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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제 Apr 19. 2022

~가 ~에서 ~위해 ~하고 ~된다

매일 발행 16일차

* 안 써지는 시간을 견디는 것도 작업의 일부다.

* 모든 일이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쉬울 수 있다.

* 스토리에는 '시작, 사건, 끝'이 있고(비포→애프터),

  사건은 주요인물의 욕망·감정·생각·믿음·행동의 변화를 포함한다.

* 아냐 괜찮아! 일단은 대충만 쓰면 돼! 엉망으로 쓰고 나중에 고치자!


제이는 책상 앞에 뭔가를 자꾸 써붙여놓으려 하는 습성이 있다. 결심이나 계획을 눈앞에 딱 붙여놓으면 내 것이 된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뭐든 눈에 보이지 않으면 잊어버릴 것 같은 불안감 때문일 수도 있겠다.


'~가 ~에서 ~위해 ~하고 ~된다'


이 역시 책상 앞의 숱한 메모들 가운데 하나다. 제이는 이런저런 작법서들을 읽어본 끝에 이야기의 구조를 이런 식으로 요약했다. 각 부분의 의미는 '~가(주인공) ~에서(배경) ~위해(목표/욕망) ~하고(행동/선택) ~된다(결말)'. 이 구조는 일종의 체크리스트다. 이야기를 쓰다가 '~위해'가 없거나 '~하고'가 없으면 뭔가 잘못된 게 아닌가 되돌아본다. 때에 따라 '~와(상대방)'이 추가되기도 한다.


- 해체 위기를 맞은 마약반이 범죄조직 검거를 위해 치킨집에서 위장 영업을 하다가 대박이 난다.

- 어느 고을에서 놀부가 착한 동생 흥부처럼 부자가 되려고 제비 다리를 분질렀다가 패가망신한다.

- 몰락한 최씨 집안의 외동딸 서희가 원수 조준구에게 복수하고 가문을 다시 일으키기 위해 간도에서 부를 축적하고(그밖에 몹시 많은 일을 하고 엄청 많은 사람을 만나고 파란만장한 일생을 보낸 끝에) 광복을 맞는다.


물론 짧은 한줄시놉시스에 이 이야기들의 재미와 매력과 복잡한 역학관계를 다 담을 순 없지만, 인간의 모습을 극도로 단순화해보면 어쨌든 졸라맨 모양이 되듯이, 이야기라는 걸 극도로 단순화해봤더니 이런 모양이 나오더라는 얘기다.


심심할 때는 그냥 빈칸채우기 놀이를 해보는 것도 괜찮다. 하긴 제이에게 '심심할 때'란 거의 존재하지 않지만...(해야 할 일도, 하고 싶은 일도 너무 많아서) 빈칸채우기 놀이를 할 때는 너무 진지하게 오래 생각하지 않는 게 제맛이다.


- 호랑이가 계룡산에서 도를 깨치기 위해 명상을 하다가 저녁을 굶는다.

- 게으른 소시민 제이가 인생역전을 위해 로또전문점에서 5천원어치 로또를 사고 1등에 당첨된다.

- 낡은 백과사전이 책꽂이에서 단 한 번이라도 꺼내지고 싶어 주인에게 텔레파시를 보냈으나 실패한다.

- 할머니가 핸드폰을 고치기 위해 서비스센터에 물어물어 갔다가 10년 전 잃어버린 손자를 만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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