가격리 중인 그를 위해

2020년 말 격리 속 나들의 이야기 - 04


‘자가격리자 안전보호’ 앱을 설치하고 ‘공식적인’ 자가격리를 시작한 지 이틀이 지난 화요일 한 통의 문자가 날아들었다(자체적인 격리에 들어간 지는 벌써 6일째였다).



"안녕하세요. OO동 사회복지담당자 OOO입니다. 
자가격리 중이신 내역 보건소에서 통보받고 연락드립니다. 문자 확인 후 바로 회신 부탁드립니다.
자가격리자는 생필품 구매를 위해 바깥출입을 할 수 없으므로 생필품 구매를 위한 현금(가구당 10만 원)을 지원하고 있습니다. 10만 원 이상 온라인 구매하시면 됩니다.
온라인 구매가 곤란하신 분은 "생필품 키트 요망. 성명 000"으로 답장 주시기 바랍니다.
현금 10만 원 지원을 희망하시는 분은 "00은행 계좌번호 ******* 예금주(반드시 자가격리자 본인)" 으로 회신주시기 바랍니다."



자가격리를 시작하며 머릿속에 떠올린 모습 중 하나가 긴급 생활용품과 방역 관련 용품이 충분히 들어있는 생필품 박스였다. 관련 내용은 언론뿐 아니라 다양한 사용 후기(?)를 통해서 익히 알고 있었다. 하지만 내가 받은 건 박스가 아닌 문자였다(문자가 온 후 몇 시간 지나지 않아 아래와 같이 간이 체온계, 의료폐기물 봉투가 담긴 박스는 받았다). 




물론 이해한다. 이해하는 이유는 항상 동일하다. 매일 1000명 가까이 발생하는 확진자와 관련 자가격리자를 감당하기에 보건, 행정 담당자들은 정신없이 바쁘고 힘들다.


이해는 이해지만 걱정거리 역시 동시에 발생한다. 바로 생필품이 당장 필요한 누군가에게 최소한의 생존을 위한 지원마저 지체될 가능성이다.


지방정부마다 차이가 있지만, 현재 자가격리자에게 생필품 등의 지급은 상당한 시간이 소요된다. 뇌피셜이 아니다. 같이 자가격리 중인 동료가 거주하는 지방정부 공무원은 생필품 신청해도 2주 정도 걸린다고 답했다고 한다(사실상 10만 원 지원을 유도한 셈인가). 2주 후면 격리도 끝나고 ‘긴급’ 생필품 지원이 필요할까? 10만 원 지급도 느리다고 한다(물론 지급 시기도 지방정부마다 다르다).


앞서 말한 것과 같이 내가 하는 괜한 걱정은 정말 ‘긴급’하게 생필품이 필요한 사람들은 손 쓸 방도가 없다는 것이다. 어떤 가정을 해봤다. 


현재 현금도 없고 온라인 쇼핑도 하지 못하는 사람이 있다. 그는 증상은 없지만, 주변에 확진자가 발생해서 검사를 받고 검사 결과가 나오기 전까지 집에 머무르고 있다. 그런데 밀접접촉자로 분류되었으니 2주 동안 집에 머물라는 통보를 받는다. 집에는 먹을 것도 없는데 나가서 뭘 살 수도 없다. 사고 싶어도 오늘 일을 못 나가서 현금도 없다. 그런데 청천벽력 같은 이야길 듣는다. 확진자가 너무 폭증해서 행정처리가 다소 지연을 겪어 생필품 지원 역시 지체될 수 있다는 소식(문자)이다.


만약 실제 이런 상황이라면 자가격리로 인한 정신적 고통에 굶주림이라는 예상치 못한 상황에 부딪히게 된다. 행정이 이런 상황에 놓여 있을 수도 있는 시민을 좀 더 면밀하게 살펴 챙겨야 한다. 복지의 개념도 아니다. 비상한 시기에 최소한의 인간적 생존을 챙기기 위해서는 보다 촘촘한 행정이 필요하다.




연말이라 그런가. 괜한 걱정이 는다. 걱정 한 아름 안고 환기를 위해 창문을 열었는데, 오래된 빌라가 밀집해 있는 우리 동네 풍경을 바라보다 내 걱정 속 그들이 지금 배고프다고 신음하고 있진 않을까 라는 생각마저 들었다. 답답하다. “띠링”. 문자 벨소리가 울린다. 생필품 지급 대신 10만 원을 신청하겠다는 의사에 대한 답장이 왔다.


네. 구청으로 지급 요청하겠습니다.
연말 예산출납폐쇄 관계로 1월 중순경에 입금됩니다. 양해 부탁드립니다. 입금 후 문자 드리겠습니다.
여러모로 불편한 시간이시지만 자가격리 수칙 지키시며 잘 이겨내시기 바랍니다.


걱정이 차곡차곡 현실이 되어간다....이런...





[사족]

대부분 대문 사진은 pixabay의 훌륭한 사진들을 활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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