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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제 May 04. 2022

전광판 광고에 내가 나온다면

매일 발행 31일차


제이는 캐리어를 끌고 방에 들어섰다. 생전 처음 와보는 최고급 스위트룸이었다. 여기를 왜 왔는지, 무슨 돈으로 왔는지 기억나지 않았지만 눈앞에 새하얗고 커다란 침대와 통유리창 너머 파란 하늘이 보이자 환호성을 지르며 침대에 몸을 던질 생각밖에 나지 않았다.


다음 순간 제이는 호화로운 조식뷔페에서 음식을 담고 있었다. '이상하다? 잠을 잔 기억도 없는데 바로 아침이라니?' 의아했지만 일단 눈앞에 각종 산해진미가 펼쳐져 있으니 이것저것 실컷 담아 먹을 생각밖에 나지 않았다.


한 입이나 먹었을까? 어느새 제이는 호텔 로비에 서 있고 유니폼을 차려입은 호텔리어들이 일제히 허리를 숙여 인사했다. '아니, 내가 대기업 회장도 아닌데 줄 서서 인사라니?' 뭔가 이상하다고 생각한 순간, 거짓말처럼 사방이 새하얀 허공으로 변하며 눈앞에 커다란 글자가 떠올랐다.


'국내 최초 10성급 호텔, 000'


어리둥절한 제이가 눈을 꿈뻑꿈뻑하자, 안개가 걷히듯 글자 너머로 대도시의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10차선은 되어 보이는 넓은 도로, 양옆으로 줄지어 선 고층 빌딩들, 그중 한 빌딩 앞에는 웬 거대한 강철인간이 망치질을 하고 있었다. '앗, 저건!' 제이는 순간 깨달았다. 자신이 광화문 사거리 대형 전광판에 송출되는 호텔 광고 속에 있다는 사실을.


다음 순간 사방이 캄캄해졌고, 제이는 아스라이 들리는 광고 소리를 들으며 암흑 속에서 오도카니 서 있었다. 그리고 다음 호텔광고 시간이 되자 또 스위트룸에 들어서고, 조식뷔페에서 음식을 담고, 호텔로비에서 인사를 받고, 암흑 속에 서 있다가, 스위트룸에 들어서고...


그렇게 수십 번을 반복하며 제이는 두려워지기 시작했다. 이 광고의 계약기간이 끝나면 나는 그대로 사라지는 걸까? 아니면 이 망할 호캉스를 떠나오기 전, 내가 살던 현실세계로 돌아갈 수 있는 것일까? 누구에게라도 묻고 싶었지만 대답해줄 사람은 어디에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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