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띡띡띡띡"(현관 도어록 소리)
다 먹지도 못한 라면을 뒤로하고 현관으로 나갔다. 아침에 등교했던 가은이가 집에 도착했다. 집에서 고작 청소밖에 한 게 없는데 벌써 아이가 집으로 돌아왔다.
나무: “가은이 왔어?”
가은: “응~엄마 나 정말 급해~!!”
거실에 외투와 가방을 던져놓고 화장실에 뛰어 들어간다. 그 외투와 가방을 정리하며 가은이가 나오길 기다린다.
(물 내리는 소리)
나무: “화장실 들렸다 오지 그랬어~?”
가은: “학교 화장실은 휴지가 막혀있고 더럽기도 하고 이래저래 좀 그래. 그래서 가끔 선생님이 변기 뚫을 때도 있어”
나무: "아~~ 그렇구나. 이리 와서 얼른 이거 먹어”
가은이는 빵과 우유를 열심히 먹는다.
가은: “엄마 나 사실은... 오늘 학교에서 울었다.”
나무 “왜??”
가은: “윤장권이 오늘 나 또 때렸어!”
나무 “어디를?”
가은: “머리!!”
나무 “세게 때렸어?”
가은: “응!”
나무 “왜? 어떤 상황이었는데?”
아이의 말에 화가 났다. 이런 일이 처음은 아니었다.
가은: “그냥 갑자기 와서 때렸어”
나무 “아무 이유 없이???”
가은:"응 그래서 내가 우니깐 애들이 이가은 운다고 선생님한테 말했어."
나무 “그래서 선생님이 걔 그러지 말라고 혼냈어?”
가은: “아니... 그냥 컴퓨터만 계속하셨어..,”
나무 “ 뭐??..... 그 애한테 때리는 건 나쁜 거라고 말씀 안 하셨어?”
가은: “응... 그냥 보지도 않으시고 컴퓨터만 계속하셨어...”
나무 “그럼 네가 직접 윤장 권한 테 말해야지!!! 때리는 건 나쁜 거라고!!!
그리고 선생님한테도 너의 상황을 말해야지!! 넌 어떻게 했어?‘
가은: “그냥 울다가... 종 쳐서... 눈물 닦고 수업했어.”
나무 “(한숨)에효......."
나도 모르게 깊은 곳에서 잠재되어 있던 답답함이 한숨으로 나왔다.
아이의 모습 속에 내가 보여서.....
그리고 진짜 아픈데도 아프다고 말할 수 없게 돼버린 내 모습이 보여서......
가은: “엄마... 사실은 저번에 수영장에서 윤장권이 발로 나 찼어...”
나무 “어??? 어디를??”
가은: “배...”
나무 “배를??....."
가은: “내가 자기를 쳐다봤대... 쳐다보지 말라면서 발로 찼어.....
근데 나 걔 본 적도 없어 엄마~~”
억울한 듯 가은이는 목소리를 높여서 말했다. 억장이 무너지는 거 같다. 그때도 울었다는 딸아이의 말을 들으니 가슴이 답답해졌다.
선생님께 말씀드려야 되나?
어떻게 말씀을 드리지?
그냥 문자를 보낼까?
온통 머릿속이 그 생각으로 복잡한데 벌써 둘째를 데리러 갈 시간이다. 빵을 먹고 있는 가은이를 지그시 바라보았다.
나무 “가은아 엄마 마음으로는 너를 항상 지켜주고 싶어. 근데 그렇게 하지 못할 때도 생겨. 엄마가 널 따라다니면서 지켜줄 순 없거든. 넌 너 스스로 지켜야 해. 아프면 아프다고 말하고, 누가 때리면 때리지 말라고 이야기해야 해! 네가 직접!! 알았지? “
사실 이건 나 자신한테 하는 말이다. 온전한 나의 선택으로 집결된 하루하루가 아니라 누군가 정해놓은 틀에 맞춰서 사는 그런 반듯한 네모 같은 하루를 난 살고 있다. 아프다고, 때리지 말라고 말도 못 한 채 말이다.
나무 “가은아~소은이 데리러 갈 시간이다~잠바 입어.”
입에 가득 빵을 욱여넣은 채 내 뒤를 따라 나온다. 아침에 가던 길을 가은이와 함께 걸어간다. 예산 문제로 어린이집 버스는 갑자기 사라져 버렸다. 그래서 하루에 왔다 갔다 총 네 번. 그 사이 많은 얼굴들을 마주치지만 인사하는 사이는 없다. 엄마들과 이리저리 얽혀있는 것보다는 오히려 그냥 스치고 지나가는 사이가 편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무: "소은아~~”
블록 놀이를 하고 있던 소은이가 내 얼굴을 보자마자 소리치며 뛰어온다.
소은: “엄마~~~~”
나무 “잘 놀았어??”
소은: “응!!”
어린이집 가방을 들고 선생님께서 다가오셨다.
선생님: “소은이 오늘 일과 잘 보냈고요~낮잠도 잘 잤어요~”
나무: “아~그래요? 알겠습니다. 선생님께 인사드리고 가자.”
소은: “선생님~안녕히 계세요.”
말이 끝나기 무섭게 언니랑 손잡고 어린이집을 나선다. 선생님께 살짝 목례를 하고 서둘러 아이들 뒤를 쫓았다.
소은: “엄마~~ 놀이터에서 조금만 놀다 가면 안돼?”
나무: “날씨가 쌀쌀한데 다음에 놀면 안 될까?”
소은: “아~~ 잉~~ 엄마~~ 놀이터에서 놀고 싶어~~”
가은: “엄마~나도 놀고 싶어~~”
나무: “그럼 딱 십 분만 놀고 가는 거다~?”
가은, 소은:"네~~!!"
아이들은 뛰어가 각자 그네에 나란히 앉았다.
소은: “엄마~나 그네 좀 밀어줘~~~”
작은 아이가 나를 사라보며 소리친다. 그넷줄을 뒤로 당겨 있는 힘껏 밀어 올린다.
소은: "엄마~더 세게~~!! “
나무: “지금도 높아!!”
소은:"아냐 더 세게~!!"
나무: “알았어.”
두 아이는 경쟁이라도 하듯이 누가 더 높이 올라가는지 확인하며 그네를 탄다. 한동안 계속 그네를 밀어주다가 잠시 멈추고 쉬고 있는데 한 사람이 나에게 걸어온다.
혜원: “안녕하세요?”
얼굴은 안다. 같은 반 엄마라는 걸...
나무: “아.... 예... 안녕하세요?...”
그렇게 인사하고는 나를 스치고 간다. 나 말고도 놀이터에서 보이는 여러 엄마들과 이리저리 인사하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마치 이 어린이집의 엄마들을 모두 알고 있는 듯한 포스가 풍겼다. 그 모습을 먼발치에서 우두커니 바라보았다.
나무: “나랑은 되게 다르네..,”
그 모습을 뒤로하고 그네 타는 이이들을 바라보았다.
나무: “오히려 난 이게 편해.....”
놀이터에서 더 놀고 싶은 아이들을 설득하고 또 설득해서 집으로 겨우 돌아왔다. 이렇게 또 하루가 지나갔다. 내일도 오늘과 똑같은 하루가 또 시작되겠지....
그 후로도 어린이 집에 갈 때마다 인맥 넓은 같은 반 엄마 혜원을 자주 마주쳤다. 어린이집에서 인사를 처음으로 건넨 것도 의아했고, 볼 때마다 어색한 인사를 나누는 것도 조금은 부담스러웠다.
놀이터에서 놀고 있는 아이들을 바라보고 있는데 혜원은 또 나에게 다가온다.
혜원: “안녕하세요?”
나무: “아... 네... 안녕하세요?...”
혜원: “소은이는 어린이집 끝나고 놀이터에서 항상 놀다가 집에 가나 봐요~?”
나무: “아... 꼭 그런 건 아니고...”
혜원: “나중에 시간 되실 때 커피 한 잔 해요”
나무: “아... 네...”
혜원: “혹시 소은이 엄마 전화번호 알 수 있을까요?”
나무: “아.. 네... 번호 찍어드릴게요...”
어린이집 엄마들하고 얽히기 싫은데.... 어린이집 엄마들은 대부분 같은 아파트에 사는 사람들이다. 한마디로 말하면 생활의 교집합이 많은 사람들이다. 학창 시절을 같이 보낸 허물없는 사이가 아니라 이 또한 사회에서 만난 인연이다. 그래서 안 보이는 적정선을 항상 유지하라고 다들 이야기한다. 에너지 충만했던 내가 이미 지쳐버렸기 때문에 그 관계들을 유지하기 어렵다는 자체적인 판단이 든다. 그리고 결혼을 한 후 여러 방향으로 뻗어있던 나의 감각들은 자연스레 무뎌지고 닳아버렸다. 어느새 나는 또 다른 내가 되어있었다. 그리고 갑자기 다가온 혜원이 나의 삶을 혼돈으로 몰아가게 되었는지도 모른 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