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곡동 가는 길목 경로당 근처에 민주네 할머니네 집이 있다. 이 녀석은 지각이 잦다. 늦잠을 자기 때문이다. 매주 토요일 그래서 집에 데리러 간다. 그런데 할머니네 집과 본인 집을 왔다갔다 하니 어디로 가야할 지 연락이 안 되면 난감할 때가 한 두번이 아니다. 한번 할머니네로 갔는데 빠알간 앵두나무가 얼마나 탐스럽게 열렸는지 눈이 뚫어져라 쳐다 보았더니 그걸 보던 민주네 할머니가 '따 먹어도 되요.' 말 꺼내기 무섭게 앵두를 따 먹었다. 상큼한 앵두물이 입에 들어올라치면 기분이 참 좋았다. 앵두가 작아서 후두두둑 따서 입안에 넣고 오물오물 씹어 먹은 뒤 씨를 뱉으면 기분이 좋다. 앵두를 따 먹고 있는 사이 민주가 옷가지를 차려 입고 나왔다. 다음에는 양정리에 사는 은별이를 데리고 갈 차례이다. 은별이네 집은 읍내에서 다소 멀다. 남성대를 지나 한참 더 들어가야 한다. 민주는 일찌감치 경로당에 나와서 기다리고 있다. 민서는 한전 골목에 있는데 나와서 기다린다. 픽업, 픽업, 픽업을 하고 가면 신문사 안에 하영이가 먼저 와서 기다린다. 그렇게 다 모이면 이번주의 신문을 같이 읽고,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눈다. 그리고 신문 읽기가 끝나면 이제는 기사 쓸 거리에 대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눈다. 학교 이야기, 마을 이야기, 집안 이야기까지 여러가지 대소사를 꺼내놓고 이야기를 하다보면 기사거리가 하나둘 잡힌다. 그 아이템을 갖고 글의 뼈대를 세워주고 살을 부치도록 해주는 것이다. 어느정도 시간이 되면 점심을 먹으러 간다. 이번주는 '피플'이라는 돈까스 집을 갔다. 새로 기자가 되겠다는 가빈이와 민서도 합류했다. 밥을 먹는 사이 집에서 또르르르 전화가 온다. 민주는 레인보우영화관에서 어머니와 인사이드 아웃2를 보기로 했다고 하고, 은별이는 어머니가 매금리 블루베리 농원으로 아이를 보내달라는 연락이 왔다. 바쁘다. 그래도 오늘은 점심 먹고 교육지원청 부근에 신흥갤러리를 둘러보기로 했다. 미술관이 없는 지역에 민간에서 예술작품을 오롯이 감상할 수 있는 공간은 축복이 아니던가. 그래서 훅 둘러보기로 하고 갔다. 주인이 없었지만, 빼곡하게 걸려 있는 그림들은 생소한 분위기다. 이층까지 그림을 빠짐없이 둘러보는데 아이들은 흥미롭게 본다. 대부분 영신중학교 미술부 아이들이라 그림을 꼼꼼하게 살펴보고 있다. 지역에 영화관 뿐 아니라 미술관이나 박물관, 연극을 볼 수 있는 소극장이 있었으면 좋겠다. 또 잘 지어놓은 문화예술회관에 한달에 한번 정기적으로 콘서트나 뮤지컬을 볼 수 있다면 그것도 축복이지 않을까. 그나마 영동에는 매주 토요일 오후 3시 난계국악당에서 국악공연을 하고 있다. 영화관과 도서관 사이의 거리에 이런 문화시설이 대폭 자리잡고 차없는 거리를 만들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해봤다. 매주 상설전시나 공연 등을 볼 수 있다면 지역민의 삶의 질은 확 올라갈 것이다. 그래서 선거관리위원회나 세무서 등의 건물은 외곽으로 빠지고, 옛날 영동극장으로 이용되었다던 드림디포부터 영동문화원 사이 그 길목이 그러했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봤다.
글이 옆으로 잠깐 샜다. 민주를 떨궈주고 은별이를 데려다 주고 왔다. 매금리는 자동차로 20분 정도 될 만큼 꽤 멀었다. 매금리 경로당 근처에 내려줬는데 은별이 어머니가 헐레벌떡 블루베리 한상자를 건네 주는 것 아닌가. 깜짝 선물에 기분이 좋았다. 빠알간 앵두와 새까만 블루베리가 아주 특별한 선물이 됐다.
그리고 아!참 이번주는 영동고향사랑기부제 1호를 한 김길연씨를 일라이트 호텔에서 잠깐 만나고 왔다. 김길연씨는 용화면 여의리 출신으로 자계국민학교를 나온 재경영동군민회 여성 회장이다. 어렸을 때 재미있게 학교 다니던 이야기를 아주 맛깔나게 해주셨다. 아이들은 세련된 호텔을 처음 와보고서 어리둥절한 느낌이다. 마치 수학여행 온 부산같은 느낌이 든다고 했다. 1층 라운지와 2층 수영장을 보고서도 깜놀한 듯 보였다. 영동에 어울리지 않은 도시 호텔 분위기에 영동에 이런 곳이 있었어요. 한 목소리를 내기도 했다. 누군가 그랬다. 수영장 건립하기 전이니 일라이트 호텔 수영장에서 아이들 생존수영을 가르치면 어떻겠냐고 말이다. 좋은 생각이다. 그런데 수영장 이용료가 만만치 않다. 군립 수영장은 하루 이용료가 보통 3천원인데, 일라이트 호텔 수영장 이용료는 입장료가 비투숙객은 3만원, 투숙객은 2만원이다. 그래도 좋은 마음으로 수영장을 저렴하게 지역 초등학교 아이들한테 교육시간만이라도 개방하면 좋을 텐데 그럴 수 있을지 의문이다. 18홀짜리 골프장은 27홀짜리 골프장으로 확대한다는데 여전히 이질적이다. 관광객도 중요하다만, 일상을 사는 주민들을 위한 문화예술공간이 많이 만들어지면 좋겠다. 아이들과 지역의 새로운 공간을 탐색하면서 나도 배우고, 아이들의 반응을 보고 느끼는 바가 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