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발행 2일차
제이는 종종 멸망 이후의 세계에 대해 상상한다.
예를 들어, 잠이 덜 깬 채로 샤워기 물을 맞으며 이런 생각을 하는 것이다. 이렇게 따뜻한 물이 콸콸 쏟아지는 사치스러운 날도 얼마 안 남은 거 아닐까. 몇 년 혹은 몇십 년 후면 머리 감을 물이 없어 머리를 밀어버려야 하거나, 한 달에 한 번 물수건으로 몸을 닦아야 하는 시대가 오는 건 아닐까?
본래의 색깔을 알아볼 수 없는 보풀투성이 겨울옷을 버릴까 말까 고민할 때는 이런 생각을 한다. 이건 절대로 밖에서 입고 나돌아다닐 수는 없는 옷이지만, 몇 년 혹은 몇십 년 후에 집도 없이 배낭 하나 지고 눈보라 속을 헤매 다닐 때 입으면 진짜 편하고 따뜻하지 않을까?
그렇게 생활 속에서 멸망과 함께하면서도 멸망 이후에 살아남기 위한 실질적인 노력 따위는 하지 않는다. 눈보라를 헤쳐 나갈 미래가 걱정된다면 저런 망상으로 시간을 낭비할 게 아니라 차라리 불 피우기나 움막 짓기, 내 상처 내가 꿰매는 법, 호신술 같은 걸 익히는 게 맞지 않을까?
하긴, 애초에 멸망 이후의 생존자가 될 가능성도 거의 없겠다. 멸망이 오기도 전에 1빠따로 죽든가, 잠깐 살아남더라도 눈치가 없거나 달리기가 느리거나 등산을 못해서 죽겠지.
역시 결론은 운동인 걸까?
...라는 어이없는 결론을 내린 제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