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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제 Apr 08. 2022

돈을 버는 이유

매일 발행 6일차

연말정산 환급금이 들어왔다. 수십만 원의 쏠쏠한 공돈이 생겼지만 제이는 그 숫자를 보는 순간만 잠깐 좋고 말았을 뿐 딱히 쓰고 싶은 데가 생각나지 않았다.


제이는 쇼핑을 싫어한다. 스트레스를 받지 않고 거닐 수 있는 쇼핑몰은 서점과 문구점뿐이다. 슈퍼마켓이나 마트는 생필품이 떨어졌을 때 할 수 없이 간다. 최고 난이도는 백화점이나 고속터미널 지하 같은 대형 의류매장이다. 옷 사는 게 제일 싫다. 제이의 로망 중 하나는 스티브잡스처럼 내 맘에 딱 드는 궁극의 옷 하나를 찾아내서 주구장창 그것만 입고 사는 것이다.


상품이 가득한 매장에서 뭔가를 선택해야 하는 상황은 결정불능이 심각한 제이를 장승으로 만든다. 실제로 매장 가운데서 멍하니 서 있기도 한다. 인터넷쇼핑도 마찬가지다. 끝없이 이어지는 상품목록 중에서 대체 뭘 골라야 한단 말인가! 15년쯤 쓴 듀오백의자의 한쪽 등받이에 금이 가서 비뚤어진 지 오래지만 무슨 의자를 살지 결정을 못해서 아직도 그냥 쓰고 있을 정도다.


그리하여 제이가 오늘 받은 연말정산 환급금은 고스란히 적금통장에 들어갈 예정이다. 지금 일을 해서 돈을 버는 이유는 나중에 일을 때려치웠을 때 최대한 오래 버틸 수 있도록 자금을 모으기 위해서니까. 언젠가 이 돈이 내게 자유와 여유를 주기를, 제이는 오늘도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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