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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제 Apr 25. 2022

순간이동 능력 숨기기 1

매일 발행 23일차

“우리 팀에 순간이동 할 줄 아는 사람 있나?”


팀장의 한마디가 떨어지자 사무실에는 정적이 흘렀다. 제이도 침을 꿀꺽 삼키고 숨을 죽였다. 요즘 젊은 직원 중에 순간이동을 못 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전문가용 장비까지도 필요없이 간단한 보급형 장치만 조작할 줄 알면 반경 50킬로미터 이내는 얼마든지 이동 가능한 세상이다. 이 팀에서 자가용을 몰고 출퇴근을 하는 사람은 팀장 하나뿐이었다.


무릇 회사에서는 직무 외의 능력이라면 무조건 숨기고 봐야 하는 법이다. 팀원들은 최고급 순간이동 장비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팀장에게는 ‘오늘따라 버스가 많이 밀렸다’든가, ‘지난 주말에 KTX 타고 부산에 다녀왔는데 정말 좋더라’는 말을 은근히 흘리곤 했다. 그러나 사실은 주말 이틀 동안 뉴욕 센트럴파크나 북극 이글루 체험을 다녀오는 이들도 흔했다. 제이도 얼마 전 입사동기 민주와 이집트에 다녀왔다.


위기였다. 여기서 손을 들었다가는 무슨 일을 떠맡게 될지 모른다. 운이 좋다면 팀장이 집에 놓고 온 서류를 가져오는 정도의 간단한 심부름일 수도 있다. 하지만 황해도쯤으로 진상 거래처 미팅을 가라느니, 중국 공장으로 파견을 나가 최근의 불량률 증가 원인을 분석해 오라느니 하면 어쩔 것인가? 지금 이 순간은 간단한 심부름에 그치더라도 순간이동을 할 줄 아는 유일한 직원으로 찍혀 재직기간 내내 고통받게 되면 어쩔 것인가?


모두가 서로의 눈치만 보던 그 순간, 이 대리가 선수를 쳤다.


“아이고, 제가 좀 시대에 뒤떨어져서요. 순간이동은커녕 자전거도 못 타서 걸어다니잖아요. 무슨 일 때문에 그러시는데요?”


“별건 아니고, 이번에 우리 회사에서 사택을 하나 지었는데 그게 부산 본사 근처에 있다네. 값도 싸고 시설도 괜찮은데 말야, 부산에서 서울까지 출퇴근하려면 순간이동은 할 줄 알아야 되잖아.”


사무실 분위기가 미묘하게 급변했다. 타다다닥 키보드 두드리는 소리가 곳곳에서 일제히 울려퍼졌다. 사내 인맥을 총동원해 사택 조성 담당부서 직원에게 관련 정보를 캐내려는 소리였다. 제이도 민주에게 말을 걸어보려 황급히 메신저를 켰다.


하지만 굳이 그럴 필요도 없었다. 사택 건은 곧 회사 인트라넷 공지사항 게시판에 떴다. 해운대구에 있는 부산 사택은 창밖으로 바다가 펼쳐진 최고급 오피스텔이라고 했다. 15평형 투룸 월세가 수도권 고시원 수준이었다. 놀라운 조건이었다.


직원들이 순간이동 기술을 빠르게 습득한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월세였다. 지난 세기부터 계속된 집값 폭등으로 50대 이하의 직원들은 대부분 월세를 살았는데, 비싸고 비좁은 서울 집에 돈을 퍼다 바칠 바에야 순간이동으로 타지역에서 출퇴근을 하는 편이 백번 나았던 것이다.


“아, 젊은 사람들이 여태 순간이동도 안 배우고 뭐했어? 부서별로 한 명씩 뽑는다는데, 지금이라도 빨리 배워서 신청들 해보라고.”


부서별로 한 명이라면 경쟁률이 20:1 정도 된다는 소리였다. 제이는 흔들리는 동공으로 공지사항을 읽고 또 읽었다. 바다 보이는 집에서 살아보는 게 평생의 로망이었던 데다, 최근 주식으로 큰돈을 잃기까지 한 것이다. 주변을 둘러보니 벌써 신청서 양식을 작성하는 이들이 서너 명은 넘어 보였다. 특히 지난해 실적왕 상장까지 받은 송 대리는 승산이 있다고 생각했는지 내일 가려던 휴가조차 포기하고 구비서류를 출력하고 있었다.


한편 가족 때문에 이사를 갈 수 없거나, 회사 사람들끼리 모여 사는 게 너무 싫거나, 경쟁 회피 성향인 직원들은 일찌감치 관심을 끄고 순간이동 능력을 끝까지 숨기는 쪽을 택했다. 사택에도 못 들어가고 능력만 들키면 그보다 억울한 일이 어딨겠는가?


제이는 입주권 경쟁에 뛰어들지 말지 쉽게 결정하지 못했다. 일단은 사택을 두 눈으로 직접 보고 싶어, 퇴근하자마자 부산으로 순간이동했다. 시원한 파도 소리가 들려왔고, 창틀 보호필름도 떼지 않은 새 건물은 석양을 받아 황금빛으로 빛났고, 그 앞은 직원들로 북적였다. 혼자 기웃대는 민주의 뒷모습이 보였다. 제이는 반갑게 소리쳐 부르며 손을 흔들었다.


“와, 여기서 다 본다? 너도 신청하게?”


“글쎄... 좀 이상해서 보러 왔지. 우리 회사가 원래 이렇게 직원복지에 큰돈 쓰는 데가 아니잖아?”


“듣고 보니 그러네. 뭐 좀 들은 얘기 있어?”


“어디서 들은 건 아니고, 이건 내 추측인데 말야...”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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