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발행 24일차
“이 건물에 하자가 있는 게 분명해. 금 가고 무너지고 그런 것까진 아니라도 뭔가 중대한 실수를 한 거야. 천장에서 24시간 물소리가 들린다든지, 거실에 콘센트가 없다든지 그런 거. 일반인한테 임대하면 엄청 욕먹을 일인데 직원들은 감지덕지하고 입 닫을 거라고 생각하는 거지.”
“에이, 그런 거면 어떻게든 고쳐서 임대를 하든 사무실로 쓰든 하겠지. 욕먹을 거 무서워서 직원들한테 뿌린다고? 설마.”
“아니면 설명이 안 돼. 우리 팀 사람들은 아무도 지원 안 한다더라. 다들 의심이 많아서.”
“오, 그러면 두 명 뽑는 팀도 생기려나? 나도 한번 신청해봐?”
“말리고 싶다.”
민주의 말을 듣고도 제이는 높다란 건물의 층수를 세어보며 미련을 버리지 못했다. 설마 저 큰 건물을 그런 식으로 지었겠어? 월세도 아끼고, 아침마다 해변 산책도 하고, 새 건물에서 살아보면 얼마나 좋을까? 지금 사는 집은 옵션 세탁기가 너무 낡아 분해청소조차 할 수 없는 오래된 원룸이었다. 제이는 민주를 돌아보며 작게 속삭였다.
“야, 이따가 한번 몰래 들어가볼까? 하자가 있는지 없는지 직접 한번 보고 결정하는 거야.”
“우리끼리 밤에 들어가자고? 미쳤냐?”
“뭐 어때, 들키면 순간이동해버리지.”
“더더욱 큰일날 소리. 그런 목적으로 순간이동하다 신고당하면 면허 취소될걸?”
“진짜? 그런 조건이 다 있었어?”
“아 몰라, 그냥 상식적으로 그럴 거 같아서 해본 말이야.”
“됐다, 그냥 너 혼자 집에 가든가. 나 혼자서라도 들어가볼 테니까.”
“내일 출근은?”
“드라마 정주행하다 밤샌 셈 치지 뭐. 그런 날도 어떻게든 출근이 되긴 되더라고.”
결국 제이와 민주는 해운대 해변에 신문지를 깔고 광어회를 안주삼아 캔맥주를 마시다가, 자정이 넘어 주변이 조용해지자 몰래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다행히도 사이렌이 울리거나 경찰차가 달려오지는 않았다. 캄캄한 로비는 아직 공사자재가 더러 널려 있긴 했지만 호텔처럼 넓고 럭셔리했다.
“야, 은근 담력훈련 하는 것 같고 재밌지 않냐?”
“좋댄다. 야, 이렇게 깜깜해서 무슨 하자 검증을 해. 집 제대로 보려면 물도 틀어보고 불도 켜보고 다 해야 되는데.”
“잔소리 다 했니?”
“무서워서 그런다, 됐냐?”
둘은 계단을 올라가 2층의 한 집으로 들어갔다. 어두워서 자세히 살피기는 무리였지만, 적어도 콘센트와 싱크대와 환풍구와 창문 정도는 제자리에 잘 붙어 있다는 걸 민주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코미디 같은 중대 실수가 있을 거라고 하기에는 너무나도 번듯한 모습이었다. 베란다 섀시 밖으로 파도 치는 바다가 보였다. 민주조차 저도 모르게 “이런 데 살면 좋긴 좋겠다...” 하고 혼잣말이 튀어나올 정도였다.
“야, 그러고 보면 직원한테 이만큼 투자하지 말란 법 있냐? 얼마 전에 사장도 바뀌었잖아. 새로 취임했다고 직원한테 인심이라도 쓰려나보지.”
“그렇게 인심 쓸 캐릭터 같진 않던데. 완전 일중독자라잖아. 취임하자마자 별별 자료 다 달라고 쪼아서 얼마나 고생했는데. 아, 갑자기 스트레스 확받네. 아아, 술 올라와.”
“진정하시고. 야, 여기까지 온 김에 우리 옥상 야경이나 한번 보고 갈래? 술도 깰 겸.”
“술을 뭐하러 깨냐. 그냥 집에 가서 자면 되지. 그만 좀 싸돌아다니고 이제 가자, 쫌!"
결국 제이의 팀에서는 총 3명이 입주 지원 서류를 제출했다. 이 대리, 송 대리, 그리고 제이였다. 결과는 놀라웠다. 3명 모두 입주자로 선정되는 기적이 일어났다. 지원자가 예상보다도 훨씬 적었던 것이다. 순간이동 능력을 커밍아웃해버린 ‘부산행’ 팀원 셋은 그 후 팀내 출장 업무를 도맡게 되었지만, 제이는 낡고 비싼 원룸을 탈출해 저렴한 바닷가 신축 투룸으로 이사하게 된 것만으로도 충분히 기뻤다.
그로부터 두 달 후,
제이를 포함해 선정자 전원이 입주를 완료한 어느 날이었다. 제이는 주말 내내 집을 청소하고 꾸미느라 몸살이 나버렸다. 초췌한 몰골로 약국에 다녀와 로비로 들어서는데, 엘리베이터 쪽에 사람들이 죄다 고개를 숙이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머리가 어질어질해 ‘왜들 저러지?’ 하고 멍하니 보고만 있는데, 이 대리가 다가와 어깨를 툭 쳤다.
“소식 들었지? 우리 망한 거.”
“망하다뇨?”
“저어기 엘리베이터, 사장님이잖아.”
“아... 사장님이 여긴 웬일로...?”
“여기로 친히 이사를 오신댄다.”
“네에???”
“이 건물 꼭대기층에 최고급 펜트하우스 있는 거, 알았냐? 직원들이랑 가족같이 살겠다고 그런 거였대.”
“아니, 가족 같은 건 회사에서나 하시지 왜 굳이 집에서까지...”
“그런 로망이 있었대. 직원들이랑 아침마다 같이 조깅도 하고, 저녁에는 집 근처 치킨집 같은 데서 맥주 한잔 하면서 업무고충도 풀어주고, 휴일에는 등산도 다니고, 뭐 그렇게 격의 없이 친해지고 싶으시댄다.”
들고 있던 약 봉지가 털썩 떨어졌다. 해운대 바다가 아무리 아름다워도 사장과 함께하는 단체조깅이라면 절대 사절이었다. 몰래 건물에 숨어들었던 그날, 포기하지 말고 꼭대기까지 올라가봤다면 미리 알 수 있었을까? 후회해도 이미 늦은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