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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제 Apr 03. 2022

골방 탈출의 심리적 장벽 낮추기

매일 발행 1일차

제이가 멋대로 정한 장편 초고 마감일, 2022년 3월 13일이 훌쩍 지나고 완연한 봄이 와버렸다. 그렇다, 역시 제이는 한번 마음먹으면 반드시 지켜내는 굳은 의지의 소유자가 아니었던 것이다. 새삼스럽지도 않지만 ㅋ


그동안 잊을 만하면 한 번씩 이런 메시지가 왔다.



그래, 알았어, 알았다고!-_-.......




2006년 여름, 제이는 소설 쓰는 사람이 되기로 마음먹었다.

그 후로 4년쯤 혼자 끄적거렸다.

2010년 가을, 한 문예창작 강좌에서 처음으로 남들에게 자기 글을 보여줬다.

강좌가 끝난 뒤 5년쯤 혼자 끄적거렸다.

2015년 겨울, 큰 결심을 하고 텀블벅과 브런치에 가입해 첫 글을 발행했다.

2016년 여름부터 독립출판을 시작해 2017년 가을까지 잡지 4권을 발행했다.

2018년까지 장편소설 초반부를 연재하다가 길을 잃고 중단했다.

2019년부터는 현생에 치여 완전 잠수한 채 2022년 현재까지 혼자 끄적거렸다.


혼자 끄적거리는 몇 년의 시간 동안 제이의 골방에서는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었던 걸까? 왜 그렇게 주구장창 혼자서만 끄적거렸던 걸까? 나름대로는 고군분투했던 것 같기는 하다. 직장을 다니고, 계획을 세워서 시간을 짜내고, 이렇게도 써보고 저렇게도 써보고, 작법서도 읽어보고, 좌절했다가 다시 결심하고, 덕질에 빠지고 빠져나오고, 드라마나 예능을 정주행하고, 또다른 계획을 세워 벽에 붙이고, 실천하고 실패하고 등등등등등등등.


그러다 얼마 전에는 이런 생각을 했다. 장편에 대한 집착이, 내가 뭘 못하도록 또는 안 하도록 붙잡고 있는 걸까? 무의식 수준에서는 내가 글쓰기 자체를 원하는 게 아니라, 집밖에 안 나가기를, 방 안에 혼자 있기를, 다른 사람을 만나지 않기를, 일을 하지 않기를, 생각을 멈추지 않기를, 움직이지 않기를 원하고 있는 게 아닐까? 또는 그래야 한다고 강박적으로 믿고 있는 게 아닐까? 하지만 그런 게 목적이라기엔 쓰고 싶은 게 너무 많은데? 쓰고 싶은 게 많다는 것도 어쩌면 착각일까?


인물의 내적 목표를 파악하는 게 이렇게나 힘들다.


자기자신도 파악을 다 못하는데(자기자신에 대해서 엄청나게 많이 생각하는 타입인데도 불구하고) 어떻게 가상의 인물들을 깊이 파악해서 소설로 표현해낼 수 있을까? 소설가들은 이런 문제를 대체 어떻게 극복한 걸까? 애초부터 이런 고민과 이런 헛짓거리들을 할 필요가 없는, 작가적 천성을 가진 사람들이 작가가 되는 걸까?


불완전하고 부족한 부분이 우리의 성격을 정의한다. 우리가 어떤 사람인지는 곧 우리에게 어떤 결함이 있는지와 같다. ...... 그날 밤 스티븐스 시니어는 뇌졸중을 일으켰고 죽음이 임박했다. 스티븐스는 주변으로부터 계속해서 아버지를 보러 올라가 보라는 말을 듣지만 번번이 자신은 집사의 의무를 다하러 돌아가봐야 한다고 고집을 부린다. 아버지가 결국 세상을 떠난 순간에도 스티븐스는 바빠서 올라가 보지 못한 채 하녀에게 이렇게 말한다. "아버지는 내가 꼭 지금처럼 일하기를 바라셨을 겁니다." ...... 이 장면(그 심리적 진실)이 훌륭한 이유는 스티븐스에게는 이 일이 수치와 회한의 기억이 아니라 승리의 기억으로 남아 있다는 사실 때문이다. 영국에서 가장 훌륭하고 품위 있는 집사의 반열에 오르는 것이 그에게는 최고의 영광이다. 스티븐스의 현실에 대한 환각 모형은 감정 절제라는 가치를 중심으로 구축된다.
(윌 스토, 『이야기의 탄생』, 88~93쪽 중에서 발췌 인용)


제이도 어쩌면 스티븐스처럼 뭔가 왜곡된 인식과 신념에 붙들려 있는지도 모른다. 뭐가 문제일까? 어느 부분이 특히 잘못되어 있는 걸까? 지금까지의 인생을 돌아본 제이는 일단 '혼자 끄적거리려고 하는 골방 마인드'에서 벗어나보자는 생각을 했다. 비밀일기를 열심히 쓰다보면 언젠가는 남들에게 당당히 보여줄 만큼 훌륭한 비밀일기장이 되겠지? 라는 헛된 기대를 버려야 한다. 장편을 못 써도 작가 활동은 할 수 있지만, 자기 글을 남들에게 내보이지 못하면 작가가 될 수 없다.


혼자 쓰면 안 된다, 짧은 글이라도 완성하고 발표하는 훈련을 해야 한다는 말을 안 들어본 게 아니고, 결심과 시도를 안 해본 것도 아니다. 하지만 제이가 평생 쌓아 온 골방 밖의 장벽이 워낙에 좀 많이 높고 튼튼했다. 안전하고 편안하기까지 했다. 쪽문을 만들어 나간 적도 있었지만 정신을 차려보니 또 틀어박혀 있었다.




결심쟁이 제이는 또다시 결심한다.

오늘부터 무조건 브런치에 하루 1편씩 글을 올리기로.


본문이 한두 줄이어도 좋고, 내용이 유치찬란 단순무식 엉망진창이어도 좋다. 브런치가 미니홈피 다이어리라고 생각하고, 내용의 퀄리티보다는 '발행 버튼 클릭' 자체를 목표로 할 것. 그러고 보면 브런치가 작가들한테 원고료 주는 것도 아닌데 꼭 브런치의 분위기나 콘텐츠 퀄리티 유지에 기여해야 할 의무가 있는 것도 아니잖아?


다만, 어이없는 글들을 클릭하게 될 소수의 독자분들께는 양해를 구한다. 은둔형외톨이가 문지방 넘는 연습 하는구나 하고 너그럽게 봐주시길. 하긴 막상 써보면 생각보다는 읽을 만할 지도 모르지만, 나중 일은 모르는 거니까 장담은 못하겠다.


그럼, 오늘부터 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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