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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제 Oct 17. 2021

영화제 카탈로그로 내 취향 알아보기

부산국제영화제, 내년을 기약하며

2014년 부산국제영화제를 2박3일로 혼자 다녀온 일은 내 인생의 행복했던 순간 top3에 드는 추억이다. 티켓 카탈로그를 읽으며 보고 싶은 영화를 골라 시간표를 짜고, 예매창 열리는 날 피씨방에서 미친 클릭질 끝에 간신히 몇 편을 건지고, 숙소와 버스를 예약하고, 이번 여행에서 들을 음악을 선곡하고, 신기한 영화들을 실컷 보고, 부산이라는 멋진 도시를 여기저기 돌아다니고, 처음 보는 먹거리들을 먹어보고, 밤에는 해운대 바닷가에서 야외공연도 보고, 게스트하우스의 2층침대에서 잠드는 등등의 모든 경험이 다 좋았다.


그때는 꼭 매년 와야겠다고 다짐했지만 살다보니 어느 해는 돈이 없어서, 어느 해는 시간이 없어서 한 번도 더 못 가보고 오늘에 이르렀다. 코로나19가 터진 후로는 ‘그때 그 경험은 다시는 못하겠구나’ 싶어 엄청난 상실감을 느꼈는데, 이번 부국제가 잘 진행된 걸 보니 희망이 좀 보이는 것 같다. 과연 내년 가을에는 해운대 백사장을 다시 밟을 수 있을 것인가!



아무튼, 영화제에 직접 가지 못하는 아쉬움은 티켓 카탈로그 읽기로 달래곤 한다. 올해도 한 권 득템해서 영화 소개글을 정독했다. 내용도 스타일도 다양한 영화들을 보다보면 내가 어떤 이야기에 끌리는지, 어떤 이야기엔 관심이 없는지 알게 된다. 짧은 소개글만 보고 실제 영화가 어떨지 상상해보는 것도 재미있다. 잘 활용하면 영어공부에도 도움이 될 것 같지만 거기까지는…… ㅋㅋㅋㅋ


이번에는 좀 더 본격적으로 색연필을 써서 ‘관심’ ‘무관심’ 표시를 해봤다. 관심 가는 부분에는 민트색, 관심없는 부분엔 보라색으로.(나도 참 혼자 잘 노는 것 같다)



이렇게 해보니 나는 대체로 소재나 형식이 특이한 이야기, 작가나 창작에 대한 이야기, 허구와 현실이 뒤섞이는 이야기, (내적·외적)갈등이 치열한 이야기, 죄와 벌에 대한 이야기, 잘해보려고 하는데 점점 꼬여가는 상황, 유머러스하거나 아예 공포스러운 스타일에 끌렸다. 너무 현실적인 이야기, 잔잔하고 따뜻하고 시적인 이야기, 범죄조직·액션·스포츠·전쟁·히어로·블록버스터 등에는 관심이 없었다.


그리하여 내가 이번 부국제에 갔다면 표를 사고 싶었을 관심영화 중 일부를 적어본다. 몇 편쯤은 나중에라도 극장에서 볼 수 있겠지.


<행복의 나라로(임상수)>

시한부 탈옥수, 약을 훔쳐 연명하는 난치병 환자의 상황과 관계에 관심이 감. <노킹 온 헤븐스 도어>랑은 어떻게 다를까?


<카우(안드레아 아놀드)>

젖소의 일생을 그대로 찍었는데 흡입력이 있다니 대체 어떻길래?


<프렌치 디스패치(웨스 앤더슨)>

가상 도시의 잡지사라는 배경이 흥미롭고, 웨스 앤더슨의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을 인상깊게 봄


<같은 속옷을 입는 두 여자(김세인)>

성격 다른 모녀가 법정다툼까지 하게 되는 갈등상황, 치열하면서도 디테일하고 유머 있는 스타일에 관심이 감


<낮과 달(이영아)>

남편을 잃은 주인공의 상황을 흔한 애도기가 아니라 엉뚱하고 쾌활한 이야기로 풀었다는 지점에 관심이 감


<한 끗(이우동)>

형사들이 방송을 조작하려는 이유, 계획대로 되지 않고 꼬여 가는 상황, 제한된 장소를 배경으로 하는 점에 관심이 감


<참을 수 없는 존재의 하찮음(콘스탄자 페르난데즈)>

의사가 환자가 되어 의료시스템의 부당함을 겪게 되는 상황을 아이러니하고 유머러스하게 풀었다는 점에 관심이 감


<수베니어: 파트Ⅱ(조안나 호그)>

영화 제작에 난항을 겪는 젊은 여성 영화학도의 삶을 솔직하게 표현했다는 점에 관심이 감


<사랑할 땐 누구나 최악이 된다(요아킴 트리에)>

변덕스럽게 꿈이 바뀌며 진로를 고민하는 주인공의 상황이 공감될 것 같음


<깃털(오마르 엘 조하이리)>

남편이 닭이 되는(???) 비현실적 사건을 통해 시스템의 문제를 얘기한다는 점, 구원 대상으로 보였던 부인이 주체로 드러난다는 점에 관심이 감


<매스(프란 크랜즈)>

총격 사건으로 아들을 잃은 부모와 가해자의 부모가 오랜 세월 후 만나서 어떤 이야기를 하게 될지 관심이 감


<성덕(오세연)>

내가 좋아하는 대상이 혹시라도 사고를 치지 않을까 불안해하며 살아가는 사람으로서 엄청 공감될 것 같음


<피아노 프리즘(오재형)>

화가, 영화감독이면서 피아니스트로도 활동하려 한다는 감독의 작업이 궁금함


<기국서의 배우수업(황철민)>

노장 배우들이 함께하는 연극 연습과정, 연극과 삶의 경계를 흩뜨리는 배우들의 일상에 관심이 감


<A.I: 인공불멸(안 신)>

상상을 초월할 만큼 발전했다는 인공지능사업과 이로 인해 달라져가는 현대사회가 궁금하고 SF적 아이디어를 얻을 수 있을 것 같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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