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천학을 만들자

지역학을 위한 고찰

by 권단

지역을 위한 학문은 없다.


누구도 지역에 대해 가르쳐 주지 않는다.

학교에서도 미디어에서도 말이다.

서울 뉴스와 도시 문명에 대해 쉴새없이 이야기하지만 정작 자기가 사는 생활공간인 지역에 대한 이야기는 초등학교 3학년 한 귀퉁이에 '지역교과'라 이름 붙여놓고 어설프고 오래된 자료를 모아 만드는 것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대부분의 앎이 시작되는 것이 제도적인 교육기관과 집집마다 보급되는 테레비와 라디오, 신문, 인터넷, 책, 그리고 가족과 이웃의 이야기들로 점철된다고 생각하면 이는 정말 깊게 고민해봐야 할 일이다.

학교에서는 선생님들조차 지역에 대해 잘 모르고 농촌과 농업에 대해 모른다.

그러니 현재의 옥천에 대해서 가르쳐줄 것이 별로 없는 것이다. 더구나 가르쳐 준다고 해봐야 경험하면서 아는 일부분의 지식이 전부이고 체계적으로 옥천에 대해 정립한 학문도 없거니와 지도서도 없는 것이다. 그리고 대부분 대전이나 청주에서 출퇴근하는 선생님들이 대부분이라 이들은 지역을 느낄 시간 조차 없는 것이다. 이들은 의식적이건 무의식적이건 옥천 탈출과 도시문명에 대한 동경을 가르친다. 말하자면 존재를 배반한 교육을 가르치는 것이다. 이것은 지역에서 별 자부심과 자긍심도 느끼지 못하고 지긋지긋하게 익명성 없이 살아왔던 지역의 아이들의 '지역 탈출'의 마음과 합쳐져 모두다 '서울로', '도시로'를 외치면서 엑소더스를 부추기고 있는 형국이다.

아이들은 지역에 대해 제대로 공부할 기회를 잃은채 지역을 결국 모르고 떠나는 것이다.


미디어는 어떤가?

아홉시 뉴스의 상징하는 바가 크다. 아홉시 뉴스를 떡하니 틀면 서울의 뉴스가 당연시 먼저 나오고 그 다음에는 청주의 뉴스가 끄트머리 귀퉁이에 그리고 옥천의 뉴스는 나올락 말락 하는 것이다.

이는 위계별로 지역을 내재화시킨다. 공공의 세금이나 다름없는 수신료로 운영되는 공중파가 공공성을 상실하는 대목인 것이다. 각 지역마다 균등하게 수신료를 냄에도 불구하고 이런 지역적 편파성과 차별성은 아무렇지 않게 내재화되는 것이다.

기타 지방신문과 라디오, 책에서도 마찬가지다. 지역을 다루는 책은 일부 특화된 지역말고는 없다.

이런 상황에서 지방자치를 시작하는 것은 참으로 모래위에 쌓은 성이라 할 수 있겠다. 주민자치도 요원할 수 있겠다.


그냥 살면서 부대끼면서 느끼는 게 전부이고 지역의 역사도 지역의 현재와 미래도 그나마 지역신문 외에는 아무도 기록하지 않는다. 서글픈 현실이다.

우리는 오히려 외부인의 눈으로 보는 지역에 대해서 위에서 아래로 옆에서 보는 관점에서 지역을 배우고 있다. 특히 서울이나 도시의 글이든 영상이든 기록하는 이들에 의해 시골 농촌이지만 도시적 관점으로 이를 해석하고 서울의 관점에서 지역을 해석하는 관점이 대부분이다.

그것을 아무런 문제의식 없이 받아들이고 그렇게 식민지는 내재화되는 것이다.


그래서 지역학을 제안하는 것이다.

지금처럼 덩어리가 큰 충북학이나 영남학 이런 것이 아니라

옥천학을 말하는 것이다.

충북학이나 영남학이 물론 의미가 없는 것은 아니나 이는 생활속에서 기능하지 못하고 지역의 사람들을 유형화시키고 통치권자에 이롭게 될 공산이 크다 할 수 있겠다.

그 옥천학도 그냥 두면 읍중심으로 갈 공산이 크고 위처럼 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옥천학은 생활공간의 학문으로 거듭나야 한다.

생활공간으로 기능하고 정서적으로 일치감이 있는 각 읍면학,

옥천으로 말하자면 옥천(읍)학, 청산학, 청성학, 이원학, 군서학, 군북학, 안내학, 안남학, 동이학 등 9개 읍면의 학문이 정립되어야 한다. 그것이 모여서 절로 옥천학이 되는 것이다.

여기서 지역학이라 하면 지역의 정치, 경제, 문화, 복지, 교육, 사회, 보건의료, 역사 등 인간이 살면서 그 공간에서 만들어지는 당연한 것들을 체계적으로 기록하는 것이다.

지금까지 그 공간에 대한 삶의 역사를 간추리고 아카이빙 작업을 하는 것이며, 지금 현재의 모습도, 앞으로 미래의 비전과 이야기도 함께 기록하는 것이다.


앞서 말했듯이 옥천에 대해 자료를 찾아본다면 참고할 만한 서적이나 자료가 얼마나 되겠는가?

거의 없다고 해도 무방할 것이다.

옥천을 설문대상으로 한 전문적인 분야의 논문 몇 편, 역사, 문화, 관광을 주제로 편중된 분야의 끼워넣기로 한 것의 옥천 일부 자료와 아주 일반적인 자료들 몇개가 있을 뿐이다.

관보라는 것은 행정적인 관의 역사를 기록한 것일 뿐 민의 역사는 눈씻고 찾아볼래야 찾아볼 수 없다. 사진이라는 것도 군청 사진기사가 돌아디니며 찍은 것 이외에는 거의 없다.


나는 옥천에 수몰 전 사진이 몇개 존재하지 않고 이마저 체계적으로 관리되지 않고 있다는 것을 알고 기겁을 했다. 지역에 지역의 역사를 체계적으로 관리하고 연구할 수 있는 조직조차 건사되지 않았던 것이다. 더구나 박물관 자체도 없다. 그래서 옥천에서 발견된 유물들은 대부분 청주나 서울 박물관에 소장된다. 그 지역에서 발견된 유물을 지역에서 볼 수 없고 공부할 수 없다면 참 이또한 어불 성설 아니던가? 보관할 시설과 인력이 없다면 만들어야 하지 않겠는가? 지역의 유물 또한 이렇게 빼앗기는 것을 당연시 여기는 것이다. 우리 모두의 소중한 문화 유산이라면 그 지역에 있는 의미를 되새기는 것도 옳지 않겠는가?


지역 주민이 중심이 되어 지금이라도 기록하고 연구해야 한다.

옥천학연구소를 만들고 지역에 대해 체계적으로 기록할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한 세대가 지나가면 사라져가는 지역의 문화유산을 기록하려면 지역의 노인들을 만나서 옥천의 삶에 대해 구술을 듣고 기록하는 작업도 병행해야 할 것이다.

노래와 음식, 놀이 등 다양한 문화까지 빠짐없이 기록해야 할 것이다.

그래야 옥천의 정체성과 주체성이 살아나는 것이다.


서울과 도시의 눈이 아닌 지역의 눈으로 지역의 역사를 기록하자.

관의 눈이 아닌 민의 눈으로 민의 역사를 기록하자.

우리 스스로 우리의 역사를 갈무리 하고 후세에 물려주는 것이다.


그러려면 주민이 중심이 되어 지역학 연구소를 만들고

관이 마땅히 이를 지원해야 할 것이며

옥천학을 그렇게 체계적으로 정립해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

물론 외부의 학자와 전문가들의 이야기도 열어놓고 듣되 주체적으로 해석하고 받아들인다.

그러면서 차근차근 정리하면서 아이들과 주민들을 위한 교과서와 책으로 출판하는 것이다.

그러면 수많은 지역을 주제로 한 책들이 각 분야에서 나올 것이다.

이는 누구보다 지역에 사는 옥천 주민들을 위한 것이다.


독일에서는 지역 교과로 그 과목을 정해 놓는 것이 아니라

모든 교과서에 지역이 스며들도록 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수학에도 마을숲의 떡갈나무 도토리의 숫자로 셈을 하고

미술에서도 지역 출신 화가나 지역에 사는 화가들의 그림을 보고 같이 논하며

과학에서도 지역의 생태와 자연에 대해서 공부한다고 들었다.


그래야 아이들의 교육이 지역에서 생활에서 살아나지 않겠는가?

그래서 지역학은 여러모로 중요한 것이다.


이는 아이들과 주민들 뿐 아니라 매번 이동하는 공직자들에게도 꼭 필요한 교육이다.

선생님과 공무원들에게 지역에 대해 같이 공부할 수 있는 기회가 필요한 것이다.

늘 주민과 아이들을 상대로 하는 이들은 지역에 대해 잘 모르면서 오해를 할 수도 있고 폄하를 할 수도 있는 것이다.

지역에 대한 이해의 폭이 넓어지면 관계도 원활해지고 동질감도 높아질 것이다.

수많은 지역 이야기 꾼들이 생겨날 터이고 지역은 그만큼 풍성해질 것이다.


지역 대학에 옥천학을 하는 학과가 생기는 것도 바람직하겠지만

더 이상적인 생각은 각 지역에 정치, 경제, 문화, 사회, 복지 등의 각 분야에서 정말 지역을 제대로 기반하여 만들어진 학과가 여러개 생겼으면 하는 것이 바람이다.

정말 그렇다면 지역을 제대로 공부하고 이해하며 지역에서 바로 실천할 수 있지 않겠는가?


지역의 풀뿌리 민주주의, 지역의 사회적 경제, 자치와 자급에 대해서도 공부하고 실천할 수 있지 않겠는가?


지역을 생각한다.

시간이 점령해버린 공간을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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