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부터 '좋잘일기'라는 걸 쓰고 있다. 발음은 좀 뭐하지만 어차피 소리 내 읽을 일이 없으니 괜찮다. 그날그날 '좋은 일이나 잘한 일'을 달력에 간단히 기록하는데, 아무리 사소한 일이라도 다 적어본다.
'완전 소중한 단편영화관 발견', '계단에서 미끄러졌는데 재빨리 팔을 짚어 허리를 지켜냄', '카페에서 체리콕 마시며 소설 한 장면 씀', '아침 찬물 세수가 너무 시원했음', '토요일 아침 맥도널드 2층 창가 자리에서 맥모닝 먹으며 <씨네21> 읽음', '구립도서관 걸어서 왕복', '엄마, 동생이랑 시장 구경하고 카페 감', '야채곱창 맛있게 볶음', '밀린 설거지 드디어 끝냄', '제법 관심 가는 구인공고 찾음' 뭐 이런 식이다.
'관심 가는 구인공고' 같은 건 훗날 탈락해서 '나쁜 일, 못한 일'이 될 가능성이 다분하지만, 어쨌든 오늘 좋았으면 좋았다고 쓴다. 과거와 미래는 생각하지 않고 오직 오늘 하루에 대해서만 쓴다.
나는 되게 게으르게 살면서도 은근히 나를 다그치는 스타일이다. 현대사회를 살아오면서 '왜 이렇게 못했니, 더 잘해야 한다'라는 마인드가 기본적으로 깔려 버렸다. 그래서 내 멘탈의 휴식과 건강을 위해 '나도 잘한 게 있다, 내 인생에도 좋은 순간이 있다'는 걸 일부러라도 찾아봐야겠다고 생각한 것이다.
감사일기를 쓰라느니, 거울을 보며 하루 세 번 웃어주라느니 하는 마음건강법에는 왠지 거부감을 느끼곤 했다. 하지만 내 하루하루에서 뭐라도 좋은 점을 찾아보는 정도는 나쁘지 않은 것 같다. 최소한 내가 뭘 좋아하는 사람인지는 좀 더 디테일하게 알게 되었다. 나는 먹는 즐거움이 꽤 중요한 사람이었구나, 나는 궁금했던 걸 알아낼 때 기분이 좋아지는구나, 나는 혼자 여유롭게 자판 두드리는 시간을 좋아하는구나, 하고 말이다.
어제는 유난히 재미없는 하루였다. 비가 오니 밖에 나가지도 않고, 자소서도 쓰기 싫고, 소설도 손에 잡히지 않아 하루 종일 뒹굴거리다 밤이 되었다. 그래도 달력에 빈칸을 만들기는 싫어 '점심저녁 집에서 해 먹음, 야식 안 먹음'이라고 적었다. 그래, 끼니 챙겨 먹었고 아픈 데 없었고 비 오는데 지붕 밑에 있었으면 됐지.
오늘 아침 창문을 열어보니 내가 딱 좋아하는 맑고 시원한 날씨다. 월요일 오전에 여유를 즐길 수 있는 시기도 얼마 남지 않았다. 오늘은, 또 이번주는 어떤 '좋은 일, 잘한 일'이 생길까. 기대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