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만남

같이 수영하는 사람과 인사를 했다.

by 나무

수영장 등록해서 한번 수업 들었을 뿐인데 이렇게 기진맥진 상태가 되었을까 스스로 생각해도 의아했다.


혜원: "저분 수영장 처음 다니는 게 아닌가 봐요? 우리만 완전 초짜인가??"


샤워실에는 많은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씻는 사람 뒤에 서서 끝나기만을 기다렸다.


혜원: "언니 차 마시러 갈 거예요?"

나무: "모르겠네 꼭 참석해야 하나.... 우린 그냥 집에 가면 안 될까요? 아는 사람도 별로 없고... 그다지...."

혜원: "그렇겠죠. 어? 자리 났다!"


따뜻한 물로 깨끗이 씻고 나오니 몸이 개운했다. 무료하게 집에서 청소만 하며 시간 보내는 것보다 훨씬 낫다는 생각이 들었다. 청소하는 게 개인적으로 보람된 일이라면 상관없겠지만 아무 목적 없이 내 몸을 혹사해가며 애들 올 때까지 그냥 청소만 몇 개월째 하던 나였다. 사실 나에게 청소는 여러 번 이사를 하면서 낯선 곳에서 울적해지지 않으려고 발버둥 쳤던 행위에 불과했다. 집이 더럽지 않아도 모든 짐을 꺼내서 정리하고 쓸고 닦고 했던 나의 모습. 내 존재에 대해 의구심을 갖지 않도록, 그런 생각이 틈타지 않도록 철저하게 방어했던 것이다. 우울의 늪에 빠지게 되면 그 깊이가 너무 깊어 헤어 나오기 힘들다는 걸 잘 알고 있었기에..... 아무튼 하루 운동했지만 운동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어떤 느낌 때문에 하는지 조금은 알 것 같았다.

혜원과 나는 짐을 챙겨 밖으로 나갔다.


은자: "여기에요 여기!!! 이리 와~!!"


소리 나는 쪽으로 고개를 돌려보니 로비에 있는 테이블에 초급반 사람들이 쭉 둘러앉아 있었다.


은자: "여기 앉아요."


우리를 위해 두 자리를 마련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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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 "아.. 네., "

은자: "집에 커피가 많아서 이것저것 챙겨 왔는데 자기 기호에 맞게 가져가서 드세요."

세경: "아유~~ 언니는 언제 이런 걸 챙겨 오셨어요~? 바리바리 많이도 싸가지고 오셨네~"

은자: "그냥 집에 있는 거 가지고 왔어. 커피 마시면서 쿠키도 같이 드세요."

지현: "언니~ 이 쿠키 너무 맛있어요. 진짜 맛있다. 언니들 드셔 보세요."

은자: "그래도 우리가 한 반이 됐잖아요. 그것도 인연인데 서로 알고들 지내면 좋잖아~그렇죠? 우리 오늘 처음 만났으니깐 각자 자기소개 한번 해봐요. 내가 먼저 할게요. 저는 이은자라고 하고요. 나이는 마흔아홉이에요."

세경: "어우~~ 언니! 진짜 동안이다. 언니 그렇게 안 보여~~"


만난 지 얼마 안 된 거 같은데 저런 친화력도 생길 수 있다는 것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그리고 처음 본 윗사람(?)에게 존댓말과 섞어서 은근슬쩍 말 놓는 반존대에 이질감이 느껴졌다.


은자: "진짜? 고마워~~ 수영은 처음 배워요~잘못해도 이해해줘요~~"

지현: "언니~다 비슷한데요 뭘~"

은자: "그다음! 제가 했으니깐 이렇게 돌아 갈게요"

세경: "그럼 나야~?? 안녕하세요? 저는 황세경이라고 하고요. 나이는 이제 마흔둘이에요. 수영은 처음 배워요. 잘 부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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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가 끝날 때마다 사람들은 박수를 친다.


혜원: "언니! 아까 저분 수영장은 '원래 그렇게 한다'고 한 분 아니에요? 마치 몇 년 다닌 사람처럼??"


우리는 그저 피식 웃고 말았다.


지현: "안녕하세요? 저는 홍지현이라고입니다. 저는 마흔 하나고요. 수영 잘하고 싶어서 등록했어요."


짝짝짝


옥연: "다 나이가 고만고만하네. 나 때문에 평균 연령이 높아지겠는걸."

성숙: "옥연아~우리 나이가 뭐 어때서 그래? 우리 아직 짱짱해~~ 안 그래 현숙아~?"

현숙: "젊은 사람이 많아 보이니깐 그러는 거지 뭐~옥연이 얼른 소개 마무리 해~"

옥연: "나 말해도 되니 성숙아?"

성숙: "어~ 말해."

옥연: "나이는 오십 일곱!! 우리 같이 재미나게 운동해봐요."

세경: "언니들은 다 아시는 사이인가 봐요~?"

성숙: "우리 다 친구들이야~!! 옥연이가 수영하자고 해서 같이 등록했어."

지현: "아~ 그러시구나. 세 분이 허물없이 이야기하시는 거 보니깐 무척 가까운 사이인 거 같았어요."

은자: "그럼 그 옆 소개 들어볼까요?"


사람들은 혜원과 내가 앉은 쪽으로 시선을 옮겼다.


혜원: "네. 저는 박혜원이고요. 나이는 서른여덜입니다."

옥연: "그럼 그 옆에 있는 친구랑 같이 등록했구나?"

나무: "아.... 네. 안녕하세요? 저는 나무라고 하고요. 나이는 마흔이에요."


학교 졸업 이후 이렇게 자기 소개하는 건 오랜만이라 조금 떨렸다.


세경: "어~~~ 많이 본거 같은데? 혹시 유앤 아파트 살아요?"

나무: "네...,"

세경: "단지 안에서 많이 본 거 같아!! 우리 아파트 사는 사람들이 여기 수영장 많이 다니더라고.."

은자: "우리 반은 젊은 사람들이 꽤 있네. 자! 이제 전화번호 좀 알려주세요. 제가 단톡방 만들어서 초대할게요."

성숙: "은자가 이런 자리도 마련하고 반모임을 위해 힘을 많이 쏟을 거 같으니깐 우리 반 총무 하라고 그러자. 어때 옥연아?"

현숙: "넌 왜 그걸 얘한테 물어보니? 우리 모두에게 동의를 구해야지!"

지현: "하하~언니들 세 명의 조합이 참 재미있는 거 같아요. 성숙 언니는 거침없이 시원시원하게 말씀하시면 현숙 언니는 나긋나긋하게 성숙 언니 말에 차근차근 반박하시고, 거기다 옥연 언니도 위트 있게 이야기하시니깐 옆에 있으면 절로 재밌어요."

세경: "수진아 넌 왜 말해?"

수진: "네? 깜짝이야~"

세경: "(웃으면서) 왜 놀래~~?"

수진: "아니 그게 아니라 오늘 처음 봤는데 갑자기 반말을 툭 하니깐 깜짝 놀라지!!"

세경: "우리 동갑이잖아~!! 아까 소개할 때 마흔둘이라고 그런 거 같은데. 아니야?"

수진: "아니 마흔둘은 맞는데 우리가 반 말할 만큼 친한 사이는 아닌 거 같아서!"

세경: "동갑인데 그냥 말 편하게 하자~"


정색하는 수진의 표정을 보고 은자가 분위기를 전환해보려고 말을 건넨다.


은자: "아~수진이는 할 말 정확히 딱 하는 스타일이구나. 난 물러 터져서 그렇게 못하는데. 내가 부러워하는 성격이야"


은자의 한 마디에 서늘했던 분위기가 순식간에 사라져 버렸다.


은자: "내가 오늘 언니들꺼랑 동생들꺼 연락처 다 받았으니깐 집에 가서 단톡방 만들게. 무슨 일 있으면 여기서 이야기 많이 해요."


은자의 마무리 멘트에 사람들은 서로 인사하며 집에 돌아가기 시작했다.

그저 수영 하나 배웠을 뿐인데 하얀 도화지 같은 시간들이

뭔가 알록달록한 그림으로 채워져 나가는 느낌이 들었다.

뭔가 메마르고 지쳐 있었던 것에 다시 활력이 깃든 느낌이랄까?

사실 나는 '내 말'을 하기 힘들어하는 사람 중 하나이다.

힘들면 힘들다고 말하는 게 어려웠고, 외로우면 외롭다고 말하는 게 어려웠다.

그냥 내 마음이 조금 불편하더라도

내 주위에 있는 사람들의 기분이 좋으면 내 마음도 괜찮은 줄 알았다.

그래서 메마르다 못해 쩍쩍 갈라지고 있었던 내 마음도 모르고 있었다.

내 자신에 대해 말할 수 있는 용기가 없어서...

나이를 먹을수록 책임져야 하는 여러 가지 일과 사람들이 생기게 되면서

감추어지고 닳아져 내 말을 할 수 있는 용기가 사라져 버린 걸 수도 있다.

자신에 대해 말을 잘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치이고 치여

그 관계가 피곤해져 손해를 보더라도 차라리 내 마음이 편한 게 낫다고 생각해

아예 연결고리조차 맺지 않으려고 했던 나인데...

어느새 몸도 마음도 이 수영이라는 운동으로 즐거워하고 있다.

새로운 것을 배우기 위해 어떻게든 노력하며 사람들과 함께 운동하는 이 시간이 소중하게 느껴졌다.

오직 나에게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이기에...

수영장에 다니는 기간이 길어질수록 사람들끼리 친밀해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반이라는 테두리 안에 소속감 같은 것이 생기는 거 같았다.

마치 학생이 학교라는 울타리에서 따뜻하게 보호받는 것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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