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문득 나를 바라보니...

by 나무

"띠링띠링~~"


정적을 깨는 차가운 알람 소리에 기계적으로 몸을 일으켰다. 서둘러 와이셔츠 다릴 준비를 했다. 주말에 다림질하는 것을 깜박해서 우선 오늘 입을 거 하나만 얼른 준비해야 했다. 그 날 마음에 들지 않은 와이셔츠를 다리면 완전 낭패다. 서둘러 다른 걸 다림질하던지, 억지로 입으면서 투덜투덜 짜증내고 나가는 뒷모습을 보던지 둘 중 하나다. 씻고 나온 남편은 방으로 들어가 출근할 준비를 한다. 그 사이 난 아이들이 자고 있는 방을 살포시 들어가 큰 아이를 어루만지며 아침잠을 깨운다.


가은: "으~~~ 윽~(기지개하며)"

나무: "학교 가야지~~ 잠 깨면 나와~!"


부엌으로 나온 나는 아이들이 먹을 시리얼과 과일을 준비했다. 남편은 방에서 나오며 외투를 걸쳤다.

남편: “나 갔다 올게”

나무: “핸드폰 챙겼어?”

남편: “응~갔다 올게~!!”

나무: “다녀와~~”


우리가 대화를 가장 짧게 한 날은 아침에 이렇게 단 네 마디만 하고 지나간 적도 종종 있다. 하루를 고되게 보낼 땐 아이들을 재우면서 같이 잠들어버리는 경우도 있었다. 퇴근해서 들어오는 소리도 듣지 못하고 잠에서 취한 채 그다음 날이 되어 버린다. 하루에 단 네 마디. 그게 전부 일 때도 가끔 있었다.

이제 큰 아이를 보낼 차례이다. 아침을 다 먹은 아이는 양치를 하며 학교 갈 준비를 한다. 나는 씻고 바로 입을 수 있도록 깨끗하게 세탁한 속옷과 양말을 꺼내 놓는다. 상, 하의는 가은이가 선택해서 입을 수 있도록 한다. 사실 내가 골라준 옷을 입고 싶지 않아 하는 것 같아서 자기 입고 싶은걸 직접 선택하게 한다. 계절에 맞지 않은 옷이 아닐 경우를 제외하고 그냥 입고 싶은 대로 입게 놔둔다.

나무: “8시 넘었어! 부지런히 준비해~!”

가은: “알았어~엄마! 소은이 일어났어~!!”

작은 아이가 눈을 비비며 방문을 열고 나왔다. 내 품에 폭 안기는 소은이의 온기를 느낀다.

나무: “우리 소은이 잘 잤어?”

소은: “엄마~!! 나도 언니가 먹은 거 먹을래~!”

나무: “그래~얼른 앉아! 엄마가 가져다줄게.”

언니가 하는 대로 먹는 대로 다 따라 하려는 소은이의 모습을 보면 피식 웃음이 새어 나온다.


가은: “엄마~갔다 올게~!!”

나무: “응~중간중간에 물 좀 마셔~!!”

가은: “알았어~바이 바이~”

아침엔 엘리베이터 기다리는 시간이 길어서 아예 탈 생각을 하지 않고 걸어 내려가는 가은이의 뒷모습을 보며 문을 얼른 닫았다. 그리고 바로 베란다로 달려가 아파트를 나서는 아이가 학교 가는 방향으로 잘 가는지 내려다본다.


나무: “이제 하나 남았네....

소은아 다 먹었어? 늦었으니깐 얼른 양치하자!”

소은: “나 사과도 먹고 싶은데..... 내가 사과 되게 되게 좋아하는데.....”


물론 사과를 좋아하는 건 알지만 지금은 정말 먹고 싶어서 하는 말이 아니란 걸 안다. 주말 지내고 월요일이 되면 어린이집을 가기 싫어서 하는 작은 아이의 월요일 고정 멘트. 나는 하는 수 없이 소은이의 바람대로 해준다. 작은 아이한테는 항상 ‘을’이 되어버린다 난.....

나무: “소은아 그럼 이 사과만 먹고 얼른 양치하자! 지금 준비해도 너무 빠듯해!

알았지? 약속했어? "

소은: “응!!!”


소은이의 대답이 반신반의하지만 어쩔 수 없이 나의 조바심을 내려놓는다. 아이가 사과를 먹는 동안 난 화장실로 후다닥 뛰어 들어가 양치와 세수를 재빨리 끝낸다. 그리고 로션을 얼굴에 버무리며 펴 바르고, 눈썹을 후다닥 그리고 소은이에게로 향했다.

나무: “소은아 사과 다 먹었어? 우리 지금 나가야 해!! 어린이집 늦었어!!”

소은: “엄마!! 나 사과는 다 먹었는데 다른 거 맛있는 거 먹고 싶어!!!”

나무: “아니야~!! 어린이집 가면 간식 또 먹잖아 얼른 가자~!!”

소은: “싫어~싫단 말이야~!! 나 맛있는 거 먹고 싶단 말이야!!"

속이 부글부글 끓는 걸 참고 이를 꽉 물고 소은이를 바라보았다.

나무: “야!!!! 이소은! 너 사과만 먹고 어린이집 가기로 약속했어 안 했어???”


소은이는 울먹울먹 거리며 입술을 삐죽삐죽거렸다. 눈물이 그렁그렁 맺힌 얼굴로 억울하다는 듯 나를 쳐다본다. 가슴이 답답하고 먹먹하고 죄여 온다. 다시 마음을 가다듬고 옷장 앞으로 아이를 데리고 갔다.

나무: “소은이 오늘 뭐 입을래?”


다급한 마음에 아무거나 집고는 아이에게 말을 걸었다.

나무: “오늘 이거랑 이거 입을까?”


내가 들고 있는 옷을 빤히 바라보더니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소은: “아니~!!!!”


어렸을 때부터 소은이는 자기가 입고 싶은 옷 취향이 뚜렷했다. 그래서 어디 외출하려고 하면 항상 나가기 전부터 피곤했고, 둘째 아이를 보며 첫째 아이는 거저 키웠구나 싶은 생각도 가끔 들기도 했다.


나무: “그럼 뭐 입을래?”


옷장으로 다가가더니 이 옷 저 옷 골라가지고 온다.

나무: “그래~그럼 그거 입어!”


아직도 얼굴엔 화가 묻어 있다. 바지도 씩씩 거리며 입고 있다. 속에 입은 내복 때문인지 바지가 잘 올라가지 않자 짜증 나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본다.


나무: “왜? 엄마가 도와줄까?”

소은: “아니! 그게 아니라 난 여기서 바람이 나오는 게 싫어!!”

그러면서 고사리 같은 조그마한 손가락으로 콧구멍을 가리킨다. 숨을 쉴 때마다 나오는 콧바람이 싫다고 하는 이 아이를 어떻게 해야 할까? 그 상황이 하도 어이가 없어서 큰 언성을 낼 수조차 없다.


나무: “소은아~아빠도 소은이처럼 바람이 나오고, 엄마도 나오고, 언니도 나와. 이 세상을 살고 있는 모든 사람은 코에서 바람이 나와~바람이 안 나오면 사람은 살 수 없어~!”


아직도 잔뜩 찡그린 얼굴로 날 바라보며 말한다.


소은: “그래도 난 바람 나오는 게 싫어!!!!!”


아이들이 원하는 여러 가지 요구사항이 있지만 해결할 수 없는, 이런 터무니없는 걸 요구할 때 엄마들은 혈압이 상승한다. 게다가 이미 어린이집 등원 시간이 늦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런 요구를 하며 떼를 쓸 때는 망치로 머리를 맞은 듯 멍해지기도 한다.

나무: “이소은!!!!!! 지금 늦었다고 이야기했지?????

엄마 진짜 화나려고 해!!! 얼른 준비 해!!!!!”

울음이 터진 아이는 옷 입을 생각도 하지 않고 목 놓아 운다. 이미 지친 나는 그런 아이를 바라보고만 있다.


나무: (죽을 거 같은 느낌으로) “아휴....... 달래줄 힘도 없다..”

한참을 바라보다 울고 있는 아이에게 말을 건넨다.


나무: (축 쳐진 목소리로)“소은이 이리 와....”


그 말이 끝나자마자 내 품으로 달려온 아이의 모습을 보니 착잡하다.

그냥 한번 참고받아줄걸... 그걸 못 참고...

아침부터 한바탕 전쟁을 치르고 기운이 다 빠진 채 한 손엔 어린이집 가방을, 다른 한 손엔 소은이의 작은 손을 잡고 드디어 밖을 나간다.


나무: “집 밖 나가기가 힘들다 소은아~”


크게 한 숨을 쉬며 말했다. 소은이는 아무 일 없다는 듯이 여기저기 바깥 구경을 하며 따라온다. 나 말고도 여기저기서 애들을 데리고 하나, 둘씩 나와 횡단보도 앞에 나란히 서서 신호를 기다렸다. 거의 매일 보는 엄마와 아이들 얼굴이라 낯은 익지만 아이가 몇 살인지, 무슨 반인지 물어보지 않는다. 그냥 귀찮다. 사람을 알아 간다는 것 자체가... 소은이가 이 어린이집에 다닌 지 반년이 훌쩍 넘었지만 그냥 아는 사람 없이 이렇게 지내고 있다.


어느새 어린이집 앞에 도착했다.


나무: “소은아 재미있게 잘 놀아~”

소은: “엄마! 빨리 데리러 와야 해!!”

나무: “응~알았어! 안녕~”


우리 모녀는 그렇게 쿨하게 헤어지고 뒤돌아섰다. 같은 길을 걸어왔던 아이들과 엄마는 우리와 달리 다소 스위트 하게 헤어짐을 하고 있었다.

어린이집 엄마: “아들~~ 아들~~!! 엄마가~~ 아들~보고 싶을 거야~~! 엄마 보고 싶어도 어린이집에서 잘 놀고 있옹~~~!! 쪼~~ 옥!! “


아찔한 높이의 힐에 블랙 슈트를 차려입고 곱게 메이크업 한 이 엄마는 근처에 있는 대기업에 다니고 있다. 인사는 안 하지만 그녀가 목에 걸고 있는 사원증이 그걸 증명하고 있다. 원래 이 아이는 엄마보다 거의 할머니가 등, 하원을 시켜준다. 아마 부부가 맞벌이라서 그런 거 같다. 맨 얼굴에 모자 푹 눌러쓴 나와는 차림부터가 다르다.

아이를 어린이집에 데려다주고 왔던 길을 다시 돌아가며 생각에 잠긴다. 이 지역에 온 지 몇 달이 지났지만 아직은 낯설다. 친구도 엄마 아빠도 없는 곳에서 지내는 건 사실 나에겐 쉽지 않다. 낯선 곳에서 사는 건 마치 무인도에서 사는 거 같은 느낌이 든다. 남편 직장 때문에 세 번의 이사 경험이 있지만 낯선 곳은 그저 낯선 곳이다. 환경도 사람들도 낯선, 나를 위해 오롯이 존재하는 것이 어느 곳에도 없어 보인다. 그저 누군가를 위해서 사는 삶만 있는 거 같다.

나는 벌써 집에 도착해 있었다. 텅 빈 집을 보며 우두커니 서 있다.

나무: “뭐... 해야 하지?.........”


계속 생각해보아도 떠오르는 건 없다. 그저 청소하는 것밖에....

청소하기 위해서 모든 창문을 열었다. 아래를 내려다보니 사람들은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나무: “사람들... 참... 바빠 보이네...”


예전에는 박사과정까지 공부를 계속하고 싶었다. 석사과정을 하면서 결혼을 하게 되었고 졸업 후 난 남편 직장 때문에 30년 넘게 살아온 곳을 떠나 머나먼 낯선 땅으로 와버렸다. 외국은 아니지만 마치 말이 안 통하는 다른 나라로 이사 간 것만 같은 느낌이었다. 사실 학교 다닐 때는 남편 때문에 자기가 하는 일 다 정리하고 따라가는 친구들 모습을 보면 그저 안타까웠다. 그저 남편에게 얽매인 수동적인 삶을 살고 있다고 마음속으로 생각했다. 그리고 그들의 삶이 멋있어 보이지 않았다. 혼자 멍하니 창문을 바라보고 생각에 잠긴 나를 알아차리며 나지막하게 말한다.


나무: “딱..... 내가 그렇게 살고 있네.....

나라고.... 별 수 없구나..... 쳇....."


한참을 청소했을까 배가 살짝 고파온다. 날 위해 무엇을 차리는 것도 귀찮은 행위다. 찬장에 있는 라면을 쓱 스캔한 후 하나 골라 물을 올렸다. 오늘도 그냥 라면이다. 후다닥 라면을 끓여와 텔레비전 앞에 앉았다. 한 젓가락 먹으며 친정 엄마에게 전화를 했다.


엄마: “응~딸랑~”


나를 부르는 엄마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나무: “엄마~뭐해?”

엄마: “엄마 일하고 있지~”

나무: “바빠?”

엄마: “아니~그건 아니고~요즘 가게 하는 사람들 중에 바쁜 사람은 없어”

나무: “그렇구나~점심은 먹었어?”

엄마: “이제 먹어야지~”

나무: “잘 챙겨 먹어 엄마~밥 먹고 약 먹는 거 잊지 말고~!”

엄마: “응~~ 알았어! 애들은 학교 갔어?”

나무: “응~! 잘 갔어~”

엄마: “애들은 학교랑 어린이집 잘 다녀?”

나무: “가은이는 잘 적응하고 있는 거 같고, 소은이는 낯을 많이 가려서 시간이 더 필요할 것 같아”

엄마: “그렇구나~소은이도 잘할 거야~야무져서! 너도 밥 대충 때우지 말고 잘 챙겨 먹어!!”

나무: “알았어 나중에 또 전화할게”


엄마랑 전화하면 마음이 애잔하다. 쓰러진 아빠를 일 년 넘게 혼자 간호하시다 보니 마음도 몸도 많이 지치셨다. 지금은 움직이지 못하는 아빠를 집에 두고 어쩔 수 없이 가게 일까지 하신다. 다 커버린 딸이 아무 도움도 안 되는 사실에 자괴감이 들어 하루하루가 힘들었다. 난 그저 숨만 쉴 뿐 하루하루를 스쳐 지나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