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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제 Dec 01. 2021

슬럼프와 자기통제에 대한 셀프상담

지난 토요일, 제이는 자기자신을 텍스트로 상담해보았다. 아주 별짓을 다 한다.ㅋㅋㅋㅋ 지리멸렬했던 내적 대화를 그럭저럭 뜻이 통하게 편집했다.




휴가 동안 실컷 글을 쓰려고 했는데 작업에 집중하지 못하고 있어요. 이야기 속으로 다시 뛰어들기가 왠지 두렵고, 새로운 문장들을 계속 생각해내고 분량을 채워야 한다는 게 부담스럽게 느껴져요. 저는 분명히 글쓰기를 좋아하는데 왜 글쓰기가 숙제처럼 느껴지는지 모르겠어요. 자꾸 드라마나 예능 같은 걸 보면서 맛있는 음식을 먹는 걸로 쉽게 만족감을 느끼고 싶은 충동이 생기는데, 제가 왜 이러는 걸까요? 이럴 땐 어떻게 해야 할까요?


일단…… 인간은 원래 그래. 스스로에게 과제를 부여하고 사서 고생하는 것보다 TV 보면서 치킨 먹는 게 훨씬 쉽고 즉각적인 즐거움을 주는 게 당연하지. 인간은 누구나 괴로움을 피하고 즐거움을 추구하게 돼 있어. 그런데 창작은? 가끔 잘 써질 땐 엄청 즐겁지만 그보다 더 많은 시간을 괴롭게 노력해야 하는 일이잖아? 적어도 너한테는.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열심히 쓰는 작가들이 무지 많잖아요. 직장생활 병행하면서도 하루에 5000자씩 써서 연재하고, 주말에는 하루종일 글만 쓰고 그런 사람도 많던데.


‘남들은 다 나보다 잘하고 있다’는 착각의 굴레에 빠져 있군. 설령 그런 사람들이 정말 많다고 해도 그들과 너를 비교해서 괜한 열등감을 느낄 필요는 없어. 자존감만 깎아먹고 도움도 안 돼.


그렇지만 저는 그 사람들처럼 열심히 쓰는 사람이 되고 싶은걸요?


남의 인생을 따라하는 게 네 인생의 목적이니?


그건 아니지만…… 남들처럼 열심히 써야 제가 쓰고 싶은 글을 써낼 수 있을 것 같은데.


너다운 글은 너다운 방식으로만 쓸 수 있지 않을까? 네가 쓰려는 글의 내용이나 형식이 하루에 5000자씩 연재해야 되는 웹소설이야? 세상에는 다양한 유형의 작가들이 있어. 하루에 한 줄도 못 쓰고 머리만 쥐어뜯는 소설가가 흔하고, 네가 좋아하는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도 편집자가 호텔에 가둬놔서 겨우 썼다잖아?


하루에 한 줄도 못 쓰고 머리만 쥐어뜯는 건 엄청나게, 어마어마하게 괴로운 일이잖아요. 나는 그런 괴로움을 매일 겪고 싶지는 않아요. 글쓰기 루틴을 확실하게 만들어서, 기자가 매일 기사를 넘기듯이 내가 쓴 글을 착착 쌓아가고 싶다고요. 완벽한 습관을 만들어서 제가 자동으로 움직여졌으면 좋겠어요. 빨리, 많이 쓰는 작가가 되고 싶어요. 빨리 쓰고 여러 번 고치는 게 더 효율적이잖아요. 한 문장씩 고뇌해서 써봤자 나중에 고쳐야 되는 건 똑같고요. 그런 식으로 어느 세월에 장편을 써요? 쓰고 싶은 게 얼마나 많은데.


좋아, 빨리 많이 쓰고 싶다는 게 성급한 욕심일 수 있다는 건 일단 차치하고, 어떻게 해야 네가 원하는 작가가 될 수 있을까? 환경설계에도 한계가 있어. 스마트폰 잠금어플을 쓰고, 루틴 만들고, 시간표 그려서 벽에 붙이고, 그런 거 다 좋지만 아예 너를 칭칭 묶어서 로봇이 네 손가락을 저절로 움직이게 만들지 않는 이상 너를 완벽하게 통제할 수 없어. 그렇다면 이제는 통제가 아닌 다른 방식을 상상해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통제가 아닌 방식이라는 게 존재할까요? 통제하지 않고 어떻게 변화하고 성과를 낼 수가 있어요? ‘시키지 않아도 스스로 공부하는 모범생’ 같은 얘기잖아요. 저는 그런 사람이 아니라고요.


‘상상’이라도 해보자는 거야. 통제가 아닌 방식이 있을 수도 있다고 상상을 해보는 거야. 그게 바로 네가 가진 뿌리깊은 편견의 벽을 넘어서는 시도일 수도 있잖아? 통제하지 않고도 즐겁게 글을 쓸 수 있는 방법이, 있을 수도 있다고 상상을 해보자고. 자기통제라는 게 사실 에너지가 상당히 소모되는 일이잖아. 계획하는 일, 시키는 일, 환경을 만드는 일, 감시하는 일, 잔소리하는 일, 실천하는 일 등등을 다 너 혼자 해야 하니까 부담이 커질 수밖에 없지.


오케이. 상상을…… 해보죠. 통제라는 방식을 넘어선 어떤 다른 방식이라…… 내가 나를 통제하지 않는다면 어떤 방식으로 내 삶을 살아갈 수 있을지…… 일단, 완전 방종한 하루하루를 보낼 수도 있겠죠? 아예 글을 포기할 수도 있으려나? 퇴근한 후에는 맨날 치킨을 시켜 먹고, 후식까지 먹고, 모든 시간을 영상 시청과 독서, 수면, 가끔의 산책과 취미생활로 보낼지도? 그런 삶도 나쁜 건 아니죠. 하지만 뭔가 공허할 것 같아요. 그냥 시간때우듯이 사는 것 같고, 나만의 뭔가가 없는 것 같고, 내 가능성을 다 펼치지 못한 것 같아서 아쉽고, 쓰고 싶었던 글을 써내지 못해서 죽을 때 후회할 것 같고. 그리고 더 중요한 건, 나는 나를 통제하지 않지만 내 직장이 평생 나를 통제할 거라는 거죠. 다른 길을 찾지 않는다면 직장을 다니면서 돈을 벌 수밖에 없잖아요. 그리고 그 직장은 내 존재를 엄청나게 통제할 거고. 결국은 더 오래, 더 전면적으로 통제당하면서 살게 되는 거겠죠.


그래. 더 낙관적인 상상을 해본다면?


글쎄요. 계획을 세우고 통제하지 않아도 글 쓰는 게 너무 재밌어서 틈날 때마다 자연스럽게 쓰게 된다면 제일 좋겠죠. 일정한 시간을 들여서 일정한 분량을 뽑아내야 하는 숙제 같은 글쓰기가 아니라, 소설 속 인물에 생생하게 이입되고 뒷이야기가 궁금해서 저절로 계속 쓰게 된다면 작업이 더 즐겁고 자유로워지겠죠. 하지만 그런 식으로 기분에 의존해서 쓰는 건 위험할 것 같은데.


즐거움보다 규율이 더 안전하다는 거네. 자, 그럼 이번엔 이렇게 한번 생각해보자. 그동안 너는 너 자신한테 이런 말을 주로 하면서 살아왔지? ‘완벽한 계획을 세웠으니 이번엔 꼭 지켜야 돼! 평일 퇴근 후에는 조금만 놀고 글을 써야 돼! 휴일에는 최소 7시간은 써야 돼! 어라? 휴일인데 왜 작업은 안 하고 놀고만 있어? 시간 아까워 죽겠네. 하루종일 한 게 뭐야? 정신 안 차릴래? 그러니까 네가 안 되는 거야. 솔직히 너 못 바뀌어. 될 거였으면 진작 됐겠지. 글쓰기가 진짜 절실했으면 이렇게 한심한 하루는 안 보냈겠지. 넌 진짜로 소설을 쓰고 싶은 게 아니야. 그냥 현실도피를 위한 핑계일 뿐이지.’


……그랬죠.


그런데 너 자신이 아니라 남한테라면 저런 식으로 말을 했을까? 부모나 선생이 애한테 저런 태도로 대하면 애 인생이 나아질까? <금쪽 같은 내 새끼> 애청자 짬밥이 있잖아. 어떻게 생각해?


……저러면 안 될 것 같긴 하네요.


그러면 너를 어떻게 대해주는 게 좋을까?


아주아주 친한 친구……? 나와 내 글을 진심으로 좋아하고, 내 취향과 감정을 잘 알고, 친근하고 편하게 나를 대하고, 장난기도 좀 있고, 강요하거나 평가·비난하지 않고, 내가 원하는 삶을 살 수 있도록 진심으로 도와주고 싶어하고, 글쓰기나 다른 고민에 대해서도 마음놓고 상의할 수 있는, 관대하고 현명하고 안전하고 멘탈도 강한 절친이자 뮤즈이자 매니저가 있으면 좋을 것 같네요……?


좋아, 그런 사람이 있다면 너에게 어떤 식으로 말을 할까? 그런 사람과는 어떤 대화를 하게 될까? 그런 사람은 너를 어떤 식으로 도와줄까? 그런 사람이 할 법한 말, 너한테 진짜 필요한 말을 너는 상상할 수 있어. 너를 통제하는 목소리가 아니라, 너를 좋아하고 너를 도와주고 싶어하는 목소리와 대화할 수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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