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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단 Jul 02. 2024

모르면 싸우는 겨!

관계를 생각한다. 깨어진 관계를, 이미 파편화된 관계를 생각한다. 

지역 사회에서도 수없이 끊어지고 단절된 관계로 인한 악순환의 반복을 생각한다. 

가령 이런 것이다. 아파트 재활용 쓰레기를 수거 분리하거나 일반 쓰레기를 쓰레기 봉투에 담아 버릴 때 아파트 경비원 아저씨와 안면을 익혔다면 재활용 수거업체 직원과 아는 사이라면 또 청소 노동자와 친한 사이라면 그것을 버릴 때의 마음가짐은 달라진다. 

재활용 쓰레기를 아무렇게나 분리하지도 않을 것이며 일반 쓰레기를 봉투가 찢어질 정도로 담아서 철철철 흐르게 하지도 않을 것이다. 우리 아이 친구 아빠라면 더 그럴 것이고 만약 내 동생, 내 아들, 내 아버지가 일했다면 그 마음가짐은 더 달라졌을 것이다. 

그렇게 마음의 거리가 가까워질 수록 대하는 태도가 틀려지는 것이다. 

우리가 하는 일에 대해 성찰하며 내가 하는 일이 그 사람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까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지역에서도 그런 일은 비일비재하다. 

민원을 처리하러 갔을 때도 그 공무원과 안면이 있는 사이라면 인사하고 밥 한번이라도 먹은 사이라면 민원 처리는 한없이 부드러워지고 어떻게든 해결하는 쪽으로 갈 터인데 그러지 않으면 딱딱하기 그지 이를데 없이 진행되는 것을 이미 경험한 바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이런 관계들은 대부분 아쉬울 것이 많은 사람들이 더 갈구하고 아쉬울 것이 없는 사람들은 별로 필요치 않게 되는 게 사실이다. 여기서 갑과 을의 수직적인 관계망이 형성되고 평평한 수평적인 관계망은 일그러진게 되는 것이다. 

갑과 을의 수직적인 관계망속의 관계는 본질을 왜곡시키고 관계를 수없이 억누르지만 이웃과 친구처럼 수평적인 관계망은 서로를 다시 생각하고 배려하게 된다. 

우리는 그런 수평적인 관계망을 얼마만큼 가지고 있는가?

얼마 전 지역내 노동자, 농민 연대회의에 참석한 적이 있다. 회의 중에 옥천버스노조 한욱동 지부장님이 나에게 툭 던진 말이 있다. 처음 뵈었는데 반갑게 인사하며 하시는 말씀이 “이렇게 얼굴이라도 익히고 인사라도 해야지 알지. 모르면 싸우는 겨. 알면 쉽게 풀리는데. 길 가다가도 서로 부딪쳐봐. 알면 아이구 반갑다고 인사하며 웃고 마는데 모르면 괜히 건드렸다고 큰 싸움 날 수도 있는 겨’라고 말하신다. 

이 말을 듣고 느끼는 바가 있었다. 내가 만일 옥천버스를 타면서 단지 승객과 기사의 관계로 만났다면 처음부터 마음을 열지 않았을 것이다. 승객의 입장에서 꼼꼼히 잘 손님을 응대하고 있는지 안전 운행하고 계시는지 불편한 것은 없는지에 대해 뱁새 눈을 뜨고 살폈을 지도 모르겠다. 물론 얼굴을 안다고 그런 것이 순식간에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얼굴을 아는 사이에서의 관계는 조금 더 상대방의 입장에 설 수 있고 배려하게 된다. 서로의 입장을 먼저 들으려 하고 마음이 오가면서 발전적인 이야기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수평적인 관계망은 중요하다. 그것은 갑을 관계처럼 이해관계가 잔뜩 얽혀진 것이 아니라 정말 순수하고 우애로운 관계망이다. 그런 관계는 신뢰와 믿음을 먹고 자란다. 

얼굴있는 먹을거리도 마찬가지다. 내가 먹은 농산물을 재배한 생산자의 얼굴을 안다면 그와 친분이 있고 그의 성격과 됨됨이를 잘 안다면 어떤 친환경 인증보다 우수 농산물 인증보다 너무나 기분좋게 먹을 수 있는 것이다. 우리의 관계는 어떤 법적 제도적 인증 절차의 우위에 있을 수도 있다 생각한다. 

생산자들도 누가 먹을지를 생각한다면 그 마음가짐이 달라질 수 있는 것이다. 당장 우리 아이가 아이의 친구가 우리 마을과 지역의 아이가 내 농산물을 먹는다면 마음가짐이 또 달라질 수 있는 것이다. 여기에서 로컬푸드의 의미가 시작되고 만들어지는 것이다. 로컬푸드는 거리가 가까운 농산물을 넘어서 유통비용을 줄이고 탄소발자국을 줄이는 의미를 넘어서 관계를 복원하는 운동이기도 한 것이다. 


갑을 관계의 수직적인 관계망이 일터와 삶터에서조차 반복된다면 갑은 한없이 편할지는 몰라도 대부분의 을은 피곤과 스트레스가 중첩되어 사는게 고통일 것이다. 하지만 일터와 삶터에서 이웃과 친구, 가족같은 수평적인 관계망이 확장되고 확산된다면 우리의 지역사회는 조금더 행복해지고 살맛나지 않을까?


우리 옥천의 관계망은 어디 쯤 위치하고 있는지 다시 한번 생각한다. 

공공성이 깃든 수평적인 관계망에 대해, 지역 사회에 일상적으로 살아 숨쉬는 관계망에 대해 다시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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