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행배틀

불행마저 순위를 매기는 사회

by 이영

누구에게나 타인의 위로가 필요한 순간이 있다. 감정을 잘 표현하는 사람도, 감정을 꺼내기 어려워하는 사람도, 때로는 누군가에게 속마음을 털어놓고 단 한 마디라도 따뜻한 말을 듣고 싶어질 때가 있다. 위로의 방식은 사람마다 다르다. 그러나 위로의 방식이 아무리 달라도, 단 하나, 확실히 듣기 싫은 말이 있다.
“그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야. 나는 옛날에…”


네가 겪은 불행이 크다고 해서, 내 불행이 작아지지는 않는다. 네 상처가 깊다고 해서, 내 상처가 얕은 것도 아니다. 불행은 비교의 영역에 있지 않다. 아픔은 각자의 것이고, 그 체감은 온전히 개인에게 속해 있다. ‘할아버지가 병마와 싸우는 모습을 지켜보는 게 너무 힘들다’는 말에, ‘우리 할아버지는 이미 돌아가셨어. 그게 뭐가 힘들어’라고 말하는 순간, 대화는 단절된다. 위로는 사라지고, 감정은 무시된다. 너의 고통이 진짜라면, 나의 고통 또한 가짜일 수 없다.


우리는 은연중에 불행을 계량화하고 수치화하여 저울질한다. 더 아프고, 더 불행한 사람 앞에선 자신의 고통을 말하는 게 죄처럼 느껴진다. 누군가의 불행을 보며 “나는 쟤보단 낫지”라는 생각으로 위안을 삼기도 한다. 그렇게 불행 또한 어느새 경쟁이 되고, 고통은 서열화된다. 이기기 위한 싸움은 아니지만, 어느새 ‘그 정도는 별거 아니지’라는 말이 입에 붙는다. 고통을 살아가는 사람이 아니라, 고통을 줄 세우는 사람으로 살아간다.


각자의 불행에는 순위가 없다. 덜 불행한 사람도, 더 불행한 사람도 없다. 그저 ‘불행을 감당해야 하는 사람’과 ‘감당하지 않아도 되는 사람’이 있을 뿐이다. 고통은 외부로부터 측정될 수 없다. 그것은 오직, 그 고통을 살아내는 사람에게만 실감 나는 무게다. 그러니 비교하지 말자. 네가 느끼는 고통이 진짜인 것처럼, 내가 느끼는 고통도 진짜다. 누군가는 말해야 한다. 위로는 누가 더 아픈지를 가리는 말에서 나오지 않는다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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