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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i were there Feb 18. 2022

나는 하동에 사는 저 쥐가 부럽다

[프롤로그] 서울 쥐와 하동 쥐 이야기 - 0


나는 서울에 살고 있다.

서울에 살고만 있지 서울 태생은 아니다.

학업을 핑계로 직장을 핑계로 서울로 흘러들어왔다.

아니 선택에 의해 서울에 자리를 잡았다.


그냥저냥 살다 보니 어느새 13년...

삶의 기준으로 봤을 땐 삼분지 일을

서울이란 도시에, 수많은 인연들에 기생하며 살았다.

(내 삶도 그냥저냥 흘러 어느새 39년이 지났다)


하동 쥐는 가장 최근에 들어간 직장에서 만났다.

심지어 동기다. 같은 날 입사했다.

하동 쥐는 나의 비루한 기생적(?) 삶 속에서 그저 그런 인연으로 지나갈 가능성이 매우 높은 쥐였다.

만남 초기엔 특색이란 게 없었다. 언뜻언뜻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 정도라 생각될 정도..

아... 그는 나보다 한 살이 많지만 우린 친구가 되었다.

라떼는 '정신과 시간의 방'마저 헷갈린다는 '빠른 생'이란 별종이 있었고 그게 나다.


하동 쥐와 같은 부서가 아니었기에 가끔씩 술잔을 기울이며 데면데면했다.

1년여도 지나지 않은 어느 날 하동 쥐는 뜬금없는 소리로 조직을 혼란케 했다.

(직접 인용 인척 했지만 이미 시간이 오래되어 내 머릿속에서 각색되고 왜곡되었을 멘트다)


말로만 지역을 위해 일하는 게 아니라
지역이라는 현장에서
직접 부딪히며 일을 해보고 싶습니다.
일을 그만두고 하동으로 돌아가겠습니다.


그때의 느낌은 뭐랄까...

이상한 펭귄이 북극에서 헤엄치다 우주로 통하는 블랙홀을 발견했다는 느낌을 주는 퇴사의 변이었다...


언제나처럼 술자리를 함께하며 동료의 퇴사를 만류했다.

그때부터였다. 난 하동 쥐와 둘도 없는 친구가 되어버렸다. 오지게 걸려브렀다..


결과는... 이 글들의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그는 하동으로 돌아가 다시 하동 쥐가 되었다.

그는 지역에서 다양한 일들을 하기 시작했다.

지역의 사회적경제 조직에 들어가서 지역민의 삶과 밀착한 프로그램들을 개발해냈고,

즐겁게 일을 했다. 주변에 좋은 사람들이 끊임없이 불어났다.


그의 행위(?)는 느슨해진 서울쥐의 삶에 긴장감을 주었다.

그동안 나는 여전히 그 조직에서 '지역혁신', '사회혁신'이란 미명 하에

여러 활동을 전개하며 여전히 기생적(?) 삶을 살았다.

물론 전국 수많은 지방정부들과 일을 하며 다양한 대안들을 만들고 실행했다.

경력과 실적은 쌓여갔지만 뭔가 부족한 느낌이 가득한 나날들이었다.


그렇게 난 서른아홉이 되었다.

당연히 하동 쥐는 마흔이 되었다.

우린 2021년 연말을 함께 보내며 여전히 서로를 힐난했다.(우린 이유 없이 그리 대화한다)

그러던 중 막연히 내 마음 한켠 어딘가에 자리 잡고 있던 '이상'이 형태를 갖춰가는 것을 느꼈다.

제1의 아해가 무섭다고 한다더니 나의 제1의 자아가 긴장감을 느꼈다.

기생적이나 불만족스럽진 않았던 삶이었지만 '변화'의 필요성이 이유없이 밀려왔다.


무엇보다 난 형언할 순 없지만 하동 쥐가 부러웠다...


우린 새해가 되면 우리의 이야기를 글로 남겨보자고 다짐했다.

마흔을 앞둔 비루한 서울쥐와 마흔이 된 이상한 하동 쥐가 서로에게 꼰대 짓을 해보기로 했다.

우리의 꼰대력은 자타공인이기 때문에 그 나름만으로 콘텐츠가 될 것 같았다.


결과는 모르겠다. 글이 계속될지...

우리의 이야기가 우리와 비슷한 연령대의 비슷한 고민을 하는 이들에게

아주 조금의 긴장감은커녕 재미도 못 줄 수도 있지만,

적어도 새벽별이 가득하고 피워둔 불이 꺼질 때까지 계속된

우리의 허무맹랑한 이야기들의 기록 또는 증거(?)라도 될 수 있을 것 같다.


다시 생각해보니 학창 시절의 '교환일기'가 될 수도 있겠다.

내가 마흔아홉이 되고 하동 쥐가 쉰이 되어

둘 다 온라인 상의 잊혀질 권리를 주장하게 될 흑글들이 가득하길 기대하며

"서울 쥐와 하동 쥐의 이야기"를 시작한다.





p.s. 서울 쥐와 하동 쥐라는 순서는 그냥 이 계정 주인이 나라서 날 앞에 세웠다. 큰 의미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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