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발행 3일차
대여섯 살 꼬마가 마당에서 노란 장화에 물을 채우고 있다. 커다란 고무대야에 받아놓은 물을 바가지로 퍼서 들이붓는다. 들키면 혼날 일이지만 어린 시절에 누구나 한번쯤은 밑빠진 독에 물 붓기 놀이를 해보고 싶어지니까.
새는 속도보다 채우는 속도가 빠르도록 열심히 팔을 놀리자, 어느새 장화 꼭대기까지 물이 찼다. 그러자 이게 웬일? 장화 밑바닥에서 올챙이만큼 작은 물고기 한 마리가 불쑥 헤엄쳐 올라오는 게 아닌가?
꼬마는 파랗게 빛나는 물고기를 계속 키우고 싶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좁고 냄새나는 장화 속에서는 오래 살기가 힘들 것 같아, 집 근처 해수욕장으로 뛰어간다. '넓은 바다에 놓아주면 실컷 헤엄치며 살 수 있겠지.' 꼬마는 바닷물고기와 민물고기가 따로 있다는 사실도 모르고, 물고기에게 큰 바다가 무서운 곳일 수도 있다는 생각도 하지 못한다.
모래사장을 가로질러 파도 끄트머리에 발목이 잠길 무렵, 장화 속 물은 반도 채 남지 않았다. 물고기는 장화의 발가락 쪽과 발목 쪽을 오가며 빙글빙글 헤엄친다. 꼬마는 그 모습을 잠시 아쉽게 내려다보다, 이내 밑굽을 꽉 잡고 힘차게 바닷물 속으로 흩뿌린다.
꼬마의 팔힘은 아직 약했다. 물고기는 파도에 휩쓸려 몇 번이고 다시 육지로 돌아온다. 그때마다 꼬마는 장화로 물고기를 건져다가 다시 멀리멀리 던진다. 여러 번 패대기쳐져 머리가 어질어질한 물고기는 천신만고 끝에 바닷속 느린 해류에 안착한다.
'여기가 어디지?' 캄캄하고 끝없고 낯선 물속에서 겨우 정신을 차린 물고기는, 아가미에서 지도를 꺼내들고 먼 여행을 떠난다. 방금 떠나온 장화 속으로 다시 돌아가려면 지구 한 바퀴를 돌아야 한다. 물고기에게는 장화 속이 제일 편안한 집이자 고향이었던 것이다.
세월이 흘러 나이를 먹은 물고기는 바다 밑바닥에 가라앉은 구두 한 짝을 찾아내 자리를 잡는다. 이제야 좀 편안해졌지만 사실은 오래전 그때의 노란 장화가 그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