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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제 Apr 28. 2022

놀라운 신문물을 접하였습니다

매일 발행 25일차

소생의 아우가 기이하기 짝이 없는 신문물을 빌려주었습니다. ‘오큘러스 퀘스트2’라는 그 요물은 마치 신기루나 만화경 같고, 도깨비의 요술방망이 같았습니다.


괴상한 안대를 뒤집어쓰자, 귀신에 씐 듯 천지사방에 새로운 세계가 펼쳐졌습니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서책이 겹겹이 쌓인 단칸방이었는데, 찰나의 짧은 순간에 광대한 우주 속에 놓여 있었습니다. 말 그대로 천지가 개벽한 것입니다. 믿어지십니까? 저조차도 믿을 수 없는 광경이었습니다. 머리가 어지럽고 다리가 휘청거렸으나, 끝없는 허공으로 떨어질까 두려워 차마 주저앉지도 못하였습니다.


아우는 크게 놀란 저를 진정시키며 온갖 신기한 것들을 보여주었습니다. 손전화기로만 보던 유튜브 화면이 집채만큼 커졌고, 우주선 안에서 과녁을 향해 총을 쏘았으며, 바다 건너 먼 나라까지 순간이동을 하기도 하였습니다.


특히 제 마음을 빼앗은 것은 ‘비트세이버’라는 장단놀음이었습니다. 아우의 도움으로 시작 단추를 누르자, 어느덧 양손에 광선검이 들려 있었습니다. 이윽고 눈부신 궤짝들이 격한 가락에 맞춰 비호처럼 날아드니, 저도 모르게 검을 휘두르게 되었습니다.


아시다시피 소생은 검술을 익히지 못한 뼛속부터 문과 아닙니까? 그러한 제가 광선검을 휘둘러 궤짝들을 썩썩 베어내니, 마치 천하제일의 검객이 된 듯 기분이 썩 장쾌하였습니다. 신선놀음에 도낏자루 썩는 줄 모르듯,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몰두하였습니다.


그리 놀다보니 그리운 옛 기억이 떠올랐습니다. 20년 전 소생은 ‘펌프’라는 놀음에 빠져 있었습니다. 틈이 나는 대로 오락실에 달려가 즐겼고, ‘Hit me!'라는 구호에 가슴이 뛰었으며, 놀음판에 올라서면 짐짓 거만한 태도로 2배속 커맨드를 밟곤 하였습니다. 좋아하는 악곡은 족보를 구해 동무들과 함께 연습한 적도 많았습니다.


운동신경이 둔한 소생이지만 하드모드 ‘컴백’, ‘텔미텔미’, ‘또다른 진심’ 정도는 능히 성공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 세차게 뛰놀아도 무릎과 허리가 상하지 않았던 젊은 시절이 제게도 있었던 것입니다. 이러한 제 꼴을 보시고 모친께서는 전기장판처럼 생긴 가정용 펌프를 사주셨으나, 오락실에서 쿵쾅거리며 마음껏 뛰는 맛에 비할 바는 못 되었습니다. 헌데 이제는 집 안에서도 아쉬움 없이 장단놀음을 할 수 있게 되니 참으로 격세지감을 느낍니다.


스승님, 제가 미래를 향해 떠나온 지도 어언 40년이 다 되어갑니다. 현기증이 나도록 빠르게 바뀌는 이 세상은 아무리 적응해도 또다시 적응할 것이 생기는 곳입니다. 아무리 베어내도 계속해서 날아오는 궤짝들처럼 말입니다. 제가 이 궤짝들을 끝까지 베어내고 살아남을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이 서신을 부칠 길 없어 안타깝습니다. 그러나 늘 스승님을 생각하며 낯선 이 세계를 살아갑니다. 그럼 또 쓰겠습니다. 부디 강녕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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