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이 되면 마을마다 대동회를 한다. 이장 선거를 하는 마을이 있고 안 하는 마을이 있다. 이장 선거를 하면 골치가 아파진다. 면에도 변두리 작은 마을은 이장 할 사람이 없어서 고르기 바쁘고, 면 소재지 중심마을은 서로 이장하려고 해서 박 터진다. 마을의 헤게모니는 생각보다 복잡다단하다. 이해관계가 시시때때로 충돌되고 갈등의 앙금이 사라지지 않고 침잠되어 있어 언제든 부옇게 일어날 준비가 되어 있다. 집성촌과 각성바지, 토박이와 이주민, 여러 갈래로 헤게모니가 나뉘어지고 그 사이에서 이장이 결정된다. 결정된 이장은 마을의 외치와 내치를 모두 담당하는 막강한 권력을 지닌다. 수당은 별개로 치더라도 각종 마을사업 이권과 추천 등 여러 가지가 공유되지 못하고 특정 편향되어 일정 패거리에 집중되면 마을은 파국의 길로 성큼성큼 다가간다. 고소고발이 난무하고, 패가 갈려 어지러운 공존과 어색한 평화 아래 치열한 헤게모니 쟁탈전이 시작되는 것이다. 그런 와중에 서로 이말, 저말 하느라 맘이 다치고, 삶의 의미를 상실한다. 평안하게 살려는 맘 모두들 한결같은데 순식간에 지옥으로 변하는 것은 한 순간이다. 자연은 그 자체로 평화로운데, 마을안은 시끌벅적하다. 속도 모르고 어설프게 다가갔다가는, 엉성하게 대충 그까이꺼 하며 접근했다가는 그 삼엄한 분위기에 찍 소리도 못하고 퇴각하기 일쑤다. 겉껍질을 벗겨 보면 마을은 그다지 아름답지 않다. 속 시끄러운 일만 수두룩하다. 이게 보면 해묵은 갈등이라 감정은 끝간데 없이 얽혀있고 어디서부터 실타래를 풀어야 하는지 알 수 없어 면 행정은 눈을 질끈 감기 일쑤이고, 중재자나 조정자 없는 마을은 그야말로 삶의 지옥이 되는 것이다. 대문 열고 나가면 얼굴 마주보는 사이인데 어색하고 불편함을 넘어서 꼴도 보기 싫은 관계라면 어떠하겠는가.
마을 일이란 것이 묘하게도 마을 담장을 또 넘어서는 안 된다. 불문율처럼 남의 마을 이야기를 두고 감놔라 배놔라 하는 이야기는 할 수는 있지만, 절대 공론화되지 못한다. 자체적으로 갈등의 출구를 찾지 못하고, 건강한 논의구조를 만들지 못한 마을은 주구장창 고소고발이 난무하고, 내용증명이 수차례 오갈 뿐이다. 법원 판단으로 희비가 갈라지면서 마을은 그 자체로 아사리판이 된다. 싸움은 창 바깥에서 구경하지 좋을지는 몰라도 한데 섞이게 되면 그 블랙홀로 같이 끼어들어갈까봐 행정은 물론 시민사회에서도 안 끼려고 하는 사이 완충지대 없는 갈등들은 서로의 살을 갉아먹고 커지는 것이다.
이런 마을들이 많아지는 것은 참으로 비극이다. 어떤 마을들은 공모사업도 많이 따오면서 시설 인프라도 구축되고 마을 주민들끼리 어울렁더울렁 잘 어울리면서 행복하게 밥도 같이 먹고, 자주 모여 서로를 챙겨주는 마을이 있는가 하면, 어떤 마을은 오뉴월에도 찬바람이 쌩쌩불고 경로당이 자물쇠로 잠근 채로 서로 얼굴 보기가 어렵다. 마을 너머, 갈등의 불구덩이 속으로 뛰어들 자가 아무도 없는 것이다. 개인간의 문제로 치부하기엔 마을 전체가 감당해야할 피해가 너무나 크다.
마을내 갈등도 공적영역으로 끌어들여 해소하는 법
민간갈등은 사회적비용이 그만큼 많이 든다. 개인이 감내해야 하는 비용은 차치하고서라고 공동체가 함께 부담해야 할 정서적 비용은 이루 말할 수가 없다. 심지어는 마을 공동체가 붕괴되기까지 할 수 있다. 마을이 산산조각 난다는 것이다. 그럼 갈등을 조금 더 객관적으로 보고, 법적 소송까지 가기 전에 완충지대에서 풀어내고 회복할 수는 없는 걸까. 이미 옥천신문에서 여러차례 보도된 적이 있는데 행정에서 이를 만든 사례가 없진 않다. 경기도 평택시는 2020년부터 민간갈등 조정을 위한 이웃분쟁조정센터를 설치 운영중이다. 이를 위해 2019년 6월28일 전국 최초로 센터 운영예산을 위한 조례를 만들었다. 이웃분쟁조정센터는 평택YMCA거 위탁받아 지역주민들로 구성된 분쟁조정인을 교육한다. 분쟁 조정인은 민원을 접수받고 갈등당사자들 사이에서 대화와 협의를 이끌어내는 것이다. 분쟁조정인 육성과정은 기본교육, 심화교육과정 이후 보수교육과정을 통해 갈등조정을 위한 법률상식, 사례분석, 실습교육을 진행하고 있다. 주민들이 이런 역량을 갖춰가면 공동체파괴를 막을 수 있다. 평택은 이미 매해 100명 넘는 분쟁조정인을 배출하고 있다. 이웃분쟁조정센터에서 활동을 하는 상근직원은 2명, 비상근 직원 1명의 인건비도 일부 지원한다. 1년에 2억2천700여 만원으로 사회적비용을 확 줄이고 있는 것이다. 광주광역시는 2015년부터 민간 갈등을 조정하는 마을분쟁조정센터를 설치 운영하고 있다. 주민 화해지원인들은 5개 자치구 50여개 소통방에서 활동하며 개인간 갈등을 조정하고 있다. 광주광역시는 2015년부터 2020년 11월까지 5년간 층간소음, 생활누수, 반려견 소음과 같은 1천918건의 주민갈등을 접수받고 1천601건을 해결했다. 조정률은 83.5%나 된다. 광주광역시가 마을분쟁해결센터에 지원하는 예산은 매년 3억2천500만원수준이다. 2021년 4월23일자 평택시의회 이영배의원을 인터뷰한 기사는 자못 인상적이다. 인터뷰에서 이영배 의원은 “평택시에서 민원콜센터를 운영하는데 이 콜센터는 행정절차나 법적절차를 안내해 줄 뿐이다. 갈등은 곧잘 법적소송으로 이어졌다. 이게 다 사회적 비용아니겠나. 비용만 문제가 되는 게 아니라 법적 공방까지 가고 난 이웃이 어떻게 나중에 웃으면서 볼 수 있을까. 그 전에 화해하고 소통해야 그 다음 공동체를 고민할 수 있다.”고 말했다. 아울러 “이웃분쟁 조정도 지자체의 몫이라는데 공감했다기보다는 당장 공무원이 접수받은 민원의 양이 엄청 났다. 이 조례를 가장 필요로 했던 것은 평택시민이었다”고 덧붙였다. 평택시 이웃분쟁 공공갈등 조정 및 관리조례는 행안부 전국지방의회 우수사례에서 대상을 수상했다. 완충공간을 만들고, 조정인이 그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서 서로의 감정소모를 줄여주면서 합리적으로 일을 풀다보면 감정이 다치는 일도 줄어들고, 다시 이웃과 공동체로 회복될 수 있는 여지를 준다는 것이다. 또한, 공무원의 민원행정에 대한 스트레스도 줄어들고 업무에 집중할 수 있으므로 업무 효율도 높아질 것이다. 마을안에 개인간의 갈등은 가족간의 갈등, 지인과의 갈등, 씨족사회와의 갈등으로 확전될 가능성이 높고 그 피로도는 모두에게 영향을 미칠 수 밖에 없다. 서로 다른 사람들이 살기에 공동체에서 갈등은 필연적이다. 이 갈등을 어떻게 스스로 해결할 것인가도 매우 중요하지만, 제도적으로 정책적으로 공공에서 이런 갈등을 해소할 수 있는 분쟁조정인을 양성하는 것은 사실 퍼실리테이터를 양성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일일 수 있다. 개인과 커뮤니티는 따로 존재하지 않는다. 그것은 가족과 커뮤니티도 마찬가지다. 개인간의 관계가 원활하고 서로 합이 맞아야 의견이 다르더라도 끊임없이 존중해줘야 공동체는 성장할 수 있다.
마을 뿐 아니라 가정의 문제도 마찬가지다
남의 마을 말 하는 게 힘들 듯이, 남의 집안살이를 두고 이러쿵 저러쿵 말하는 것도 금기시된다. 담장너머 참견하면 불이 꺼지는 게 아니라 불이 붙게 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가정 안에서 약자들은 그래서 더 힘들다. 부모라고, 조부모라고 그 명칭에서 반드시 ‘선’과 ‘애’를 담보하는 게 아니라서 아이들이 혹은 노인들이 물리적 학대 말고도 정서적 학대를 받는 경우를 심심찮게 듣고 보게 된다. 하지만, 듣고 말뿐 남의 가정사에 직접적으로 개입하지 못한다. 불륜과 이혼, 그리고 가정폭력과 폭언, 방임의 사례는 여기저기서 어렵지 않게 확인된다. 결국 신고를 하게 되는 경우도 종종 있지만, 신고를 하기 전까지의 과정 자체가 지난하다. 눈에 보이는 폭력이면 바로 신고를 하면 될텐데, 방임과 정서적 학대 사이 어딘가에 걸쳐저 있으면 뭐라 말하기 딱히 힘들정도로 그냥 그 상태가 이어지게 되는 것이다. 마을의 신화, 가족의 신화를 벗겨버릴 필요가 있다. 그 민낯의 현장과 우리는 고통스럽더라도 마주해야 한다. 마을이 세계를 구한다는 구호에 현혹되지 않아야 한다. 마을은, 가족은, 공동체와 공공성을 뿌리채 썩게 만드는 만악의 근원일 수 있다. 마을과 가족이 따스하고 인정 넘친다는 환상, 지역과 시골은 무언가 공동체가 살아있을 것 같다는 편견과 선입견을 벗어버려야 한다. 방임하고 팔짱끼는 사이에 마을과 가정은 그 자체로 썩어가고 있고 그 사이에 사회적 약자들은 여전히 학대와 착취를 당하고 있다. 이장이라는 이유로, 가장이라는 이유로 권력을 휘두르는 사람들, 내 일 아니라고 방임하는 사람들, 그리고 거기까지 우리의 영역이 아니라며 팔짱끼는 관료들까지 그들은 가학적이고, 당하는 사람들은 이제껏 당해왔던 것처럼 그것을 체화하는 것이 이 지독한 평화를 유지하는 방법이다. 가족과 마을의 문제에도 적극 개입하고, 공론장으로 끌고 나와야 한다. 그래서 금기를 깨부수고 어떻게 공론화해 문제를 해결할지에 대해 고민해야 한다. 사적인 가족의 영역까지도 어떻게 다양한 루트로 공적개입을 시도할 것인지 고민해야 한다. 왜냐하면 태어날 때부터 가족의 환경에 따라 형성되는 불평등이 이후의 삶을 많이 좌우할 수 있기 때문이다. 뿌리 깊은 충효 사상에서, 맹목적으로 주입되었던 충효 사상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인생이 짐 지워지고 힘들게 삶을 영위했는지 우리는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것을 개인의 능력으로 칭송하고 인간 승리로 포장하는 사이에 우리의 사회와 국가는 한치 앞도 진보하지 못했다. 이는 가족을 해체하자는 것이 아니라 가족의 형태를 유지하되 태어날 때부터 개개인의 인간의 존엄을 유지할 수 있는 경제적 자립(복지)과 주거, 의료, 교육 등의 기본적인 조건등은 이제 기본바탕으로 마련되어야 함을 말한다.
여기서 우리는 새로운 미래의 가족 선언문을 발표한 스웨덴의 정치사를 잠깐 살펴볼 필요가 있다. 스웨덴 사민당이 집권한 1936년부터 86년까지 이 50년을 사민당이 국민의 집을 만들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해왔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1976년부터 82년까지 6년을 제외한 44년간 집권한 사민당의 총리는 한손과 에를란데르, 그리고 팔메 뿐이었다. 10년을 집권한 한손, 23년을 집권한 에를란데르, 다시 11년을 집권한 팔메는 그 기간 동안 유럽에서 가장 가난하고 비참했던 스웨덴을 가장 완벽한 복지시스템과 민주주의체제로 만들었다.
스웨덴 국민의집, 미래의 가족 선언문을 살펴보자
‘인민의 집’, ‘국민의 가정’은 스웨덴 사민당과 복지국가의 역사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다. 에를란데르는 전임자인 페르 알빈 한손이 제창한 ‘국민의 집’을 스웨던의 복지모델로 완성했다. 1928년 사민당의 당수였던 한손은 의회연설을 통해 처음 ‘국가는 모든 국민의 좋은 집이 돼야 한다’고 말했다. ‘가정이란 공동체, 그리고 함께함을 뜻합니다. 훌륭한 가정은 그 어떤 구성원도 특별대우하거나 천대하지 않습니다. 아이들을 편애하거나 홀대하지도 않습니다. 훌륭한 가정에는 평등, 사려, 협력, 도움이 존재합니다. 가정은 가족의 울타리만 뜻하는 것이 아닙니다. 국민과 시민을 품는 커다란 가정도 있습니다. 그런 가정에는 가난한 자와 부자를 갈라놓는 사회적 경제적 장벽이 없습니다’
1972년 올로프 말메 총리와 사회민주주의 정치가들이 스웨덴의 미래를 위해 혁명적인 비전을 제시했다. 그 선언문의 제목은 ‘미래의 가족’으로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서로에게 기대고 의존하는 낡은 전통적인 가족구조에서 벗어나자! 남편으로부터 아내를, 자녀로부터 노부모를, 부모로부터 청소년을 자유롭게 하자! 사회구성원이 모두 자유롭고 평등하며 독립적으로 사는 사회를 만들자! 삶의 한단계 도약을 이루어내자!“
진정한 독립과 자유는 경제적인 자립에서 비롯되므로 정부는 여성의 경제활동을 적극 지원했고, 경제적 능력이 없는 오인과 아이들은 복지를 늘려 국가가 책임지는 시스템을 구상했다. 가족간의 전통적인 의존관계를 해체하고 ’사회 구성원이 모두 자유롭고 독립적으로 사는 사회를 만들자‘고 선언한 것이다. 스웨덴은 보통 만 18세에 부모로부터 독립을 하고 대학 진학을 하면 월 140만원(이중 2/3는 학자금 대출이나 최장 25년 동안 0.16%이자율로 갚으면 된다)을 국가가 지원해준다. 대학은 무상교육이니 온전히 자기 생활에 쓸 수 있는 것이다. 국가가 책임지고 국민을 보호하기에 가족의 지원없이도 스스로 삶을 개척해나갈 수 있는 것이다. 스웨덴은 시민의 기본생활을 보장하는 제도가 탄탄하다. 팔메가 노력한 것은 그저 일상을 걱정없이 살 수 있는 평등한 지원이다.
팔메는 제도의 수혜자가 성별에 관계없는 개인이 되도록 개혁에 초점을 맞췄다. 가족 기준으로 디자인되어 있던 기존 제도가 개인을 기준으로 옮겨가고 있다는 신호였다. 복지국가는 사람들이 갖고 태어난 여러 가지 한계를 제도를 통해 약화시켜 자유롭고 독립적인 개인이 되도록 보장해주는 것이다. 결국 어릴 때부터 경제적 자립을 어떻게 이루느냐는 의존에서 독립으로 향한 첫걸음을 내딛는 다는 면에서 매우 중요하다.
함양군의 사례도 중요하다
올해 7월17일부터 경남 함양군은 매월 13-15세는 5만원을, 16-18세에는 매월 10만원을 꿈드림바우처 카드로 지급하기로 했다. 바우처 카드 포인트는 매월 지급되며 군내 가맹점으로 등록된 마트, 편의점, 카페, 서점, 문구점, 이미용점, 취미 및 예체능학원, 체육시설 등에서 사용할 수 있다. 부모에게 손 벌리지 않고서도 매달 용돈을 받아 쓸 수 있는 것이다. 앞서 언급했듯이 경제적 자립이 되어야 독립적인 생활이 가능해진다. 함양군의 사례는 작지만 부모님의 손과 말에만 의존하지 않고 독자적인 생활이 가능하도록 바우처를 통해 지불했다는 것에 큰 의미가 있다. 부모든 누구든 예속되지 않는 삶은 중요하다. 독립적인 개개인들이 느슨한 공동체로 서로 연대하고 부조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럴려면 결혼과 가족의 정상성에 대해 문제제기를 할 필요가 있다. 이성애 결혼과 출산 가족만이 정상가족의 범주로 보편적으로 인정되고 제도적 지원이 되는 것에 대해 의문을 제기해야 한다. 가령, 덴마크는 자녀의 수를 파악하는 데만 총 37개 형태로 나눠 집계한다. 가령 미혼모와 아이가 사는 가족, 재혼부부와 모계자녀가 함께 사는 가족 등 아이들이 있는 가정의 가짓수만 37개다. 여기에 추가로 이성혼, 동성혼, 합의 관계, 동거관계, 등록된 동반자 관계, 싱글 등 6가지 가족형태까지 구별하면 수백가지의 경우의 수가 존재한다. 덴마크는 이 모든 유형의 가족을 동등한 가족으로 홍보하고 품었다. 스웨덴은 전세계에서 가장 긴 육아휴직 기간(480일)을 준다. 결혼이 아니어도 사회보장시스템을 통해 다양한 형태의 동반자관계를 맺을 수 있다.
집안의 금쪽이와 납쪽이가 학교에서 가정에서 사회에서 내몰리는 천덕꾸러기가 되지 말아야 한다. 드림스타트나 그룹홉, 아동보호전문요원이나 교육복지사를 통해 이를 늘리면서 이들의 삶에 대해 어떻게 지역사회가 함께 할 것인지에 대해 충분한 사례관리를 해야한다. 물리적, 정서적으로 학대받는 아이들을 구출하고 서로의 관계를 개선시키기 위해 완충지대와 공간과 전문적인 대응이 필요하다. 그래서 끊임없이 도움이 필요한 사각지대 아이들을 발굴하고, 끊어진 아동보호체계의 틈을 메우고, 아이들을 지속적으로 오랫동안 지켜보는 것이 필요하다. 2019년부터 아동보호저담요원제도가 도입이 되었지만, 기초지자체 229곳 중 73곳이 전담요원이 단 한명이거나 아예 없는 실정이다. 혈연만이 가족이라는 굳은 선입견에서 벗어나 같이 어울리는 친구도 동반자도 얼마든지 가족이 될 수 있다는 가족의 재구성이 필요하다. 개인과 가족, 마을과 지역사회, 지자체와 국가는 관계와 체계속에서 서로 주고받으며 보충성의 논리로 서로를 채워줘야 한다. 보충성의 원리란, 행동의 우선권은 언제나 실행 주체인 소 단위에 있는 것이고, 소단위의 힘만으로 처리할 수 없는 상황에서 차상급단위가 보충적으로 개입할 수 있다는 것이다. 더 이상 통제하는 개념이 아닌 지원하는 개념으로 바뀌어야 한다는 의미이다. 이제 더 이상 가족과 마을의 문제를 너네 가족의 문제, 너네 마을의 문제로 알아서 해결하라는 시선의 폭력은 거둬들일 필요가 있다. 가족이 힘들면, 마을이 갈등에 치이면 모든 공동체가 위험할 수 있다. 어떻게 필요한 공적개입을 하고, 필요한 기본 바탕을 만들지에 대해 함께 고민해야 할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