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은 왜곡되어 있다.

by 권단

마을은 왜곡되어 있다.

최근 자본주의 극단에 염증을 느낀 나머지 이제 소소한 ‘마을’로 새로운 ‘사회적 경제’의 ‘사회적기업’과 ‘협동조합’으로 그리고 ‘로컬푸드’라는 화두가 사회 전반에 제기되고 있다. 이것은 대안이라는 이름으로 최근 몇년 새 긍정적인 이미지를 형성하며 앞다퉈 자치단체에서 사업을 벌이는 품목중의 하나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 의미있는 ‘단어’들이 생활세계에 안착하지 못한채 단지 다른 유형의 유행하는 트렌드로 비춰지고 그렇게 소비되고 있는 것 같아 심히 우려된다.

최근 이 던져진 화두들은 모두 지역사회의 생활세계를 겨냥하고 있다. 이 생활세계는 하버마스가 이야기한 체제의 개념과 대치되는 개념이기도 하다. 오랫동안 정서적 일체감이 있는 생활세계의 공동체를 다시 복원하자는 그야말로 새로운 패러다임인 것이다.

하지만, 요즘 추세를 보면 이것은 생활세계 공동체와는 무관하게 구획되어진 행정구역의 자치단체의 정책 예산이나 국가의 정책에 따라 만들어지고 소비되는 형태로 반복 재생산되고 있다.

생활 공간을 성찰하고 사유하지 못한 채 체제의 사업과 예산에만 초점을 맞춰서 우후죽순으로 양산된 채 그 본질을 잃어가는 세태를 보는 것 같아 안타까울 뿐이다.

그럼에도 이 던져진 화두는 충분히 곱씹어볼만한 함의를 갖고 있다 할 수 있겠다.

수직적인 위계와 성장과 경쟁 지향적인 이 자본주의 사회에서 수평적인 연대와 자립과 협동을 이야기하고 있기 때문이다. 승자독식과 약육강식의 이 사회에서 한 사람도 놓칠 수 없는 사회 그물망을 이야기하고 있기 때문이다. ‘1등’과 ‘최고’를 외치기 보다는 ‘순환’과 ‘공생’, 그리고 ‘자치’와 ‘연대’의 가치를 이야기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이 껍질로만 빛나는 가치로 소비되기 이전에 우리는 체제가 점령한 생활세계를 사유해야 한다. 끊임없이 성찰하며 다시 되찾아와야 한다. 그 궁극의 끝에 우리의 잃어버린, 잊어버린 ‘오래된 미래’가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예서 옥천의 사례를 언급하는 것은 아래로부터의 공동성에 기초해 생활세계를 건사하고 주민들이 스스로 만든 공공성이 지역사회에 어떻게 체화해 지속가능하게 살아남았는지에 대한 작은 준거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체제의 제도 정치에 의지하지 않고 자본의 흐름에 내맡기지 않고 누구도 아닌 바로 주민이 주인되어 무던히도 어렵게 생활세계를 지켜왔던 옥천의 이야기가 작은 시사점을 안겨줬으면 하는 바람으로 겸허하게 이야기를 풀어낼 것이다.

옥천의 역사는 1989년 새롭게 시작한다.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20여 년의 역사이다. 그 이전의 역사에도 작은 씨앗이 있었겠지만서도 본격적으로 땅속에 활착해 발아하기 시작한 것은 1989년이라고 보면 된다. 그 해 200여 명의 주민들이 출자를 해 군민주 신문인 옥천신문이 뜻깊은 창간을 했고, 다른 한편에서는 지역 농민회가 기운을 모아 창립 준비를 하고 있었다.

이는 옥천 역사의 흐름을 바꿔놓은 중요한 일대 사건이었다. 다른 지역에서도 이런 움직임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으나 옥천의 움직임은 조금은 다르게 변주되어 활착되었다. 두 개의 맹아 모두 제도 정치를 지향하는 방향으로 풀어내지 않았고 끊임없이 아래로부터의 기운을 모아내고 다져내는 데 그 구실을 지난하게 해왔던 것이다. 물론 신문사와 농민회 일원이 한 두번 각각 군의원과 조합장 등의 선거에 나온 적이 있었으나 그것은 그 흐름을 확 뒤바꿀만한 사안은 아니었고 그 역시 체제정치와 조우되지는 못했다. 1990년대 초반 지방자치제가 다시 부활의 신호탄을 올리고 풀뿌리 보수들이 장악을 하며 연거푸 연임을 하거나 재선을 하였다. 변화를 갈망한 주민들은 여전히 목이 말랐지만 강고한 풀뿌리 보수는 제도권력과 자본권력으로 제도정치를 완전히 주름잡고 놓지 않았다.


거기에 균열을 일으키기 위해 다른 지역에서는 몸집을 키우고 체제내 행정구역 안의 선거라는 시공간에서 또 다시 자웅을 겨루며 벼뤄왔던 것도 사실이고 이것들이 지역의 진보 역사로 대부분 자리매김해오기도 했다. 하지만, 옥천에서는 집권하기 위해 모이지 않은 것은 아니었으나 이것은 그야말로 힘이 미약했고 제대로 된 후보조차 내지 못했다. 하지만 이것만으로 옥천의 정세를 판단하는 것은 매우 섣부르다 할 수 있겠다. 대신 아래로부터의 기운을 모아내며 풀뿌리 민주주의 기본인 공론을 장악해 주민들의 몫으로 꾸준히 돌려주어 체제의 거악에 끊임없이 투쟁의 단초를 마련했으며, 농업과 먹을거리를 바탕으로 지역순환경제를 만들고자 거침없이 투쟁했던 민초들의 역사가 있었다. 이는 결국 자치와 자급 운동으로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군수가 누가 되든, 국회의원이 누가 되든, 군의원이 누가 되든 그것은 물론 중요했지만 우리의 지역을, 삶의 공간을 좌지우지 할 만큼 중요한 것은 아니었다. 우리의 삶은 우리가 지켰던 것이다.

정말 이 땅의 주인이 누구인지, 체제에 휘둘리거나 복속되지 않고 끊임없이 아래로부터의 목소리를 가열차게 냈던 것이다. 옥천신문은 지금까지 주민이 주인인 신문으로 오롯이 남아 체제의 부패와 권력의 견제와 감시에 펜촉을 날카롭게 벼리고 있으며 또한 지역 주민들의 다양하고 소소한 이야기를 다루면서 지역 공동체의 복원에도 혁혁한 구실을 해왔다. 목소리를 찾은 주민들은 이 공론장에서 수없이 이야기를 해 왔고 이는 체제 내에 어렵지만 시간이 많이 걸렸지만 반영이 되어 왔다.

농민들은 자치와 자급의 깃발을 높이 들었다. 정부의 농업회의소가 정책적으로 입안되기도 훨씬 전에 옥천군 농민회를 비롯한 농민연대는 2002년 부터 농민을 지역농정에 참여시켜 달라는 요구를 자치단체장이 두번 바뀔 때까지 5-6년간 지난한 투쟁 끝에 농업발전위원회라는 조직과 조례를 만드는 쾌거를 이뤘다. 농정민주주의를 이렇게 구축했던 옥천의 농민들은 연이어 학교급식조례 제정에도 지역의 사회단체와 함께 힘을 모아 의회로 하여금 제정케 했으며 2008년 ‘옥천살림’이라는 영농조합법인을 만들어 대농 기업농 체계 단품목 대량생산체계와 수출과 경쟁에만 초점을 맞추었던 우리나라 농업체계에 종지부를 찍고 자급의 패러다임을 새롭게 시작하는 기틀을 마련했던 것이다. 로컬푸드는 그렇게 링크되었던 것이다. 옥천신문이 자치의 관점에서 풀뿌리 민주주의를 공고히 하는 초석과 보루의 역할을 했더라면 옥천살림은 농정민주주의에 기반해 지역의 자급의 관점에서 ‘순환’과 ‘공생’의 경제를 실현하는 살림살이의 한 축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체제에 의지하지 않고 제도정치에 의존하지 않고 주민들이 주인이 되어 스스로 체제를 이용하면서 아래로부터의 공동성, 즉 공공성을 확보해나갔다는 것이다.

지역의 공론장을 주민들이 직접 만들었고, 농업발전위원회와 학교급식조례, 옥천푸드 조례 등의 행정에서 만들 조례들을 주민 생활속으로 활착할 수 있도록 주민들이 주인되어 견인한 것이다.

끊임없이 체제와 불화하며 투쟁과 시위를 통해 주인됨을 주장하며 지역사회에 삶의 공간에 필요한 것들을 하나씩 획득해 나갔던 것이다.


그것은 나는 ‘공동체의 공동성’이라 이름 붙여 본다. 그렇게 공동선을 추구해온 것이다.


또 하나 운동방식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것은 우두머리를 바꾸는 수직적인 방식이 아니라 아래로부터의 마음을 모아 내는 수평적인 방식으로 이뤄졌다. 막대기를 꽂는게 아니라 동심원을 그리면서 수없이 교집합을 만들어내며 그 지점에서 자치와 자급의 꽃을 피워냈던 것이다. 국가가 구획해놓은 통치구역, 자치단체장이 관할하는 행정구역에 크게 휘둘리지 않고 생활세계로의 자립을 꿈꿔왔던 것이다. 우리나라 시군단위 행정체계는 전세계에서도 유례가 없을 정도로 기초자치단체 인구 규모가 거의 최정점에 달한다. 많다는 것이다.

그것은 통치자들이 관리자들이 통치하기 편리하게 묶어놓은 일본제국주의 식민지 시대의 잔재가 아직 남아있는 것이라 볼 수 있다. 이는 자연적으로 만들어진 생활공간과 배치된다. 살아보면 알겠지만 농촌에서는 읍면 단위가 가장 기초적이고 자립적인 생활공간이라 할 수 있겠다. 하지만 현제의 행정체제로는 자꾸 몸집을 불리며 군단위는 읍중심으로 커 가고 있고 나머지 면은 그야말로 하부구조로 전락해 있는 것이 현실이다. 실제 면은 자체 기획기능이 없고 군에서 시키는 일만 하는 하부구조로 되어 있다.


그런 상황에서 안남면의 자치운동을 우리는 눈여겨 봐야 한다.

안남면의 자치는 우리나라 생활세계의 자치 역사 중에서도 눈여겨볼 곳 중의 하나이다.

주민 스스로 지역사회 논의구조를 만들어내면서 그 안에서 예산까지 집행했다는 것은 실제로 우리나라 주민 자치 역사 중 소중한 사례라 볼 수 있다. 주민참여예산제가 관에 의해 시행하기 훨씬 전에 주민들에게 배분되는 금강수계기금 주민지원사업비를 모아내어 스스로 생활세계의 예산을 만들어내고 이를 지역발전위원회라는 논의구조 틀을 만들어 스스로 결정하고 집행했던 것이다. 2006년에 만들어진 이 지역발전위원회는 해마다 1억 5천여 만원이 넘는 스스로 만든 예산을 지역 주민들이 가장 필요로 하는 삶의 공간에 그렇게 집행해왔던 것이다. 그것은 본론에서 자세하게 다루기로 한다.

대부분 시군단위 종합발전계획이 읍단위 중심에 초점이 맞춰져 있으며 면단위는 특화작목이나 관광지 등으로 편중되어 지는 것을 볼 때, 주민들은 생활세계에 대해 본격적으로 사유하고 또 그렇게 스스로 만든 예산으로 스스로 삶의 질을 높였던 것이다. 이는 안남면의 운동현황에서 자세히 다루도록 하겠다.

안남면의 자치 운동은 폐쇄적인 막혀있는 운동이 아니라 끊임없이 변주하며 외연을 넓혀갔다. 그것은 안남면의 힘을 확장해 나가는 방식이 아니라 그 가치를 새롭게 지역에 맞게 활착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인근 안내면도 서로 영향을 주고 받아 또 다른 방식으로 자치의 꽃을 조금씩 피워가고 있고 옥천읍내로 나와서는 군단위에 맞게 실행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옥천살림의 탄생과도 같이 연동이 되어 있다. 그것은 거침없이 뻗어나가고 있다. 행정구역을 간단히 넘어 물을 기반으로 한 유역공동체로 끊임없이 변주되며 연대의 손길로 자립의 기운을 보내고 있는 것이다. 이 또한 자세하게 본론에서 풀어나갈 것이다.


옥천살림 영농조합법인의 운영 형태를 보면 옥천의 운동방식이 은연중에 보인다.

옥천살림은 개개별 작목반이나 농가를 거느려 옥천살림을 키워내는 수직적인 구조가 아닌 각 면단위 대표 영농조합법인이 연대하는 방식의 수평적인 구조로 되어 있다. 억지로 세를 불리려고 조직하지 않고 가능한 면단위가 결합하는 방식으로 하되 언제든 열어놓고 연대하는 방식인 것이다. 말하자면 처음부터 큰 원을 그리는 방식이 아니라 그 자체로 완결된 동심원이 여러개로 중첩되어 하나의 큰원을 만드는 방식으로 진행이 되어 온것이다. 여기에서도 가장 기초적인 단위는 생활세계인 면단위다.


흔히 우리는 작은 ‘마을’에 너무 촛점이 맞춰져 있다, 그것은 자칫하면 박제화된 체제의 액세서리로 전락할 가능성이 크다. 물론 마을이 중요하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가장 기본적인 생활공간으로 매우 중요하지만서도 그 안에 매몰되면 아무 것도 할 수 없다. 마을끼리 경쟁을 부추기며 등급을 매기며 상을 주는 것 자체가 체제의 개별화 작업이라 하면 지나친 음모론적인 시각일까?

마을이 연대하고 모여서 가장 기본적인 자급, 자치의 생활세계를 구성하는 것이 바로 체제와 자본이 가장 두려워하는 일일 것이다. 왜냐하면 그렇게 되면 체제와 자본의 필요성이 현저하게 떨어져 그 효용가치가 없어지기 때문이다. 그것을 너무도 잘 알기에 체제와 자본은 생활세계를 이야기하지 않는다. 행정구역은 더 크게 더 크게 묶으려 하고 생활세계는 힘을 못 쓰도록 자꾸 개별화시키며 그것보다 더 작은 마을 단위에 관심을 쏟아 내면서 체제의 음험함을 숨기고 있는 것이다. 생활세계는 그렇게 안팎으로 포위되어 위협받는 것이다. 우리는 보아왔지 않은가? 각 읍면에 있었던 자급의 기본단위였던 오일장이 사라지고 시내버스가 면내 자체 순환이 아닌 읍으로 향하게 되면서 사람들도 돈도 그리로 중심으로 한없이 빠져나갔다는 것을 우리는 경험하고 보아오지 않았던가. 그것은 지금도 그 침략과 수탈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그래서 지금 우리는 생활세계의 범주를 성찰해야 하는 것이다. 주어진 행정구역에만 매몰되지 말고 우리의 자치구역이 어디인지 생활세계가 어디메쯤인지 사유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그것은 시간에 의해 점령된, 미디어에 의해 획일화된, 서울 문화에 의해 수직 위계가 결정된 그런 우리의 일상적인 공간을 되찾아오는 자립운동이다. 바로 독립운동인 것이다. 끊임없이 주입시키고 내재화된 식민지 정치를 종식시키고 당당히 우리의 삶터를 찾아 우리의 삶을 스스로 보듬는 그런 의미있는 운동인 것이다.


그렇게 우리 생활세계와 자치구역을 사유했다면 성찰했다면 이제는 우리가 만나서 논의해야 한다. 공론장을 스스로 만들어 무게 중심을 만들고 스스로 가꿔나가며 체제에 요구할 것은 당당히 요구하되 그것에 휘둘리지 않는 삶을 사는 것이다. 자체 순환체계를 만들기 시작하면 자본의 거센 유혹에도 흔들리지 않을 것이다. 관의 정책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다. 물론 당당히 요구해야 할 터이지만 그 전에 우리의 주인됨을 먼저 되찾는 것이 먼저이다.


앞으로의 이야기는 여러 용어의 새로운 정의와 함께 옥천의 사례를 이야기하면서 우리가 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 같이 논의해보는 장이 될 것이다.




1.용어의 재정의



1)공동체와 결사체의 정의


공동체에 대해 여러가지 정의가 있을 수 있으나 공동체는 즉 커뮤니티로 혈연이나 지연에 의한 자연적 계기에 의해 성립한 마을이나 촌락의 개념으로 정리한다. 미국의 사회학자인 맥키버는 혈연이나 지연에 의한 자연적 계기에 의해 성립한 커뮤니티 즉 공동체와 다양한 이해관심에 의해 성립한 어소시에이션 즉 결사체라는 두가지 개념으로 정리한 바 있다.


공동체는 즉 자연스레 형성된 생활권 또는 사회권이라는 의미로 받아안고, 실질적으로는 학교 등의 공공기관의 최소단위가 거점으로 형성되어 제도와 맞물리면서 오래도록 공동성과 연대성이 유지되었던 지역사회를 일컬을 수 있겠다. 즉 최소한의 서로 관계를 맺으며 지속가능한 생활이 가능한 자급의 생활공간이고 의견을 모으고 결정하고 제어할 수 있는 자치의 공간으로 이 의미를 발전시켜 나갈 수 있겠다. 그리되면 인위적으로 뜻 맞는 사람들끼리 형성된 결사체와는 상반대의 성격을 지닌다.


그러니까 일반적으로 마음맞는 사람들끼리 산속으로 들어가거나 신앙이 같은 사람끼리 새롭게 마을을 이루고 사는 경우를 공동체라 일컫기도 하지만 그것은 기실 결사체에 가까운 것이다.

공동체의 의미를 같이 행동한다는 의미로 받아들이면 결사체의 의미와 가까울 수 있으나 공동체의 한자의 풀이는 결사체보다 더 강한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공동체라는 의미는 하나가 두번 겹쳐질 수 있는 하나의 무리로써 생활과 운명을 같이 하는 조직체라는 뜻인 것이다.

결사체도 물론 그 뜻의 공유여부에 따라서 생활과 운명을 같이 할 수 있지만서도 그것은 공동체의 그것과는 또 다른 것이다. 결사체는 뜻이 맞물려 있고 공동체는 삶이 맞물려 있다고 보는 차이가 있을까?

그 의미는 결국 같은 공간에 삶을 오랫동안 공유하면서 자연스레 만들어진 정서와 관습으로 오랫동안 서로의 삶을 맞춰오면서 자연스레 하나가 되었다는 의미가 아닐까?

물론 결사체도 그 공간이 열려있고 사람들이 자연스레 드나들면서 다양한 사람이 모여살게 되고 시간이 지나면서 자연스레 공동체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을 해본다.


결국 공동체와 결사체의 차이는 적어도 여기서는 자연적인것과 인위적으로 구분한다.

또한 자연스레 오랫동안 삶을 같이 공유해 온 집단과 시간의 유무와 상관없이 뜻을 같이 하여 짧은 시간에라도 모여 만들 수 있는 결사체의 두가지 뜻으로 나눠본다.

그런 의미라면 공동체는 자연스럽게 누구나 들어올 수 있게 열려있는 반면에 결사체는 뜻을 같이 한 사람에 한해 들어올 수 있는 다소 폐쇄적일 수 있겠다 하겠다. 이는 옳고 그름이 아니라 집단의 성격을 말하는 것이다.


공동체는 자연스럽게 만들어진 것이지만 수많은 역사의 흐름속에 왜곡과 굴절되어 읽혀졌으며 억압과 통제의 가장 기본적인 단위로 관리되어 온 것도 사실이다. 근대 국가가 형성되면서 그 제도가 아래로부터 자연스레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물건너온 서양 문물이 그대로 덧 씌어져 몸에 맞지 않는 불편한 옷을 입기를 강요당하면서 자연스러운 것과 인위적인 것의 전투가 곳곳에서 벌어졌다. 제도 권력은 자연스런 공동체를 통치구역과 행정구역의 하나의 기본단위로 집어넣고 통제와 억압의 수단으로 삼으려고 했으며 박정희 정권 자본의 물결이 국가의 통제 하에 급격하게 들어오기 시작하면서부터 도심에서부터 그런 공동체의 망들은 철저하게 깨지기 시작했다. 삶이 공유되는 공간에 대한 의미는 사라지고 개별적인 주체들만의 살아남기 각개 약진이 더 도드라지기 시작한 것이다.


자본은 국가의 비호 아래 끝간데 없이 성장했고 공동체를 모두를 개별적인 소비자로 만드는데 성공했고 공동 그 자체로 자급, 자치할 수 있는 생활공간들은 무참하게 유린당해왔던 것이다. 자본 권력이 자급할 수 있는 기틀과 기반을 깡그리 분쇄시키는데 그 구실을 담당했다면 제도 권력은 자체 회의를 통해 결정해왔던 자치의 기구를 아예 없애는 데 혈안이 되었고 그것은 관의 행정에 간단히 복속시켰다. 뭉뚱그려 말하자면 일본제국주의 시대 이후, 즉 우리가 주권을 빼앗긴 이후 우리는 한번도 주인된 권리를 지금까지 찾아본 적이 없었다 해도 무방할 것이다. 안팎으로 밀려오는 국가권력과 자본권력은 그 보이는 주체만 바뀌었지 그 속성은 하나도 변하지 않았다.


그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마을을 끊임없이 종용하고 강요하고 줄세우기를 했으며 또한 수탈하고 다 가져갔던 침략 침탈의 역사라 볼 수 있겠다. 물론 겉으로 보기에는 새마을운동이나 근자의 마을만들기 등을 통해 마을의 활성화, 커뮤니티에 주목하는 권력의 정책적 방향이 있기는 하지만 그것이 진정 마을을 살리고자 하는 것인지 아니면 권력과 자본의 비틀어진 야합에 의한 또 하난의 식민지를 건사하려는 것인지는 생각해 볼 일이다.


공동체란 앞서 말했든 자연스럽게 오랫동안 삶의 공간을 공유하면서 삶터에 무게중심을 갖고 지속가능하게 살아온 곳이다. 하지만, 여기서 인위적으로 권력이 무엇을 만들고 해준다는 것 자체가, 자본이 결합해 무엇을 해준다는 것 자체가 공동체의 정의와 맞지 않는 것이다. 물론 자발적으로 참여하거나 응모하여 이와 링크될 수 있으나 그 자발성이란 것은 무게중심이 오롯이 서 있고 혼자 설 수 있을 때 자연스레 나오는 것이다. 무게중심이 없고 휘청거리면서 제도권력과 자본 권력에 의탁하는 것은 결국 자발성이라기보다는 스스로의 공동체를 내맡기는 경우라 하겠다. 공동체의 의미가 사라지는 것이다.


그럼 실질적인 눈에 보이는 가시적인 공동체란 무엇을 말하는 것인가?

일상적으로 쉽게 만나면서 자급적인 생활권이 유지됐던 읍면동단위가 아닐까 생각한다.

왜냐하면 오랫동안 읍면 동단위에서는 자급의 기초 단위였던 오일장이 자연스레 열렸으며 행정구역으로 그렇게 이름붙여지기 이전에 자연스러운 이름이 존재하고 정서적인 일치감이 있었기 때문이다. 아무리 인위적인 행정이라도 이런 자연스런 흐름을 거스르지 못해 거점별 공공기관의 최하단위로 읍면동사무소를 위치시킨 것이다.

이들은 생활공간에 공공기관을 안착시켰음에도 불구하고 자치권을 주지 않았다. 자본과 결탁하여 자급권을 훼손시키는 방향으로 진행해 나갔다. 그것은 절묘하게도 일본제국주의 시대가 시작되면서와 맞물려진다. 일본제국주의 시대부터 통치하기 행정하기 편한 단위로 자연스런 공동체보다 조금 더 큰단위가 설정되어졌고 자연마을보다 1리, 2리, 그리고 동서남북을 지칭하며 이름붙여진 것들이 본격적으로 나오기 시작한 것이다. 숫자와 방향으로 지명을 간단히 정하는 것 자체가 그 자연적인 역사성과 생활성을 무시하는 폭압적인 방법이라 할 수 있겠다. 그렇게 철저하게 말살해온 것이다.

그 이후 해방이 되고 나서 자연스런 ‘읍면자치제’로 전환해 생활공간에 맞는 옷을 찾는 듯 했으나 이는 제대로 자리잡기도 전에 옷을 입어보기도 전에 박정희 쿠데타로 인해서 사실상 무산되어 지금까지 이어져 온 것이다. 박정희는 사실상 군부독재를 했고 통치하기 편하게 일제의 시군 행정제를 그대로 차용해 왔던 것이다. 이는 1990년대 초반 지방자치제가 부활하면서 다소 바뀌긴 했지만 그 틀은 그대로 유지되고 있는 형국이다. 결국 몸에 맞지 않는 옷을 지금까지 입고 있으며 일본제국주의의 침탈로 끊겨진 역사가 작금의 생활공간까지 여전히 영향을 주고 있는 것이다.



2)씨줄과 날줄



여기서 조금더 깊게 들어가면 공동체는 씨줄, 결사체는 날줄에 가깝다 할 수 있겠다.

씨줄은 사전적인 의미로는 피륙이나 그물을 짤 때 가로방향으로 놓인 실을 말한다. 위선이 같은 말로 적도에 평평하게 지구의 표면을 남북으로 가른 가상의 선을 일컫기도 한다. 날줄은 세로줄이다. 이는 경선, 지구 자오선을 의미하기도 한다. 뜻을 더 풀이하자면 하늘과 땅이 호홉하듯 씨를 심은 것이 씨줄이고 씨줄에서 태어난 것이 바로 날줄이라 할 수 있겠다. 경천위지 즉 날줄과 씨줄의 이치로 천하를 계획적으로 준비하고 다스린다는 고사성어도 예에서 나온다 할 수 있다.

고사성어 공부를 하려는 것이 아니라 이 사회를 받들고 있는 만들고 있는 씨줄, 날줄 망에 대해 생각한다. 앞서 말했듯 씨줄은 공동체에 가깝고, 날줄은 결사체에 가깝다.

씨줄은 모성이고 어머니의 대지에 가깝고 수평선을 의미한다. 날줄은 씨줄에서 잉태되어 나온 것으로 쑥쑥 수직으로 자라는 것으로 수직을 의미한다. 하지만 작금의 사회를 보면 씨줄은 이미 깨어진지 오래이고 씨줄에서 나오지 않은 날줄들의 수직행렬만 있다고 보인다. 이는 결국 공동체의 파괴와 붕괴, 단절이 지속되면서 씨줄이 망가졌고 그에서 기반하지 않은 날줄, 즉 결사체들이 오히려 공동체를 억압하는 구조로 가고 있는 것이다. 생활공간 보다 더 크게 제도 권력에 의해 구획되어진 구역과 자본 권력으로 인한 공동체의 분열은 씨줄을 엉키게 만들고 끊어버렸다. 날줄은 더이상 생활공간의 공동체에서 나지 않았으며 구획되어진 행정구역 안에서 그렇게 삽시간에 수도 없이 만들어졌다.


수많은 결사체들은 그렇게 구획되어진 행정구역 안에서 제도 권력을 잡기 위해 모여 있거나(즉 ‘정당’을 말하는 것이다) 자본주의에 편승해 우뚝 서려 하거나(이는 개별 자본주의 최대이윤을 추구하는 기업 등의 조직을 이야기 하는 것이다) 안의 내부 협동 또는 공유경제(협동조합, 사회적기업 등)를 통해 살아보려는 움직임이 있는 것이다.

그렇지만 이미 제도 권력과 자본권력에 구획되어지고 재단되어진채 산산조각 나 개별화된 공동체의 뿌리가 없는 곳에 덧 씌어진 결사체는 그대로 부유하기 십상이다.

공동체에 뿌리내리지 못하고 제도에 영합한 결사체의 파국은 이미 예정된 수순이다. 사회적기업, 협동조합이 아래로부터의 기운에서 생겨나기보다 정부의 정책에 따라 위로부터 우후죽순 생겨나면 그것의 파국은 예정되어 있다는 말이다.

이미 제도 권력이 만들어 낸 인위적인 행정구역이 자연스런 공동체를 억누르며 억압하는 방식으로 진행됐고 자본 권력은 공동체를 분열시키고 끊어내는 방식으로 스며들고 있다.


이미 깨져버린 공동체와 존재와 흔적만이 어렴풋하게 남아있는 공동체는 힘을 쓰지 못한지 오래됐고 이제 구획되어진 공간의 민과 관이 있을 뿐이다. 이를 극복해야 하는 것이다.

그나마 협동과 공유의 경제, 즉 자급을 방점에 찍고 추진하는 결사체는 공동체에 대한 고민을 더불어 해야 할 것이다. 공동체의 뿌리를 찾아 그곳에 접을 붙이며 링크를 해야 비로소 결사체의 의미를 되살릴 수 있다.

공동체는 가로줄인 씨줄이고 결사체는 세로줄인 날줄이다.

결사체는 공동체를 일로써 같이 복원하는 일도 병행해야 할 것이다. 그러면 영역 구분을 분명히 해야 한다. 결사체가 한없이 몸집을 불리고 성장할 것이냐 아니면 적정 규모의 공동체로 뿌리내리고 그렇게 계속 분화 연대할 것이냐는 주요한 기로이고 기점이다.

결사체가 성장에만 사로잡혀 공동체의 영역을 넘어서서 커버린다면 그것은 권력이 되고 수직의 구조가 될 것이다. 수평의 구조로 자립과 연대의 그물망을 펼치는 것이 모두가 살아남는 길일 것이다.

결국 내가 속한 이익단체를 넘어서, 내가 속한 결사체를 넘어서 모두의 공동체를 위해 공동체의 씨줄과 결사체의 날줄이 가로 세로로 튼실히 얼궈매어져 모두를 위한 안전망을 스스로 만들어야 한다.

거기에 속한 모두를 하나도 빠짐없이 모두를 숨어있는 소수자까지 찾아내어 모두를 같이 건사해야 하는 것이다. 그 망이 그 띠가 그 끈이 결국은 나에게로 이어진다는 것을 단절되는 것이 아니라 나의 삶으로 귀결될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분절된 삶이 아니라 그렇게 서로가 연결된 삶인 것이다. .


모두를 위한 하나의 희생이 아니라 그런 전체주의가 아니라 하나 하나 빠짐없이 모두 소중한 그런 삶터를 만들어야 하는 것이다.



3)삶터와 일터


삶터와 일터는 그리 간단하게 분리되어 있었다.

일터는 대부분 수직적인 위계구조가 분명했고 삶터는 수평적인 연결고리가 거의 끊어져 있었다.

그나마 남아있는 면단위 시골농촌의 생활공간을 들여다보면 그래도 삶터와 일터가 어느정도 비슷한 접점 사이에 균형을 이루고 있는 반면에 읍내 도심공간을 들여다 보면 일터와 삶터는 전혀 연결고리 없이 전혀 다른 세계처럼 공존해 있었다.

면단위 생활공간에서는 서로의 삶을 너무나 잘 알고 전부다 인적 관계망이 연결되어 있고 눈에 보이다 보니 고용하는 사람과 고용되는 사람 사이에 그런 위계는 뚜렷할 정도로 보이지 않는다. 다 아는 동네 형의 동생이거나 형수이거나 제수씨거나 친척이거나 하기 때문이다. 그나마 대등한 관계에서 수평적인 관계에서 일터와 삶터가 모호한 구분으로 균형을 유지하면서도


읍단위 도심공간에서는 삶터와의 단절되어 있는 관계로 인해 그것이 약하다. 일터는 일터이고 삶터는 삶터이다. 인구가 열곱절 이상은 많고 그만큼 익명성이 보장되기 때문에 소문이야 나지만 그냥 그렇게 사라지거나 증발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일터는 일터대로 업무의 효율과 수익을 기반으로 한 수직적인 위계구조가 강화되는 방향으로 조직이 꾸려지는 것이 대부분이다. 그 공간에서는 일과 삶은 엄연하게 분리되어 있다. 출퇴근 시간 안에는 일터의 소유지만, 이후에는 삶터의 소유로 바뀌는 것이다. 하지만 업무의 과다로 야근 시간과 기타 회식 시간이 늘어나면서 일터의 시간이 거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삶터는 잠자는 곳으로 전락한 지 오래다.


그나마 이런 수직적인 억압에 저항하기 위해 일터 안의 민주주의를 회복하고자 노동조합을 결성하고 투쟁과 시위, 협상을 통해 권익을 획득, 쟁취하기도 하지만 참 지난한 일이다.

일터에서의 민주주의가 그런 진행과정을 거쳐 만들어진다면 삶터안의 민주주의는 건사조차 되지 않고 있다. 반상회조차 제대로 열리지 않는 곳이 허다하다. 제대로 된 공론장을 갖추고 있는 것이 그리 많지 않고 대부분 제도 정치에서 만들어 주는 위원회에 곁다리로 참여하는 것이 전부인 것이다. 위원회 출무 수당 따박따박 받으면서 명함 걸고 행세하거나 들러리 서는 경우가 대부분인 것이다. 물론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지만 그 틀을 바꾸기에는 참 요원한 것이다.


당장 돈이 나오고 생활이 유지되는 것이 일터에서 나오는 급여이기 때문에 일터가 그만큼 중요하고 일터안의 민주주의에 대해 그렇게 주장하지만서도 삶터 안의 민주주의는 그야말로 황폐화된 사막이라 보면 될 것이다. 그런 사이에 조금 여유가 있는 사람들이 뿌리 삶터의 주인으로 등극하며 아무도 들여다 보지 않는 그 삶터의 주인 노릇을 해오고 있는 형국이다. 대부분 살만한 여유가 되는 사람들이거나 제도 정치에 편입하려고 노리는 사람들인 경우가 많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일터는 돈을 갖다 주지만 삶터는 자는 곳, 흩어졌던 가족들이 만나는 곳 이상의 의미부여를 하지 않는다. 이웃과의 관계는 단절된 지 오래이고 더 좋은 집을 찾아 더 좋은 학교를 찾아 이사를 하는 것이 일반화 되어 있기 때문에 정주 의식도 없다. 삶터에서의 협동이란 참 어불성설인 것이다. 그래도 최근 정주의식을 갖고 마을 공동체 운동이 펼쳐지는 것은 긍정적인 일이나 그것들은 대부분 중산층 이상의 그나마 살만한 여유가 있는 곳에서 시작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미 사는 곳 조차도 계층화 계급화로 인해 구획되어졌고 그들만의 공동체로 구비되기 십상인 것이다. 그 경계가 모호한 것 같지만 사람들은 어디가 잘 사는 곳이고 어디가 몬 사는 곳인지 귀신같이 본능적으로 알고 있다. 이미 구획되어 진 곳에서의 공동체 운동이란 그나마 여유가 있는 사람들의 공동체 운동이거나 없이 사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한 타자화 된 문화기획 운동이 될 공산이 크다. 그렇게 사는 사람들의 삶터를 백지장으로 여기고 그림을 그리는 그런 운동방식으로 귀결된 공산이 크다는 것이다. 이것도 외피상으로는 빈민 문화 운동 복지 운동을 표방하면서도 대상화한 시혜복지로 이어질 공산이 큰 것이다.


끊어진 삶터와 일터를 어떻게 자연스럽게 연결시킬 수 있을까?

연결하는 것이 바람직한 것인가?

일은 일이고 삶은 삶이다는 분리된 생각이 바람직한 것인가?

일터에서는 열심히 돈만 벌고 그 번 돈으로 내 삶을 즐길래 하는 것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


일과 삶은 연결되어야 하는가?

어찌됐는 일터와 삶터의 분리된 삶은 겉으로는 자유를 주는 것 같으면서도 그것이 진정 자유일까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일터와 삶터가 유기적으로 돌아갈 수 있다면 직장의 상하관계가 아니라 수평적인 삶의 관계로 본다면

일터의 관계가 삶터의 관계로 그렇게 고스란히 온다면 그것은 아마 지옥과 다름없을 지도 모른다. 상하 수직 관계가 삶터까지 전이 된다면 말이다. 군인들이 사는 곳에 공무원들이 사는 곳에 그런 위계가 정해져서 누구 사모님 하면서 그렇게 삶터까지 점령당하는 것은 비극이다.


삶터의 관계가 잁터의 관계에 스멀스멀 스며든다면 조금더 수평적이 되지 않을 까 생각하는 것이다.



4)수직과 수평- 운동방식에 대하여


수직적인 힘은 위태롭다. 이는 힘을 모으는 방식에 관한 문제이다. 그것은 내용이 어찌됐든 그런 형식으로 인해 또 다른 정체성을 만들게 된다. 한껏 힘을 모아 시급하게 과시하고 싶으면 수직적인 힘이 효과적일지 모르지만 그것은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다. 이는 제도 정치에 대한 유혹을 쉬이 뿌리치지 못하게 만든다. 선거는 우리에게 주권이 있는 거마냥 인식시켜주고 늘 4년마다 5년마다 우리의 권리를 그렇게 유예시켜왔다. 설사 그렇게 제도 권력을 장악했다 하더라도 가시적인 효과는 금방 나타날지 몰라도 전체적인 틀거리는 바뀌지 않는다. 문제는 이런 흐름들이 영속적이지 못하다는 데 있다. 영속적이지 못할 뿐더러 순간적으로 휘청거려 아무것도 남지 않을 수 있고 되려 상처만 남겨 안하느니만 못하게 될 수도 있는 것이다. 가령, 박원순 서울시장이나 임정엽 완주군수, 윤종오 울산북구청장 등이 민의 힘에 힘입어 제도 권력에 등극하여 여러가지 정책으로 주민 삶의 질을 개선시킨 것은 그것 자체로도 충분한 의미가 있으나 그것은 제도권력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한다. 아이디어는 출중할 수 있으나 주민들 속으로 체화되어 뿌리내리기에는 시민사회의 역량과 시간의 제한으로 한계에 봉착하기 십상이다. 명망가만 키울 뿐 시민사회의 역량을 키워내지 못하는 것이다. 물론 그런 행정의 경험들이 제도 정치의 역량이 다시 시민사회로 되돌아와 쌓인다면 그것은 또 다른 이야기일 수 있겠지만 우리나라는 일본의 가나가와네트워크처럼 그렇게 순환보직의 체계를 갖추지 못했다. 다만 더 큰 권력으로 더 가까이 가는 주춧돌로 활용될 뿐이다.


무엇보다 수직운동의 한계는 민을 대상화시키고 피동적으로 만든다는 것이다.

흔히 말해 민중 권력을 쟁취해 무얼 하겠다는 것 자체가 말장난일 공산이 크다는 것이다. 이미 권력이 된 것은 민중이 될 수 없는 것이다. 그것은 권력이 끊임없이 해체되고 분산되어야 가능한 이야기다.

우리 나라에서는 모아진 권력을 해체하기 보다 우리 쪽 사람이 집권하기를 간절히 원하는 방식으로 운동방식이 그렇게 진행되어 왔다. 그런 운동 방식은 다른 쪽 사람들이 집권했을 때는 사회는 엄청난 내홍을 겪고 불안에 휩쌓이게 된다. 그것이 너무도 당연하게 민주주의인양 고착화 된 것이다.


덜 나쁜 권력이 어떤 긍정적인 경험과 순식간의 변화는 이룰수는 있어도 그것은 모래성이나 신기루로 변질될 가능성이 큰 것이다. 결국 4년마다, 5년마다 누가 되느냐가 우리 삶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친다는 것은 정말 불안한 사회를 스스로 자초하는 것 아니던가.

이것이 불안한 수직운동의 방식이다.


반면 수평적인 힘은 쉬이 드러나지 않지만 단단하다. 쉽게 빠른 시일내에 도드라져 우뚝 서서 있지는 않지만 오랫동안 다져놓아서 그런지 단단하다. 그런 연대의 고리는 쉬이 끊어지지 않는다. 땅에 밀착해 물소리를 들으며 자연도 생각하게 된다. 무엇보다 제도권력을 쟁취하겠다는 목적성의 소멸은 더 평화롭게 민에 스며들 수 있는 기반을 제공하게 된다. 제도 정치의 목적성이 소멸하는 것 자체를 불임이라든지, 이상주의라든지 하는 그런 틀에서 생각하면 수평운동을 이해하는 데 한계가 있다. 수평운동은 한 사람을 세우는 게 아니라 모두를 세우는 것이다. 구성원 하나 하나를 존중하며 주인이 되게끔 서로 살리는 운동이다. 제도정치의 권력자가 누가 되든지 간에 밑바닥 삶의 기저를 단단히 붙잡고 스스로 엉켜내어 삶을 함부로 흔들지 못하게 만드는 것이다. 반권력을 지향하며 모두가 주인인 세상을 꿈꾸는 것이다. 그렇다고 제도정치를 배제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무게 중심을 민에 둔다는 의미이다. 끊임없이 제도정치와 대화와 투쟁을 번갈아가며 불온한 상상과 긴장 관계 속에 불화해야 할 것이다. 단지 민에 둔다는 의미보다는 생활세계의 공동체의 민에 둔다는 말이 적확할 것이다. 시민사회단체의 대부분의 한계는 권력에 대한 안티테제로서에 자신의 존재감을 설정하거나 날줄인 분야로 적시할 뿐 씨줄이 되는 공동체에 뿌리 내린 경우는 드물다 할 수 있겠다. 포커스를 권력에 대한 견제로만 맞추면 그리 될 소지가 다분하다. 물론 그 자체도 충분한 의미가 있지만서도 주민들과 같이 더불어 호홉하기에는 한계가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정치구조는 명망가 중심의 후진적인 구조이다. 제도정치에 의존비율이 거의 전부라 해도 과언이 아닐정도로 매우 높다. 생활정치는 존재 자체가 희귀하다. 한 사람 그 사람의 이름이 그가 있는 조직과 간단히 등치될 때 그 사람 외에 아무도 보이지 않을 때 그의 목소리만 끊임없이 재생산될 때 일극구조, 중앙집중. 수직위계구조가 된다. 우리를 억압하는 수직 위계구조를 만들어 의존할 것이 아니라 모두가 주인이 되는 수평적이고 순환적인 구조를 가질 수 있는 지에 대해 고민해야 한다.


5)자치와 관치


'자치'라는 말은 그렇게 함부로 내깔려서는 안 되는 사실 굉장히 불온한 말이다.

혁명의 의미를 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권력들은 그것을 무슨 액세서리마냥 체제의 한 산물인 것 마냥 그렇게 포장하고 체제에 복속시키고 있다.

자치의 원 의미를 거세시키고 선을 그어 봉쇄시킨 연후에야 그냥 모여서 무슨 문화센터 프로그램하는 것이 마치 자치센터의 구실인 것 마냥 그렇게 주지시키고 방관하고 있는 것이다.

자치는 말 그대로 만들어진 권력 모아진 권력이 의지하지 않고 우리 스스로 하겠다는 것이다.

그것은 바로 민주주의의 기본과 기초라 할 수 있다. 불온하고 혁명적인 말을 아무렇게나 내깔리고 굴절 왜곡 시키면서 자치라는 단어를 우스꽝스럽게 만들어놓고 진열하는 것이 현실이다. 정말 자치의 뜻을 제대로 인지하지 못하면서 자치를 무슨 정책인 것 마냥 자치단체장들이 공약으로 내걸고 있는 것이다.

제도 권력이 아무리 잘해도, 자치단체장이 아무리 똘똘해도 그것은 관치이지 주민자치가 아니다. 제도 권력의 시스템이 아무리 훌륭한다 한들 그들만의 주체성으로 우리가 수동적으로 접근해야 한다면 우리가 대상화 된다면 그것은 관제이지 우리 것이 아닌 것이다.

관이 아무리 선정을 펼쳐 모두 모두 잘 한다 박수친다 해도 건드릴 수 없는 우리의 몫이 반드시 있는 것이다. 그 우리의 몫이 점점 더 커질 때 제대로 된 자치가 구현된다 할 수 있겠다.


6)통치구역과 행정구역-자치구역과 생활세계


우리는 흔히 혼동하고 있다. 지방자치제를 이야기하면서 행정구역을 이야기한다. 그리고 서울과 지방이라는 말을 아무렇게나 쓰고 있다. 지방은 중심이 아닌 변방이라는 뜻에 다름 아니다. 지역을 하대하는 의미인 것이다. 지방이라는 의미는 사전적 개념은 ‘중앙의 지도를 받는 아래 단위의 기구나 조직, 중앙 이하 각급 행정구역의 통칭을 말한다’라고 되어 있다. 그러니 말하자면 지방 자치라는 말 자체가 어폐가 있는 것이다. ‘지방’이라는 표현은 중앙에 대칭되는 표현으로 ‘자치’하고는 전혀 상반대 되는 말인 것이다.

이를 근거로 생각해보면 지방분권과 지방자치라는 말은 잘못된 말이다. 지역분권과 지역 자치라는 말이 올바른 말인 것이다. 그리고 자치제를 이야기하면서 행정구역을 이야기하는 것은 어인말인가?

이런 언어 자체는 국가의 자치에 대한 시각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자치는 그야말로 보여주기식 제도이고 지방으로 생각하고 있고 행정하는 곳으로 생각하고 있다는 시각이 드러나는 것이다. ‘자치’는 그냥 듣기 좋은 말 불러줘보기나 하는 식으로 명명한 것이다. 자치라는 말은 그렇게 왜곡되었던 것이다. 희롱당하고 농락당한 셈이다.


제도정치와 생활정치, 행정구역과 자치구역은 그렇게 서로 대척점에 위치한다.

제도정치는 체제에 기반하고 생활정치는 생활세계에 기반하는 것이다. 제도정치는 행정구역 안에서 실행되고 있지만, 생활정치는 자치구역 안에서 실행되면 행정도 그 중 하나에 속하게 되는 것이다.


이는 오래전부터 분리되어 온 것으로 하버마스의 이론에서도 나온다.


하버마스는 생활세계를 일상적인 의사소통 행위자들이 서로 만나는 선험적인 장소로 이 생활세계의 구성요소로는 문화, 사회, 인성이라 말한다. 선험적이라는 말은 중요하다. 미리 같은 시공간의 장소의 경험을 같이 공유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 요소들은 상징적 재생산을 담당하고 이는 물질적 재생산과는 구별된다. 하버마스에 따르면 사회진화과정은 체제 분화과정과 생활세계의 구조분화로 나타난다.


[첫번째 단계에서는 사회는 체제와 생활세계라는 양태로 분화된다.

기능적 통합의 메커니즘은 그것이 경제, 행정체제와 같은 자립화 된 하위체계로 고착화될 때까지 사회통합의 생활세계로부터 분리된다. 두번째 단계에서 사회는 생활세계와 체제 자체내에서의 점진적인 분화를 이룬다. 이러한 사회진화과정은 근대에 이르러 체제와 생활체계로 분리로 나타난다는 것이다. 즉 근대사회에서는 화폐와 권력의 매개를 통해서 분화된 행위체제들이 더이상 생활세계의 상징적 차원에 의존하기 않게 되었다는 것이다. 체제 분리의 매개로서 화폐와 권력은 부르조아 사법과 공법을 통해 의사소통적 실천과 결합하여 생활세계에 제도화 한다는 것.

이러한 제도화는 체제의 관점에서는 생활세계를 물질적 재생산의 강제하에 예속시키는 토대로 작용하고 생활세계의 관점에서는 물질적 재생산을 생활세계의 규범적 제약하에 두는 제도적 틀로 기능한다.

하버마스에 따르면 이것은 근대화의 정상적인 구성요소이다. 하지만, 화폐, 권력에 의해 조정되는 체제 유지 명령이 생활세계의 상징적 재생산 영역에 침범할 때 생활세계의 식민화가 발생한다. 생활세계의 식민화는 의미상실, 아노미, 사회병리로 나타난다. 이것은 의사소통행위와 상호 이해의 조정 메커니즘이 기능적으로 필요한 영역을 화폐화와 관료화가 형식적으로 조직된 행위영역에로의 동화를 강요할 때 발생한다.] http://cafe.naver.com/gaury/122670 가우리 인용.


이처럼 근대화는 진보가 아니라 체제가 화폐와 권력으로 생활세계를 침범하여 식민화하는 형태로 진행된 것이다. 우리는 그것의 정점에 다다른 것이 아닐까?



7)유권자와 소비자-대의민주주의와 자본주의의 한계


유권자와 소비자. 이는 대의민주주의와 자본주의에 민을 적절하게 배치하는 용어들이다.

권력을 옹호하는 보위하는 엘리트 정치와 대의정치는 수많은 민초들을 유권자의 틀 안에 가둬버렸다.

4년 또는 5년 만에 한번 하루 열리는 일시적인 선거기간 안에 묶어놓은 것이라고 볼수 있다.


자본들은 수많은 주민을 경계를 넘어서는 소비자라는 틀에 가둬놓았다.

좋은 소비, 착한 소비 하면서도 소비의 틀을 벗어나지 못하게 묶어놓은 셈이다.

그렇게 마냥 권력과 자본은 유권자와 소비자로 분류해놓고 우리를 그 안에 가둬놓은 것이 아닐까?

이는 하버마스가 말한 체제가 권력과 화폐를 무기로 생활세계를 식민화하고 있다는 것과 비슷하다.

권력과 화폐가 유권자와 소비자라는 말로 민을 유형화시킨 것이다.



8)공공성과 공동성


공공선과 공동선의 차이는 무엇인가?

공공선은 아마도 개인보다는 사회나 국가, 즉 더 큰 공적인 조직을 위한 선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그것은 사적인 개인보다 모여 만든 사회나 제도 권력의 국가가 더 공적인 구실을 수행해야 한다는 전제를 깔고 말하는 것이다.

그러면 공동선이라는 것은 무얼까? 공동선은 사회 구성원 전체에 공통되는 이익을 말한다. 개인의 개별적인 이익이 존중되면서도 서로를 침해하지 않고 살리는 방향으로 가는 것이 바로 공공선이 아닐까 생각한다. '공공선'에 대해 찾아보면 '커먼 굿'이란 영어로 개인을 포함한 공동체 전체를 위한 선으로 공동선과 동의어라고 정의된 데도 있긴 하지만, 내가 보기에는 적어도 공공선과 공동선은 엄연히 다르다.


작금의 사회에서 말하는 공공성이란 것은 대부분 제도 권력이 하고 있는 것 또는 해야만 하는 것으로 귀결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런 공공성과 공공선은 자칫 아니 아주 자주 공익을 우선한다는 명분으로 소수자와 개인들을 사익으로 몰아붙이면서 인간의 존엄성을 침해하는 경우가 많은 것이다.

공공선과 공공성은 제도 권력에 의해 오염됐고 왜곡됐다.


그 대척점에 공동선이 존재한다. 아리스토 텔레스가 말한 공동선은 사회 구성원 전체에 공통되는 이익이다. 개인의 개별적인 이익만 도드라지는 것이 아니라 다수인 개개의 이익이 잘 조화될 때 성립되는 전체의 이익을 말하는 것이다. 이는 아리스토텔레스 뿐 아니라 토마스 아퀴나스의 유기체적 단체주의 사장에서도 주장되었다 한다. 개인의 이익과 사회의 이익이 이율배반적으로 모순되는 경우에 양자의 절충이 필요하고 이를 조화롭게 만들어 나가는 것이 바로 공동선이 아닐까?


이런 공동선과 달리 공공선은 공공복리의 개념으로 발전했는데 이 개념은 본질적으로 개별적 이익에 우월하는 사회전체의 이익이 따로 분리되어 있는 것이다. 이는 결국 절대주의 국가나 전체주의, 파시즘 등에 권력자들이 많이 애용하는 논리로 변질되곤 한 것이다.

근대에 들어서 행정국가는 법으로 이를 명시하고 있는데 우리나라는 '국민의 모든 자유와 권리는 국가 안전보장, 질서유지, 또는 공공복리를 위하여 필요한 경우에 한하여 법률로써 제한할 수 있으며'라고 헌법 제 37조 2항에 규정해놓고 있는 것이다.

필요에 한하여 법률로써 제한한다.

국가의 안전보장, 질서유지, 공공복리를 위해 사실 이런 목적들은 제도권력이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 형식으로 맘놓고 윤색해온 것이 사실이다.

이는 인민의 자유와 권리를 부당하게 침해해오는 방향으로 발전해온 것이다.

필요한 경우에 제한할 수 있다는 우리의 자유와 권리를 참 엄청난 말 아니던가?

공공성과 공공선은 국가에 의해 철저하게 왜곡되어져 온 것이다.

보편적인 선이 아닌 것이다.

그 대척점에서 앞에서도 말했듯이 공동선이 존재한다.

공동선은 우리의 생활공간에 대해 사유하고 자급과 자치의 공간으로 바꿔나가는 작업들이다.

제도 권력에 의탁하지 않고 자본 권력에 의탁하지 않고 서로의 마음으로 서로의 울타리와 둥우리가 되어주는 것이다. 공공성은 행정과 국가, 자치단체들의 권력에서 나오는 것으로 굳어져 있다면 공동성, 공동선은 바로 땅바닥에 서 있는 우리가 직접 모여서 만드는 것인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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