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발행 12일차
아무 계획 없이 매일 발행을 시작한 지 12일째다.
아침에 샤워를 하던 제이는 문득, 100일을 채우면 책을 만들어보자는 생각을 했다. 까짓거 뭐, 못할 것도 없지 않나? 100일 채우면 원고지 300~400매 분량은 될 테고, 편집 좀 하고, 디자인 좀 하고, 망각의 저편으로 사라진 인디자인 사용법을 다시 검색해가며 이케이케 뚝딱뚝딱 해서 만들면 되지. 이거 오랜만에 약간 설레는데?
아직 89편이라는 대장정이 남아 있는데도 제이는 벌써 제목과 표지를 구상하고 있었다. 100일 하면 떠오르는 것은? ...백일상......? 돌상은 몰라도 백일상은 딱히 재미가 없어 보였다. 그러면 한국인답게 단군신화는 어떨까? 100일 동안 쑥과 마늘을 먹고 사람이 된 곰 얘기. 그건 좀 괜찮은데...?
생각할수록 딱 들어맞았다. 혼자서도 잘 버티고, 동굴 속에서 사람 되기를 묵묵히 기다리는 성격, 그게 바로 제이 자신 아니었던가? 좋았어! 표지그림으로 쑥과 마늘을 먹으며 글을 쓰는 곰을 그려보자! 근데 쑥과 마늘은 몰라도 곰은 좀 그리기가 어려울 것 같은데? 사진 몇 장 뽑아서 특징을 잡아볼까? 코로나 좀 잦아들면 올해 하반기에는 독립출판 마켓도 꽤 크게 열리겠지? 직장을 향해 걸어가는 동안 제이는 신나게 상상의 나래를 펼쳤다.
잠시 후 사무실에 도착하자마자 컴퓨터를 켜고 네이버 검색창에 '100일 글쓰기'를 넣어 엔터를 쳐보았더니... 세상에 이럴 수가, 이게 무슨 일인가! 제일 먼저 뜨는 책 표지가 정확히 '글쓰는 곰' 그림이 아닌가! <100일 글쓰기 곰사람 프로젝트>, 무려 2017년에 나온 책이었다. 와... 사람 생각하는 게 이렇게 다 똑같구나... '내가 떠올린 아이디어는 무조건 누군가가 이미 써먹은 아이디어다'라는 진리를 또 잊고 있었던 것이다.
100일 글쓰기 자체가 오래전부터 유행하던 프로젝트였다. 그런 주제의 책, 영상, 블로그, 워크숍, 커뮤니티, 스터디모임 등등이 검색결과로 줄줄이 이어졌다. 야심차게 도전하는 사람, 수십 일째 실천하고 있는 사람, 100일 동안 이끌어주는 사람, 100일을 채운 사람, 100일을 채워 책을 만든 사람 등등. 와... 사람들이 이렇게 다 열심히 살고 있었구나...
흔한 100일 글쓰기 도전자 중 하나가 된 제이는 과연 진짜로 책을 만들 수 있을까? 만든다면 그 책은 과연 무슨 내용들로 채워질까? 89일간의 뒷이야기를 조심스레 기대해보는 제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